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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유쾌한 성적 욕망을 허하라!

 당신의 유쾌한 성적 욕망을 허하라!

[#1] 나의 첫번째 버자이너 모놀로그...아빠 면도기로 보지털 밀다!

중학교 1학년 때인 것 같다. 집에서 샤워를 하다 처음으로 나의 귀엽고 아물딱진 보지에 몇 가닥의 털이 난 것을 발견했다. 오호 통재라! 어릴 때부터 엄마로부터 보지에 대한 특별관리를 주문받고 자란 나로서는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든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의 보지는 늘 보들보들한 맨살로 늘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데 불경스럽게 생긴 그 털들이 한순간에 나를 순결치 못한 아이로 낙인찍힌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야한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자란다더니, 이게 머리카락이 아니라 음모였던가? 나의 머리 속은 공상에 또 망상들로 꽉 차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며칠을 고민했던 나에게 눈에 띄었던 것은 아빠의 면도기!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나는 비누거품을 곱게 보지털에 바르고 면도기로 그 털들을 모조리 밀었었다. 다시 만난 하얀 살들을 거울속으로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내쉬었던 안도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속엔 제대로 밀리지 않은(?) 억센 털들로 인해 따가워 걷기조차 불편했던 경험들도 함께 차지 하고 있다. 


[#2] 나의 두번째 버자이너 모놀로그...방바닥이 선물한 삶의 기쁨!!

나는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하는 것을 좋아했다. 부모님은 공부하는 습관을 일찍부터 들여야 한다면서, 내 체구에도 맞지 않는 큰 책상을 사주셨지만, 그 책상은 늘 옷가지와 정리되지 않는 책들을 쌓아놓는 보관소이외의 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방바닥에 엎드려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하고 있었다. 순간 떨어져있는 책가방을 잡아끌다가 나의 보지와 장판사이에 작은 마찰이 일어났다. 거 기분이 괜찮더라!! ㅋㅋㅋ (그 기분까지 적기는 좀 그러네?? 그 기쁨은 나만의 것!!) 옛 속담에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이미 빠져버린 삶의 기쁨을 그 누군들 포기하랴? 그리하여 그 이후에도 나는 자주 나의 보지와 장판을 만나게 해주었다. 나는 아직도 책상보다는 방바닥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자위’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스무살이 넘은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끊임없는 실천 활동 이후에 이론정립이랄까? 뭐 대충 그렇다. 


[#3] 그리고 그 이후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나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내가 먹은 밥그릇 수만큼 계속되었다.

한참 ‘구성애의 아우성‘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쓸고 있을 때 동네 슈퍼의 고급 크리넥스 티슈가 동이 났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센스있는 엄마라면, 아들의 자위를 위해 올록볼록 엠보싱 화장지보다 고급 크리넥스 티슈로 바꿔주라고 구성애가 이야기 했다고 하면서....쳇! 남성들의 자위가 당당히 인정된 다음 내 또래 남자아이들이 보드라운 크리넥스 티슈로 자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음지에서 다양한 자위도구들을 찾아나서는 모험을 해야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자위는 금기였으니까. 그때 구성애가 청소녀들의 자위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라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지만 이런 여성의 반자위적 사회에서도 워낙 호기심과 성욕이 강한 탓에 나의 성적 욕망에 대한 탐구와 실천은 그이후로도 쭈욱 계속되었다. 진정으로 나의 버자이너가 욕망하는 것이 뭔지를 알기 위한 나와 보지와의 대화들은 때론 노무현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처럼 살벌하기도, 가시오가피 꿀차처럼 달콤하기도 하였다. 가끔은 버자이너의 염증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쯧쯧..여튼 이제는 오랜 소통의 시간으로 척하면 착하는 사이가 되어 유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4] 그녀들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 기쁘고 화나고 슬프게 만들었던 보지 이야기들 - [9‘s Story 두 번째 Party - 女 인 本 SEX]

지난 2006년 12월 29일 - 30일 용인 학일리 예술공간 움에서는 특별한 파티가 열렸다.

