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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찾아 2]Kyaw와 Soe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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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0-23 22:44:55, Hit : 575, Vote :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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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을 찾아 2]Kyaw와 Soe의 이야기
햇살을 찾아 2

우린 Kyaw와 그 가족을 9달 동안 알고 지냈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니 기쁜 동시에 헤어짐이 슬펐다. Kyaw의 타이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잘 알기에 그리고 그가 얼마나 버마의 Mon주에 있는 고향의 푸른 하늘과 푸른 들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지를 잘 아는 우리는 기뻤다. 또한 슬프기도 했다. 우리가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은 버마의 Mon주에서의 생활이 타이에서보다 결코 쉽지 않으며, 더 억압적이고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Kyaw와 Soe를 처음 만난것은 1997년 9월 초, 방콕의 Hua Mark 경기장 건설지에서였다. 이 경기장은 98년 아시안 게임을 위해 건설되고 있는 많은 경기장 중의 하나였다. 그 당시에, 건설업주가 임금을 2달이 넘도록 지불하지 않고 있었고, 임금 주겠다는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좀 더 기다리라고 가끔씩 2백 바트에서 5백 바트(약 6천원-1만5천원)가 주어졌다. 일부 노동자들은 새 일자리를 구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버마,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온 불법 이주자여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굶주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선 기관에서 제공한 쌀과 조리용 기름만으로 버텨야 했다.

나는 물었다. “Kyaw, 정확히 받을 돈이 얼마예요?”

“모르겠어요. 그들이 먼저 일부터 하라고 했어요.” Kyaw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타이 농촌 사람들의 그것처럼 정직했다.

“이 일 하기 전에 다른 직업들은 어땠나요? 임금을 얼마나 받았어요?”

“역시 모르겠어요.” Soe는 순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타이에 도착한 뒤로 임금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Kyaw와 Soe는 같은 지역출신이지만 마을은 달랐다. 둘은 운명적으로 11명의 무리에 섞이게 됐다. 둘은 타이에서 추방된 난민들을 위한 저임금 노동시장인 Halokani(Mon주 바로 안에 있는)에서 만났다. Kytaw의 가족 셋, Soe, 그리고 Soe의 누이의 가족 7명이 한 무리가 되어 타이의 칸차나부리 지역에서 직업을 구해준다는 조건으로 같은 브로커에게 4천5백바트를 지불하는데 동의했다. 그때, 이후로 이들 11명은 서로 헤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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