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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8/18
    전작권
    JSA
  2. 2007/08/08
    디워 현상
    JSA
  3. 2007/08/03
    8/3
    JSA
  4. 2007/07/15
    7/15
    JSA
  5. 2007/07/08
    후다닥
    JSA
  6. 2007/07/06
    7-6
    JSA
  7. 2007/07/02
    비가 온다
    JSA
  8. 2007/06/28
    임관 포스트
    JSA
  9. 2007/05/19
    특박 포스트 3
    JSA
  10. 2007/05/19
    특박 포스트 2(1)
    JSA

전작권

미군들이랑 회식을 했다.한국음식은 처음이라는 이 사람들 소주부터 비빔냉면 마무리까지 잘도 처먹더라. "너 이거 먹고 죽을지도 모르니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먹어라"라고 겁줬는데도 참 용감했다 이 사람들은. 25년 경력의 미군 군무원 아저씨랑 전작권 이양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이 아저씨는, 참 똑똑했다. 남북문제에 대해, 한국 역사에 대해, 세계사에 대해 나보다 다섯배는 더 잘 알더라. 딸은 미국에서 의대를 다닌다고 했던가. 똑똑하고 차분한 아버지를 두었으니 그럴만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한 얘기는 얼추 다 맞았다. "한국은 그럴 능력이 없다"인데, 이건 정말 우긴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전작권 이양을 두고 크게 찬반이 나뉘고 한쪽에서는 아예 이 논의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반전' 여론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더라. 난 이 시점에서 "전쟁엔 반대하지만 군대까지 반대하지는 않는다"며 상투적인 성악설이나 경제학의 무임승차자 얘기를 꺼냈고 이 사람도 잘 알아들었다.  미국이 수집하는 정보 중 반의 반도 못 받으면서 감지덕지 감사하다며 받으면서 그것도 다 소화 못해 죽으려고 하는 걸 보면 전작권 이양은 정말 먼 후 얘기일 뿐이다.  정보 소통하는 방식이며 장비, 기술, 항공기가 모두 'U.S PROPERTY' 다. 을지포커스렌즈 훈련하자며 여러 부대에서 사람들을 차출하고서는 교관 스스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미군 장비 사용법을 버벅대며 시현한다. 영관급 장교들은 인맥 쌓느라 바쁘고 소위중위들은 아무것도 몰라 이리저리 당황할 뿐이다. 나같은 애들 미군식당에서 스테이끼 썰며 낄낄댈 때 수많은 증원미군들은 저 구석 한국인이 출입할 수 없는 폐쇄지역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처장의 비서급인 한 육군 대령은 파견 장교들에게 "당신들이 전작권 이양 후 새로운 시스템을 이끌  사람들이니 열심히 배워두라" 했지만 글쎄요, 여기 온 소.중위들은 2010년 전작권 이양 전에 다 제대할 생각이랍니다. 장기할 생각은, 죽어도 없어요.

 

솔직히 지금 한국이 갖고 있는 무기쳬계만으로도 북한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서해나 동해에 남한 함정 뜨면 북한 함정들 다 위로 올라간다. 남한 하루에 비행기 수십번 띄워 훈련시키는 동안 북한은 고작 2~3번 뜰 뿐이다. 어느 기지에서 몇 명이 굶어죽고 기름이 없어 북한 쪽으로 꽃게 잡으러 넘어온 중국 상선 잡아다가 걔네 배에 들어있는 기름까지 빼 가져갔다는 걸 들을 때마다 불쌍해 죽겠다 북한 사람들. 이지스함이나AWACS까지 남한에서 운용된다면 북한으로서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압박을 느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맨날 방송에다가 '남한의 획책' 운운하지.

 

이건 딜레마다. 남한과 미국의 관계를 놓고는 남측이 답답할 정도로 미측에 의존하고 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서는 현 수준으로도 충분히 전쟁 억지가 가능하다. 그러니 미국이 덜컥 넘겨준 군 운용 방식과 체계를 빨리 한국화하는 게 급선무겠지만 역량을 그쪽으로 쏟기에는 북한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부족하다. 여전히 남한의 민주세력과 노무현 정권을 친북세력으로 여기는 북 정권이 가끔 또는 지속적으로 쏴대는 미사일 실험에 남한은 간이 떨어질 지경이다. 그러니 더욱 미국에 붙어 뭔가 가시적인 시스템, 무기를 도입하고 사오는 거지만 그럴수록 미의존성은 커질 수밖에. 이건 딱, 안보 딜레마구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리가 끝나고 나서는 훌쩍 학교 쪽으로 넘어와 친구 집에서 소소한 앞가림 얘기나 하다가 잤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 보안과로 발령 났으니 이쪽 세계는 제대할 때까지 거의 볼 일 없겠구나. 그러면서 이 훈련에 끌려오다니. 임관한지 두달도 안된 신임소위가 보안과'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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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현상

이 영화, 봤다. 오랜만에 나오는 괴수영화인데다 공짜로 볼 기회였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영화를 본 대전 씨너스에서는 그 날 다이하드와 므이, 화려한 휴가를 틀어주고 있었다. 뜬금없는 플롯이 등장하고 서양인이 전형적 한국 신파를 연기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이 사람, 영화 참 못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자전적 글에서는 조소를 넘어 연민까지 느껴졌다. 나는 정말 이 영화를 보고 나선 심형래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동정심이 동해버렸다.

