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글전문

 

제가 언제 이익단체와 정당을 구별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대량주의 정당이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았고, 개량주의 정치를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것은 개량주의 정치가 노동조합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주장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개량주의정당의 정권획득은 착취철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정당은 노동조합이 아닌 현장노동자 운동에 기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또한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듯이 개량주의정당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개량주의 정당을 부르주아지 정치로 규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개량주의 정당이 만약 부르주아지 이익을 대변한다면 착취 자체를 옹호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개량주의 정당은 착취 자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율의 유지, 감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체제 내에서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계급은 착취관계의 철폐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착취관계의 철폐는 개량주의 정당이 아닌 혁명정당에 의해 일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 있어 중요한 것은 개량주의 정당의 지지기반의 선취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개량주의 정당은 노조의 정치적 표현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량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을 그냥 나둬야 하나요? 그들을 한덩어리 개량주의자들로 취부하면 됩니까? 그들을 우리가 선취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개량주의 정당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정물에 발 더러워진다고 개입안하는 겁니까? 그럴려면 운동을 외합니까?
구정물이 발 더러워지더라도 우리는 개입해야 합니다. 개입해서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를 실천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개입안하고 독야청청 선비처럼 관조하고 있다면, 개량주의 정당을 지지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들을 지지할까요?
저도 과거에 피디운동을 했었는데, 피디운동의 문제점이 뭐였습니까? 물론 스탈린주의라는 이론적 취약점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중운동의 부재였습니다. 맨날 정파들끼리 선명성 경쟁만 했었죠. 선명성 경쟁만 했지 언제 대중의 의식의 불균등성을 이해하고 대중에게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하려 노력했습니까? 그러한 대중운동의 부재때문에 스탈린보다 더 스탈린주의적인 주체주의자들에게 대중부위를 다 뺏겨버린거 아닙니까?
05·10·24 20:41 삭제

 

동지가 잘못알고 있는것이 존재하는데 자유주의적 부르조아들은 현재 독점자본에 의해 착취의 대상중의 하나이기때문에 노동자 대중의 힘을 이용할려고 여러가지 노력을 합니다. 그중에서 주요하게 하는 일은 노동자 계급의 계급의식을 약화시키면서 자신들의 이익에 봉사 시키기 위한 노력을 마치 노동자계급에 대한 이익에 봉사한다라고 알려지기를 원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는것이다. 왜? 레닌에 의해서 3차인터내셔널이 창립이 되었는가? 개량주의정당에 의해서 이루어진 개량의 떡고물로 노동자 계급의 연대및 의식화에 상당한 진척을 자랑했기 때문이다.코민테른의 4차 대회까지는 개량주의정당을 급진적인부르조아 정당으로 확정하여 그들과의 전술적인 연대및 대중과의 연결고리 확대를 위한 차원으로 이용했다.

이번 울산에서의 민주노동당은 확실한 활약은 그들의 계급성으로 인하여 더이상의 좌익의 힘이 아니라 우익정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한 쁘띠 부르조아 정당에 한계성을 대중의 투표에서 보여 주었다.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한몸으로 받고 자란 "개량주의 정당은 노조의 정치적 표현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까닭에 10에서 9로 자리바꿈을 하였는데, 아직도 의식의 불균등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고 주장을 계속할것인가?

1. 부르조아의 이익에 반대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이 이익인가?

해방연대및 대다수의동지들의 착각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을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내에서의 계급의식은 지배계급의식을 기준으로 하고잇고 생활의 중심은 그렇게 되고있다. 어느 계급사회에서든지 그사회의 지배의식은 지배계급의식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잇음이다. 계급사회에서의 의식은 일정한 경제적인 발전상태에서 다음사회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의식으로 무장하게 되는데,피지배게급의 의식의 발전은 지배계급에 반항 및 저항을 하면서 급격히 발달하게 된다.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지배계급의 대응방식에 피지배계급의 대응방식이 결정되고, 피지배계급은 지배게급에게 결정적인 순간을 제외하고는 끌려가게 마련이다.

