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사회-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작업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모든 이견을 경청해야 하며, 그것의 타당성을 심사숙고해 보고 그것에 대한 윌의 견해를 표명해야 한다. 또 우리는 혁명적 망상에 빠지거나 '그 자체로만' 옳은 것을 현실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배고픔에 대한 투쟁이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것인가는 배고픔을 없애려는 벌박한 의지가 아니라, 배고픔 제거에 필요한 객관적인 전제조건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물질적 이해와 마찬가지로, 모든 아라 대중들의 성적관심과 성적고통이 그 고통을 조건 짓는 사회 체제에 반대하는 사회적 행위로 바뀔수 있는가에 [ 그 고통의 제거 여부가 ] 달려 있다. "( 파시즘의 대중심리 p291 빌헬름 라이히)

 

본인 견해가 망상에 빠져 있는지는 아지고 이해를 못하고 본인이 제시한 글에 대한 부분을 이해를 못하는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글을 읽으면서 질문에 대한 것중 첫번째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글에서 나오는것인지 알수가 없다. 본인은 " 첫번째 질문 . 당건투에서 제시하고 있는, 예전의 코민테른에서 제기가 되었던 것이지만 노동자국가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를 제시를 했고 그에 대한 답변은 이행기라는 말로서 만병통치약으로 둔갑되었다. 이행기를 제시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것인가? 이행기를 제시하면서 제시하고 잇는 민중권력에 대한 부문은 예전에 나타났던 PDR론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제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민중이라는 개념은 노동자- 농민독재의 개념으로 파악해야 하는지 아니면 민중그 자체로서 바라 봐야하는지 어떠한 개념으로 올려 봐야 하는지 알수가 없다. 80년대의 ND, PD에서 제시 하고 있었던 강령의 모습하고 다른점을 찾기가 힘든다. 오히려 그내용을 더욱 강화가고 구체화 시켜나간 모양이다. 80년대를 운동권의 핵심내용은 민중권력이며, 민중민주주의 실현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혹시 모른다면 그 당시의 책자들을 찾아 보아라.

 

이행기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사회로의 과정을 의미하며, 이과정에서 민중권력의 모습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권력을 가지고 사회 발전을 어떠한 힘으로 만들어 나가는것인가에 대한 해명이다. 동지들의 견해는 그러한 기본이 빠져 있다.

 

"   민중의 헌법 개정 및 법률안 제안권을 보장한다. 민중발의의 논리적, 역사적 전제는 민중투표이다. 의원입법 혹은 정부입법안은 민중발의에 의한 민중투표를 거쳐 폐기된다. 민중의 근본적 이익을 침해하는 법률안이나 조약, 협정은 민중발의에 의한 민중투표로 철회된다. ```` 노동자 평의회, 농민 평의회, 학생 평의회 등의 창설과 운영을 지원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영역에서 민중의 자기통치 능력을 향상시킨다. "(연대 사회의 정치 경제)

 

노동계급의 권력은 형성된것이 아니라 민중권력에서 노동자의 권력이 이루어지록 지원하는 개념이며, 이러한 개념은 이행기라는 말속에서 부르조아혁명을 통한 민중권력쟁취, 그리고 자유로운 정치경제제도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위한 터전을 만들어 감을 의미한다. 이 내용이 동지들이 제시하는 이행기이다. 이단계를 통한 그러나 그 것은 자연스럽게 폭력적이지 않으면서 권력을 이전이 될수있는 사회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이단계 혁명론의 탄생이며, 80년대를 풍미했던 혁명론의 재등장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혁명을 원한다. 혁명에서 어느 계급이 권력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혁명은 새로운 사회로의 도약이냐 아니면 또 다른 퇴보인가로 나탄난다.  사회주의 혁명에서 완수 해야 하는것은 모든 억압을 철폐하는 것이다. 부르조아사회의 권위에 대한 부분을 새로운 사회의 지도층에서의 발전되는 모습의 권위로 나타나야 한다.

 

민중이 권력을 잡느야, 아니면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고 있느냐는 아주 미세하여 무시할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혁명을 수행행 야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는  핵심적인 내용인 것이다. 추성적이고 모호한 개념으로서 민중, 쁘띠부르조아를 포함한 민중의 개념은 노동계급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들며, 투쟁의 성과를 부르조아에게 헌납할 수 밖에 만든다. 통일전선에서 이미  쁘띠 부르조아와의 연대를 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계급적인 모습을 감추고 대주에게 함께하고자 외치는 대동단결론으로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신념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으며, 이 방법은 어떠한 경에라도 노동계급의 발전될 소지가 없다. 두번째로는 계급적인 모습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모습으로서 의 연대 방법이 존재하지만, 두번째 방법은 쁘띠부르조아가 지배계급의 억압에 저항하고자 노동계급에게 도움을 어쩔수 없이 요청을 할 때 일시적으로 가능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이하고 주장하면서 언제라도 배반의 칼을 꺼낼수 있는 계급인 이해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적인 연대는 불가능 하다. 노동계급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그룹을 자신의 연대 세력으로 만들어 갈 수잇으며 그들은 부르조아가 매수가 가능하지만 그래도하나의 가슴으로 안아야하는 도시빈민,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농촡 프롤레타리아트, 농촌의 소농이 가능하다.

 

민중권력은 이미 폐기 처분된 내용을 가진다. 그러나 새롭게 부활시킨 연대사회론은 사회주의 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또 다른 쁘띠부르조아의 조급증에 시달린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대중운동의 부진은 혁명적 그룸들의 활동이 미비한데서 오는 것이다. 그것을 대중과의 결합이란 지상과제를 추상화 시키면서 까지 발전 시키고자 한다는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길이다. 비판을 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기본을 제시하는 글이기를 빈다. 첫번째 질문의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한 - 이미 강령이라고 제시하고 나온 마당에 어떠한 내용이 더 추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밥에 그 반찬이다.- 동지들은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것보단 쁘띠부르조아의 뒤꽁무니를 쫒아 다니는 시대의 낙오자 인 것이다.   그것이 두번째질문인 이중권력이라고 제시하는 부분을 설명해 줄수잇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품가치가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에서 사용가치의 비중이 더 커진다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질 되었는가는 다음번에 기회가 있을 경우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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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9 20:38 2007/11/09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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