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사회를  주장하는 동지들의 견해를보면 참으로 참신하다. 혹자는 7년전에 이미 제기되었던 이론이라고 하지만 주장하는 동지들의 상상을 보면 언제나 즐겁게 느껴진다. 어느 사회이던지 하나의 경제공동체가 다른 경제적관계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늘 이행기가 존속했으며, 때로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대로는 애교스로운 모습으로 변화하여 왔음을 볼수 있다. 계급사회에서 새로운 계급사회로의 진화는 대부분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얼굴의 마담을 인정하고 서로들 새로운 유행의 대열에 참여하고자 바꾸는 노력을 기울려 왔다. 자본주의사회는 인류가 존속하고 있는 상태의 마지막 계급사회이기에 무계급사회로의 진화를 꿈꾸는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가보지 못한 곳의 열망으로 현실에 대한 부정을 어떻게던지 실현 하고자 하는것을 보면  사회주의로의 발전은 아직도 희망을 간직한다라고 생각한다.

연대사회의 기본정의를 보면 이행기의 사회라고 주장을 한다.

"연대사회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 상태의 사회이다. 연대사회는 노동자계급이 정치권력을 잡고 있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원리가 지배적이면서 사회주의 원리와 경합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사회라 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 원리와 사회주의 원리가 원리적 차원에서 병존하면서 경합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연대사회는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도 있고 자본주의로 퇴행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모두 가진 과도기적 사회이다."(왜 '이행'을 말하는가? 중에서)

동지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해보고자 한다.

첫번째 질문 . 당건투에서 제시하고 있는, 예전의 코민테른에서 제기가 되었던 것이지만 노동자국가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번째 질문. "연대사회는 정치․경제 차원 모두에서 자본과 노동자의 결정이 이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중권력 상태에 있다"(왜 '이행'을 말하는가? 중에서) 에서 이중권력은 무엇을 표현하는가? 부르조아 권력과 노동자계급권력에서의 서로의 공방전이 전개된다는 의미인가? 1917년의 러시아 상황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동지들의 글에서 제시한것 처럼 국가권력은 노동계급이 쥐고 있고 경제적 물리력적인 힘은 부르조아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중권력의 의미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그것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를 부탁한다.

세번째 질문. 상품의 의미로서의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간의 관계를 설명하는것이 이행기 사회의 특징인가? 자본주의사회와 사회주의사회의 차이는 생산수단의 사적인 전유와 생산의 사회화의 모순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되어야 한다라고 설명된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하나의 상품의 교화가치나 사용가치와는 다른 임노동에 의해서 생산됭 잉여가치의 전유를 누가 결정을 하며 누가 소유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간과한다. 하나의 경제공동체의문제는 모든 생산물, 원재료를 스스로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있기 때문에 교환을 통한 상품의 이동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에 있다. 상품의 폐절을 뜻하는것은 이러한 가치의 폐지를 원학기만 할뿐이며, 진정한 사회주의로의 발전에 따르는  이행기의 권력에 대한 모습과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따르는 잉여가치를 누가 분배를 하고 사용하는지를 밝히지 못하는 한에서  동지들은 기회주의의 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상품의 생산은 교환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자본주의사회의 핵심은 잉여가치의 실현이 없는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통합되지 않으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나란히 사회주의적인 경제형태가 병렬적, 경쟁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이중경제 형태인 것이다.
그러면 이때 사회주의 경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취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기 경제이므로 공산주의적 원리가 적용되지는 못할 것이며, 가치법칙이 일정하게 적용되는 경제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환가치에 비해 사용가치가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적 경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낮은 수준의 사회주의 경제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며 이를 ‘연대경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연대 사회의 정치 경제중에서)

연대경제는 언제나 가치위주로 경제상태을 바라볼것인가? 한국이 사회주의 사회로 변했다라고 해서 석유자원의 필요시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석유라는 상품을 가져 올수  있는가?  시장의 존재 유무를 사회구성체로 표현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교환가치는 상품의 기본특성이며 물질, 또는 원재료의 불균등적인 생산이 계속되어지는 한에서 시장은 존속되어질 것이다. 하나의 경제적인 공동체로서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되는것이 당연하다. 일하고싶을 때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있는 공급이 되어진다면 관계가 없지만.

동지들의 견해를 다시 밝혀주기를 부탁드린다.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가 되고 있는 것은 상상이 아니라 실천속에서 검증을 하고 자 한다면 동지들의 견해를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동계급이 권력을 가졌다면 이미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의 철폐는 시작되어지며, 노동자국가에서의 개념이라면 이중권력은 형성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기 때문에  그 상황을 혁명적인 정세로 지금 단정을 지을 수도 없다. 계급의 폐절은 한순간에 이루어 질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제시하고픈 개념은 동지들의 제시되고 있는 연대사회는 2단계혁명론과의 어떠한 차이점이 존재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점이다. 혁명은 1에서 시작되어 2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연속성을 타고 이루어 진다는점에 있다. 이행기적인 개념을 강조한다는 것은 이미 그 사회를 인정하고 그 사회에서의 안정된 모습을 찾아 내고자 노력한다는 점에 잇다. 다소 모호하게 추상적인 민중이라는 계념의정치 실현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단언한다.  사회주의의 완성은 계급독재의 폐지다. 이행기에는 프롤레타리아트틔 독재를 유지가 되어야 한다. 동지들의 견해는 그러한 부분이 빠져있다 혹시나 해서 강령(?)이라고 제시되어 나온 모습에서 "  노동자 평의회, 농민 평의회, 학생 평의회 등의 창설과 운영을 지원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영역에서 민중의 자기통치 능력을 향상시킨다"(연대 사회의 정치 경제중에서) 를 한문구 삽입함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라고 착각한다.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길에는 여러가지 방식이 존재하겠지만 부르조아지배를 철폐하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낡은 권위를 새로운 권위로 만들어야 하며, 이러한 새로운 권위는 권위주의를 철폐하기위한 선도서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한 권위에 대한 부분을 민중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쁘띠부르조아라고 말하는것과는 다르지 않다. 사회주의를 외치면 언제나 뚜렷한 전망과 밝은 내일의 모습을 보여 주야 하는것이지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부르조아정치인들이나 하는 짓이다. 동지들의 견해는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를 혁명적인 사회주의를 뒷문으로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와의 접목을 통하여 새로운 아류를 만들고자 하는것이다. 그것이 경제주의자들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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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6 09:22 2007/11/0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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