자 ! 생각해보자 지배계급의 이익의 반대 급부가 피지배계급의 이익인가를! 무정부주의자들의 투쟁은 분명히 부르조아 계급의 지배에 반대하면서 유지 되고 있으며, 급진적인 테러주의자들의 소규모 활동도 피지배계급의 투쟁의 어떤 이득을 주었는가? 오히려 무정부주의를 부르조아 의식의 한 변종이라고 규정을 하고 그들과의 사상투쟁을 전개하기까지도 했다. 왜 그런것인가? 그것은 바로 피지배계급의 의식의 발전을 저핵하고 있기 때문이며 소영웅적인 투쟁으로 인하여 궁극적인 목적을 상실하여 체제내속에서 노동계급의 사상을 사장 시키고 있기 때문인것이다. 노동계급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부르조아에 반대하는,또는 부르조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개량적인 사고 방식에 좌우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오로지 프롤레타리라트의 이해와 요구를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구체화 시켜나갈때만이 가능 한것이며, " 개량주의 정당의 지지기반의 선취"를 할수 잇는 가능 성이 생기는 것이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가지지 가진 정치조직체 ㅡ 정당을 가지지 못한상태에서 (동지나 해방연대가)개량주의정당이라고 생각하는 정당에서의 활동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세계를 열기 위한것이 아니라 , 궁극적인 목적을 상실한채로 개량에 물들어 하루하루를 쟁취가능한것만으로 투쟁을 한정지으며 지배계급의 선처를 바라는 배부른 돼지인 노동관료의 신세로 전락하게끔 만들고자 하는것으로서, 투쟁의 열기를 부르조아의 이익에 헌납하는꼴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르조아의 이익에 보템이 되는 것이다.

동지가 주장하듯이 "개량주의 정당에 개입해야 "하는 것하고 정당의성격을 논하는 것하고는 전혀다른 것이다.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이 정당의 성격을 논하는 것은 어떠한 개입을 할것이며 어떻게 혁명에서, 또는 투쟁의 과정에서 그들의 계급적으로 인한 우유부단성으로 결코 끝까지 혁명을 추진해나가지 못할것임을 밝혀나가야하는 의무가 있기때문이며, 전략과 전술에서의 동맹관계의 설정을 위해서 투쟁을 발전시켜 나갈때 사회주의자들의 기본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인것이다.

2.혁명적 시기가 아닌 상황에서 개량을 수행해야한다?

동지! 개량이란것은 무엇인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투쟁을 조급 자제해 달라고 애청하며서 경제적 또는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서 양보를 하는것을 의미한다. 체제내 속에서 안주하게끔 하여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위한 것으로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겐 개량은 대중들의 투쟁의 결과물이며, 목적을 이루기 위한 디딤돌로 사용한다. 전술은 전략에 종속이 된다. 전술의 하나한가 모여서 전략이 되는것이 아니라 전략의 목적을위해서 전술은 운영이 되는것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사고 방식이다. 현 시기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노동계급의사회를 만드는것이며,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는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서 전술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며, 전술은 다음 사회의 구체적인 구현방안을 제시하여 대중을 현 체제의 부정을 이끌어 내어 다음세계로 가는 목적의식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강령을 슬로건으로 제시해야하며,그 슬러건이 전투적강령슬로건이 된다. 이것이 개량투쟁을 바라보는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시각이다.

개량투쟁을 어떻게 하는것인가는 혁명에 종속시켜야하는것이며, 대중에겐 쟁취할수 잇다라는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 얻고자하는 당장의 떡고물을 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제 계급간의 접점을 확인하고 노동자국가의 현실에선 어떻게 나오는가를 보여주는것으로 서 제시하고 그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이끌어나가야 한다.

