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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X맨'이라고 조롱하는가

  • 등록일
    2006/09/30 06:20
  • 수정일
    2006/09/30 06:20

언제부턴가 모 방송사의 주말 오락프로 제목에 'X맨'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거 어디 외국 방송 모방한 듯한 프로인데...

어쨌든, 여기서 'X맨'은 '고의적으로 상대편을 도와주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프로는 'X맨'을 잡아내는 게 일이다.

 

오랜만에 TV를 틀어서, 게임방송을 봤다.

한주간에 있었던 SKY프로리그 경기 결과를 정리하는 프로였는데,

제목인지, 그냥 컨셉이 그런건지 "MVP vs X맨"이라는 이름이 달려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것도 했는지... 참... 별걸 다 만든다.

 

내용은... 매 경기마다

이긴 팀에서 잘한 선수 한명(MVP)과,

진 팀에서 가장 부진했던 선수 한명(X맨)을 선발하여,

그 선수들이 어떻게 잘했고, 어떻게 부진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거 원 성질나서 TV를 못보겠다.

 

이긴 팀에서 잘한 선수를 소개하고,

그 선수의 플레이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것까지는 대강 이해할 수 있다. 잘한건 잘한거니까...

근데, 왜 진 팀에서는 가장 못한 선수를 소개하냐고...

그리고 그 선수의 플레이에 대해서 해설하는데, 그건 더 가관이다.

"○○○선수 한게 아무것도 없이 졌습니다."와 같은 표현들... 그런 말 실컷하다가...

그러나, 이 선수는 알고보면,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운이 없었다는 말 한마디...

실컷 놀려놓고, 그런 말 한마디 던지면,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리고 마지막에 'X맨'이었다고 다시한번 강조해주는 빈틈없는 편성.

 

나도 게임방송을 보다가, 어떤 게이머들이 맥없이 지는 경우들을 보면 솔직히 답답하다.

"저건 완전히 실수다.", "아유, 저걸 못막네...", "거기서 그렇게 하면 안되지..."

이런 표현들 정도는 내 입에서도 자주 나온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프로게이머일수록 그렇다. (강민 만세!! 꺄~)

 

그런데, 그렇다고 그때 진 선수들이 욕먹을 일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물론, 게임내용은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고, 그 구단 내에서의 평가는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외부에서 굳이 한거 아무것도 없다고, 무능력하다고 욕하는 일이다.

자기들이 심판이라도 하듯이 채점도 한다.

 

프로리그는 구단간의 대결이다.

절대로 승패의 책임이 선수에게 일차적으로 있는 것이 아닌 구도임에도,

방송에서는 선수들에게 팀의 패배의 책임을 모두 돌리려는 것은 아닌지...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X맨'이라고 하면, 그 선수의 팀 내의 정체성마저 의심할 정도니...

어쩌면 그 선수는 일주일내내 그 한경기만을 위해, 연습만 죽어라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 선수들이 진 이유들은 '한두가지 쯤의 실수'와 '시작부터의 운이 안따름'... 이런 것인데...

그런 이유로 그들의 노력을 뒤로 하고, 상대편을 도와줬다는 조롱을 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평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게임 내용은 남고, 평가는 어디에서든 진행될 것이다.

프로게이머라면 실력에 대해서만큼은 냉정하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건 거기까지다. 'X맨'이라는 표현은 그 어떤 냉정한 평가의 의미가 아니다.

비아냥이고, 조롱이다. 그리고 팀 성적 전체에 대한 '책임전가'다.

 

그리고 진 팀에서도 잘한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다.

팀은 졌지만, 자기 경기는 이긴 선수들도 있고,

또 자기 경기를 졌지만, 정말 잘했는데, 결국에는 진 (상대가 좀 더 잘해서...) 선수들도 있다.

(이런 경기들이 대개 명경기로 오래남는 법이다.)

이런 걸 좀 소개해주는 게 서로서로 좋지 않을까?

(실제로 CJ의 장육선수는 SKTelecom의 임요환선수하고의 듀얼토너먼트대결에서

비록 졌지만 천하의 임요환을 상대로 잘 싸웠다는 이유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한판을 이기기 위하여, 일주일 내내 게임 연습만 하고 있을 선수들의 노력에 대해,

승패를 떠나 기본적으로 칭찬과 위로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월드컵에서 한국의 경기를 보게 되면,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던 것은 한국 선수들의 실수였다.

그 실수 자체가 게임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선수들이 그 실수하나로 또 얼마나 사람들의 비아냥의 대상이 될 것이고,

경기결과마저 좋지않다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발 그러지는 말자는 거다. 이기면 이기는 거고, 지면 지는 거지.

경기 내용의 평가를 냉정하게 하겠지만, 정말로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그때그때의 선수하나하나의 상태를 다 평가해보라.

그들의 체력과 그들의 심리적인 상태, 그들의 손끝, 발끝하나하나까지도...

그렇다면 어디 그렇게 비아냥댈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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