 

사람들 영화를 참 편파적으로 본다. 영화 관람객은 크게 두 개로 나뉘었는데 애국심으로라도 영화를 봐야한다는 축이랑 나머지 하나는 평소 예술영화 깨나 본다는 사람들 혹은 영화를 '읽는다는' 축이다. 어느 쪽이든 장르 영화가 그 자체로서 뻗어나갈 싹을 잘라버린다. 전자야 말할 것도 없지만 후자는 더욱. 프랑스에서나 통할 영화 문법만을 갖고 모든 영화에 들이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럽은 장르 영화의 불모지나 다름 없다. 둘이서 혹은 서너명이서 잔잔한 호숫가 주위를 걸어다니며 수사의 향연을 벌이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영화가 사람 사이의 '관계'에만 집착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아가, 영화가 '스토리 텔링'에 목매달 필요도 하등에 없는 것이다.

 

조지 로메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좀비 영화를 보고 빈약한 플롯에 남는 것은 '피튀기는 살점'밖에 없단 식으로 말하는 건 다분히 동어반복적이다. 감독 스스로 혹은 장르 스스로 그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계란 흰자를 바르고 눈가에 쇠고리를 박은 펑크족에게 "괴기스럽다"라고 말하는 것, 그게 바로 펑크족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던 것처럼.

 

세상에 일반적인 게 있을 수 있을까. 일반적인 걸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을까. 원칙은 어디까지나 '잠정적 합의'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관점, 유연한 시각으로 영화를 볼 수는 없을까. 장르 영화는 장르 영화대로 존중받고 그 스타일 안에서 논란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어설픈 대화, 비현실적인 플롯으로도 하나의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

 

다시- 괴수 영화는, 괴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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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1.

 

교육이 얼추 끝나간다. 세 번에 걸친 시험과 세네 번의 브리핑, 보고서 제출도 모두 끝났다. 이제는 화요일까지 설설 쉬면서 자대배치만 기다리면 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구로 가기로 했고 다음주가 되면 배치신고를 하는 즉시 '을지 포커스 렌즈' 훈련으로 차출돼 오산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 04년 을지포커스훈련만 해도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내가 직접 그 훈련에 운영진으로 참여하게 된다니 이거 참 아이러니컬하다. 정보 특기를 선택한 이유는 전적으로 호기심 때문이다. 평생 구경도 할 수 없는 비밀을 들춰볼 수 있는 쾌감이랄까,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덩그러니 다른 사람 사물함을 들춰보는 기분이랄까, 그런 것 때문에 정보 특기를 지원했다. 후회나 만족이랄까 이런 걸 지금 이야기하기에는 나는 아직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이제 임관하고 나서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근 5주 간의 교육에서 신기한 것들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도 소설을 많이 읽은 것이 좋았다. 2급 비밀 취급 인가자만 들어갈 수 있다는 통제구역에 왜 그리 많은 문학들이 많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심지어는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까지 있었다!) '내가 좋아했다는' 무기 체계에 대해 배우는 것보다 그 신기한 소설들을 원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은 들리는 말로는 하루 20시간 근무에 죽도록 힘들단다. 영화에 나오는 그 그대로의 시설들 사이에서 왕창 깨지면서 여기저기 당황한 낯빛으로 뛰어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덜컥 겁이 나지만 15주 훈련보다는 훨씬 수월할 거라 믿는다. 돈도 그렇게 많이 받는데,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고.

 

 

#2.

 

'그 분'은 왜이리 담굼질을 하시는지. 만인의 연인을 좋아하기란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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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탁구를 참 잘 치는 룸메 형이랑 맨날 탁구를 친다.

항상 지는 주제에 내기를 거는 건 언제나 내 쪽이다.

서비스를 어떻게 그렇게 휘어서 치는지 참.

가끔 끝도 없이 방치된 테니스장에 가서 형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주고 있지만

휘두르는 비슷한 종목이라선지 몰라도 처음 치는 사람치고 참 잘 친다.