" 개량주의정당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개량주의 정당을 부르주아지 정치로 규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개량주의 정당이 만약 부르주아지 이익을 대변한다면 착취 자체를 옹호해야 합니다."(이진철동지에게 다시한번 더 의 덧글중에서) "혁명정당과 개량주의 정당의 차이는 개량을 목적으로 볼 것인가? 변혁을 위한 수단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둘 다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주아 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죠."(색안경동지에게 중에서) 이러한 사고 방식의 뿌리에는 동지의 전술관이 엿보이는데, 그 핵심은 "혁명적 시기가 아닌 상황 속에서 개량을 수행해야 합니다. 혁명정당도 혁명적 시기가 이닌 상황속에서는 개량을 주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개량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죠. 개량은 체제 내에서 유일한 노동계급의 이익이기 때문이죠"(색안경동지에게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개량은 체제 내에서 유일한 노동계급의 이익이"라고 주장한 대목이다. ㅡ그렇기때문에 부르조아 정당이 아니라고 규정한것이긴 하지만 ㅡ 동지와 혁명적사회주의자의 시각의 차이는 여기서 극명하게 들어난다.

개량은 지배계급의 지배유지를 위한 하나의 선택이라고 본인은 주장하지만 동지의 ㅡ 아마도 대부분의 해방연대의 동지들도 마찬가지일것이다 ㅡ 사고는 노동자의 이익이라고 규정한다라는 것이다. 동지! 동지가 생각하듯이 혁명적인시기가 존재할려면 다른것을 차체에 두고 대중의투쟁이 권력에 대한 요구로까지 발전시켜야하며 일반적으론 현체제의 부정으로 체제를 타파하고자 대중들이 투쟁을 전개하는 시기를 의미한다. 그것이 개량에 의해서 무산된것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한것을 계속하고 싶은가? 그렇기때문에 아직도 세상은 부르조아가 지배하고 있는것이다.

얼만전(솔직히 잘 기억이 안난다)에 본인이 정윤광씨와의 필담을 통해서 정겹게 이야기한 전술관에 대한것을 한번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야청정할수가 없다. 이미 쁘띠부르조아인 노동관료들에게 노동자투쟁의 성과물을 넘겨주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 성과물이 바로 울산의 재선거에서 나타난것이다. 패배의 원인이 진정 민주노총의 개입없어서인가, 노조의활동이 없어서인가, 물론 부르조아정치에선 조직의 개입이 당락의 원인이 되지만 그런 원인으로 치부하기엔 노동자계급의 불균등한의식이라고 변명하기엔 원인을 관념적으로 해석하겠다는 의지뿐이 안된다.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은 철저한 계급성을 바탕에 두고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관계로 선거에대한 패배로 보고있다. 기존의 부르조아정당과의 차별성이 없는 관계로ㅡ 어떤 누구를 지지하지못하고 여지껏 합법적인 상태에서 가장 극단적인 좌익당이라는 의식속에서 지지 해왔는데, 그 차별성이 없달고 여겨져 계급적인 희소겅이 떨어진것이 패배의 원인인것이다. 노동관료에의해서 점령당한 민주노총의 지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별차이는 없다라고 봐야 한다.

계급의식의목적성을 확실히 대중에게 보여줄려면 다음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을 보여주어야 할것이며, 그것이 바로 개량투쟁인것이다. 노동대중의 정서에 부합되어야하며 그것은 현실에 조응하게끔 이끌어 나가야 하는것이 개량투쟁을 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의무이다. 그것이 혁명의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개량주의에 빠져들어 다시는 헤어나지 못한다.이러한 경게선을 타고 대중에게 혁명의식을 구체화시켜 보여준다면 대중은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을 따를것이며, 확실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개량주의정당인 급진적인부르조아정당의 선진적인 부분을 흡수할수 있는 것이다.

