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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오늘은 무슨 일이/농성장 일기

5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9/22
    [농성장 일지] 피해자를 더 괴롭히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신청 조사, 농성장 철거로 힘들었던 9월 1일, 2일의 일기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2. 2011/09/21
    [농성장 일기] (아마도) 8월 18일, 글만 보아도 농성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일기 ^^*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3. 2011/09/16
    [농성장 일기] 9월 5일~ 9월 11일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4. 2011/09/08
    [농성장 일기] 8월 29일 농성장 일기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5. 2011/09/05
    8/27-28 농성장 일지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농성장 일지] 피해자를 더 괴롭히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신청 조사, 농성장 철거로 힘들었던 9월 1일, 2일의 일기

 

농성장 일지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중인 피해 노동자가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여성가족부앞에서 농성장을 차린 것이 벌써 두달이 넘어간다. 소속이 불투명한 분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다. 양옆에서 날 감시하는데, 지켜준다고 생각하며 고마워해야 하는건가, 눈빛도 좋지않고, 어디서들 왔을까.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깔끔하게 하얀셔츠입은 남성들이 텐트쪽을 쳐다보면서 자기들끼리 얘길한다. 그중에 한사람이 저렇게 해도 여성가족부에서는 꼼짝도 안할거라고 하며 건물뒤로 사라진다. 무슨 뜻일까.

 

지난 목요일은 힘들었다. 몸이 아파 한발자국 떼는것도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다. 11시까지 노조로와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한것 조사를 받으러 가야한다고 해서 임이 하나도 없는 몸을 이끌고 노조에 도착했고 아침부터 또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하루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하루가 고생길이었다.

가는길 오는길, 가서 조사과정이 마치 내가 큰 죄를 지은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고 내가 말하기가 힘든 대목에 잠시 망설이면 조사관은 마치 죄인을 취조하듯이 내가 잘못을 했으니 말하지 못하는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대했다. 유도신문 하듯이 내가 망설일때마다 “아줌마, 다 알고 있으니 말하세요.”하고 독촉했다. 뭘 다 안다는걸까. 다 알면 왜 묻는거야.

얼른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길 바라는 맘에 더러워도, 기분이 나빠도 물어보는 대로 다 답했다. 몹시 불편하고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오늘 내몸이 몸살이나서 많이 아프니 조금 빨리끝내주세요 하고 부탁까지 했다. 그런데 4시간 30분을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쉬자고 한것 말고는 꼼짝없이 질문에 답했다. 지독한 사람이다. 아무리 멋모르고 묻는대로 답하는 내가 혼자 앉아 있다해서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가는길 오는길 조차 힘들어 발가락에 물집이 다 잡혔다. 지친몸을 이끌고 농성장에 9시 반이 돼서야 도착했다. 그렇게 장시간을 조사받았는데 조사관 얼굴도 기억이 안난다. 지겨웠다.

 

농성장에 와보니 그시간까지 나를 기다려주는 동지들이 지키고 있었다. 참 고맙다. 민우회에서 촛불문화제를 성대하게 치렀다하고 물티슈도 한박스나 주고갔다. 문화제도 못보고 하루종일 고생만했다.

 

수정씨는 나를 금속노조 노안부장과 보내고선 밤늦도록 오지 안으니 한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도착해서 하루종일 있었던 얘길하니 속상해서 막 울어버린다. 괜히 얘기했나 싶다. 그래도 말이라도 하고나니 속이 좀 시원했다. 어디를 가든지 수정씨가 같이 안가면 불안하다. 하루종일 불안했다.

 

이날밤에 좋은 동지 한사람을 또 만나게 됐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을 했던 조성웅 동지란다. 첫인상이 옛날시대라면 장군감이었을 사람으로 보인다. 지금 요새시대로 보면 좀 그렇다. ^^ 산적같은 조검 험한 인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동지인데, 제법 붙임성있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내가 없는 문화제에 즉석에서 미완성 시를 지었단다. 조그만 수첩을 꺼내서 피곤에 지친 내게 그시를 읽어주겠다고 꺼낸다.

‘이 자리가 치유의 자리일지니’ 시가 슬프고, 마지막 구절엔 위로가 되었다. 이런 시인과 같은 동지들과 얘길하고 있으면 나도 시인이 된 착각에 빠진다. 어쨌든 좋았다.

 

지친몸에 늦게 잠이 들었는데 아침일찍 달리는 차소리에 잠이 깼다. 조성웅동지는 벌써 일어나 앉아있다. “와 벌써 일어났어요. 더 자요.”한다. 시커먼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다. 함께 지난밤 농성을 한 민주노총 여성위원장님은 아직도 잔다.

 

아침일찍부터 그런데 심상치가 않다. 자꾸 농성장 구석구석에서 우리쪽을 쳐다보는 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건물 안에서는 관리인들이 심란하게 신경을 쓴다. 농성장 뒤편에는 언제 갔다놨는지 포크레인이 있고, 모르는 얼굴들이 무전기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것이 분주하다. 노조 사무실에 가있던 수정씨도 조금후에 왔고 얼마후 건물주 관리인 과장이라는 사람이 농성장을 치우겠다고 한다. 안된다 했더니 어디서 왔는지 남자용역, 여자용역들이 꾸역꾸역 나타났고 농성장을 밀기 시작한다.

 

그동안 내 주변에서 정체도 모르게 나를 감시하던 수상한 인물들이 약속이나 한것처럼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가 앉아있는 텐트를 끌어내기 시작한다. 시민들 눈치를 보아가면서 수정이가 텐트속으로 갑자기쏙 들어가 버리고 용역깡패들이 아랑곳 없이 밀기시작하고, 나는 속에 사람이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야 여자 용역깡패들이 수정이를 강제로 끌어내고 나는 저만치 넘어진체 텐트는 치워지고 있었다.

