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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미누가 강제출국 당했다.
목요일 면회를 갔을 때만 해도 실낱같은 희망감이
들었었는데, 다른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강제출국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제 네팔로 가서 보거나, 다시 한국에 오면
볼 수 있을 것이다.
2. 범 아저씨
목요일에 범아저씨도 같이 면회를 했다.
명동농성 때부터 알고지낸 동지이다.
선생님이었고 글을 좋아하고, 잘 쓰시는 분이다.
범아저씨도 13년 동안 한국에 있었는데
동대문 네팔 식당 안에서 밥을 먹는 도중에 잡혔다.
이제 출입국 놈들은 동대문 주위의 음식점 마저
들락나락 거린다.
범아저씨가 미누 관련 소식은 네팔에 있는 노조와 샤말, 나렌드라한테도
알려져 기자회견을 했다고 알려 주었다.
여권이 있어서 이미 토요일 강제출국이 예정되었는데
본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의 인권에 대해 글을 쓸 거라고 한다.
3.
보호소는 1주일에 20분 동안만 운동시간이 있다.
감옥보다도 못한 곳 그러다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죽어간 곳이다.
면회도 보호소 규정변경으로 하루에 2번으로 바뀌었고,
최근 들어 추방당하기 전에 한국어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4.
이명박 정부가 10월부터 12월까지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을
선언을 했다. 벌써 친했던 미누를 비롯 2주동안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끌려 잡혔다.
대구에서는 출입국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짜장면을 먹다가
모임을 만들었다.
이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직접행동을 하자.
1.
토요일 친구들과 화성에 갔다.
보호소 면회규정이 하루 2번 제한으로 바뀌었다.
면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소모뚜씨 팀과 같이 면회를 하게 되었다.
미누씨한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
출입국에서 전에 dvd를 구입하러 mwtv에 왔었다고 한다.
목요일날도 쓰레빠에 토마토를 사들고 항상 가던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대뜸 와서 붙잡았다고 한다. 다행히 수갑을 안채웠지만
명백한 표적수사였던 것이다.
지금 몸 상태는 감기와 열이 있어서 약을 먹고 있고,
다음주 전주인권영화제 오프닝 스케쥴과 mbc 다큐 촬영중이었다고 한다.
2.
미누는 그 사이에 보호소 방안의 소식통이
되어 있었다.
# 산재로 팔에 핀을 박고 있는 우즈벡 이주노동자, 조만간 핀을 빼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고 한다.
# 10년동안 이삿짐 센터에서 일을 했던 이주노동자, 그날도 짐을 옮기는 중이
었는데, 주인집에서 물건이 없어졌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집주인은 이주노동자를 지목을 했고, 결국 출입국에 끌려가게 된것이다. 그런데
왠 걸, 짐은 그 집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 3년 넘게 화성보호소에 있는 난민, 그는 기독교로 개종을 해서 본국에 가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한다.
3.
면회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이주노조 사무실로 갔다.
전 날 봉고차에 수상한 사람들이 근처를 기웃거렸다고 한다.
이번주에만 노조원 7명이 단속을 당했다.
사연도 아주 기가 막히는데
공장에서 7~8년 일한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을 주기 싫어
사장이 신고한 것이다.
출입국에서 사진을 들고 와 일일이 끄집어 냈다고 한다.
한동안 공석이었던 이주노조 위원장이 새로 선출되었다.
이주노조 지도부는 초대 위원장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모두 표적수사, 강제출국을 당했었다.
명동 농성때 샤말타파부터 샤킬까지.
그리고 많은 동대문 동지들 모두 표적단속 추방을 당해야 했다.
4.
이명박 정권 출입국 놈들이
집중단속을 시작한다고 한다.
미누씨를 시작으로 표적단속 역시 심해질 것이다.
그네들의 단속방식으로 폭력, 인명피해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야만을 멈추자.
뎡야핑님의 [평택 걷기 마지막날] 에 관련된 글.
5, 8, 9일 평화행진에 참여했습니다.
5일은 서울역에서부터 사당까지였는데, 전체적으로 아주 순조로운 시작
이었습니다.
다만 국방부 앞에서 규탄대회를 하는데, 불법채증을 하는 경찰을 활동가들이
잡았더랬죠. 나중에 알았는데, 사진속에는 청와대에서부터 국방부까지의
행진팀의 사진들이 가득차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중요한 점은 국방부 앞에 허름한 중국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겉은
허름했지만 이상한 기운이 흐르더라구요. 저와 구멍은 각각 짬뽕, 짜장면을
시켰는데, 다른 테이블 모두는 탕수육을 시키더라는.. 13000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양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구멍은 다음번 국방부 집회때는
꼭 탕수육을 먹겠노라는 결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불판' 동지들도 이에
동참해주십시요..... --
국방부를 출발해서 동작대교를 건너 사당까지 행진을 마치고 나서, 아랫집을
향해 총총총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8, 9일.. 금요일 날 미리 들어갈까 생각도 했지만, 미적미적
거리다가 일찍 자고 토요일날 아침 일찍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10시 급행을
타고 평택에 도착한 후 통복시장에서 콩국과 면을 사가지고 16번 버스를 탔
습니다. 12시도 안되었기 때문에 순순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전과는 달리 바리케이트와 많은 병력으로 원정리 3거리는 막혀 있었습
니다.
