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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7

다음은 슬라보예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 7장 '월가점령시위, 또는 새로운 시작을 부르는 폭력적 침묵'을 요약한 것.

 

『월가점령시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싱정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것보다 거부하는 제스처의 형식을 취하며 시작해야 한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위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찬양하고픈 유혹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실패 뒤에 남은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시위대의 주장은 개인의 부패나 탐욕이 아니라 부패를 조장하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이다. 시위대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시위를 무해한 도덕적 저항으로 바꾸어 의미를 희석시키고자 갖은 애를 쓰는 가짜 친구들을 조심해야 한다.

시스템의 변화 -- 전체 사회생활의 재조직화 -- 를 위해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필요한 모든 세력을 동원하여 그 결정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체가 필요하다. 반드시 지배적인 경제 조직체 대신 무엇을 제안할지 고민하고, 대안적인 조직 형태를 상상하고 실험하며, 현 체제 속에서 새로운 조직의 싹을 발굴하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발명하려는 이 충동은 동시에 거리를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 단계에서는 시위의 에너지를 일단의 '구체적' 요구로 전환하려는 모든 성급한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 시위는 진공상태, 즉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진공상태로 만들었고, 이 공백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채우려면 시간이 걸린다.

시위대에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 "너희가 원하는 게 뭔데?"는 바로 진정한 대답을 방해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정치의 기술은 또한 철저히 '현실주의적'이면서도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중핵을 교란시키는 특정한 요구를 고집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실현 가능하고 정당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미국의 전 국민 의료보험 같은) 요구 말이다. 월가점령시위가 끝난 지금, 우리는 그러한 요구 주위로 사람들을 집결시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물론 그와 동시에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협상과 '구체적인' 제안에 저항하여 그 요구를 고집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다당제 형태의 대의민주주의의 단순한 확장만으로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다시 발명되어야 한다. 설사 진정한 '자유' 선거라고 해도, 국가가 조직한 다당제 선거라는 형태 자체가 초월적이고 형식적인 층위에서 부패해 있으므로 투표에서 스스로를 빼내야 한다. 이집트의 봄이 2011년 반무바라크 시위에서 역할이 미미했던, 이슬람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한 것으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로부터 다음과 같은 일관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자유선거'와 진정한 해방적 반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월가점령시위에서도 사실상 '99퍼센트'를 대변하며 제도적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정당화한 것은 주코티 공원에 모인 소수의 군중이었다. 

다당제 대의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재발명된 민주주의에 과연 이름이 있을까? 있다.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아무도 우리가 요구하는 바를 대신 이루어주지 않는다. 우리는 직접 그것을 해야 한다.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다. 아니, 오히려 답은 우리다. 우리는 다만 질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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