지나가시던 아주머니가 바닥에 떨어진 내 핸드폰을 주워주고 “못일어나겠어요?” 묻더니 지나간다.

나쁜놈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일을 한단 말인가. 저들은 짐승만도 못한짓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 텐트는 다 뜯겨지고 조금후에 갑자기 내눈앞에 포크레인이 오는것이 보인다. 그순간 아무 생각도 안났다. 오로지 가서 누워야 겠다는 생각밖에 안났다.

한바탕 정신이 없다가 박승희여성위원장님과 여자셋이 허탈하게 앉아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락받은 동지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때 기아자동차 비정규직분회장님 부부가 아이와함께 돌잔치때 들어온 돈 중에 일부를 투쟁기금으로 주겠다고 찾아왔다가, 오는날이 장날이라고 온김에 잘 싸워주고 갔다. 김형우부위원장님과 노조 사무처동지들이 오고, 마리농성장 친구들, 재능지부 동지들, 가까운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다 모였다.

 

오후가 되어 두 번째 침탈을 하려고 중구청 철거반이라는 사람들이 생긴것도 정말 족제비 같은 것들이 잔뜩화서 텐트를 치우겠다고 한다. 시민들이 다니기가 불편하여 민원이 들어온다고 야단이다. 조금 있다가 경찰병력이 동원됐다. 여경들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기아차 분회장님의 돌백이 아기를 유모차채 들어서 옮기려고 한다. 3명의 여경이 아기를 들어올리는데 그 옆에는 임신8개월의 만삭이된 금속 여성부장도 있었다. 정말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할짓이 있고 안할짓이 있지, 저것들이 하늘 무서운것도 모르고 간난 아기와 임산부까지 손을 대려하다니, 민중의 지팡이라고 한느 경찰들이 저런짓까지 하다니, 세상이 말세다. 나는 “이것들아, 여기 임산부도 있다.”소리를 쳤다. 한여경이 유모차를 내려놓게 하고 지네 상관인지 가서 물어본다. “임산부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러더니 여성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선다.

저녁 7시에 침탈 규탄집회 후 텐트를 다시 쳤다. 그런데 이번엔 경찰들이 떼거지로 몰려왔고 용역과 건물주, 중구청이 합세해서 못치게 난리를 친다. 경찰들은 힘없는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깡패를 도와주고 있다.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갈만한 사건이다. 경찰이 어떻게 매번 이럴수가 있던 말인가. 결국 많은 동지들이 온힘다해 싸와 연대의 힘으로 텐트를 다시쳤고, 경찰관은 구두 한짝과 부러진 붉은색 민중의 지팡이 하나를 떨어트리고 갔다.

 

이날 바람같은 사나이, 김기식 동지도 소식을 듣자마자 씩씩거리면서 달려왔다. 혹여 여성둘이 어디 다치기라도 했을까봐 잔뜩 화가난 얼굴을 하고선 “누님, 괜챦으세요?” 하며 수정이를 찾는다. 그얼굴과 말을 들으니 눈물이 쏟아지려 하는것을 간신히 참았다. 하루종일 3번에 걸친 전쟁을 치루고 우리는 지친 몸을 추르셔서 깔판을 펴고 술을 한잔했고 농성장을 다시 꾸몄다.

우리가 텐트를 새롭게 정리하는 옆에는 밤새 몽구산성을 따라 여가부 산성이 지어졌다. 이것들이 하는짓은 약속이나 한것마냥 다 똑같다.

 

다음날 아침일찍 몸을 추슬러서 피켓을 달고 이것저것을 여성가족부 펜스 산성에 붙이고 나니 여성가족부 주변이 이미지 실추가 더된다. 그냥 두면 작고 초라한 텐트 두 개를 건드려서 여가부 건물이 더 지저분해 진 것이다. 그 아침에 편의점 주인아저씨가 나더라 양심도 없이 남의 가게앞에 텐트를 쳤다고 당장 치워달란다. 이 말을 나에게 하기전에 건물 관리인들과 함께 웃으며 얘길나누더니 나에게 와서 호통을 친다. 건물관리인들과 그런 말을 한것 같다. 편의점 아저씨랑은 싸우기 싫어서 아무소리 안하고 아저씨 뒤에서 무전기 들고서서 웃고있는 건물관리인에게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줬다. 그덕분에 목이 상해서 99일문화제때 민들레처럼을 못불렀다.

 

이번에는 건물 청소하는 사람이 화분에 물을 준다면서 호수로 텐트옆에서 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괴롭히는 것도 가지가지다. 텐트 안에있는 침낭까지 다 젖어 버렸다. 급히 금속노조 정유림 여성부장에게 전하해서 스티로폼을 새로 사다깔고 한바탕 정리하느라 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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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아마도) 8월 18일, 글만 보아도 농성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일기 ^^*

농성장 일지

 * 이 글은 농성 중인 피해 노동자가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유성동지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쁘다. 유성동지들의 합의안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길거리에서 더 이상 고생하면서 고통을 안당해도 된다는 생각에, 내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내일처럼 기뻤다. 며칠전 유성동지가 다녀가면서 나에게 “동지가 우리보다 먼저 들어가시면 밥사세요.” 해서 그런다고 했는데, 유성동지들이 먼저 들어갔으니 나에게 밥을 사주어야 한다. 언제 와서 밥사려나. 기다린다. 유성동지들은 나에게 밥을 사시오!

 

오후에 조합원들에게 농성장을 지키라하고 운동을 하러 갔다. 가다보니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앉아있고 학생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기에 한 장 받아 읽어보니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비난하는 글이었다. 순간 화가나서 “학생, 제대로 알고 이런일 하는거야?”하고 물으니 그 학생 알고하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아무리 돈이 좋고 뭘 몰라도 그렇지 어떻게 “예”하고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그 학생 얼굴을 보면서 내가 아는 동생이 희망버스 갔다가 어버이연합이라는 분들이 떼로 달겨들어 꼬집고 때리고 해서 온몸이 멍투성이가되서 다쳐서 왔는데 왜 이런 거짓말을 하냐며 제대로 알고하라고 하고 돌아왔다. 젊은애가 쫌 한심했다.

