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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20주년 백서 원고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지만, 다산인권센터의 ‘학생인권’에 대한 고민 또한 저 한 문장과 함께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멈춰버린 인권,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인권, 이 사회에서 ‘아니’라고 이야기되고 여전히 ‘존재’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거쳐 간다. 저마다의 기억과 경험이 다르겠지만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곤 한다는 것은 큰 공통점일 것이다. 억압과 폭력으로 물든 공간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그렇게 학교를 다니던 사람들이 또다시 이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그래서 여전히 되묻는다. 학교는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우리의 교육과 이 사회는, 어떻게 인권을 담을 수 있을까.

 

학교를 뒤집어라! “스쿨어택” … 학교 현장 대응

어느 지역이야 안 그렇겠냐마는, 수원은 경기지역에서도 “빡센” 지역 중에 하나로 꼽혔다. 수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이어도, 몇몇 학교의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였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망포고등학교(2008년 3월 개교)에서 한 학급의 반이 넘는 학생들을 한꺼번에 ‘퇴학’시킨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학교의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며 상벌점제도를 시행했고, 생활태도 불량, 복장불량, 교사 지시 불이행 등으로 벌점이 쌓인 학생들을 강제로 전학을 보내거나 내쫓았다.

상벌점제는 학생들의 행동에 점수를 매겨, 이를 통계 내고, 평가하는 제도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2010년 10월 5일 공포)에 의하여 학교와 교사들의 체벌이 금지되니, 이에 학생들을 통제·규제의 수단으로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망포고 사건이 일어난 2009년 당시에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얘기조차 나오지 않은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상벌점제도는 학생들의 생활 태도 등에 점수를 매겨, ‘문제아’로 낙인찍거나 학교에서 아예 퇴출해버리는 방식으로 많이 활용된다는 점에서 아주 몹쓸 제도로 손꼽혔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체벌은 손으로 때렸다면, 상벌점제는 벌점으로 때리는 또 다른 체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벌점제에 대한 문제점과 불만은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체벌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으니, 운이 없을 땐 맞기도 하고 벌점까지 받는 학생도 있었다.

망포고 사건을 맞닥뜨리며, 다산인권센터는 지역의 학부모·교육단체와 함께 “수원시 고교 강제전출 저지를 위한 학생인권연대(2009)”를 꾸리게 된다. 그리고 이후 학생인권연대는 망포고 뿐 아니라 이 연대를 통해 인권침해 사례가 제보된 몇몇 학교로 직접 달려가 지속적인 학교 앞 선전전을 펼치며 꾸준히 학생들과 만났다. 학생들은 평소엔 이런 일들을 어떻게 참아왔나 싶을 정도로 학교에서 겪은 부당한 일들에 대해 쏟아놓았다. 학생인권연대 카페에는 하루에 수십 개가 넘는 게시글이 올라오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다산인권센터 사무실로 직접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저희들은 지금 많이 화가 나있다”며, “학생에게도 정말 인권이 있는거냐”며, “선생님이라고 함부로 때리고 욕해도 되는거냐”며, 그 동안 꾹꾹 눌러 담아왔던 이야기들을 터뜨렸다.

많이 분노했고, 때로는 같이 울기도 했다.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냥 맞았어요, 꼬리뼈가 부러졌대요, 단체기합을 심하게 받고 친구가 쓰러졌어요, 벌점이 쌓여서 걱정이에요, 자꾸 성적으로 차별해요... 안 그래도 남 얘기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온라인을 통해, 직접 만남을 통해, 들려왔다. 그냥 가만히 소화시킬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자꾸만 마음에 얹혔다. 학생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화가 나서, 힘없는 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상황이 억울해서, 그러다 학교의 오른팔 역할을 너무나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학생회장 같은 학생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날은 더 마음이 무너지는 듯 했다. 폭력의 학교에서 몸으로 터득한 권력에 대한 복종이었다. 학생 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때마다 더 만나고, 더 조사하고, 더 꼼꼼해지고,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함께 애썼다. 새삼스레 학생인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학교 현장에서 문제를 마주하는 당사자들의 행동, 학생들의 직접행동, 스스로의 움직임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강제 전출 저지’로 시작한 학생인권연대는 이후 전반적인 학생인권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계속 연대체로 남아있지는 않았다. 2009년 말, “동네에서 청소년운동 하기”를 고민하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수원지부’가 모임을 시작하게 되면서 아수나로 수원지부의 청소년인권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고민을 넓혀갔다.

 

