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사회의 답변을 본 받아서

먼저 이제서야 글을 올린것에 대하여 반성을 한다. 배고픈설움에 직면하다보니 먹고살기위해서 어쩔수없는 노동을 하다보니 글에 대한 답변을 제때에 못한것을 깊은반성을 한다. 동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먼 전태일연구소, 즉 연대사회를 꿈꾸는 자들에겐 무엇인 문제인지 슷로가 인식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사고의 방식이다. 지금도 자세히 읽어 볼겨를도 없지만 반박을 하기 위해서 하나씩 글의 내용을 분석해 보도록 하자.

1."오세철의 차베스 비판에 동조하는지 여부를 밝혀달라는 것! 싫으면 말고"( 색안경을 낀 '색'씨에게중에서) 차베스정권에 대한 것은 에전부터 분명하게 밝혀 왔다. 본인은 차베스정권을 쁘띠부르조아권력이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동자본가계급과의 갈등을 피지배계급의 힘을 빌려, 피지배계급에게 일정한정도의 물적인 양보를 시행하며 몰리바르의 환상을 이용하여 남미의 경제협력이라는 틀을 통한 지역패권주의로 나가는 집단이라는점으로 제시했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토대를 확대하기 위해서 모든 계급과 계층에 모든것을 들어준다라는것을 법 또는 헌법이라는 틀을제시하지만 그 내용의 진정한 의미는 권력의 집착일 뿐이다.

2. 본인은 당건투에서 활동하지도 않고 당건투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노동해방실천연대(이하 해방연대)에서 회원으로서 가입을하지만 사정상 조직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활동을 하고있다.

3."엔엘피디알이 민중권력론이라는 단언도 새삼 살펴야 했다. 연대사회론은 엔엘피디알 이론과 한 통속이라고 색씨가 자꾸 늠름하게 단언을 하니, 좀 답답해졌다." (색안경을 낀 '색'씨에게중에서) 본인이 언제 엔엘피디알을 제시햇는지 다시 글을 살펴봐도 없다. 본인은 분명하게 엔디알론과 피디알론의 개념을 가지고 있느냐라고 했고 그 것에 대한 답변은 안 나왓다는 점이다. 즉 연대사회를 주장하는 사람은 어떠한 생각조차도 없이, 남의 글에 대한 평가를 할때 글을 자기가 원하는 부분을 왜곡해서 읽는다는점이다. 왜그러한지는 본인이 알겠지만 개념인 이론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처지에서 어떠한 실천을 담보할려고 하는지 그 밑천이 의심스럽다.

2단계혁명론은 민중이 권력을 잡아서 사회주의 사회로가기위한 설정이었다. 이것이 이행기적관점과 한반도의 경제적관점을 어떻게 볼것인가에 대한 문제 등등의 상황에서 제시되었던 문제점들이었고, 특히 부르조아혁명을 통한 민중권력을 쟁취하자라고 제시한것은 엔디알론이며, 바로 당신이 제시하고 있는 "연대사회의 정치경제"를 보면 제시하고있는 그 모습이 바로 민중권력인 것이다. 개념이 중요한것은 개념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가장 명료하게 전달되기때문이며, 그 개념이 거꾸로 설땐 망상증에 한발더 다가서는 몽상가라고 표현 할  수 있다. 이미 강령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이 그러한것이며, 80년대에 제시되었으며, 그내용을 한 차원 더 확대 한것 그 의미도 없다는 점을 제시 한다. 민중권력은 민중이 권력을 잡는것을 의미하고 노동자정부는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당이 권력을 잡는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쁘디부르조아정당인 민주노동당이라고 할지라도 현실에선 형식적으로나마 남한의 현실상 노동계급을 대표하고 있는 합법적인 정당이기때문이다. 민중권력은 프롤레타리아트독재는 아니다. 노동자정부도 프롤레타리아트독재가 아닐경우가 많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모호하면서 비계급적인 민중이라는 단어는 이미 그 안의 계급연대를 포함한 두리뭉실한 내용이기때문에 과학을 담보하는 자들에게는 무책임적인 발언이다.

