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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메이야수(C. Meillassoux), 『자본주의와 가족제공동체:여성,곡창,자본』 (김봉률 역), 까치, 1989.
Femmes, greniers et capitaux (1975, Maspero; transl. as Maidens, Meal and Money: Capitalism and the Domestic Community)
Claude Meillassoux (December 26, 1925 - January 3, 2005) was a French neo-Marxian economic anthropologist and Africanist.
Meillassoux, a student of Georges Balandier, did fieldwork among the Guro (Gouro) of the Côte d'Ivoire: his thesis was published in 1964. In the 1970s he criticised Marshall Sahlins's use of the notion of "domestic mode of production". Meillassoux was throughout his life a politically committed critic of social injustice.
The early period of Meillassoux’s work also marked the feminist debates of the 1970s and 1980s. Many participants in these debates were indebted to Meillassoux for pointing out generational rivalry, the importance of marriage in the constitution of the farming unit, and transitions to market production. In the style of those decades, however, Meillassoux drew as much fire as praise. In particular, his Femmes, greniers et capitaux (1975a), which with translations into six languages is the most widely diffused of all Meillassoux’s writings and offered a systematic account of the absorption of the self-sustaining farm community into the capitalist world, was criticized for confusing social and demographic reproduction, for making women invisible, and for homogenizing the category of women. It is possible that a dispassionate reading today would draw more tempered conclusions (as, e.g., in Guyer 1981), but Meillassoux responded by trying to clarify some of his positions.
친족 개념이 인류학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미개사회에서조차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하나의 사회조직 원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재생산, 그것은 경제적 차원에서는 모든 형태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엥겔스의 이런 관점에도 불구하고 사적 유물론은 이 문제에 대해 주의를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족제공동체에서부터 출발하여 발전하고 그것을 지배하여 물질생산과 생명재생산 능력을 착취하여왔던 '여러 생산양식'을 가족제공동체보다도 모든 점에서 우선하며 고차원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정확하지 않다. 그런 생산양식은 물질생산의 능력에서는 고차원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생명의 재생산의 능력에서는 가족제공동체보다도 저차원적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가족은 명목적으로 종속적 지위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가족은 자본주의의 존재에서 필요불가결한 '자유로운 노동자'(노예, 농노나 군졸 같은 예속상태로부터 자유로운)를 생산하는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엥겔스도 마찬가지이지만, 다른 저작에서 보다 더 적절한 접근방법의 몇몇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이 공동체는 1)자급자족적 농업을 경영하며 2)공동의 토지에서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그 토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에 귀속되어야 하며 3)사용가치만이 발전하는 공동체로서, 상품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격적 종속이라는 불평등한 관계에 의해 결합된 개인들로 구성된다.
("역사를 소급하여 거슬러올라갈수록 생산하지 않는 개인뿐만 아니라 역시 생산자도 종속의 상태, 그리고 보다 커다란 총체 - (...) 가족, 확대가족, 부족, 부족 공동의 분열, 합병 등에서 파생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 의 구성원으로서 나타난다.
"가장 오래된 공동체에서는 기껏해야 남자 성원의 평등이 문제될 뿐이었다. 여자, 노예, 그리고 연소자는 당연히 이 평등의 문제에서 배제되었다.
"[가장 오래된 공동체는] 성원들의 혈연적 유대에 의거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친족으로 편입되든가 양자로 되지 않고는 공동체의 성원이 될 수 없다. 이들 공동체의 구조는 족보 나무이다. 베라 자수리치에게 보낸 마르크스의 편지)
거듭 말할다면, 공동체가 자급자족적이라고 하는 명제는 물질적 생산에 관해서만 정확한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재생산은 비슷한 공동체들의 집단에 또 하나의 공동체가 개입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살린즈는 가족제생산양식의 주요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최소 가족에 기초를 둔,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의 성별 분업이고, 둘째는 개인적으로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인간과 도구와의 관계, 셋째는 기본적인 필요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이다. ... 넷째는 인간에 대한 권리를 통하여 행사되는 재물에 대한 권리의 발생이고, 다섯째는 가족제생산물의 '내부로 향한' 유통, 즉 사용가치의 우월이 생긴다는 것이다.
고도로 다양한 성격을 지닌 사회를 하나의 총체로 연결시키는 일반화는 검토의 대상인 각각의 체제를 하나하나 분석하여 인식한 후가 아니고서는 적용될 수 없다.