 

조금 걷고 있는데 수정씨한테 전화가 왔다. “언니, 어디계세요.”한다. 나이론 동생인데 늘 언니처럼 챙겨준다. 나는 운동중이라 걷고 있다고 하니 농성장에 KBS 기자가 왔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보라고 한다. 기자란 말에 으~~~~, 인제 좀 덜할때도 됐는대, 아직도 기자들은 스트레스고 예민해진다. 처음엔 기자님들이 취재를 해가면 금방 내문제가 해결될거라 생각했던 아줌마였는데, 이제 조금은 안다. 매스컴을 탄다고 금새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수정씨에게는 알았다고 하고 농성장으로 갔다.

 

내가 여지껏 본 카메라하고 달랐다. 사이즈도 엄청 크고, 카베라 옆에 먼지털이게 같은것이 하나 달려있었다. 합이 셋, 남자만 셋이 왔다. 첫인사가 늦게와서 미안하다고 사건을 알고있었는데 국가인권위 결정이 났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이 났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면서 전날 공투단 발언대에서 권수정씨 발언하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찾아왔다고 겸손하고 진솔해 보였다.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는 적당한 날을 잡아서 농성장의 하루를 촬영하겠다고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카메라는 부담 그 자체다.

 

8월 18일, 8월의 크리스마스 퍼포먼스가 있는날로 잡아서 촬영을 했다. 새벽 미명 5시 30분에 노조로 가서 샤워를 하고 왔더니 기다리고 있다. 오는 길부터 찍기 시작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청계천 옆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루돌프사슴코 노래가 울렸다. 너무 새로웠다. 여성가족부 건물주가 우리 농성장에 설치해준 나무가 트리를 달기엔 아주 적합한 나무다. 우리가 적절하게 활용한 것이다. 케롤송 중에 제일 맘에 든 것은 징글벨을 개사한 곡이다. 재미났다. 한여름밤의 복직 크리스마스 퍼포먼스는 성공리에 끝났다. 고생하고 애써주신 많은 단체와 농성장을 채워주신 많은 분들과 고구마 케익을 사와서 뒷풀이도 즐겁게 도와주신 진보신당, 아침부터 하루종일 무거운 카메라들고 촬영하느라 수고한 케이비에스 기자님들, 모든 분들게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날 고사리같은 작은 손으로 솜을 이용해 눈을 만들던 진보신당 홍춘 씨의 딸이 너무 귀엽고 예뻤다. 인기짱이었다. 내 덕분에 방송 한 번 지대로 탔다. 요새는 홍춘 씨에게 언제 티비에 나오냐고 물어본단다.

 

진보신당 동지들이 요새 여성가족부 농성장에 자주 오신다. 구자혁 동지는 내가 여가부 앞에 처음 농성장 차렸을 무렵 비가 오는 날 처음 보았다. 진보신당에서 오신 동지들 모두 우비를 입고 바닥에 앉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날 처음 왔다가 나에게 비오는 날 모자를 빼앗긴 동지다. 벗기고 나니 훤하여 조금 미안했다. 그래도 웃으면서 아낌없이 주고간 동지가 그때만 해도 이렇게 자주 오실 줄 몰랐다. 비가 그렇게 오는데 우비를 입고 앉아 찐감자를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진보신당 구자혁 동지는 멀리서 걸어오면 눈이 좀 부신다. 한쪽 어깨엔 기타를 메고 인자하게 웃으면서 나타난다. 항상 손에 먼가 들려서 온다. 씨디, 테잎, 녹음기능이 동시에 되는 성능좋은 건전지용 라디오를 사오셨다. 노래듣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라디오는 끝내주는 선물이었다. 내가 가끔 혼자서 농성장 지킬때면 그냥 있기가 맘이 울적한대 음악을 들으니 훨씬 났다. 우리 지회 조합원동지들과 함께 한잔하다가 실수로 우리조합원이 구제역 동지라고 부른 바람에 한바탕 웃었다. 구제역! 생각이 깊고 믿음직한 진보적인 동지다.

 

진보신당 김홍춘 동지는 수줍게 웃으며 찾아왔다.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 동지인데 겉으로 보기엔 정말 착하고 순진해 보이는 순박한 여성이다. 술도 못마시게 생겼지만 은근히 잘 마신다. 토요일날 점심을 해온다 해서 맛있게 먹어야지 하면서 기다렸다. 밥보다 먼저 김치 버무리는 커다란 다라는 꺼내놓았다. 이름하여 다라비빔밥이다. 맛도 크기도 칼라도 끝내주는 점심이었다. 수정이 생각이 났다. 이런거 좋아하는데, 나만 먹으려니 사진을 찍어 수정씨 핸드폰으로 보내주었다. 얼마전에 김홍춘 동지가 시집을 한권 주셨다. 김홍춘 동지의 시가 담긴 시집인데 보니 마음에 편안해지는 시였다. 세상에는 참 재능이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고보니 나는 별로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드는 날이었다. 홍춘 씨는 망초꽃 당신이란 시를 내게 지어주었다.

 

김성만 동지가 홍춘 씨가 만든 시를 보고는 노래를 지어주었다. 노래 제목은 ‘작은꽃 아픔으로 피다’, 김성만 동지는 내가 아산공장에서 추운 겨울을 날때도 찾아와서 책과 씨디를 주면서 힘내라고 격려해준 동지다. 서초경찰서로 처음 상경했을때도 기운내라며 자기가 아끼는 엠프시스템이라고 두고 쓰다가 투쟁이 끝나면 돌려달라며 빌려주고 가셨다. 나에게 박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김성만 동지는 자상한 동네 아저씨 같다.

