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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잉여 에너지 시대와 문화

잉여 에너지 시대와 문화

강준혁(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원장)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대가 있었다. 식량이 넉넉치 못해 매해 이맘때쯤이면 보릿고개를 겪었고, 전기가 부족하여 정전도 자주 있었다. 남자들은 하루 종일 밖에 나가 고된 일을 해도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가 쉽지 않았으며 여자들은 하루 종일 집안을 쓸고 닦고 또 끼니를 준비하느라 시간에 쫓기기만 했었다. 한 마디로 모든 에너지가 부족했던 시기이며 5, 60년대의 어린 시절이기도 하다.

불과 50년 만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제는 모든 에너지가 넘쳐서 큰일이고 사고를 낸다. 넘치는 에너지는 때때로 그 사회를 더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 에너지를 잘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말이다. 흔한 비유처럼 어린 아이에게 무기를 들려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는 얘기이다. 한밤중에 도로를 역주행하며 스릴을 만끽하는 폭주족이 그렇고 일 안 나간다고 꾸짖는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해대는 젊은이가 그러한 경우이다. 냉장고, 세탁기, 전공청소기, 전자레인지 덕분에 가사일에 빼앗기는 시간이 줄어들어 그 시간을 어쩔 줄 몰라 하며 방황하는 젊은 주부들이 또한 그러하다.

야생동물들은 필요 없을 만큼의 많은 에너지를 섭취하지도 않지만,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느끼면 느긋해지고 쉬기를 좋아하지 그 에너지를 사용하려고 남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 있어서 현대인들, 특히 문화적이지 못한 현대인들은 금수만도 못하다. 잉여에너지의 처리방법을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국가정책의 근본이다. 잉여에너지가 그 사회를 파괴하지 않고 건전하게 쓰이게 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서 더욱 창조적인 활동에 쓰이게 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넘쳐나는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위해 온갖 향락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본 쓰레기 문화에 젖어 든 젊은이들의 행위를 제지시킬 어떠한 장치도 이 사회는 지니지 못하고 있어서 서구의 천박한 하류문화는 급속히 그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스포츠문화와 여행문화가 중산층들에게 인기가 높아서 잉여에너지의 공격화를 다소 막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로 되겠는가? 단군 이래 이렇게 잉여에너지가 충분한 적이 없었는데 그 에너지를 이용해 세계 제1의 국가로 발전시켜야 되지 않겠는가? 잉여에너지가 그 사회의 미래를 위해 쓰일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문화적인 힘>을 키우는데 투여되는 길이다. 그래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더욱 창조적인 인간이 되고 따라서 그 사회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인 힘>이야말로 남을 공격하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나와 남에게 창의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님의 말씀대로 문화는 남과 나를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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