마르크스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생산한다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엥겔스)는 위의 말에서 명시적으로 정식화시키지는 않았지만 '혈연'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생산관계를 넘어 생명의 재생산 때문에 사람들이 결합하고 있는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근친상간의 금지는 보편적이었다는 가설은 족외혼과 여자의 교환의 기본적 요인으로서 즉 친족이론의 기초로서 구조주의학파도, 기능주의학파도 똑같이 승인하고 있는 것이다.
(족외혼:공동체 귀속집단 외부와의 결혼. '여자의 교환'은 보다 일반적 현상, '가임기 남녀의 이동이라고 하는 현상'의 특수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가임기의 남자보다 여자의 이동이 더 선호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도 보편적인 것도 아니다. -->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로빈 폭스는 근친상간의 금지를 친족이 기초로 하고 있는 네 개의 공리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즉 '일급의 친족은 서로 교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친족' 집단의 성원은 이런 금지이유로 서로 성적 관계를 가질 수 없고 그 집단 밖에서 상대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여자의 교환'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성원들끼리 성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귀속집단의 규모가 충분히 큰 경우에도 이런 '여자의 교환'은 준수되었다.
우리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근친상간의 금지는 자연의 원리에서 발생하였는데 혼인규제가 정치권력의 한 요소가 되었을 때 내혼금지(즉 사회적 성격의 금지)가 성교 금지(즉 '자연의' 혹은 도덕상의 절대적 효력을 지닌 금지)로 전화되었던 것이다.
즉 생명의 재생산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들에게 여자를 어떻게 평등하게 분배하느냐가 아니고 그 집단에 속한 생식 가능한 여성의 수태능력이다.
그는 이런 계산에서 수렵채취민의 경우에는 '원초적 집단은 지극히 한정된 수의 남녀에 의해 구성되며, 그리고 이 집단의 존재는 '생명재생산의 필요'에 일치하는 교환망을 통하여 인근의 여러 집단과 결합하고 있다고 추론했다. 두 가지의 집단화의 수준 사이에서 원초집단(부부 또는 가족)의 경우에는 식량의 획득이 현저한 특징을 이루는 데 비해 대집단(친족, 부족)의 경우에는 혼인의 확보(아내의 획득)가 지배적이다.
이런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집합과 이들의 동맹은 단순한 물질적 생산, 교환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재생산이라는 지상명령에 의해 요청된다.
만약 '생산양식'이 존재하게 되면 그것은 생명의 재생산을 위하여 조직되는 이러한 여러 생산세포의 집합적 수준에서 연구되지 않으면 안된다.
메이야수는 가임기의 남자보다 여자의 이동이 더 선호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도 보편적인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의 기본구조]에서 친족의 기본구조를 지닌 사회들의 결혼에서 남성들이 교환의 주체로 행위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여자를 교환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메이야수는 노동력의 생산자로서의 여성이 갖는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메이야수가 말한 가족공동체, 혹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친족사회는 여자를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비해 여자들을 사회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구의 성격을 지닌다. 물론 그 1차 목적은 가족형성과 재생산이다. 그러나 [군중과 권력]에 소개된 다음과 같은 사례는 여자를 둘러싸고 피비리낸나는 비극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원래, 타울리팡 족과 피샤우코 족은 서로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여자를 놓고 다툼이 일어났다. 먼저 피샤우코 족이 숲속에서 타울리팡 족 총각 한 명을 습격하여 살해했다. 그리고는 한 젊은 타울리팡 족 부부를, 그리고 그 후에는 3인의 타울리팡 족을 숲에서 또 죽였다. 이래서 타울리팡 족은 피샤우코 족 전체를 없애 버리고 싶은 열망이 점점 강해졌다. ... 여자를 두고 다툼이 시작되었고 총각 몇 명이 살해되었다. 주목을 끌게 된 것은 다른 종족이 죽였다는 사실 뿐이다. 타울리팡 족 전체에게는 적이 자기들을 멸종시키려 한다는 확고부동한 확신이 서게 되었다. ... 16인은 아무런 전리품도 없이 돌아왔다. 승리는 했지만 어떠한 부도 얻지 못했다. 그들은 단 한 명의 여자도 아이도 남겨 두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적대적인 상대방 무리를 말살,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남김없이 싹 쓸어 없애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흥이 나서 설명했다. 살인자였으며, 또 살인자로 낙인찍혀 남게 된 자들이 자기들이 아닌 남이었던 것처럼."
노동력과 생명의 재생산을 위해 여자를 평화롭게 교환하고 재분배했다는 메이야수의 설명은 논리적이다. 그러나 말년의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했듯이 쓸모없는 것, 이상한 것, 별난 것, 앞뒤가 안 맞는 것은 역사를 보여주는 기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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