 

진보신당 고미숙 동지는 가냘픈 갈대와 같은 여인이다. 홍춘 씨보다 먼저 우리 농성장에 비빔밥맛을 보여준 동지이다. 강된장 맛이 독특한 비빔밥이었는데 그날 수정씨가 참 맛도있게 먹던 모습이 생생하다. 물론 나도 맛나게 먹었다. 이 두 동지들 다라 싸이즈가 자기 체격처럼 달랐다. ^^ 그 조그만 체구로 어떻게 들고왔는지 만화책을 한보따리나 끙끙거리지도 않고 씩씩하게 들고와서 여가부앞 마당에 내려놓고는 환하게 웃는다. 덕분에 심심할 때 잘 봤다. 보고싶은 분들은 여가부앞 농성장으로 오세요. 고미숙 동지 감사해요.

 

진보신당 김수경 동지는 건강한 체구에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50일 문화제 때 걸개그림을 해다준 동지, 영어,한문, 일어로된 외국인을 위한 번역 현수막을 신경써서 걸어두고 본인이 흐뭇해하던 모습이 인상깊던 아줌마다. 내가 기분이 별로인날에는 벌써 알고 내게 신경을 써준다. 김수경 동지의 남편은 금속에서 일하신다. 법없어도 살아갈만큼 착한 사람이라고 얼굴에 써있는 아저씨, 농성장에 두분이 오면 술 조금만 마시라고 아내가 구박해도 한마디도 안하신다. 두분의 금슬이 부럽다.

작은꽃 아픔으로 피다의 걸개그림의 문구가 시도 지어지고 노래도 만들어지고 천 장의 티도 탄생시킨 동지의 연대에 감사드립니다.

 

국민참여당 여성위원동지들이 우리 농성장에 점심을 한번 가져와서 먹고 간뒤로 아주 열심히 도와주려고 많이 애를 쓰고 있다. 농성장에 찾아와 애쓰는 모습이 고맙다.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에 올려주겠다고 한다. 처음 찾아와서 1년이나 된 내용을 설명하느라 조금 피곤했지만 찾아온것이 늦었다면서 도울길이 없나하고 걱정해 주는 진심이 담겨있어 고맙다.

 

4차 희망버스가 청계광장으로 오는 날이다. 오후가 되니 삼삼오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청계광장에 깃발들이 들어오면서 시끌벅쩍 해진다. 수정씨는 녹색티를 입고 나는 자주색 티를 입고 티셔츠 판매를 했다. 저녁 밥 먹는것도 잊고 여러동지들이 오셔서 함께 티셔츠를 입고 판매를 해주셨다. 그동안 희망버스를 한번도 못가봐서 가보고 싶었는데, 내가 있는 청계광장에서 행사를 하니 좋았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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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9월 5일~ 9월 11일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피해자와 함께 농성하고 계시는 권수정 대리인께서 직접 작성하셨습니다.

 

상경농성 99일 문화제, 추석기간 농성장 이야기 들어보세요~!

 

9월 5일 월요일 농성 96일

 

1.

집에 갔다가 농성장에 도착해보니 못보던 이불이 있다. 지난 4차 희망버스에 참가했다가 우리 농성장 사연을 아시게 된 시민분이 날이 추워진다고 사오셨다고. 아침저녁 쌀쌀해지긴 했는데, 이불은 생각도 못했다. 나는 그냥 침낭덮고 자면 되려니, 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앞서는 동지들 마음이 따듯하다.

 

2.

금속노조 동지들이 저녁에 오셔서 농성장 텐트 보수공사를 하고 ‘작은 꽃 아픔으로 피다’ 걸개그림을 나무에 걸었다. 여름내내 비에 시달렸던 터이고, 더욱이 여가부 건물 청소하는 아저씨가 화단에 물을 준답시고 우리 텐트로 물을 뿌리며 괴롭히는 통에 다른 무엇보다 텐트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단도리 하는것이 가장 신경이 쓰인다. 농성 여러번 해보신 동지들이 오셔서 능숙하게 손보는 모습이 든든하다. 새집으로 이사하고 보수공사하고 인테리어까지 마무리한 느낌. 동지들 모두 감사합니다. 새집에 놀러오세요!

 

 

 

9월 6일 화요일 농성 97일

 

1.

언니와 둘이 민사소송 준비를 하며 씨름을 하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이 맞고, 성희롱으로 인한 고용상의 불이익(징계, 해고) 당한 것이 맞다는 국가인권위 결정에 따라 가해자 조장, 소장과 금양물류 사장, 현대자동차 사장에게 민사소송을 낸것이 지난 2월 24일이다. 그동안 가해자들이 보낸 소설같은 답변서에 일일이 사실관계 확인해 주느라 씨름을 했었다. 언니를 원래 헤픈여자, 트러블 메이커 뭐 그런식으로 몰아가는 내용의 답변서에 일일이 댓구를 해주느라 언니도 나도 피곤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금양물류 사장이 반소장을 보내왔다. 지가 오히려 피해를 보았다고 언니에게 6천5백만원을 보상하라는 내용이다.

 

이번에도 비슷하다. 가해자들의 일반적인 대응이 똑같다고 하는데, 참으로 천박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한번더 괴롭히는 그자들의 머릿속에 마음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가.

 

집중해서 하면 이삼일이면 될텐데, 농성장으로 오시는 손님들과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일들이 있으니 틈틈이 짬짬이 하느라 시간은 더 오래걸리고, 빨리마무리 해야하는데, 생각하며 마음속에 돌맹이 앉아 있는것처럼 묵직하게 며칠을 보냈다. 가해자들의 비방과 폭언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아 언니도 나도 소화가 잘안된채, 씨름하고 있다.

 

2.

민주노총 여성부위원장과 동지들이 도시락을 싸오셨다. 박승희 여성위원장님의 밥심연대가 확산되고 있다. 부러 집에서 한 밥과 반찬을 싸들고 오는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인데, 귀챦아하지 않고 준비해오시는 동지들 마음이 달다.