이렇게까지 욕먹으면서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 배웠던 내 초딩 시절을 생각하면

재능은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백헨드나 서비스를 치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공이 쭉쭉 뻗어 나가는 걸 보면 아직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늘 족발을 사오면서 세영이가 자꾸, "족발이 따뜻한 게 귀여워"라고 말했다.

어디든지 꼭 적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귀엽다는 건 어디에나 쓸 수 있는 말이지.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07년 베스트 앨범을 듣고 있다.

노래들이 참 귀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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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닥

왜 이리 모든 게 뻘줌했는지.

'말문막힘증'은 언제고 떨쳐낼 수 있을까.

 

계획없이 나온만큼 아무 감흥도 없다.

(앞으로 수십, 수백번 나올 외박이니만큼 매번 감흥을 느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열심히 해보지 않은 공부인데,

내일부터는 정말로 진지하게 외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이야 낮은 점수 받는 거에 그쳤지만 이제는 모르면 온갖 수모를 당하게 될 터이니.

 

서울역 concos(?) 서점에서 "커피 이야기"를 사서 한 시간동안 후다닥 읽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야기를 그렇게 부담없으면서도 가볍지 않게 하는 사람이 돼야 할텐데.

 

그나저나 축구화를 안 가져왔구나, 이런. 얇디얇은 컨버스 구멍이 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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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우와 씨, 밤 11시 40분 지금에야 집에 들어왔다.

 

 

1.

수업이 끝나고 "보고 들은 기밀 이곳에 두고 가자"는 무시무시한 출입증을 들고 부대 밖으로 나왔다. 어제의 음주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인지 몸이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엄마 쪽 그러니까 외당숙이 부대 정문에서 기다리고 계셨고 ef소나타를 타고 청주 어딘가 무지 비싸보이는 소고기집에 가서 엄마 아빠를 만나고 배터지게 소고기를 먹고 c1소주를 마시고  노래방을 갔다. 거기서 느낀 것이지만 내가 '기성 세대'랑 잘 어울리는 뭔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생판 처음 보는 외가 친척 어른과 어깨동무를 하고 트로트를 부르면서 템버린을 치면서 즐거워하는 나를 보고 있으니 굉장히 신기했다. 새삼 고등학교 때 트로트를 일부러 찾아 들으면서 했던 생각이 났다. 다양성은 나를 풍부하게 만들 거라는 거. 아무튼 거기서 얼마나 마셨는 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마시고 난 후 완전히 뻗은 아빠를 조수석에 태우고 나랑 엄마랑 노심초사하며 결국 대전으로 무사귀환했다. 3병 정도 혼자서 마신 듯 하지만 하나도 안 취했다. 이거 '어른'들이랑 마신다고 양껏 긴장했더니 전혀 안 취했다. 

 

2.

여기서 배우는 것 참 무섭다. 영화에서 나오는 거, 그런 게 진짜로 있는 거였고나. 자대 배치 받고 나서 10미터 시멘트 벽 창문도 없는 벙커 안에서 뭔 또 희한한 '정보'를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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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서울.

몇 시에 집에 들어왔는지,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켜져 있었고 모든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정말로 끝난 게 맞는가. 하룻밤 꿈처럼 아득하고 희미하기만 하다.

앞으로 정확히 3년의 시간이 남아 있긴 하지만 15주만 하랴.

 

만난 친구들은 다들 하나씩 마음에 꿈을 품고 있었다.

'합쇼체'로 말문이 막혀버린 군바리인지라 나는 내가 꿈이 있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 정말 말문이 꽉 막혀버린 것 같다. 부대 안으로 갖고 들어갈 몇 권의 책이 도움이 될까.

 

온갖 간첩질과 곱창질을 담당하게 된다는 정보 장교의 삶은 얼마나 팍팍하려나.

어떤 상황에서도 비밀을 토해놓지 않도록 5주간의 혹독한 생존훈련이 펼쳐진다니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그나저나 정보 특기가 블로깅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곳(!)' 을 써도 괜찮은 건가.

웬만하면 대전 아래로 배속지를 받았으면 좋겠고 엄하게 오산 같은 데 떨어져서

국정원 출입하는 일은 피했으면 좋겠다.

 

이제 슬슬 대전 내려갈 준비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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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 포스트

'제대' 포스트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쨌던 돌아왔다!

 

앞으로 3년동안 "대한민국 장교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헌법과 법규를 준수하며 부여된 직책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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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박 포스트 3

소위되기 참 힘들다.

훈련병, 사병들 걸을 때 뛰고 뛸 때는 기어가는 이 생활, 끝이 올까 싶었지만 벌써 8주가 지났다. 아까 저녁을 먹으면서 훈련받은 얘기를 부모님께 말씀드리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생각해보면 사실 이 눈물은 고생한 게 억울하거나 당시의 고통이 생각나 나온 게 아니었다.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소외감 때문이었고 돌연히 바뀌어버린 내 처지에 억울하고 불쌍하고 짜증나는 여러가지 심정이 뒤섞여버린 탓이었다.

