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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학생인권조례, 우리 이제 친해지길 바래
난다(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시기를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낸다. 학생, 청소년이라면 착실히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꼭 공부나 배움이 ‘학교’라는 곳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은 제쳐두고서 현실을 보면, 어쨌든 학교가 많은 청소년들의 일상을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의 학교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가장 변하지 않는 곳 중에 하나였던 학교가, ‘갑갑함’, ‘감옥’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던 학교가 변하고 있다. ‘학생인권’,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 등등이 새로운 열쇳말로 떠오르면서, 경기도에서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학교가 변하고 있다. 학생인권은 어떤 학교를 바라고 있을까? 지금 학교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만나야 할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따라 학교, 학생인권과 친해져보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지
나는 지금도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하면 우중충한 하늘이나 조용한 교실,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떠오른다. 언제나 잠은 부족했고, 시험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문제를 풀고 점수를 올리는 연습에 더 익숙했다. 새벽에 알람소리를 듣고 억지로 잠에서 깰 때마다 생각했다. 주섬주섬 교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한 학교는 언제까지 다녀야 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던 그 때, 같은 모양의 틀로 찍어낸 것 같은 그 일상과 하루하루는 더 이상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답답하던 나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우연히 만난 ‘청소년인권’이었다. 입학식 첫날부터 시작된 ‘야자’에 적응할 수 없어 몸부림치던 시절, 시험기간만 되면 바깥풍경이, 반짝이던 하늘빛이, 구름이, 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셨지만 그 아름다움을 결코 자유롭게 만끽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나는 ‘미학혁명(미친 학교를 혁명하라)’을 만났다. 학생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의 집회였는데, 그곳에서 나는 내 마음 속을 제대로 엿보게 된 것이다. 혼자 마음 속으로만 꿍시렁거리던 그 불만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전부터 오랫동안 어려운 조건 속에서 청소년운동을 일궈온 사람들을 새롭게 만났고,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났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는 우리가 보고싶은 현실을 위해 부던히도 몸을 움직여왔다.
우리가 원했던 그 학교의 변화를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글에서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김상곤 교육감이 훌륭하고 개념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과,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당연히도 학생인권 운동의 역사가 녹아있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두발자유-no cut’ 운동, 독립적 학생회 보장 요구 등등 거의 10년 가깝게 학생인권에 관한 학생들의 요구와 행동이 진행되어왔다.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높아져갔고 비로소 일상적으로 존재하던 많은 학생인권 침해들이 의미 있는 문제―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학생인권운동은 2005년 이후로 광주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그리고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의.) 등의 형태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조치들을 만드는 것을 요구해왔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또한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 학생인권운동은 음으로 양으로 참여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회에도 학생인권에 관련하여 활동을 해온 인권운동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 연구용역팀에도 학생인권에 관한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참여했다. 과거에 연구되고 발표되었던 학생인권 지침, 결정 등이 함께 검토되었고, 광주 학생인권조례안이나 경남 학생인권조례안, 그리고 학생인권법안 등은 중요한 참고자료였다. 또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학생참여기획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생인권조례에 관해 생생하면서도 인권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학생인권운동이 지난 세월 동안 문제제기하고 그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쌓여온 이야기와, 사례와 담론들과 자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튼실한 내용으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지금처럼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 또한 학생참여기획단을 통한 활동 외에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 그리고 통과되는 데에 참여하고 힘을 보탰다. 사실 경기도 교육청 차원에서 그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홍보하는 데 큰 힘을 쏟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기도 지역의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잘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 그리고 그 동안 학생인권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서 활동해오던 청소년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유인물을 만들어 직접 학교 앞으로 찾아가 뿌리기도 하고, 학교 안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알리고, 제대로 된 내용으로 통과시키자,는 요구를 담은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서명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되던 날,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그것은 학생인권조례 통과에 더욱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시행, 그 이후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전국에서 최초로 통과되고 그렇게 시행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인권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고 보장될 수 있도록 조항들을 통해 학생인권의 구체적 권리들을 명시했다. 얼마 전에 통과된 광주학생인권조례안, 일본 가와사키 시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조례’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0년 10월 5일, 공포되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 강제야자-보충 금지, 집회의 자유 보장, 차별 금지 등의 조항을 담았다. 그 외에도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참여위원회 등의 제도를 명시함으로써, 조례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학생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의 내용이 담겨있다. 비록 단서조항이 붙어 있어서 완전한 조례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학생인권을 명문화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누구에게나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이 우리 사회의 학생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 ‘아직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제는 한글문서에서 ‘두발규제’나 ‘강제야자’, ‘소지품검사’ 같은 말들이 틀렸다고 빨간 줄도 안 그어지는 현실이다. 입시만을 위한 경쟁교육에 0교시, 강제야자, 학원 뺑뺑이까지 쉴 틈이 없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규정에 어긋난 데는 없나’ 자신을 검열하며, 양말색깔 하나, 머리핀 색깔까지 신경 써야 하는 모습은 익숙한 장면이었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명제는 말 뿐이다. 이 같은 현실들을 바꾸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인권은 어떤 이유로든 유보되어서도 안 되고, ‘미래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분명한 의미가 아닐까.