 

 

 

9월 7일 수요일 농성 98일

 

1.

서울상경 농성을 시작하던 무렵, 서초경찰서 앞에 있을 때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박승희 여성위원장님이 도시락을 싸오셔서 밥심연대를 해주시는데, 오늘은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동지들이 도시락을 가지고 오셨다. 덕분에 박승희 여성위원장님 모처럼 그냥 오셔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공감의 여성분들은 씩씩하고 밝다. 아직 남아 있는 ‘작은 꽃 아픔으로 피다’ 티셔츠를 사서 그 자리에서 입고 걸개그림 앞에서 인증사진 찍는 동지들 웃음소리가 화사하다. 고마워요. 자주 놀러오세요. ^^

 

2.

오후 4시 충남지부 동지들 60여명이 와서 농성장 침탈규탄 성희롱 피해자 복직을 위한 집회를 했다. 상경농성 98일만에 처음으로 금속 충남지부가 공식적인 집회를 한것이다. 지난 여름 충남지부는 유성기업 투쟁에 집중하느라 서울에서 다른 집회를 잡지 못했었다. 아무리 유성기업 투쟁이 중요하고 집중해도 그렇지, 너무했다. 이렇게 말하면 섭섭해 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말이 더 이상하다. 피해자 대리인과 피해자가 섭섭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조합원이 7000여명인 금속노조 충남지부의 사업이 집중할 투쟁은 집중하더라도, 작고 힘이없어 외롭고 소외된 조합원의 투쟁 또한 소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섭섭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조직의 정체성의 문제다. 조직되어 힘있는 지회를 위해, 사회적 이슈가 되는 투쟁을 집중하기 위해서만 우리 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성희롱 당하고도 해고된 억울한, 단 한사람의 피해여성 조합원을 위한 투쟁 또한 넉넉하게 함께 하는 것으로 자랑스러운 금속노조 충남지부가 되어야 하는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98일만에 우리 농성장앞에 금속 충남지부 깃발이 걸렸다. 반갑다. 이제 유성기업투쟁과 발레오공조동지들의 투쟁이 마무리되었으니, 더 자주 지부 깃발 펄럭여 지치고 힘든 언니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길 바란다.

 

9월 8일 목요일 농성 99일

 

1.

오늘 아침부터 농성장으로 경향신문이 배달된다. 연대동지 한분이 경향신문 지국으로 전화해 농성장 장소를 알려주고, 매달 선금으로 입금해주기로 했다고 어제 전화가 오더니 정말 신문이 배달되었다. ^^ 신기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한잔 마시며 럭셔리하게 신문을 보고 집회 신고 하러 가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점점 익숙한 집처럼 되는 느낌이다. 더 익숙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언니가 복직되어야 하는데, 생각하며 그래도 농성장 생각해주는 동지 마음이 고맙다.

 

2.

내일이 서울상경농성을 시작한지 100일이 된다. 세월이 참 빠르다.

재능지부 유명자 지부장님이 우리보고 “벌써 100일이야!” 하신다. 웃었다.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울겨울, 봄여름가을겨울을 세 번을 보내고 다시 맞고 있는 봄여름가을을, ‘세월이 참 빠르다, 벌써 1000일이야!’ 하면서 유명자 동지와 재능지부 동지들은 길바닥에서 보냈을까. 바람과 눈과 비를 맞으며 용역깡패들의 폭력에 맞서 기를쓰고 악을 쓰며 주먹쥐고 보냈을까. 그렇게 당해도 눈여겨 봐주지 않고 무심히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보며 초라해지는 농성 텐트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그렇게 버려진 것이 나의 처지 같아서, 침탈당할때마다 구겨지고 찢어지는 텐트가 나의 몸같아서 또한 얼마나 아팠을까.

참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그냥 가는것은 아니라고, 인간의 가치가 자본의 욕망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날마다 확인하는 동지들의 투쟁의 하루하루, 그 고통과 그 지루함과 그 모멸감을 넘어 햇살처럼 반짝거리는 사람의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3.

99일 문화제가 풍요로왔다. 노래해주신 동지들, 몸짓해주신 동지들, 음향시스템을 봐주신 동지들, 언니에게 진보신당 김홍춘동지가 써주신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어주신 김성만동지, 20년만에 사회를 보신 김수경 동지 그리고 참가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늘 동지들에게 받기만해서 일부러 이벤트처럼 노래준비를 했는데, 내가 언니에게 찬송가 ‘뜻없이 무릎꿇는’ 불러부고 언니가 나에게 ‘민들레처럼’을 서로 불러주기로 했는데, 언니가 목이 상해서 소리가 안나온다고 나만 불렀다. 성가대 소프라노 20년 경력의 언니의 노래를 자랑하고 싶었는데, 나는 노래도 잘 못하고, 반쪽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섭섭하여 그냥 불렀다.

문화제 끝난후 정리하느라 부산한대 한동지가 인사하며 “권수정동지 노래듣고 은혜받았어.”한다. ㅍㅎㅎㅎ, 재밌다. 조만간 언니의 민들레처럼을 청해 들어야한다.

 

 

9월 9일 금요일 농성 100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비가 온다. 어제저녁 먹은 숙취해소를 위해 언니와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며 새벽부터 삭신이 쑤신다 했더니 언니가 목욕탕 갔다오라고 하네. 아! 왜 그방법을 몰랐을까. 그런데 근처에는 목욕탕이 없다. 아니 목욕탕이 있는데 남성전용이다. 진짜 웃겨. 2008년인가 여의도에서 한겨울에 농성하면서 보니 여의도에도 남성전용 목욕탕만 있더라. 어처구니 없다. 이동네는 남자만 사냐. 나도 산다고.

서울역 근처까지 가서 몸을 담그고 왔더니 살것같다. 시원하다.

