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전문
제가 님의 글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고자 했던 것은 님이 민주노동당을 부르주아정당으로 규정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민주노동당은 개량주의 정당이라고 규정합니다.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 브라질 피티당 등등, 이러한 정당이 개량주의 정당이죠. 개량주의 정당의 특징은 노조에 기반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조라는 물질적 토대에서 세워진 정당이기 때문에, 경제투쟁에서의 노조의 기능-착취율의 유지, 감소-을 정치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각종 사민주의 정책들이 바로 노조의 기능의 정치적 표현인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가치의 권위적 분배"를 의미하죠. 개량주의 정치에 있어 가치의 분배는 뭡니까? 가치는 효용의 대상을 의미하죠. 노조에서의 임금투쟁이 착취율을 둘러싼 투쟁이라면, 개량주의 정치는 복지정책을 통해 착취를 통해 박탈된 노동계급의 효용의 대상(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을 하죠. 이것이 개량주의 정치의 본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량주의 정당은 체제 내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변혁만이 근본적인 노동자의 이익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합니다. 진정한 노동해방은 착취관계의 철폐이죠. 하지만 혁명적 시기가 아닌 상황 속에서 개량을 수행해야 합니다. 혁명정당도 혁명적 시기가 이닌 상황속에서는 개량을 주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개량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죠. 개량은 체제 내에서 유일한 노동계급의 이익이기 때문이죠. 혁명정당과 개량주의 정당의 차이는 개량을 목적으로 볼 것인가? 변혁을 위한 수단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둘 다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주아 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죠.
님이 부르주아 정당이라고 규정하는 근거는 아마도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기여한다는 점에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 이유는 개량주의 정당이 노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죠. 노조 또한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자본주의 기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조를 부르주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라고 이야기하지 않죠? 그와 마찬가지로 노조에 기반한 개량주의 정당을 부르주아 정당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만약 이조차도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님은 모든 노조의 투쟁들을 부정해야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조는 노동자들의 조직이지만 자본주의 기구이고, 노조의 투쟁은 자본주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혁명정당은 현장조합원 운동의 기반 하에 세워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현장조합원 운동은 기존의 노조지도부 장악을 위한 현장조직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조합원 운동은 노조와 독립된 운동이어야 합니다. 노조가 투쟁할때는 선두에 서서 결합하지만, 노조가 싸우지 않을 때는 투쟁을 선동하는 운동이 제가 생각하는 현장조합원 운동입니다. 기존의 "계급적" 노동운동은 좌파의 노조 장악을 운동의 목표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현자노조집행부의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러한 운동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기구인 노조를 좌파가 장악한다고 해서 노조가 혁명조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논리가 맞다면 전진이나 해방연대 전신인 평등연대처럼 좌파의 민주노동당의 당권장악이 개량주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혁명정당이 되는 거겠죠.
물론 이번 현자노조의 위원장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조간부라는 사회적 존재가 개량주의라는 의식을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의식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죠. 노조의 좌파장악을 목적으로 삼았던 "계급적" 노동운동 세력의 전략에 궁극적 책임이 있다고 봐야겠죠.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는 개량주의 정당과 혁명적 사회주의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렜습니다. 개량주의 정당은 노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 정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죠. 개량주의 정당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우리의 청중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즉 지도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당내의 개량주의 세력과 투쟁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우리의 주장의 올바름을 입증하고, 그들의 개량성을 폭로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대중의 의식은 불균등합니다. 이러한 대중의 의식의 불균등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중이 없는 골방을 차려놓고, 사회주의를 외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한 골방은 진정한 혁명정당이 아닙니다. 그러한 조직은 자위수단에 불과하죠. 그러한 혁명정당은 현재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조직이름이 당이라고 안 붙여서 그렇지....,

 

이진철동지에게 다시 한번 더

 