혁명적사회주의자들의 현재의임무는 사회주의정당을 만들어야 하는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말로만 인식하고 있으며, 실지로 그렇게 하기위해서 노력을 하는것보단 동지가 주장하듯이 개량주의정당에 파묻혀 노동관료들과더불어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노력한다라고 일반대중들은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계급성이 없어진 정당이며,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체인 정당이 없는 관계로 임시적으로 좌익정당으로서의 역활을 수행하면서 노동대중을 아주 올바른 길로 선도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노동대중의 일반적인 목적과 궁극적인 목적이 달라질수는 없는것이다. 그것이 착취를 없애는 길이기때문이다.

남한사회에선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아주 많은 지하 활동속에서 대중들에게 뚜렷한 목적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공이데올로기의 강세속에서 속절없이 대중들에게 명확한 노동자국가의개념을 제시 못하고 사회주의자임을 알리지못해 왓던 세월이 있었다. 그 상황보단 낳아져 있다고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잇는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사회주의자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안주하게 된어 개량투쟁을 개량을 위한 투쟁으로 한정 되어진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동지 말처럼 " 대중에게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하려 노력"하지 못한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하며, 그 극복의 대안으로서 혁명정당을 건설하자고 하는것이다. 혁명정당의 부재속에서 자신들의 계급성의식성을 확립하지 못한채 성과물을 개량주의정당으로 귀속시키면서 대중들을 더 많은 개량의 환상속으로 몰아 넣는 꼴을 하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며,바로 해방연대가 그런곳이다.

끝으로 동지가 주장하는 현장조합원운동은 정당내에서의 비합법적인 세ㅐ포조직으로 이루어져야하며, 언제든지 부르조아의 침탈에 대비하여 보존할수 잇는 프롤레타리아정당의 최후의 쉼터이다.그들의 활동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실지로 그런식으로의 활동은 혁명정당이 비합법화되어져 있어서 대중과의 활동방식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고, 본인은 합법적인 정당을 건설할때는 그노조에 기반해서 나타날때 더 많은 영역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상을 확대재생산시킬수 잇는 관계로 현장조합원활동을 줄이고 노조활동을 기반으로 할수 뿐이 없는것이다. 그래서 합법적인 활동상태에서 러시아 혁명의 진행상황에서조차도 합법적으로의 활동에서는 노조를 기반으로 RSDLP는 이루어 질수 뿐이 없었다. 그것은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에게 더 많은 접촉을 하면서 선전선동의기회를 폭넓게 활용하게 해주기 때문이며, 계급의식성을 각인시켜 급진적인 부르조아와 노동관료들에게서 나오는 사상의 전염을 막을수 잇는 손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굳이 어렵게 돌아갈 필요가 없는것이다.

동지 !
개량주의정당은 부르조아 정당이라는것은 사회주의자들이 개입하지 말자라고 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개입을하는것이 좋은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며, 그러한 계급의 존재들을 확인 할때만이 철저한 차별성을 두어 프롤레타리아트의 순수성을 간직하면서 쁘띠부르조아와의 연대를 공고히 할수 잇는것이다. 동지 아직도 울고 잇는가? 동지가 피디운동에 대한 과거의 비판은, 또한 동지의 과거의 운동경력을 알고자 하는것이 아니며 현재의 동지의 기회주의 사상으로 물들어가는것이 안타까워서 비판을 하는것이다.솔직히 해방연대의 대부분의 동지들도 동지와 같은 사고를 하고 잇을 것이다. 그것은 해방을 하는것이 아니라, 해방이라는 꿈만꾸고 살아가는 몽상가들이 하는짓이다.

"투사들은 무엇을 먼저 하여야 하는가? 1)가능한 한 많은 수면자들을 깨울것; 2)그들의 투쟁목표와 투쟁조건에 관하여 그들을 계몽할것; 3)승리를 회득 할수 있는 세력으로 그 들을 조직할것; 4)그들의 승리의 성과물을 적절히 이용하라고 그들에게 가르칠것"(레닌저작집 3-3. 침체에서 깨어난 부르조아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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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30 12:28 2005/10/3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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