 

민중의소리 방송 ‘체샤의 배운뇨자’ 생방송 인터뷰. 음---, 체샤는 명랑한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이다. 사건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하는것은 익숙하지만, 뭐랄까, 토크쇼처럼 가볍게 웃으며 대화를 하는, 이런 방식은 처음이라 분위기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렵더라.

 

오늘저녁부터 추석 명철 휴가인 셈이다. 오늘저녁은 지엠대우 비정규직 동지들이 오셔서 농성을 해주신다. 명절기간에도 농성장 찾아주시는 동지들 모두 고맙다.

 

 

9월 11일 일요일 농성 102일

 

1.

금요일저녁부터 오늘 오전까지 내가 집에 다녀오고 오늘부터 언니가 명절 보내러 아산으로 가셨다. 모처럼 아이들과 다른것 모두 잊고 편히 쉬고 오시길 바란다.

 

지난 여름내내 농성장 텐트에서, 그리고 인도 바닥에서 깔고 덮고 잤던 더러워진 침낭을 햇볕좋은날 한번 세탁해서 말려야 하는데, 생각만 하며 시간이 흐르고 있었는데 농성장 도착해보니 침낭들에서 뽀송뽀송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난다. 물어보니 임용현동지와 김현동지가 김현동지 오토바이에 싣고 빨래방가서 세탁, 건조 해 온것을 농성장 앞에 빨래줄 걸고 다시한번 말렸다고 하네. ^^ 퀵서비스 노동자 김현동지, 우리 농성장 머슴같은 용현동지, 고마워요.

 

2.

어제 남윤철 동지와 함께 아산에서 올리온 이옥선 동지는 내일 저녁까지 있는다고 한다. 언니의 신랑이 유성기업 파업투쟁건으로 구속되어 있는 민주노총 충남본부 정환윤동지다.

“언니, 차례 지내러 안가도돼?‘

“어제 올라 오기전에 면회했어. 집안에 차례 지내야할 남자가 빵에 있는데, 나혼자 뭘. 얘기하고 올라왔어. 잘됐지뭐. 이참에 여기 농성장 와서 추석지낸다고 말하고 왔어.”

야간노동 철폐하자는 정당한 투쟁을 하고도 정환윤 동지가 구석되어 있는 것이야 억울한 일이지만, 모처럼 차례음식 만들지 않아도 되는 언니는, 농성장에 앉아 홀가분한 표정이다. ^^

명절을 농성장에서 혼자 지낼까봐 부러 와서 연휴기간 함께 보내주는 언니에게 고맙다.

 

3.

추석 연휴 며칠 전부터 지원대책위 동지들과 연휴기간 농성함께 해줄 동지들을 확인했는데, 가장 조직하기 어려운 날이 오늘이었다. 추석 바로 전날이라, 모두들 고향에 내려갔든지, 여성들은 음식준비하느라 빠질수 없든지, 그래서 오늘 농성을 조직하는 조건이 매우 까다로왔다. 서울인근이 고향인 착한 싱글 남성. 사회당 김스캇 당첨! ^^

 

김스캇동지가 명동마리 농성장에서 싸웠던 젊은 동지들과 함께 와서 놀았다. 기대하지 않은 전어와 생새우까지 풀어놓고 신이났다. 수상한 남자 박정근이 누군지 처음으로 알았다. 동지들의 목소리가 음표처럼 울렸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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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8월 29일 농성장 일기

- 농성장 강제철거 이전 농성장 일기입니다 -

이 글은 피해자와 함께 여성가족부 앞 농성을 진행하고 계시는 권수정 피해자 대리인께서 작성하셨습니다

 

 

 

8월 29일 월요일 농성 89일

 

1. 최근에 부쩍 여러 언론사에서 연락이 온다. 인터넷 언론 뿐 아니라 한겨레, 경향등의 일간지들, 중앙방송의 KBS, MBC 등에서 연락이 오고 CBS 라디오에 생방송으로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한다. 기자들이 온다고 당장 기사자 작성되는것도 아니고 모두 방송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경험으로 보건데 인터넷 기사를 보고 메이저 언론이 오더라. 그리하여 진지한 작은 언론이 메이저를 움직이기도 한다는, 자본만 거대 언론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확인도 재밌다. 이렇게 말했더니 어떤 기자가 말했다. “맞아요. 언론바닥은 먹이사슬이예요.” 저런, 그렇군. ^^

 

요즘은 메이저와 다르게 바닥의 여론을 주도하는 개미들의 트위터도 있다. 트위터는 다른 세상같다.

 

언니와 둘이 서울로 상경하며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다하자 했는데, 우리는 조직동원을 못하니까 사실 우리가 할수 있는것이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함께 분노할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인데, 우리는 농성장에 앉아 지키는 것도 벅찬대 언제 얼려지나 했는데, 그래도 그동안의 농성이 헛되지 않아 이리저리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알려진 모양이다.

 

아직 복직을 할수 있을 만큼 여론이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첫술에 배부르지 않은 법이다. 최선을 다해 버티고 알려야지. 힘을 내야지.

 

2.

‘작은꽃 아픔으로 피다’ 라는 제목으로 김홍춘 동지의 시에 김성만동지가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어 주셨다. 우와! 멋지다. 김성만 동지가 악보를 보내주셨는데, 나는 봐도 모른다. 하얀건 종이고 까만건 음표일뿐. 그래도 멋지다. 넘넘 좋다. 빨리 들어봤으면 좋겠다.

 

3.

내일이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에서 하는 직장내 성희롱문제 정책대안에 대한 토론회인데, 토론자로 토론문을 미리 제출해야 하는데, 밤 10시 현재 아무 준비도 못했다. 자료를 대충 봤는데, 토론문을 쓰기가 어렵다. 이일을 우찌하면 좋노.

 

 

8월 30일 화요일 농성 90일

 

1.