동지의 글을 잘 읽었다. 동지는 압력단체와 정당의 구별도 모르고, 왜 사회주의자들이 정당을 조직하고자 하는 의도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주의 ·주장 또는 특수이익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회나 정부 ·정당에 진정 ·청원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적 압력을 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각종 사회단체나 조직."로서의 압력단체는 "정권의 획득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정당(政黨)과는 구별된다." 정당은 대중들에게 권력획득을 위해나간다는 의미로서 다가가고 있기 때문에 동지가 말을 한 "혁명정당은 현재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조직이름이 당이라고 안 붙여서 그렇지...., " 것과는 차이가 많다. 정치조직으로서의 당은 해방연대나, 노동자의힘이라는 정치조직과는 질적인 차이로 인하여 정책이 개량을 수단으로 쓴다고 한다는 것조차도 권력의 유지나 획득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개량주의 정당이던지 혁명정당이던지 관계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진철 동지! 동지가 제기하는 정당의 기반은 노조를 기반으로 한다면 개량주의정당이라고 하는 뜻이 "개량은 체제 내에서 유일한 노동계급의 이익이기 때문"이고 이어서 "개량주의 정치는 복지정책을 통해 착취를 통해 박탈된 노동계급의 효용의 대상(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을 하"기 때문이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지로 혁명정당은 노동자의 조직에 기반을 두고 잇는것은 사실이며,그조직이 노조왜에 다른 조직이 없다면 그 기반으로 노조에 정치적인 기반을 둘수 밖에 없다. 그렇기때문에 노동자의 합법적인 공간에서의 정치적인 공간의 장악을 위해서라도 노조의 상층부분의 장악을 할 수빆에 없는 사실이다. 솔직히 합법적인 공간에서 상층부의 힘은 노동자 대중에게 사회주의 의식화를 시킬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 해주고, 공간도 확보해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혁명정당은 현장조합원 운동의 기반 하에 세워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현장조합원 운동은 기존의 노조지도부 장악을 위한 현장조직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조합원 운동은 노조와 독립된 운동이어야 합니다. 노조가 투쟁할때는 선두에 서서 결합하지만, 노조가 싸우지 않을 때는 투쟁을 선동하는 운동이 제가 생각하는 현장조합원 운동입니다"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조직은 세포조직으로서 활동이 더 옳바르고 실제적으로 혁명정당의 일부는 그런식으로 존재해야만이 현 한국 자본주의체제내에서 혁명정당의 명맥을 이어나갈수 가 있는 것이다.

혁명정당이 합법적인 활동을 한다면 그것은 대중정당이다. 그기반은 노조를 축으로해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선진노동자들에 의해서 사회주의사상을 전파하고, 자본주의체제의 부정을 담보로해서 이루져 나갈것이다.그것의 현 자본주의에서의 대안이다. 그것이 근본적이 노동자 대중의 이익인것이다. 노조를 부르조아의 이익을 담보하는 기구라고 하지 않는 것은 바로 개량화되어진 부르조아들에게 이용당하기때문이고,또한 많은 대중을 확보하기 때문에 동지가 주장하는 불균등한 대중의식때문에 낮은 차원에서 투쟁을 선도해 나갈수 뿐이 없고,그 것을 통해서라도 자본주의의 체제를 흔들어 놓기때문인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인 권력기구나 기관으로서의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한계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권력의 대체성으로 나타 났다면 그 내용이 틀려지는 것이 당연한것이겠지만...

동지가 주장하는 개량주의정당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조가 기반이 되었다는것,두번째로서 체제내에서의 개량을 전문으로 하는 정당으로서 개량주의정치를 하기때문이며, "개량주의 정치는 복지정책을 통해 착취를 통해 박탈된 노동계급의 효용의 대상(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을" 하는 관계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라고 주장을 한다. 그런 정당이 하는 일이 개량을 추구하고 있는 관계로 " 노조 또한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자본주의 기구입니다" 까지의 발전을 보이고 있는데 두가지 관점에서 조망을 해보자.

첫번째로는 개량주의 정치를 하는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가치의 권위적 재분배"를 통하여 노동자에게 자본주의체제내의 안주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지배하는데 공헌하는 관료계급에게 조금더 많은 잉여를 나뉘어주던가, 아니면 제3세계의 피지배계급의희생을 강요하여 나온 이윤을 나누어주는것으서, 지배체제의 존속을 위해서 물질에대해서 양보를 의미하는것 이다. 먹고살아남아야 하는 노동자에겐 몹시도 중요한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만히있는 노동자계급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던가? 절대로 아니다. 우는아이에겐 젖을 한번더 먹인다는 말이 잇듯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존재할때만이 , 그들이 자신의 위기감이 올때만이 나누어 줄뿐이다. 투쟁의 힘을 개량의힘으로만 써먹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그 강렬히 타오르는 자본주의의 부정에 대한 힘을 현재는 혁명의 시기가 아니기때문에 개량에 쏟아 내야 한다는 말인가! 어느 누구도 "개량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지배체제를 건고히 하기위해서라도, 동지가 주장하듯이 민주노동당인 개량정당이 합법적인 공간에서, 선거를 통한 권력장악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개량주의 정치 및 개량주의를 유포하는 동지의 뜻이다.

