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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작은 사진과 뿌리 그리고 적들

 

 

 

1.

옛날 신문 동그라미 속 작은 사진을 보았다.

김수영, 마침 며칠 전은 그가 떠난 날이었다.

사진 속에서 그는 살아 있지도 떠나지도 않은 채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고독한 중립자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진을 보며 왜 늙고 소멸하는 건 꼭 빛이 바래는걸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시인도 혁명도

혁명이 있던 해 1월 어느 신문에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

그 사랑의 빛깔도

 

그 해 11월에 혁명 후에도 여전히 자유를 갈망하는 것도 보았다.

또 1962. 6. 25. 전쟁은 10년, 혁명은 두 해를 넘긴 날 사이비 비평가들에 대해

쓴 것도 보았다.

 

2.

나는 그에 대해 써보려고 옛날 신문을 보고 또 보았다.

옛날 신문을 보다가 술이나 한잔 마시자는 후배들 전화를 받고 나갔다.

그가 살았던 시절보다는 나아진건지 헛갈리는 요즘이지만 자유, 오, 자유를

대량으로 호흡하고 마시며 우리는

선거, 당파들 따위며 혁명이나 지식인을 안주로 곁들였다.

순간, 나랑은 꼭 10년 터울인 후배가 김수영 이야기를 했다.

그의 거대한 뿌리에 대해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구리개 약방,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그 무수한 반동에 대해

그것이 맥이 풀린 날들에 자신을 긍정할 힘을 준다고 했다.

또한 우리처럼 술마시며 노는 후배들 뒤통수를 치며

혁명의 시간을 말하던 그는 정작, 술마시고 길을 건너다

로드킬 당한 슬픈 이야기도 덧붙였다.

 

내가 방금 김수영 이야기를 살피며 끄적이고 있었는데

지금 네가 그 이야기를 떠올리다니

나는 그런 순간을 무엇이라 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고,

다만 옛날 신문 빛바랜 사진 속 그가 실은

고독한 중립자도 로드킬의 희생자도 아니며

지금도 살아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전까지는 옛날 신문 속 사진과 사랑의 시에 대해

기교를 부려 말할 참이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때 내가 그의 다른 시를 끄집어낼 수 있었으면 하는 건

그림자가 없다,이다.

그는 옛날 신문 빛바랜 사진들과 어설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오렌지 쥬-스 광고처럼

먹고 마실 것은 넘쳐나지 않고

길들도 좁고 자동차도 몇 대 안 다니며

집도 낡고 텔레비전, 냉장고, 전화기도 별로 없고

인터넷은 아예 없는 시절을 살고 시를 썼다.

그런데 그가 적들에 대해 말할 때

사나웁지 않고 부드러운 적들

우리들 곁에 공존하는 적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전선에 대해 말할 때면

나는 그가 오늘 살아 있는 것만 같다.

옛날 신문 빛바랜 사진 속 그가 튀어나와 말하는 것 같다.

반세기가 지난 이 무수한 적들에 대해

그래서 그러므로, 나는 말해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순간 내가 너에게 적일지 모르겠다고

이제 술도 그만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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