점심시간에 진보신당 김홍춘동지가 도시락을 싸왔다. 삶은 양배추, 강된장, 새우젓으로 맛을 낸 호박나물, 둘이먹다 하나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다. 특히 홍춘언니네 음식은 된장이 맛있는데, 시골에서 어머님이 직접 만들어서 보내주신 것이라고 자랑을 한다. 동지의 마음이 달다.

 

2.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여성노동자 직장내 성희롱 실태조사 및 대안연구’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끝내 어제밤에 토론문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아침에 허겁지겁 후다닥 간신히 만들었다.

 

벌써 몇주 전부터 꼭 참석해야 한다고 박승희 여성위원장님과 송은정여성부장님이 당부를 하셨고, 미리 보라고 자료도 보내주셨는데, 우와! 어찌나 지루하고 어렵던지. 하!하!

잘 아시는 전문가분들이 하는 토론회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석하는것 같아 부담스러웠으나, 현장에서 격는 사람의 의견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요청에 의하여, 아니 실은 자기일처럼 우리 농성장 잘 연대해 주시는 두 동지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서, 보은의 차원에서 참석했다. ^^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 위계와 권력에 의해 발생하는 직장내 성희롱 문제의 심각함과 제도적 미비함에 대한 문제의식들이 충분히 있는 동지들이 모여 더욱 진지하고 적극적인 논의들이 진행되었다.

 

좋은 토론회 였으나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현장에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오늘 우리가 논의한 정책 대안이 가서 닿으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한걸까. 그리고 그 시간동안 얼마나 더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걸까. 갈길이 너무 아득하게 멀다.

 

3.

저녁에는 우리 농성장에 자주 오는 나위와 이화여대 동지들이 떡볶이랑 김밥을 사들고 오셨다. 늘 씩씩하고 발랄한 동지들인데, 음식 나누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길 하다 트위터 확인하더니 나위가 말한다.

“어, 언니 여성가족부 장관이 바뀐대요.”

“뭐야? 이번에는 누가 되는데?”

“김금래 라는데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래요.”

“뭐니,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이 동시에 장관도 되니?”

“그런가봐요.”

“뭐 하던 사람이니?”

그 자리에서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될 사람의 프로필을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참 좋은세상이다. ^^

“어머, 왠일이야. 이 사람 이화여대 사회학과 나왔네. 우리과 선배쟎아.”

“정말요? 나위언니, 그럼 우리 나중에 여기다가 대자보 하나 붙여요. 이대 후배들이 선배님에게, 똑바로 잘하라고, 뭐 이런거요.”

그러더니 깔깔대며 뒤집어진다.

음---, 이대 나온 여자들이군!

 

하버드 식품영양학과 나온 여가부 장관에게 실망한 터라 이대 사회학과는 좀 나으려나, 어디를 나왔든 여성가족부 장관이면 최소한 성희롱 당하고 억울하게 해고된 여성노동자의고통을 좀 알아 나서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 주려나. 아니지. 기왕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장관이 바뀐다면 이 기회에 어떻게든 여가부가 나서서 언니의 성희롱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뭔가 준비를 해봐야 겠다.

농성시작한 지 90일, 무심한 여가부 건물 앞에서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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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28 농성장 일지

한주가 지나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본 농성장 일지는 피해자와 함께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하고 계시는 권수정 피해자 대리인께서 직접 작성하셨습니다..

 

8월 27일 토요일 농성 87일

 

1.

우리농성장 앞 청계광장으로 4차 희망버스가 왔다. 말로만 듣던 희망버스의 감동은 거의없었다. 티셔츠 파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아무래도 여기는 85호 크레인이 있는 현장이 아니니까, 5차 희망버스는 다시 한진중공업으로 갔으면 좋겠다.

 

티셔츠는 날개돋친듯이 팔려서 대박이다. 언론에 5천여명 모였다고 했는데, 400장이 팔렸다. 대략 10%의 사람들이 ‘작은꽃 아픔으로 피다’ 티셔츠를 샀다. 여성민우회를 비롯해 강경란, 토리, 유현경, 이혜경, 정유림, 공무원노조 동지들 그 외에도 많은 동지들이 열심히 티셔츠를 팔았다. 언니도 희망버스 스카프 머리에 두르고 신이 났다. 무슨 일이든 힘을 모아 열심히 손발을 맞추고 나면 기분이 좋다. 다 끝내니 대략 100장이 남은 것으로 보이고 돈을 세어 봤더니, 아니나 달라 4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계산까지 딱들어 맞으니 기분은 더욱 좋지.

함께 판매 힘써주신 동지들, 강매에 응해 사주신 동지들 모두 감사해요. ^^

 

 

2.

티셔츠 판매를 시작할무렵 국민참여당 홍보트럭이 하필 우리 농성장을 가로막았다. 티셔츠를 판매하는 가판을 가릴 뿐 아니라, 늘 외로운 우리 농성장, 마치 언니의 처지 같아 마음이 아프다가, 오늘은 희망버스가 청계광장으로 오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우리 농성장을 보고 알고 가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데, 그 마음을 떡하니 가로막는다.

 

더욱이 매연이며 발전기 소음이며 열기가 모두 우리에게 온다. 가로막지 말고 비켜 달라하니 국민참여당 당직자겠지. 트럭을 몰고 온 사람이 화를 낸다.

“여기 인도에 사람이 다닐수 있쟎아요.”

인도에 당연히 사람이 다니지. 그걸 말이라고. 누가 사람들이 다닐수 없다했나. 희망버스 참가하신 분들과 우리 농성장 사이를 가로막고 있으면서 딴 소리를 한다. 아니, 우리 농성장의 마음이 안보이고, 안들리는 거겠지. 국민참여당 홍보하는것이 중요하니, 초라한 우리 농성장이 눈에 보이기나 하겠어.

“그게 아니라, 그 트럭이 우리 가판과 농성장을 가린다구요.”

“오늘 여기 유시민 대표가 오시거든요.”

