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당직선거가 끝났다. NL쪽의 사람들이 되었던 PD측 사람들이 되었던 관계없이 그 선거에서 나타났던 문제들은 새로운 해결을 모색하고자 한 걸음의 진전을 위해서 두 걸음 후퇴를 하였다. 문제는 아무리 기회주의 진영이라고 해도 몇년전부터 준비를 해왔던 조직하고 선거를 코앞에 두고 준비를 한 조직간의 싸움은 애들과 어른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일방적일 수뿐이 없는 것이다. 하나의 정치 조직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며 민주적인 방식은 다수의 견해에 충실히 따라야하며, 그 안에서 소수의 견해를 밝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가진 자들은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자 언론을 이용하면서, 관료 중심적인 방식의 사고로 행정처리를 빗대며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을 공격하지 못하게 철통같은 방어를 한다. 그 방어의 핵심은 자신의 편을 더 많이 만들고 자신의 편에게 힘을 더 많이 실어주기에 달려있다. NL의 정파는 자신이 민주노동당내에서 권력을 잡았고 앞으론 여지껏 해왔던 방식대로 유지 해 갈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삶의 목표요 목적인 까닭이다.

 

그런데 본인은 이해를 아직도 못하는게 하나 있다. 민주노동당을 아직도 노동계급정당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분명 노동계급정당이라면 우리 NL정파사상이 그 정당 안에서 뿌리를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가 당면의 혁명을 노동해방을 위한 노동계급의 권력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요, 그러한 목표를 가진 전국적인 정치조직에선 자신들의 과제가 민족해방이라는 현 시기에서 아주 추상적이고 쁘띠부르조아적인 통일 방식관을 가진 그러한 사고 방식은 들어올 여유가 처음부터 봉쇄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또한 유럽처럼 노동계급 개량주의정당이라고 주장하고 잇는 이유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명시 되어있는 강령속에서 찾고 있으며, 예전에 초기의 모습에서 쬐금 보여주었던 노동해방의 표어를 들고 다니며 피켓팅 했던 모습에서 찾고자 한다면 유수한 세월이 지나 길게는 백년이 넘게 된 몇 십년동안이라도 혁명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래서 그 모습이 피지배계급의 정신 속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을 나타냈던,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권력을 잡아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그들과 같은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동지들은 무엇이 노동계급적인 정당이라고 알고 잇는 것인지 아직도 하늘이 청명하기만 하다.

 

노동계급정당은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수가 없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 속에서 분화가 일어났으며, 노동계급의 분화는 자본가 계급의 의도를 했던 안했던 관계없이 자본가 계급의 이익의 일부를 나누어 먹는 대신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헌신하게 만드는 개를 키웠던 것이다. 그들을 다른 말로 해서 노동관료, 또는 노동귀족이라고 칭하고 잇다. 엄밀히 말하자면 노동관료와 노동귀족은 틀리며,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서 차이가 난다. 예전에 어느 노동자가 동지가 하신 말씀 중에서 전체 노동자대중을 위한 조직으로서  노동자계급정당을 이야기했으며, 그것의 모습을 현재의 합법적인 노동자 계급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민주노동당이라고 주장을 하며, 그러한 부분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사회주의정당의 모습으로 바뀌어야하며 그것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현재 민주노동당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이익을 대변하는 주체가 바로 그 계급의 정치조직일 것이며, 그 존재 기반이 그들의 모습인 것이다. 존재는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는 아직도 유효한데 개량주의정당이라고 끝끝내 주장하면서까지 그 모습을 색안경을 쓰고 보는 모습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기분인 것이다. 아직도 민주노동당의 그런 모습을 개량주의정당이라고 말을 하고픈 욕망은 이미 유럽식의 사회주의정당의 모습에서 보여주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체제 유지를 위해서 피억압계급을 탄압하는 모습은 이젠 그들은 더 이상 노동계급의 정당이 아니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모습에서 보고자 하는 그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아직도 철부지 어린애가 아닌 다 늙은 노인네의 똥고집이라고 할 수뿐이 없다.  

