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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동자의힘 투고- 서울지하철 현장은 지금...

2003년 노동자의힘 투고입니다.

대구참사 이후, 강화된 작업과 감사에 무기력한 모습, 파병 반대 파업 결의에 대한 제 결정에 대한 후회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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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현장은 지금…

 

대구참사 이후 지하철 현장은 분주하다.

 

여론이 주목해서인지 뭔 놈의 전동차 사고는 그리 많이 나는지, 본사에서 고장 사고 등을 보도한 언론기사들을 모아 현장에 보낸 공문을 보니 나도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이 틈을 타서 온갖 감사가 현장을 누비고 있다.

하다못해 서울시의원들은 고귀한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먼지점검을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감사를 들어오는 곳이 하도 많아 출근하면 "오늘은 어디 감사야?"하는 것이 요즘 일상이다.

솔직히 감사 약발도 이력이 나서 이젠 긴장도 되지 않는다. 다만 청소하는 것이 귀찮을 뿐이다. 얼마 전 명박이가 내가 있는 기지에 왔다. 전날 바닥에 페인트칠하고, 청소하는 모습하고는….

 

"이게 뭐하는 짓이요!" 라고 팀장에게 면박 한 번 주는 것 말고는 달리 어떠한 행동도 준비하지 못했다.

요사이 감사관이 현장에 내려온다 하면 조합원들은 벗었던 장갑도 끼는 척하고 있다. 그럴 때 나는 고민에 빠진다. '난 안해!'하고 대기실에 혼자 들어가 있을 수도, 같이 현장을 지킬(?) 수도 없는 고민 말이다.

조합원들에게 악다구니를 써도 "소나기는 피해야지"하며 짓는 헛웃음에 더 뭐라 말할 수도 없고, 과·팀장들에게 지랄을 해도 미안하다며 그 때뿐이다.

 

물론 또 다른 현장 분위기도 있다.

지난 2월 말경 봉천역 전동차 고장사고와 관련된 신정검수 지회는 지회 단독으로는 처음으로 시청역 조합원 총회를 성사시켰다. 내구연한이 지나 습성차(=고장이 잦은)인 전동차를 운행 다이아(=일정)를 맞추기 위해 내보낸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서울시는 징계 수준까지 간여해왔고, 해당 지회는 총회와 1인 시위, 열차 소자보로 대응 투쟁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현장투쟁은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노사협의회에서 풀자', '1차 징계 수준을 보고 대응하자'는 (비)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배일도 위원장은 저만치 건너 가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외치는 '현장탄압 분쇄'의 구호가 '징계(의 수준)를 낮추어라.'는 구호로 들릴 적이 많다.

물론 부당한 징계에 대해 징계의 양정을 낮추는 것도 현실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차 끝나고 2차 징계 전에 한 번 박아주면 한 단계 내려 갈 거, 두 단계 내려가겠지', '그거 어차피 풀려.' 하는 반복의 경험에서 나오는 능란한 전망이 아니라, 숨죽인 현장의 목소리를 키우고, 비집고 들어오는 현장통제·감시체제를 파열하기 위해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조합 활동의 기본이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지키고, 더 많은 작업장의 힘을 획득하는 것'일 때 민주노조의 경계가 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현장마다 특성이 있고, 노동조합 집행력의 차이도 있다.

사실 내 현장에서 잘하지 못하고, 대항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것이 항상 목에 걸려있다. 그러나 좀 더 열심히 하는 현장의 투쟁이 징계 자체의 문제가 아닌 현장탄압의 고리를 끊어나가는 투쟁이길 기원한다.

49%의 조합원들(배일도 위원장은 51%의 조합원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한다)을 현장의 주체로 세워나가는 투쟁이 목마를 뿐이다.

 

며칠 전 노사협의회가 끝났다.

노사협조주의자들은 노사협의회를 통해 노동(현장)과 자본(공사)의 대립각을 조율하고 교란한다. 이미 서울지하철에서 노사협의회는 배일도라는 인물의 노동조합내 지위를 확인하여주는, 그리고 조합원의 분노를 통제-분노가 약할 때는 단협도 팔아먹는-하는 장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끌려간다. 배일도 위원장의 '협력·상생, 대화의 전략'과 다른 전략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투쟁은 독자적 발전전망을 가지지 못한 채, 배일도에 의해 노사협의회로 수렴되어버린다. 기존의 노사합의마저 재합의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노사평화적 관점' 운운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차마 애처롭기까지 하다. 우리는 그럼에도 여태 무능하다. 이제 노사협의회에 대한 우리들의 대응과 조직 방식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겠다.

얼마 전 서울지하철이 '파병 반대를 위한 파업'을 하겠다는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지난 4월 10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는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위한 파업 등 투쟁결의 건'이 상정되었고, 찬성 31명, 반대 61명으로 부결되었다. 배일도 위원장은 대의원들의 발의로 안건을 다시 상정하여 줄 것을 요구하며, 흥분하기조차 하였다.

임시대의원대회가 있기까지 많은 대의원들은 고민스러웠다. '통과시켜 줄 수도, 부결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였다. 사실 작업장외의 사안을 가지고, 파업을 선동하는 세련된 정치 감각에 놀랍기도 했다. 인터넷 조사에 94%의 조합원이 파업 반대라고 했다. 아마 두 달간 현장 탄압에 방관하고, 개인성과급의 개별지급(이전에는 소집단별 지급이었다.)에 대해 방조·무대응한 집행부에 대한 질타일 것이다.

나 역시 반대토론을 하였지만, 마음은 가슴에 단 반전 버튼만큼 밝지 못하다.

 

이제 좀 더 자유로운 작업장을 만드는, 그 가운데 우리의 투쟁이 작업장의 경계를 넘나드는 투쟁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속에서 나는 싸운다.

나 자신과 그 모든 구속을 깨는 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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