두번째로는 개량주의 정당이 과연 노동자의이익을 대변한다라고 하는 것일까? 노동자의 이익이 체제내에서 나타나는 제반의 물적인 이해관계로만 나타나기때문에 그런말을 한것인지, 아니면 노동자의 투쟁은 자본주의내에서 그 한계성은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균등한 대중의식 수준때문인지를 동지는 무엇을 가지고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솔직히 이것은 개소리다. 노동자가 왜 다음 세계의 지배계급으로서의 역활을 위임받았는가? 그들의 투쟁은 이미 시작부터가 그들 스스로가 알던모르던지 관계없이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부르조아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서 구체적인 형태를 띄우지못한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스스로가 권력을 잡기 위해서 권력기구를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그게 소비에트고 꼼뮌이며 노동자 위원회인것이다. 그것을 구체화 시킨것이 바로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이다. 동지가 이해 못하는것은 배고픈자에게 빵을 주지말고 낚시를 가르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때문이다. " 부르주아 정당이라고 규정하는 근거는 아마도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기여한다는 점에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저도 동의합니다"라고 하지만 실제론 동지는 무엇을 동의하는가? 실지로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못한 이유가 개량주의가 아니고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가 될경우에 피해가 입을 것이라는 존재기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가? 그 이유가 부르조아정당이라는 것이다. 실지로 민주노동당의 나타난 제 형태들이 노동자 계급의 이익에 어떠한 일조를 햇는가? 유럽의 제 노동자 정당이라고 자처하는정당은 어떠한 일을 하던가? 자신들의 권력에부합시키고자 노력을 할것이며, 또한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동지가 이야기하는 노동자정당은 실지로 노동자게급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급급하고 반동적 부르조아들과 야합을 하면서 노동자계급을 탄압하게 된다. 실제로 독일에서의 그 강철같은 진적이 없는 노조가 동지의 뜻깊은 노동자정당에게 당하여 패하고 만 그 사실서 부터 시작해서 유럽에서의 그 기나긴 노동자게급에 대한 배신을 어떻게 설명할것인가? 동지의 노동자 정당이라고 주장하는것은 아무 의미 없는 내용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부르조아 정당이라고 하는것이고 편하게 하기위해서 체제를 부정하는가 안한는 가를 기준으로 설명하는것이다.

동지. 당신의 모든 사상의 집결은 " 혁명적 시기가 아닌 상황 속에서 개량을 수행해야 합니다. 혁명정당도 혁명적 시기가 이닌 상황속에서는 개량을 주장해야 합니다"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물론 개량을 주장 할수 있고 해야만한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잇다. 그 개량은 투쟁의 흔적에서 얻어 내는것이지 동냥질해서 얻는것이 아니라는사실이다.또한 혁명적시기는 우리가 준비가 안돼어 있다면 언제든지 부르조아에게 투쟁의 권리를 빼앗긴다는 사실도 존재한다. 그 두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고 개량을 노동자의 권리라고 주장하고, 자본주의체제내에서의 투쟁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면 동지는 동지가 아니라 적인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부르조아 계급에게 팔아 넘긴 가룟유다와 차이가 없는 것이다.

대중이 없는 골방에서 사회주의를 외치고 있는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다.가장 한심한 일이건만 더 한심한 일은 부르조아 의식을 노동자계급의식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를 팔아 먹는 짓거리다. 지금도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늪에서 헤어나고자 뜨거운 열로 습기를 말려서 나가고자 하는데, 그것을 가로막아서는 존재들이 있다 . 제발 투쟁은 자신들에게 표를찍어 주는것만이 승리의길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구걸을 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드은 노동자대중의 투쟁을 더 뜨겁게 달구어 나가야야 하는것이 의무인것이다. 그렇게 해야만이 자본주의를 파괴시켜서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를 내세울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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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4 14:34 2005/10/2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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