지난 1년을 돌아보자.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이후, 교문 앞에서 멈추던 인권이 교문으로 등교를 시도했다. 학생인권에 관한 이야기들도 조금씩 조금씩, 밖으로 터져 나오고 웬만큼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제는 학생인권조례가 뭔지, 학생인권이 뭔지, 대충은 알게 되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시작으로, 지난 10월, 광주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경남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제정운동이 성공했다. 서울에서도 얼마 전 서울시 주민발의로 성사된 학생인권조례가 극적으로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전북, 충북/충남 등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갑갑한 학교와 교육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끄덕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우린 아직 어색한 사이
그러나 이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 충분히 알려졌다고 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학생인권조례가 잘 정착하고 자리잡아가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달랑 학생인권조례만 만들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왔지만 아직 한참 더 가야할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교문 앞에서 멈췄던 인권이 그렇다면 이제는 과연 교문을 넘어섰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 누구도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이후에도, 아직도 교문지도와 체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학생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체벌금지 이후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벌점제는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학교’를 위해 학생들의 숨통을 조이고만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정착화에 나서서 힘써야 할 경기도교육청은 대놓고 산으로 가고 있다. 학생인권이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기보다 보여주기만을 위한 ‘전시성 사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끊이지 않는 민원과 상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변화를 일궈내기는 커녕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학생들도, 교사들도, 아직은 학생인권조례가 어색하게 느껴지고 있다. 아직은 이 조례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올해 초,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때 즈음 진행된 ‘경기도 학생참여위원회’의 공개모집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4월, 경기도학생인권조례안에 따라 ‘학생참여위원회’를 공개모집했다. 학생참여위원회는 인권옹호관, 학생인권심의위원회와 같이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지역에서 여러 가지 학생인권에 관한 일들을 진행할 때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위원회이다. 하지만 이 ‘학생참여위원회’ 공고 과정은, 모집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 학교장의 직인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점 등에서 학생들의 자치적 참여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았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참여위원회의 자치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학생인권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 이 학생참여위원회는 공개모집 과정부터 지금까지 운영에 이르기까지 여러 미흡한 점이 많았다. 학생참여위원회의 존재를 대부분의 학생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도 안타깝다. 그리고 학생참여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여러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경기도교육청에서는 학참위를 ‘학생참여기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학생인권조례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전시물로써 인식하고 있는 태도 또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학생인권조례와 친해지길 바래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내고 참여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인권과 민주주의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것은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그 공간이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보장받는 권리는 진짜 권리가 아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도 민주주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참여와 목소리가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서 사실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법을 실제 삶에서 구체화하고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 번에 모든 걸 잘 해낼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더욱,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이후를 우리는 다시금 되새기고 제대로 돌아봐야 한다. 여러 어려움에 부딪히고 가는 길이 더디더라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 같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잘 해쳐나가기 위해 우리는 다시 마음을 모아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만큼 여러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아직은 어색한 이 사이를 조금 더 좁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 지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진보의 역사는 당연한 것에 대해 던지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우리가 그 동안 당연히 여겨왔던 그 질서에, 지금 학생인권조례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당연하냐고. 지금의 이 모습은 이대로 괜찮은거냐고.
학생인권조례가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실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참여위원회 참여하기. 학생인권에 꾸준히 관심 갖기. 질문 던지기. 학교 안에서, 소소한 일상에서 내 이야기 꺼내기. 규칙개정심의위원회 참여하기.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인권심의위원회 등 구제절차 적극 활용하기. 등등. 이런 활동들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가 꿈꾸는 학교의 모습이 아닐까.
청소년을 둘러싼 견고한 ‘전제’를 넘자
학생인권조례 이전의 학교가 “뭐 되는 게 있겠어“, “대충 참는 거지”하며 여러 인권침해적인 장면도 그냥 넘어가는 무기력한 모습이었다면, 학생인권조례 이후, 인권은 그런 무기력함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요청받기도 한다. 적어도 학생인권조례가 그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서 학생(청소년)인권을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얘기들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위치에 세워두고 있는 지, 청소년을 어떤 주체로 인식하는 지에 대해 돌아보고, 질문을 던지고, 그 이야기꺼리들을 수면 위로 띄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유보’되어 왔던 학생인권,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것조차 ‘금기’였던 학생인권, 그 존재가 꽁꽁 숨겨져 왔던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주문이다. “학생/청소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 는 류의 청소년 ‘존재’에 대한 그 견고하고 딱딱한 ‘전제’를 바꾸는 일이다.
재작년에 몇몇 학생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지막 질문이 “학교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가?”였다. 그 중 한 학생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학교는 학생도, 교사도, 서로에 대해서도, 수업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면서 “학교가 바뀌기 위해서는 ‘궁금해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라는 것이었다. 밑줄을 쫙 그어야 될 것 같았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 학생인권이 지켜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학교의 익숙한 장면과는 이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갈피를 못 잡을 수도 있고 좀 헤매기도 할 것이다. 혹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가 반복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은 ‘살아있는 건지, 살아있는 꿈을 꾸는 건지’, ‘살아가는 건지, 그저 살아지고 있는 건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아닌 건지, 궁금해 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보여주지 않고 숨긴 채, 숨죽이며 살라고 요구하는 이 사회를 바꾸자고 말할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가기’를 위한 교육을 만나고 응원할 것이다.
2012청소년인권아카데미,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우린 아직 어색한 사이' 파트 설명글(?)로 들어간 글.
그리고 이번 아주대 글로벌인권센터에서 주최하는 학생인권조례와 교육운동 관련 토론회에도 가져갈 글.
역시나 여기저기 짜집기 글.
부끄럽지만...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해봐야지 싶다가도, 언제나 마무리는 비슷.
보는 시야가 거기서 거기라서 그런건가ㅡ 좀 더 애써야 되는 걸라나ㅡ 아아 자극이 필요하다. 흐샤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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