하, 갈수록 가관이다. 김진숙이 왜 시린 새벽에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갔는데, 바로 그 85호 크레인에서 129일을 버틴 김주익을 노무현 정권이 죽였는데, 세월이 좋구나. 죽은 김주익의 영혼을 등에 엎고 크레인을 오른 김진숙을 살리겠다는 자리에 참여당이 반성하나 없이 떡하니 참여 하는것도 눈꼴이 신데, 뭐라, 유시민 대표가 오신다고, 그러니, 높으신 유시민 대표가 오시니, 길바닥으로 내몰린 하챦은 비정규직 여성의 농성장은 마땅히 더러운 참여당의 매연과 소음을 견디라고. 유시민 대표의 한표를 위해 고단한 여성노동자를 무시하는 것 보니, 국민참여당은 다시 집권을 해도 또 우리를 죽이겠구나.

 

“그게 무슨 상관인대요. 트럭을 좀 치워달라구요.”

티셔츠를 팔던 여러 동지들이 한마디씩 하니 간신히 앞쪽으로 조금 비켜 가판대는 보이지만 여전히 농성장을 가로막은채 집회하는 내내 매연과 소음과 더위를 우리는 견디어야 했다.

 

최근 국민참여당 이혜경 서울시당 여성위원장님이 우리농성장에 자주 오시고 함께 고민해주고 함께 행동해주신다. 그 생각이 나서 싸가지 없는 국민참여당 당직자 뺨을 치지는 않았다. 고마운줄 알아라. 다시한번 유시민 대표를 위해 우리 농성장을 가리면, 두 번은 안참는다.

 

3.

400만원을 들고 오락가락 하였다. 도무지 마음이 불안해 농협에 갔는데, 365일 코너가 밤 12시에 문닫는지 몰랐다. 나는 24시간 운영되는줄 알았지. 묻닫힌 은행을 뒤로 하고 금속노조로 가며 불안하다. 돈을 어떻게 해야 하나. 농성장에 두기는 불안하고 금속노조가 안전하겠지만, 금속노조에 두는것은 내 수중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불안하고, 안절부절 머리를 굴리다, 스스로 무안하였다.

내 참, 어떤놈은 몇백억, 몇천억 사기처먹고도 암시랑토 않고 태연하더만, 권수정 너는 겨우 현금 400만원에 불안해 어쩔줄을 모르는구나. 돈이란 요물이란다. 나에게 현금 400만원은 감당할수 없이 큰 요물이란다. ^^

 

 

 

8월 28일 일요일 농성 88일

1.

언니는 온양에 가고 나는 하루종일 늘어져서 잔다. 내가 이렇게 기운이 없는데 언니는 얼마나 피곤할까 걱정이다. 나야 하루종일 늘어지지만 언니는 교회에도 가야 하는데, 늘 그랬듯이 언니의 하나님이 맑고 빛나는 울트라 파워 에너지를 언니에게 주시길, 아멘.

 

2.

지난 금요일부터 현대자동차 사측과 정규직 노동조합이 합의한 단협에 이른바 정규직 노동자 자녀 세습채용에 관한 문구가 들어갔는지 확인했었는데, 들어간 모양이다.

 

하, 현대자동차 떼돈 벌어 정주영이 정몽구에게 세습하고 정몽구가 정의선에게 세습을 하더니, 북한에서 김일성이 김정일로 세습하고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세습하는것은 입달린 남한사람이면 다 욕을 하면서 남한에서 현대와 삼성의 3대세습은 별문제 없는듯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참 이상하더니, 이제 정규직 노동자는 자기 자리를 자식에게 세습하는 구나.

 

어쩌면 좋으니, 우리 비정규직은 차별과 멸시와 가난을 대대손손 자식들에게 세습하게 생겼구나. 어쩌면 좋으니, 우리는 현장에서 뼈빠지게 일하고 주야간 맞교대로 일하고 더힘들게 일하고 더많이 일하고 더 더러운 곳에서 일하고 임금은 적게 받고, 물량이 줄어든다고 해고되고, 노동조합 가입해 싸운다고 뚜드려 맞고, 그리고 성희롱 당하고, 성희롱을 당했다고 말하면 해고되는 우리는 어쩌면 좋으니, 이 꼴을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게 생겼구나.

 

이일을 어쩌면 좋으니. 태어나면서부터 비정규직의 굴레를 쓰고 천대받으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자식들을 눈뜨고 보아야 하는, 우리는 이제 어쩌면 좋으니.

 

3.

그랬는데 정몽구가 저소득층 인재양성을 위해 5천억을 기부했다.

현대자동차 안에 있는 1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겨우 1천억이다. 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 안에서 2년이상 계속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도 끝내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안더니, 저소득층 인재양성을 위해 5천억을 기부한다고.

 

너에게 저소득층 인재양성이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식을 양성하는 것 아니냐.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노예의 삶과 영혼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야. 그리하여 그아이가 노동하는 댓가를 모두 니 아들의 아가리로 처넣은 것이 너의 저소득층 인재양성 아니냐.

 

인재양성이라니, 천박한 놈이 개처럼 돈벌어서 교양있는 척할려고 지랄을 한다. 나쁜놈아 너는 5천억 쓰면서 타이틀도 참 더럽게 붙인다. 저소득층 인재를 왜 양성해야 되니. 그냥 저소득층을 없애면 되지. 저소득층을 없애는 건 죽어도 싫겠지. 저소득층이 저소득층인 이유는 니가 그 저소득층의 소득을 빼앗아 와서인데, 그걸 없애면 너의 이윤이 줄어드는데, 그러니 겨우 1천억밖에 안들어도 저소득층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할수는 없는데, 그러니 너는 자손만대 천년만년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 피빨아 먹으며 살고 싶겠지.

 

정몽구가 기부한 5천억안에 우리언니가 14년동안 현대자동차 검사하며 일한 댓가가 들어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 잊지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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