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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1/19
    배고픈 밤(2)
  2. 2009/11/15
    스톰트루퍼
  3. 2009/11/15
    일상적 가학증(1)
  4. 2009/11/03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

배고픈 밤

최근 체중이 늘어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서 약간의 식이조절만 하고있다.

이번 다이어트의 특징은 식초다. 처음엔 요구르트를 먹었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포기했고 대용품으로 찾은게 식초다. 식초를 물에 타서 마시면 체중감량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처음엔 마트에서 사서 마셨는데 너무 달아서 인터넷으로 매실식초를 주문했다. 한병에 칠천원. 값도 저렴하다. 이걸 물에 타서 마시면 기분이 약간 술마신것처럼 나른해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한동안 식욕이 없어진다. 그러나 마실 때는 끔찍하다. 저녁은 일찍 먹고 잠도 될 수 있으면 일찍 잔다. 여기까지는 순조롭다. 고통도 없다. 그러나 자리에 누운 뒤 한두시간이 지나면 배고픔의 고통이 찾아온다. 그때는 식초물도 마시고싶어지지 않는다. 배가 고픈게 아니라 머릿속에 먹는거 생각밖에 안난다는게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못참고 결국 밥을 두숟갈 정도 먹고 잘때고 있고 배고픔에 사경을 헤메다 잠이 들 때도 있다. 나의 다이어트는 밤에만 괴롭다.

 

어제 신문에서 미국인 7명 중 1명이 굶는다는 기사를 봤다. 한참 성장할 아이들이 배가 고픈채로 잠이 든다고 한다. 유튜브에서도 그와 관련된 동영상을 찾아봤더니 미국인들은 지옥에 가야한다는 저주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한쪽은 비만인구가 넘쳐나서 위 절제수술을 받고 난리인데 한쪽은 먹을게 없어서 굶고 참으로 기이한 나라다. 물론 원인이야 실업이라고 하지만(10%라고 한다) 미국처럼 생산력이 발전한 나라가 그 많은 인구에게 다 일자리가 돌아갈까 싶다. 미국의 부자들은 그 넘쳐나는 부를 왜 빈민들에게 나눠주지 않을까.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차를 타고 돌아다녀야 하는 집이 필요한걸까. 나처럼 불어나는 뱃살때문에 굶어야하는 이유가 아니라면 배가 고파서 고통스러워하며 잠들어야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돈을 흥청망청써대는건 천벌을 받을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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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톰트루퍼

Storm Troopers

 

Sand Troopers

 

Snow Troopers

 

"Do you not think we're gonna stand out a bit here?..."

 

Biker Scouts

 

Stormtroopers' Picnic

 

플리커에서 모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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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가학증

즉, 프로이트에 있어서도 일상적 가학증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타자의 자유를 제거하여 타자를 사물화하려는 충동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인한다. 그러나 타자의 자유란 항상 가학증에 의해 제거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타자의 자유가 항상 흥분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프로이트의 방어 개념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방어란 자아에 통합되어 있는 표상들 또는 관념들과 일치하지 않는 표상 또는 관념이 도래할 때 억압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이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표상 또는 관념은 제거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이러한 표상 또는 관념이 흥분의 양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우리의 생각과 어긋나는 말들을 들으면 화를 내지 않는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상 프로이트의 방어 개념은 주로 내부에서 도래하는 표상에 그 강조점을 두는 것이지만, 우리는 프로이트의 방어 개념에 준거하여 외부에서 도래하는 표상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식의 정합성을 교란하는 표상이 타자에 의해 제시될 때 흥분의 양이 상승되어 항상성이 교란된다. 이때 쾌락원리를 실행하기 위하여 그 표상을 파괴시키리려는 작업이 행해진다. 이 작업이 바로 일상적 가학증이다. 그리고 의식의 정합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헤겔이 이미 [정신현상학]에서 "자기의식은 욕망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지적했듯이, 나르시시즘에 입각한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동일자의 논리를 타자에게 적용시키려는 것이고 이에 대해 타자가 저항할 때 가학증이 발동되는 것이다.

 

- 가학증,타자성,자유/이종영/백의

 

한때 유행했던 일상적 파시즘은 일상적 가학증에 가깝다. [충동과 충동의 운명]의 서두에서 프로이트는 충동의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전제 중의 하나는 신경체계의 기능이 흥분을 멀리하며 가능한 한 흥분을 가장 낮은 수준에까지 끌어내린다고 이 책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물론 나는 인간이 강렬한 자극을 원한다는 점에서 미심쩍기는 하지만 인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결국 병적인 가학증이 아닌 우리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가학증은 본인의 마음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참으로 슬프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성인이 되면 내면이 하나의 정합적인 체계를 이루게 되고 이 체계내부에서는 특정한 표상이 특정한 정동과 결합한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의 내면에서는 어린아이의 표상은 귀엽다는 정동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어떤 사람의 내면에서는 좌파라는 표상이 정의롭다는 정동과 결합하고 어떤 사람의 내면에서는 빨갱이라는 정동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나의 사회가 다른 사회로 바뀐다는 것은 그 사회구성원들의 내면에서 이러한 표상-정동 결합이 바뀐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심성이 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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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

어제도 지각을 했다. 말수가 없는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00씨, 직장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둘 중에 하나는 있어야돼요. 실력이 있든가, 성실하든가."

"제가 둘 다 부족하죠."

그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믿고 일을 맡겼으면 좋겠는데.."

"..."

"나이가 어린 사람도 아니고.."

"..."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자 그도 별 수 없이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나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순하다.

밖으로 나가면서 한번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체념과 자기연민이 깊게 배여있다.

미안해요.. 게을러터져서..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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