 

직접 마주대하고도 사라지지 않았던 답답함은 한동안 나를 옥죌 것이다. 오히려 완전히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답답함만 더해졌다. 감정은 애초에 비언어의 영역에 있는바, 말이나 글로 감정의 실체를 보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잊겠다" 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잊어야할 대상의 한계는 연기처럼 불투명할 뿐이다. 그렇다면 답답함을 없애겠다고 자꾸 내 안으로 파고들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려는 것은 내 기준에서 새로운 판타지만 계속 만들어낼 것 같다. 이래서 편지를 쓴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답답함을 없애려 편지를 보내지만 글을 쓰는 내내 혹은 글쓰기를 마치고 편지 봉투를 풀로 봉하는 순간부터 답답함은 더 더해져버린다. 나도 나를 잘 설명하기 힘들고 상대방도 자신을 명확히 묘사하기 힘든 이 난관에서 의사소통은 가능한 것일까.

 

선택은 두 가지. '체념'과 '끝까지 알아내는 것'이다. 체념한다면 연기는 바람을 따라 조금씩 사라져갈 것이며 답답함의 정체는 영원한 미결로 남아 하나의 단편적인 추억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꿈만 같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절실함이 달랑 사진 하나, 편지 몇 개로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건 현재로서는 너무나 아쉽고 슬픈 일이지만 답답함은 분명 사라질 것이다. '끝까지 알아내는 것'은 하나의 선택항으로서 가능할 뿐 실제로 이루어지긴 힘들 거다. 나도 나를, 상대도 상대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서 뭔가 알아낸다는 건 힘든 일이다. 정말로 노력한다 하더라도 근사치를 짚어내거나 아니면 아예 먼 소설을 하나 뚝딱 만들지도 모른다.

 

체념해버리자니, 켜켜이 쌓였던 기억과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조금만 뭔가를 더 하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흩어져버린 연기를 다시 예전의 연기로 돌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 이러면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미워하게 되는 거지. 이런 건 이제 알만큼 나이도 들었고 경험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내 인생 가장 중요한 3년이 될지 모르고 가장 중요한 8주가 될지도 모른다. 이 때의 경험과 감정, 생각은 나를 바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 상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디고 이겨야겠다. 하나하나 나의 눈과 발을 넓혀주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직접 정면으로 대하고 절대 피하지 않겠다. 23살, 클 때가 됐고 반드시 크고 말 것이다. 겁먹지 말고 숨지 말고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자.

 

힘내자 세안아. 짧디 짧았던 2박 3일의 특박, 참 뜻깊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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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박 포스트 2

특박 나와서 읽은 책 두 권 中,

     

 

1/  "도대체의 다락방", 도대체, 시공사

     집에 돌아와 얼마전 구입한 오디오에 몽크의 시디를 넣은 후,

     수많은 책 중에서 곧장 눈에 들어온 두 권의 책.

     술 냄새가 한시도 혀끝에서 떠나지 않았던 19살때 방바닥을 혼자 괴롭게 뒹굴며 읽었던 "다락방".

     "너"가 보이데.

 

무사고

-오늘은 무사고 32일째입니다-

공사장 한 켠에 세워진 무사고 기록판을 보며

33일전 사고가 난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하다

 

갑자기 내 이마 한복판에

無思考 몇 일째, 기록판을 붙이고 싶데.

 

자취

나는 내 안으로 자꾸만 꼭꼭 숨고 기어들어가고

너는 어디에도 없고 그러나 너는 어디에나 여러 모습으로 남고.

 

 

2/ 화, 탓닉한, 명진출판

 

편지를 쓰는 데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베트남 불교의 역사에 관한 나의 세 번째 책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미국인 교수가 탓닉한이라는 사람에 관한 책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 편지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편지를 쓰는 데 들인 시간은 박사 논문을 쓰는 데 투자한 몇 년의 세월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다. 박사 논문은 그 편지만큼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편지를 쓰는 것은 난관을 뚫고 대화의 길을 다시 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앉아 있거나 걷거나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 편지와 관련된다. 책상에 앉아서 편지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우리의 감정을 종이에 옮겨 적는 데 걸리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편지를 쓰는 순간은 그때만이 아니다. 밭에서 채소에 물을 주고, 걸으면서 명상을 하고,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 우리는 이미 그 편지를 쓴다. 그러한 활동은 모두가 우리를 더욱더 견고하고 평화롭게 해준다. 그럴 때 발생하는 자각과 집중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이해와 연민의 씨앗에 물을 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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