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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비현실적’ 창구단일화, 비정규직 노동권 원천봉쇄 당하나

‘비현실적’ 창구단일화, 비정규직 노동권 원천봉쇄 당하나

청소용역노동자, ‘창구단일화’ 때문에 단체행동권 제약당해

윤지연 기자 2012.02.18 15:10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창구단일화제도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창구단일화 제도의 시행에 따라 비정규직 용역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이 원천봉쇄당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창구단일화 제도는 그 시행초기부터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제한한다는 논란이 있어왔지만, 실제 적용에 있어 청소 용역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해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또 다른 창구단일화 제도의 모순이 드러나고 있는 양상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비현실적인 창구단일화, 비정규직 용역 노동자 노동3권 박탈해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의 6개 대학, 병원 노동자들은 11개 용역 업체와 작년 11월 9일부터 올해 2월 14일까지 10차례의 집단교섭을 진행해 왔다.

 

교섭 과정에서 노조 측은 2012년 시급 5410원을 요구했으며, 사측은 임금 동결을 요구하다 4910원으로 인상안을 제출해 교섭이 결렬됐다. 이에 따라 노조는 지난 17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내고 생활임금 쟁취 투쟁의 채비를 갖췄다.

 

하지만 이들은 창구단일화절차로 인해 쟁의 돌입에 발목이 잡힐 상황에 처했다. 서울지노위에서 창구단일화 절차를 빌미로 쟁의조정신청을 각하시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현재 노동위원회는 단일노조임이 명백한 경우에도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아야 정상적인 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추세다.

 

이번 집단교섭에 참여하는 14개 업체 중 창구단일화를 거친 곳은 3곳이며, 그 외에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권태훈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대다수에서 창구단일화를 거치지 않은 만큼, 지노위와 노동부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빌미로 쟁의조정신청을 각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창구단일화 제도를 거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용역회사는 일반적으로 통상 여러 개의 원청 사업장과 용역 계약을 맺고 있어, 노조로서는 전국에 걸친 사업장 중 어디에 노동조합이 설립 돼 있는지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제도에 따르면 노조는 용역 회사에 존재하는 각 노조와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업체 조차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조합의 몫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민정 공공운수노조 정책부장은 “모든 업체에서 울산, 제주도 등의 원청 사업장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에서 이를 파악해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하지만 정부는 교섭단위분리신청을 해도 5건 중 4건이 각하되는 등 거리, 업종, 일하는 형태에 상관없이 현실에 맞지 않은 창구단일화만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대학 사업장의 용역계약은 1년 혹은 2년마다 갱신되는 형태다. 용역업체 변경에 따라 수시로 창구단일화의 범위나 대상이 달라지게되는 만큼 사실상의 교섭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때문에 노조 측은 회사별 창구단일화 절차를 강요하는 것은 회사가 교섭을 거부하고 시간을 끌 수 있도록 해서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빌미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권태훈 부장은 “이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현장을 통제하고 노동기본권을 가로막는 가장 적나라한 사례”라며 “비현실적인 창구단일화 절차를 온전히 노동조합이 다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해당 제도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체 행동과 교섭권, 노동기본권 자체를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집단교섭은 산별교섭, 자율교섭...창구단일화 필요 없다”
노조법 전면 재개정 등 대정부투쟁 돌입

 

서울지노위에서 쟁의조정신청을 각하시킬 경우,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문제는 비정규직 용역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중심으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집단교섭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범위를 벗어나는 단체교섭으로서, 산별 교섭에 대한 논쟁 역시 불이 붙게 될 전망이다.

 

현행 노조법상 교섭창구 단일화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사업장 단위를 벗어난 형태의 교섭에서는 창구단일화 절차가 무의미하다. 특히 산별교섭, 통일교섭에 대한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사업장에서의 교섭대표권이 없는 경우에도 기업단위 교섭과 별개로 산별교섭이 가능하다.

 

서경지부 집단교섭의 경우 역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를 벗어나는 단체교섭 형태를 띠고 있다. 권태훈 부장은 “서경지부의 집단교섭은 작년 최저임금 위원회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최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산별교섭”이라며 “형태역시 사업장과 업종, 기업을 뛰어넘는 집단교섭의 형태로 창구단일화 절차는 불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조는 작년 4월 26일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각 회사는 각 작업 현장에서 조합원의 업무를 노조법 상 하나의 사업으로 보며, 조합이 전 조합원을 대표하여 단체협약 및 기타 사항에 대하여 교섭하는 유일한 교섭단체임을 인정한다 △회사는 2011년 7월 1일 이후 교섭창구 단일화와 무관하게 별도의 절차 없이 조합과 교섭을 보장한다. 이 합의로 조합과 노조법상 자율교섭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교섭권 보장 내용을 체결했다.

 

이밖에도 ‘조합이 해당 회사에 집단교섭 등 산별교섭을 요청할 시 회사는 교섭단을 구성하여 성실히 교섭에 응하여야 한다’는 산별교섭 참가 내용에도 합의했다. 때문에 노조는 “이번 집단교섭이 창구단일화 제도 상 자율교섭에 동의한 것인 만큼, 집단교섭은 창구단일화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노위의 쟁의조정신청 결정 여부가 가장 중요한 변수지만, 이번 사례를 계기로 창구단일화 절차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 박탈 문제는 ‘노조법 전면 재개정’ 움직임에 일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이미 ‘쟁의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2012년 생활임금쟁취와 노조법 전면 재개정 투쟁에 나선 상황이다. 민주노총이 올해 노조법 전면재개정 등으로 8월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노조법 투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노조는 오는 21일 오전 근무부터 전 조합원 투쟁복 착용 지침을 내리고, 전사업장에 투쟁 돌입 체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한 21일부터 23일까지 사업장별 릴레이 중식집회를 시작으로, 2월 말과 3월 초에 걸쳐 타격대상 사업장에서 집중 결의대회와 파업승리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창구단일화 문제를 놓고 대정부투쟁역시 기획하고 있다. 노조는 법률 단체를 조직해 법적 대응과 함께, 지노위 위원장 면담 투쟁 및 기자회견, 연대단위 공동투쟁을 이어나가며 3월에는 파업투쟁 돌입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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