4." 다음은 민중권력 // 강령을 토론할 때 ‘민중권력이 우리의 화두’라는 식의 토론을 벌인 적이 없는데, 난데없이 ‘민중권력’이 연대사회론의 키 워드라니??
정치강령에는 그 낱말이 어디 ‘중간 제목’으로 들어간 바도 없고, 다만 내용 서술의 한 대목에
“국가 소멸은 장구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창설되어 날로 강화되고 아래로부터 통합을 이뤄나가는 민중 권력과 기존 국가는 병존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민중 권력 강화와 국가기구의 혁명적 개조 과정에서 다양한 민중 부문에 대한 혁명적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자, 대관절 무엇을 딴죽 걸고 트집 잡고 싶어 할까?"(색안경을 낀 '색'씨에게중에서) 무엇을 딴죽을 걸을 까? 궁금한 모양인데 . 그러면 당신이 제시한 강령을 읽어보아라. 권력을 누가 장악한것인가? 민중, 풀어서 이야기를 하면 인미대중이 국가 행정기관 및 사법 입법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어떠한 사회인가? " 4) 민중권력기구 구성원을 국가기구에 참여시킴으로써, 국가기구의 자립화를 방지하고, 민중의 자기통치 능력을 제고 "(연대 사회의 정치 경제중에서)하는 사회는 국가소멸로 가는 사회인가? 스스로 조차도 정리가 안되어 있는 단어들의 무차별적인 사용은 토론을 하자는것이 아니라  딴죽만을 걸기 위한, 진정한 혁명가인 것이다. 어떠한 사고 방식조차도 용납이 안되는 무정형적인 아나키스트보다도 더 다혈질인 당신에게 무엇을 할 수잇겠는가!

"인민 권력’ 또는 ‘콤뮨 권력’이라 표현할 말을 (아직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충분히 가시지 못한 이 사회에서) 일종의 ‘노예 언어’로서 ‘민중권력’이라 이름 붙인 것을 무슨 ‘계급 연합’의 문제로 착각해 버렸다." 민중은 어떠한 내용을 포함하느지도 모르고 그렇게 주장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하여 드릴까요? 민중의 내용이 추상적이라고 모호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점자본주의시대에서의 지배권력을 제외한 일반대중을 민중이라고 제시하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을 제외한 개념은 무척포괄적이며, 그 내용에는 지배계급의 힘에 힘은 있으나 그힘을 제대로 과시하지 못하는 계급이 존재한다. 중간자적인 존재 그들이 쁘디부르조아이며 일반적으로 중소자본가, 중소상공인, 농민를 포함하기 때문이며, 엔디알론의 페기가 민중권력이라는 의미, 당신이 그대로 제현한 내용 그대로, 그 강령의 모습을 가지고 대중운동을 시작 했던것이다.  그것의 이름이 이단계혁명론이라는 것이다.  본인은 처음엔 다른내용이라고 판단이되어졌으며, 그렇기때문에 사회주의운동의 참신한 새로운 영역의 시작인가를 의심하면서 고민하면서 읽어보았다. 그런던 와중에 그 글을 제시하며, 노동자국가와의 상관관게를 어떻게 보냐라고 물어 봤지만 생뚱맞게 이렇게 답을 한다. 무슨 글인지 이해를 못하지만 그대로 복사를 한다. 해석을 부탁한다.

