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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희롱 알렸다고 해고…소장 재워줬어야 했나요”

 

“성희롱 알렸다고 해고…소장 재워줬어야 했나요”
 
 
등록 : 20101011 14:19 | 수정 : 201010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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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2차협력사 직원, 성희롱 시달려오다 인권위 제소하자 해고
“힘없는 사람은 억울한 일 당해도 아무 소리 못하고 살아야 하나요”

 

 
 
» 10월 5일 아침 8시 현대자동차 2차 협력사인 금양물류의 전 직원 박아무개씨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영상갈무리. 김도성피디 kdspd@hani.co.kr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작년 여름 이후 그 생각뿐이었죠.”

현대자동차 2차 협력사인 금양물류의 전 직원 박아무개(46)씨는 손에 들고 있던 손팻말을 만지작거릴 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손팻말에는 “현대 자동차 금양물류 ‘ㅈ’ 조장(으로부터) 사랑한다 문자 받고 ‘ㅇ’ 소장 안 재워줬다고 해고됐어요”라고 씌어 있었다.

  박씨는 지난달 20일 13년 다닌 회사에서 해고됐다. ‘회사 내에서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였다. 해고를 결정한 인사위원회는 그가 참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렸고, 결과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통보됐다.

  “억울하죠. 저는 성희롱 당한 것을 외부에 말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거잖아요. ㅇ 소장 재워줬어야 했느냐고 묻고 싶어요.” 박씨는 한숨을 쉬었다.

 

 
 
» 9월 20일 박아무개씨는 회사로부터 ‘인사위원회 결과 징계해고되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영상갈무리. 김도성피디 kdspd@hani.co.kr
 
 
 
  그는 1년 6개월 전부터 직장 상사인 ㅈ 조장과 ㅇ 소장으로부터 수시로 성희롱을 당해왔다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ㅇ 소장은 박씨의 어깨를 주무르고 ‘나는 워낙 힘이 좋아서 팍팍 꽂으면 피가 철철 난다’고 말하는 등 수시로 성희롱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18일에는 ㅇ 소장이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세 차례 전화를 걸어 ‘나 거기 가서 잘 테니 재워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박씨는 세 번째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영상 참조)

 

  ㅈ 조장은 박씨의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ㅎ씨의 남편으로, 박씨에게 지속적으로 ‘좋아한다·사랑한다’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박씨는 싫다는 의사표시와 경고를 했으나 ㅈ 조장은 이를 무시하고 ‘우리가 같이 자도 둘만 입 다물면 누가 알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황당했죠. 친구의 남편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싶었고요. 내가 이혼녀라서 쉽게 보고 이러는구나 싶어 서럽기도 했어요.”

 


 


  박씨는 고민 끝에 직장 내의 친한 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상담을 받았다. 스트레스로 병원에 열흘간 입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퇴원하자마자 회사가 인사위원회를 연다고 알려왔다. 징계 대상자는 박씨였고, 인사위원회 집행자는 ㅇ 소장이었다. 위원회는 박씨가 ㅈ 조장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를 친한 언니에게 알린 것이 잘못이라며 정직 6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작년 12월이었다.

  “힘없는 사람은 억울한 일 당해도 아무 소리 못하고 살아야 하는 건가요? 세상이 너무나 싫었어요. 살고 싶지도 않았고요.” 박씨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8개월간 억울함을 참던 박씨는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지난달 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가해자들과 회사를 제소했다. 이에 회사는 곧바로 인사위원회를 열었고, 9월 20일 박씨의 징계 해고를 결정했다. 박씨는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나 금양물류 사장이나 그 거대한 힘, 약한 사람 괴롭히라고 있는 것 아니잖아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박씨와 노동조합은 원청회사인 현대자동차의 불법 파견 남용이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성교육 및 노무 관리 등 원청의 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양물류는 현대자동차의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의 사내하청 회사다.

  “13년 회사 다니면서 소속 업체 이름이 네 번 바뀌었어요. 2, 3년에 한번씩 업주만 바뀌든지 업체명만 바뀔 뿐 작업 공정과 인원은 그대로죠. 우리 같은 파견 노동자는 업체가 폐업하면서고용 승계 안 해버리면 그대로 합법적인 해고가 되잖아요.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 한마디 할 수 있겠어요?”

  박씨는 “인권위가 부당해고 판정을 내더라도 업체가 바뀔 때 고용이 승계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양물류가 폐업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니, 지난 4일 회사 곳곳에 폐업 공고가 나붙었다. 인권위 판정이 나더라도 돌아갈 회사가 없어진 셈이다. 박씨는 “사람 마음대로 잘라놓고 책임 회피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노조의 송성훈 지회장은 “이런 식의 간접 고용 구조 아래서는 노동권 및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며 “세계 5위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 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과연 내 여동생, 내 아내가 다른 직장에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대법원이 지난 7월 22일 현대자동차 협력사 직원인 최병승씨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바 있고, 이에 근거해 현대자동차 협력사 직원 삼천 명이 소송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김성희 이사는 “2006년 노동부는 금양물류의 전신인 웰비스를 포함한 현대차의 사내하청 업체들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바 있다”며 “성희롱도 산업재해에 준하는 위험 요인이라고 볼 수 있는 만큼 현대자동차가 사업장 내에서의 위험 요인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관계자는 “금양물류는 글로비스의 협력사일 뿐 현대자동차와는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는 회사”라고 밝혔다.

  금양물류 관계자는 “작년 12월 인사위원회가 열린 것은 박씨가 ㅈ 조장의 아내이자 박씨의 친구인 ㅎ 씨와 사업장 내에서 심하게 다퉜기 때문”이라며 “성희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또 폐업 이유에 대해서는 “사장의 건강 악화로 더 이상의 경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산/ 글·영상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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