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사는집 평가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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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집운동은 기존의 빈민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운동들이 대부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루어졌다면 더불어 사는 집 은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의 전망 속에서 쟁취되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소유를 부정하고 국가의 소유의 집을 점거하는 행위는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은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초유의 일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을 수 밖에 없었고 부르주아     언론들도 크게 호응하였다. 물론 노숙인 집단자체가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로 되었고 자본주의 모순의 극단적 표현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집 운동이 노숙인 들의 자주적인 결사체로 나가고 있으며 새로운 사회의 대안이라는데 있다. 비인간적 상태에 놓인 노숙인 들이 새로운 인간으로 되는 과정에서 투쟁은 점차 노숙인 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주체성을 심어주었고 노숙인운동의 주체로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투쟁과 함께 노숙인들의 자주적인 토론과 논의는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가는 노숙인 주체화의 과정이었다. 사회에서 모든 것을 박탈당한 노숙인집단이 스스로 사회의 주인의식을 갖기란 험난한 과정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주체화의 과정에 주목해야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점거 때 활동가들이 자신들의책임과 의식 정도 차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며 노숙인 자신들은 훨씬 덜 책임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현장에서 투쟁이 벌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상의식이나 계급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노숙인운동 역시 다른 노동운동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노숙인운동도 노동운동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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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민주노조운동이 부패하고 타락했 듯이 빈민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빈민은 항상 이중적 세계를 산다. 빈민은 한편으론 그의 객관적 조건에 의해 부르주아계급에 포섭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론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선봉에 서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정부는 빈민정책에서 포섭과 배제를 이중적으로 행한다. 현재 대부분의 빈민운동은 자본주의 틀내에서 계급 협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더불어사는집운동은 이미 그 출발이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부정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다른 빈민단체들이 수십억의 정부보조금을 받고 일할 때 더불어사는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갖은 탄압과 폭력을 받았다. 그래도 더불어 사는 집이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모순의 가장 첨예한 표현인 노숙인들의 정당한 생존권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철거민이나 노점상들 빈민조직도 거의 투쟁하지 않고 타협과 협상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집은 대부분 투쟁으로 일관했고 투쟁으로 쟁취해냈다. 빈민계급은 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는 자선이나 시혜의 입장에서 그 운동논리를 펴기 때문에 개량주의적이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부정하는 빈민집단에게 그 누가 쉽게 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인 정치조직이나 노동조직에서 더불어 사는 집 투쟁에 깊이 연루해 들어와야 한다. 더불어 사는 집은 명백히 점거를 통해 획득된 것이며 투쟁을 통해 반합법화 된 것이다. 물론 정부로부터 정책적 지원을 받는다면 더불어 사는 집은 점거를 통하지 않고도 합법적으로 생존권을 쟁취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사는집은 생산 공통체를 지향해가므로 스스로 노동해서 살아하는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집단이다. 물론 민주노총도 합법화 전에는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노총도 합법화되면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 그렇다고 더불어사는집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다고 그렇게 많은 변화가 있진 않을 것이다. 연대라는 것은 자신의 주체가 설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특히 공동투쟁도 마찬가지이다. 빈민조직이라고 해서 아무런 단체나 조직 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는 대단한 억지이다.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빈민조직일수록 원칙을 가지고 사업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연대를 꾸리고 혁명적인 단위들을 공동투쟁으로 묶어나가야 한다.  지금 전철연이란 빈민조직은 오히려 노동운동단체라 할 전노투등과 더많이 연대하고 있으며 스스로 빈민단체에서 철수하였다.    
빈민운동은 현대사회에서 혁명운동의 중요한 흐름이다. 전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빈민 속에서 수많은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더불어사는집이 스스로 고립되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혁명적 정치조직들이 나서서 활동가를 파견하고 빈민운동에 깊이 연루해 들어와야 한다. 더불어사는집은 계급투쟁의 중대한 지점이다. 부르주아계급이 어쩔 수 없이 인정한 집단이다. 더불어사는집이 그토록 치열하게 투쟁하고 주거권과 생존권을 쟁취하기위해 나설 때 옆에서 정치적 비평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전투현장에 있어야 옳은 것이 아닐까.
우리가 혁명적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더불어사는집 같은 빈민운동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빈민운동 따로 있고 노동운동 따로 있고 정치운동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빈민조직이 빈민조직들과만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란 말은 역사를 무시한 행위이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이 모든 계급운동에서 헤게모니를 쥐어야한다고 말한 맑스-레닌주의 기본원칙은 되찾아져야한다.
남한혁명운동에서 빈민계급을 장악하지 못한 운동은 역사에서 결국 패배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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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30 16:47 2005/10/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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