"곁두리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나는 이따금 ‘좌파’와 의견을 주고받을 때 갑갑한 느낌을 받곤 했다. 일전에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우리쪽에서 거론한 적 있었는데 어느 친구 왈 “그 개념, 킴 무디 거에요? 누구 거에요?” 아니, 우리가 사회운동을 하자고 앉아 있지, 대학 강의실에서 시험 보자고 앉아 있나? 책상물림 좌파의 고질적 버릇이 ‘어느 학자의 개념이냐 따지기(=지적 재산권 다툼??)’ 아닌가. 물어보려거든 “당신들은 노조가 사회운동을 나가자면서 <그런> 점을 강조하는데 <이런> 점이 강조돼야 하는 거 아뉴?” 하거나
아니면 “사회운동, 하릴 없소. 경제투쟁이나 잘 합시다” 하는 식으로 들이대야 토론이 생산적으로 되지, 킴 무디 것이면 워떠코 조지 부시 것이면 워떠탄 말인감?
무슨 토론을 ‘개념 따지기’로 환원해 버리는 것에 대해 진저리를 내는 사람에게 개념 몇 개 들이대고 ‘아나 콩콩’하는 글을 색씨가 제출하였으니
내 입에서 고운 이야기가 나가기를 바랄 수는 없지 않은가.
‘개념’들을 희롱하여 색씨는 ‘운동, 잘 했다’는 보람을 얻을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개념’에 대해서 말해보라는 식의 공방전은 내게는 정말 재미없는 일이다. 하도 성화를 부리니까 억지로 대꾸할 뿐이다. "(색안경을 낀 '색'씨에게중에서)

5. 본인을 색안경이라고 부른던지 색씨라고 부르던지 관계는 없다. 본인의 본질은 변함이 없으니, 당신들이 연대사회를 주장하던지. 이행기라고 주장을 하던지 그것에 대한 의미는 변함이 없다. 엔엘피디알의 주창자들이 아직도 남아서 사회운동진영의 암으로써 자리를 잡아가듯이 당신들의 주장이 새롭게 각색되어 나온 민중권력의 주창자라면, 재방이 되어나오는 새로운 병원균으로써 자리를 잡아갈것이기 때문이다."옛날 코민테른의 개념과 맞느니, 안 맞느니 떠드는 것을 생산적인 논의로 착각하지 말자. 지금의 21세기 조건에서 ‘세계 전체’의 차원에서 어떻게 변혁 운동의 흐름들이 일어나고 집결해야 하는지, 하는 현실적인 실천 방도를 놓고서 토론하"(색안경을 낀 '색'씨에게중에서)자면서 이미 폐기처분되어 있는 이론을 다시 끄집어 낸 연대사회를 제시하는 전태일연구소에게서 무엇을 바라보겠는가? 선진적으로 운동을 하고자 한다면 예전의 운동관점에 대해서도 공부를하기 바란다. 역사는 두번반복이 된다. 한번은 희극으로 또한번은 비극으로라는 섹스피어의 글에서 처럼 역사적인 사실에서 무엇을 배울것인가를 파악할때만이 현실에  또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생은 연극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된 이론 덕분에 강철서신이라는 스스로가 혁명적이라고 주장하는 글이 초등학교 윤리교과서로 채택이 되도 무방한 내용으로 나타나며, 식민지반봉건사회(또는 반자본주의)의 틀에서 헤매며 아직도 민족자본가에겐 충성을, 미제에겐 총칼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것처럼 제시된 개념의 뜻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그것이 아니다라고 주장을 하면 무슨 토론이 되는가!

국가가 소멸되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계급이 없어져야하고, 전 세계적인 혁명이 연속적 또는 동시적으로 일어나야만이 가능한다. 일국 사회주의는 이미 잘못된 이론이며, 혁명을 하자는 것보단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유지하기위한 방책이었음은 역사의 흐름속에서 밝혀 졌다.  물론 그 이전에 스탈린체제에서 부터의 비판은 무수하게 나왔지만은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은 한곳에 남겨둔 비판이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흘러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한 그 고생은 3대에 걸쳐 하게 마련이다.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학습을 하고, 실천을 하며, 고민을 해야 한다. 대중은 존재하지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속에서 매몰되어 있다. 사회주의로 가는길에는 세가지의 혁명의 길이 존재한다. 정치혁명, 사회혁명, 그리고 문화혁명이다. 그 중에서 시작은 정치혁명에서 부터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나머지 혁명을 완수하지 못한다. 그래서 노동자국가의개념,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개념이 무슨 의미인지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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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9 20:48 2007/11/1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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