이제는 현실이 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한참 망포고, 예당고, 천천고 등 주요 학교들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문제에 대응하고, 지역의 학생인권모임을 꾸리는 것에 힘쓰고 있을 때였다. 처음으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들었다. 김상곤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을 주요 정책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험난한 여정을 예상했던 탓일까, 주변 활동가들도 “조례를 만든다는데, 에이 그게 지금 가능하겠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그 ‘학생인권조례’는 이미 광주, 경남지역 등에서 제정운동이 펼쳐지고 있었고, 2006년 학생인권법 제정 운동 당시의 경험과 담론이 있었기에 꿈꿔볼만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학생인권의 현실을 들여다보아도, “인권친화적 교육”, “학생인권 보장”을 보다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공약들을 추진하는 데는 탈이 많았다. 경기도 교육위원 아저씨들이 “어머, 이런 건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에요.” 하면서 예산을 뭉텅뭉텅 깎아버리지 않나, 당사자인 학생들의 참여방안에는 무관심하질 않나,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공청회 등의 토론회 자리에 나와서 ‘일단 반대’를 외치질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위한 자문위원회가 꾸려졌고, 다산인권센터도 자문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인권단체가 이 자문위원회에 결합했던 것은 아니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 또는 그 내용이 현실에 비해 너무 미흡해서, 잘 추진되고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자문위원회 구성도 ‘대충’ 해버리려고 했었던 것이다. 제정 과정에서 학생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반영하기 위한 ‘학생참여기획단(학참단)’ 구성도 다산과 같은 인권단체에서 자꾸만 이야기를 던져줬기에 그나마도 틈새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학참단은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기 직전까지, 학생들의 입장에서 본 조례안에 대해 끊임없이 의견을 내기도 하고, 조례의 초안이 발표되고, 본격적으로 입법과정을 밟을 때에는, 학생인권조례가 무산되지 않도록, 그리고 제대로 된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어느덧 2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학생인권은 교문을 넘어섰는가. 제대로 잘 지켜져도 모자랄 판에, 여기저기서 삐그덕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학생 또한 존엄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라는 인권보장의 기본적 정신이 담긴 학생인권조례, 인권과 교육의 만남을 그리며 학교의 변화를 꿈꾸는 학생인권조례. 그래도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학생인권조례 이전’과 ‘학생인권조례 이후’가 꽤나 큰 변화의 기준이 되어있음을 느낀다. 학생인권조례라는 것이 만들어졌기에, 할 수 있는 활동, 이것을 딛고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기존의 틀로는 변화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과감히 현상을 유지하는 틀, 기준 자체를 바꾸어내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 이전의 학생인권운동에 “보다 현실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제 앞으로의 운동에는 다시 그 ‘현실’을 넘어, 또 다른 변화를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힘이, 실려야 할 것이다.

 

청소년인권의 볼륨을 높이다

인권의 가치가 구석구석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산인권센터 라디오 방송 ‘인파속으로’는 시작되었다. 지금은 사라진 코너인 “청소년인권 고고씽”은 그 동안 쉽게 떠들 수 없었던 “청소년인권” 이야기를 ‘청소년’활동가가 들려주는 코너였다. 2008년, 나름대로 생생한 청소년이었던 DJ는(^~^) 아직도 처음 녹음기를 잡던 순간을 기억한다고 한다. 라디오팀 회의를 거쳐 주제도 정하고, 그 때 그 때 대본도 쓰고, 녹음도 하고, 편집까지. 인권, 교육, 학생간폭력, 체벌, 입시경쟁, 당시 전국을 들썩였던 촛불집회 이야기, 그 속에서 만난 청소년인권, 지역의 이슈, 청소년행사 소식 등등, 주제도 다양했다.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지만 라디오방송은 그럼에도 지역에서 학생·청소년인권 고고씽!을 외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또한 지역의 학생·청소년인권 운동도 여러 활동과 넘나들면서, 또 많은 시간을 달려오면서, 조금씩 성장해왔다. ‘두발자유·체벌금지’로 대표되던 인권의제에서 교육과 학생자치, 학교 안 민주주의까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계기로 더 나아가 성숙·미성숙 담론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기준 깨기, 정치적 권리 요구, 친권·가족주의를 통해 본 청소년인권, 청소년노동인권, 청소년보호주의, 청소년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 청소년의 권리… 까지. 점점 더 담론의 성숙과 의제의 확장이 요구되고 있다. 더불어 청소년 당사자들의 조직화, 학생인권운동의 대중화 또한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불만’이 가득했던 한 청소년이 인권을 만나며 그 자신의 삶이 풍성해졌다고 말하듯, 지역의 학생인권운동도 다산인권센터의 활동 속에서 조금씩 볼륨이 높아져왔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혹은 ‘듣는 시늉’만 했던, 학생인권의 볼륨을 높여나가는 일을, 앞으로도 해나가자.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작고 낮은 곳까지 예민하게 인권활동을 뻗어나가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자꾸자꾸 인권을 만날 수 있게, 결국 인권이 든든함이 될 수 있게, 우리의 활동이 더 씩씩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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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20주년 백서에 실릴, "그곳에 다산이 있었다" - 학생인권 파트.

쓰느라 고생했다.

마감을 몇 달을 어겨가며, 겨우겨우... 탄생한 글.

 

왜 그렇게 힘들었나ㅡ

돌아보면, 나는 참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이구나, 생각도 했다가,

글은 언제나 시작이 어ㅓ려워! 생각도 했다가,

바로 1년 전만 돌아봐도 벅찬데, 근 4~5년의 활동을 돌아보고 압축해서 정리하려니,

아주 뻐근해져서, 그게 또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요즘 나를 둘러싼 곳곳의 얕은 우울감이, 좀 더 가라앉게 만드는 것 같은데,

생각은 두둥실 한데 글이 생각을 못 따라가는 건지, 그냥 내 생각이 짧은 건지,

내 삶과 일상을 얹어야 하는데, 그것이 자꾸만 삐그덕거린다. 아이구...

 

이래 가지고 뭘 전달하고, 뭘 이끌어나가나.

살짝 자책도 되는, 그런... 그 자책이 그래도 긍정적으로 소용돌이 치길 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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