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라는 국면으로 정치조직들이 신경을 쓰고 자신의 역량을 선거라는 형태로 대중의 투쟁을 이끌어 가고자 할 때 노동계급의 선두에 서서 한국노동계급의 조합운동을 이끌어 오던 금속연맹의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에게 금기시 되어오는 정치적인 요구를 내세운다. FTA라는 한미간의 자유무역협정을 반대라는 기치를 들고 나선다. 노동계급의 이익이라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위한 몸부림으로 투쟁의 선두에 서서 지배계급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지배계급을 협박하고 있다. 지배계급은 언론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기 위한 작업을 하면서 노동계급의 전지을 막기 위해서 흥분을 하고 있다. 그동안 피지배계급의 투쟁은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언제나 무시를 당하여 무슨일이 존재했는지 조차 알지 못하게 철저한 페쇄로 일관했던것과는 다르게 모든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지배계급의 발광은 무엇을 뜻하는가? 피지배계급의 정치적인 각성을, 정치적인 투쟁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하다. 경제적인 모습과 정치적인 모습을 각기 틀리게 설정하고 대중의 투쟁을 조직적이고 정치적이지못하게 하면서 투쟁의 방향을 흩어지게 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하는 지배계급에겐 하나의 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법안의 철폐나, 자신들의 생존권의문제인 졍제투젱에선 무시해도 되는 일을 당연시하기에는 너무나도 앞서가는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이윤을 확대하고 더 넓은 대지로 나가기위한 토대를 건설하고자 하지만 자신들 내부에서 조차 분열되어 있는 상태에서 힘을 하나로 모아 피지배계급을 몰아세우기에는 힘에 겨워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무역은 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데 이용이 된다. 자본의 이동은 이윤의 확대를 위해서는 필연적인 결과다. 하나의 자본가의 힘이 아니라. 독점자본가들이 모인 힘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가꾸고 나가는 세상을 위해서는 좋은 내용을 가진 신자유주의경제의 최종판이다. 세계 부를 더욱더 강력하게 집중을 시키며, 양극화를 더욱더 확대 재생산하여 지배계급을 위한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 FTA의 모양인데, 한국의 부르조아들은 현재 분열되어 양극화 되는 모습을 피지배계급에게 보여주기 싫어 투쟁의 모습을 외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약한고리는 다른자에겐 장점이 될수는 있다. 그 장점을 살리기에는 주체적인 역량이 미흡하다.  혁명으로 가기에는 피지배계급의 힘은 아직도 미약하다. 이제 뜨거운 여름에 용광로에서 나오는 열기를 식히기에는 장마철은 짧다. 터져나오는 피지배계급의 열기는 지배계급이 상상하기에도 뜨거운 열기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의 발걸음은 의미가 없겠지만 피지배계급의 하나의 발걸음은 혁명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의회주의 환상에 빠져서 부르조아 정부에게 청원을 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배계급에게 구걸을 한다는것은 계급투쟁의 역활을 제대로 못해 내고 잇는 계급적인 존재의 미약함을 나타낸다. 자신의 권리는 투쟁으로 일궈나가는 것이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구한다고 해서, 청원을 한다고 해서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다.

FTA의 반대 투쟁은 부르조아지배질서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투쟁의 효과는 민족과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봉사를 한다. 노동계급을 위한다는 명분은 농민과 중소부르조아들의 잔치로  타락시키는 형세로 표현되어지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가는 길목의 형태로 간다. 샌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의 이윤의 확대를 위한 싸움에 피지배계급의 투쟁은 FTA의 반대가 아니라 자신들의 세상을 실현시켜 나갈수 있는 투쟁의 모습으로 변화해야 한다. 노동자국가의건설은 요원한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의 투재의 승리가 바로 노동자국가의 건설인것이다. 99번 패배한다고 해서, 아직까지도 투쟁의 모습에서 패배를 했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진것이 아니다. 패배주의는 노동계급의 모습이 아니다. 오로지 쁘띠부르조아만이 자신의 패배속에서 방황을 하고 책임을 전가 할 뿐이다. 주체역량의 미비라는 점으로.

이젠 FTA의 반대투쟁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위한 투쟁으로 나가야 한다. 노동자통제를 전면에 내걸고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생산에 대한 통제를, 통제를 위한 노동자평의회로 자신의 권력의 주체로 자리잡아야 한다. 파업투쟁을 노동자통제 투쟁으로 , 노동자평의회 투쟁으로 변화 시켜야 한다. 협력의 네트워크를 전국 차원에서 수립하는 노동자평의회 체제는 생필품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고 사회의 피억압 계층 대부분을 정치투쟁의 장으로 동원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들과 이들의 용역 깡패들이 대중에 대한 잔인한 탄압을 통해 기존의 특권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책동을 모두 효과적으로 격퇴할 것이다. 혁명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혁명을 위한 제반의 투쟁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혁명에 다가가는 것은 꿈이다. 혁명을 현실로, 현실에서 노동자국가건설이라는 모습은 꿈은 아니다.

건설노조의 파업은 부르조아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자신의 권리의 주장은 경제적인 요구는 현장에서 해결하고 전국적인 모습을 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속연맹의 파업은 화려한 조명을 받아 연신 몰매를 맞고 있다. 지배계급의 당황하는모습에서 노동계급의 발전이 눈부시게 화려하게 변하면서 뜨거움을 발휘한다. 투쟁의 물결을 자족적인 모습으로 나타내서는 안되며 더욱더 발전하는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노동자통제는 노동자국가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노동자통제를 통한 영업상의 기밀을 해체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길이 노동계급을 빈곤에서 추방하는 길이다. 대중의 투쟁을 혁명의 길로 인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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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2 19:52 2007/06/2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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