이름하여 9‘s Story 두 번째 Party - 女 인 本 SEX!! 이미 올해로 두 번째 맞는 9‘s Story 파티는 아홉 살, 열아홉살, 스물아홉, 서른아홉, 마흔아홉 그 너머 너머까지 씩씩하게, 재미나게 잘살고 싶은 여자들이 좋은 기운을 주고 받자는 생각에서 준비된 파티였다. 특히 올해는 금기가 되버린 여자들의 “sex"에 대한 이야기를 적나나(~)하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30대 초반의 나름(!) 풍부한 경험의 또래 친구들이 뭉쳐주셨다. 몇 번의 술자리와 좌담은 섹스를 중심으로 우리를 단결투쟁하게 만든 중요한 자리가 되어주었고, 섹스이야기 하다가 밤새는 줄 모르고 아침까지 먹고 헤어지기를 몇 번! 초등학생부터 완경기에 접어든 쉰살이 넘은 여자들 서른명이 전세버스 대절해서, 용인의 예술공간 ‘움’에 모였다.


드레스 코드가 파자마인 관계로 우린 초면에 모두 파자마 차림으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이 파티의 공식 인사는 “SE~~X!!” 걸쭉하게 발음해 인사할수록 참가자들 사이의 간격은 좁아져만 갔다. 모인 사람들의 연령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SEX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여성과 남성의 구분없이 즐겁고 유쾌한 성을 위해 만들어진 바디퍼즐들을 연결해 자신이 욕망하는 섹스 체위를 퍼즐로 만들어보는 창파의 “해피퍼즐”은 단연 인기 “쵝오”였다. 자신의 온 상상력을 동원해 완성된 유쾌 상쾌 통쾌 섹스퍼즐들은 우리가 파티를 여는 내내 우리와 함께 하였다. 자연스레 해피퍼즐이 매개가 되서 자신이 왜 그런 퍼즐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각자의 해설이 이어졌고, 섹스에 대한 우리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첫 자위의 경험 - 성폭력의 경험 - 자신의 오르가즘 - 자신의 섹스경험 - 성적 환타지 - 섹스에 대한  고민까지! 마치 방송프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처럼 서로의 생각에 댓글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져갔다. 어릴 적 성추행의 경험이 지금까지 어떻게 자신에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이야기 해준 한 시스터의 말은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아픔이 우리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치유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기 이전에 드러내야 할 아픔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5] 당신의 유쾌한 성적 욕망을 허하라~

다시 2007년 2월이다. 2006년은 나에게 참 힘든 한해였다. 3-4년간 동고동락했던 나의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단체를 고민하고 있던 차에 그 영혼의 친구들 중 한 남성활동가가 여러 여성들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가한 사실을 피해자들의 진술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친구들은 우리의 비젼을 담은 단체 대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위 구성을 먼저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의 친구에서 가해자로의 중심이동은 나에게 커다란 상처였고, 많은 혼란이었다. 6개월간의 대책위 활동을 갈음하며 마련된 토론회에서 함께 활동한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결국 여성주체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가해자 선수들을 잘 판단 할 줄 알고, 도장에도 나가 태권도도 배우고, 또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아주 잘 이해하고 그것에 솔직해 지자라고 말이다. 나의 보지털 사건, 최초의 자위의 경험과 다양한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어수선하게 늘어놓았던 것은 어쩌면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닌가 싶다. 여성의 성적 욕망이 왜곡되고 여성의 성적 욕망이 금기시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올바른 성문화는 당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왜곡된 성문화가 성폭력과 직결되어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자~ 당신의 유쾌한 버자이너를 위해! 당신의 유쾌한 성적 욕망을 허하라!!!

 

 

[한국성폭력상담소 기고글 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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