사복경찰 2명과 전경 3명이 올라와서, 하나 하나씩 검문을 하더군요. 경찰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나서 제 앞에 섰습니다. 'stop the war' 티셔츠, 수상
쩍은 모양새 를 빼고 서더라도, 전혀 주민 같지 않은 저에게 신분증을 요구
하더라고요.
신분증 제시를 거부하고 행동요령에 따라 경찰의 소속, 성명, 검문목적,
이유를 행동카드를 보면서 -- 물어보았습니다. 대답을 잘 하더군요. 그리고 15분
동안 실갱이를 벌였습니다. 1-2-3-1-2-3 같은 질문하고 같은 대답하기를 반복
했는데, 주민분들은 경찰에게 해꼬지 그만하고 빨리 내리라고 호통을 지셨죠.
뒤에는 차가 밀리고, 승객분들에게 미안해서 내려서 해결하기로 하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결국 대추리는 못들어가고 다시 나오는 그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행진팀 일정에 맞게 평택구치지소로 가서 행진팀을 기다렸습니다. 민가협
어머니들도 먼저 기다리고 계셨죠. 가져온 콩국을 드렸더니 다들 좋아하시더라구요. 마침내 청와대에서부터 행진해온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행진팀은 평택시민단체
와 함께 구속자 석방대회를 마치고 평택역으로 걸어가서 촛불문화제를 준비했습니
다. 대추리에서 나온 비X칭, 윤X, 사X와 서울에서 내려온 썩X비, 매X, 구X, 젤X, 잭
그리고 수원에서 커피배달을 나온 미친X까지 제법 많은 불판팀은 신나게 문화제를
즐겨답니다.
문화제가 끝나고 난후 대추리를 향한 마지막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마지막 행진이라 다들 신나게 노래부르고, 춤추며 가던 길은.... 군문교 다리 옆 주유소에서 막혀버렸습니다. 안정리 상인들이 원정리로 들어가는 길이 막고 있고, 차로 가던 선발대를 차에서 끌어내어 각목으로 구타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머리가 깨진 활동가는 병원으로 실려가고 행진팀은 거의 2시간동안 주유소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웅성웅성거리더니 술에 취한 안정리 상인들이 지금 각목을 들고 여기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들은 각목을 든 이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행진팀을 둘러쌓을 때까지 방관하였습니다. 주유소 옆에는 석재를 쌓아놓은 곳이 있었는데, 상인들은 석재를 깨서 행진대오에 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앞에 있던 여성분은 돌에 맞아 주저 앉았고, 부상자가 속출하였습니다. 계란투척에 욕지거리
그리고 소름이 돋을 만큼 살벌한 분위기...
결국 더이상의 행진을 포기하고 다시 평택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은 문화제가 끝나고 돌아가는 대추리 주민들을 경찰이 막았다는 것이었습니다.
7월 3일에 들어간 평화농활팀이 같이 있다라는 이유로 막아선 경찰에 항의하기 위
해 주민들과 농활대는 원정리 삼거리에서 밤새 노숙투쟁을 펼쳤습니다.
평택역에서 숙소를 정하고 쉴려고 했던 행진팀은 그 소식을 듣고, 평택 경찰서로
가서 항의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평택 경찰서 앞에서 경찰들의 '예의 없음'을 규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3번 경고후의 진압'의 규정과는 달리 2번
경고뒤에 해산하려고 돌아서는 우리를 경찰들이 진압, 연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폭력적인 진압으로 인해, 사람들은 쓰러지고, 맞아가면서 잡혀
들었고, 다행히 피한 사람들을 경찰은 (잭의 비유를 들자면) 게슈타포가 유대인
다루듯이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속력으로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면 한명씩
쓰러뜨려서 연행하고, 다른 경찰들이 쫓아오는 식이었습니다. 누구는 80년대처럼
가정집에 들어가 숨고, 누구는 실신하고, 실신하는 연극을 하고, 빌딩에 숨고
학교에 숨고 해서 살아 남은 자들은 민주노동당 건물에 모였습니다. 얼추 50명의
연행자가 발생하고 부상자들도 많았습니다.
연락을 해보니, 부상당한 연행자를 경찰은 병원에도 안 보내주고, 계속 붙잡고 있다고 하더군요. 날이 밝고 나서 우리는 12시에 평택경찰서 앞에서 항의 집회를 했습니다. 시민들을 향한 진실을 알리는 대자보도 붙이고요. 그리고 1시에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른 동지들과 함께 다시 한번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평택역에서 대추
리를 향한 길은 멀고 멀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 순식간이던 그 길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원정리 삼거리까지 도착하니까 이번에는 경찰이 길을 막더군
요. 안정리 상인들은 저멀리 욕을 하고 있고요... 평택 지킴이 대회를 대추리가
아닌 길에서 열고, 285리 285만평의 땅과 평화를 위한 평화행진을 그렇게 막을 내
렸습니다. 7월 22일 4차 범국민대회를 기약하면서 말이죠....
준비물 : 전농 모자, 빨간 수건, 흰색 스프레이, 목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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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조금만 더 있으면 전국민 절반은 블랙리스트에 들어가겠군요.(아님 벌써 그런가요? 국내 3대 국제영화제도 다 심의대상이라던데;;;) 이 정도면 그냥 다 같이 나서서 "우리"는 왜 리스트에 안 넣냐고 따져도 좋겠네요. -_-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