 

 민주노동당내에서 목을 메며 그 안에서 아전인수를 계속하는 한 과학은 발전은 하지 않고 퇴보를 할 뿐이다. 이미 노동자들은 거리로 뛰어다니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데, 원님이 지나 간 뒤에 나팔을 불구 있는 모습은 우습게 보일 뿐이다. 이번 민노당의 당직선거에서 김광수 동지 혼자만 사회주의를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위안을 느끼고 있으나, 민노당이라는 틀 속에서 그리고 해방연대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맴도는 그 모습은 발전을 위한 모습보단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울분을 풀어보고자 하는 감성적인 부분이 와 닿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한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뿐인 것이다. 더 다른 무엇이 있는지 그 속을 들어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알수는 없다. 하지만 개량주의정당, 사회주의를 외치지만 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합법적인 활동을 하고, 부르조아가 만들어 놓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입법부에 대거 들어가서 권력을 잡는다면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회당, 프랑스의 사회당 등등 다른 것이 무엇인가? 진보적이라는 외피는 양을 잡기 위해서 양 떼안에 들어가기 위한 양의 껍데기를 둘러 쓴 늑대이기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들이 권력을 잡는다면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지를 수 있게 만든다해도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를 위해서 헌신하고자 할 수 없다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 것이다. 아직도 민노당내의 권력을 잡은 쁘띠부르조아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진정한 계급정당으로 바꿀 수 있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잇는 것은 불가사의한 경우다. 

 

현 시기 조직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것은 더 이상 민주노동당이라는 환상 속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중요하다.(1) 그 정치 조직은 전국적이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을 위한 투쟁을 전개 해 나가 노동자국가 건설을 하기 위해서 매진 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 현재 혁명의 목적은 노동자 국가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정치 계파를 제외하고 사회주의를 위해서, 사회주의를 제시하는 조직간의 통합은 필수다. 이 조직은 그 안에서 서로간의 의견을 조율하고 행동통일을 이루어 내려고 해야 하는 것이지, 자신만의 견해를 내세워 이루어지지 못하면 삐쳐서 홀로 서기 하는 그런 조직이나 개인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이 건설이 이루어져야 만이 노동자계급은 자신들의 목소리에 한층 힘을 실어 나갈 수가 잇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는 것은 오직 조직뿐이 없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에게, 쁘띠부르조아에게 대항해서 자신들의 계급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계급정당의 개념조차도 이해 못하는 민노당내의 정치 분파들뿐만이 아니라 써클주의 속에서 안주하며 선후배라는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색깔을 팔아먹는 사회주의자들도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쁘띠부르조아의 사상의 편재 속에서  남아있는 앙금처럼 조직의 기반과 더불어서 자칭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을 갉아먹는 좀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조직간의 통합을 위해서 노력하자. 노동해방을 위한 길은 주체적인 노력만이 남아 잇을 뿐이다. 조직간의 통합은 게급정당의 건설의 한걸음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상에는 국경은 없다. 하지만 계급은 있다. 계급을 무시하고 바꿀 수 있다라는 확신만을 가지고 활동을 한다면 관념론자하고 무엇이 다른 것인가! 확실한 신념, 하면된다라는 사고방식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필요하다. 그들이 가진 것은, 가질 것은 조직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지 못하고, 현실적인 규정을 무시하는 사상은 광신도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과학을 하고자 하는 변증법유물론자들에게는 꿈같은 일인 것이지만 아직도 그런 자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기회주의라는 바다 속에서 헤어나기라는 것은 요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계급투쟁에서는 세 가지가 존재한다. 경제투쟁, 정치투쟁, 그리고 이데올로기투쟁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모두 중요하고 언제 어디서라 함께 해야 하며,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 하나라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의 조직 안이나, 조직간의 이론투쟁문제에서의 기회주의적인 사고로 빠지지 않고 혁명적인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혁명적인 사상을 멀리 퍼뜨리기 위해서도  이데올로기 투쟁에 더욱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잇다. 이데올로기 투쟁에서의 쟁점은 현재시기의 투쟁의 방식, 방법, 목적을 알아야하며, 그 결과적인 측면을 예상을 하고 그 발전의 모습을 투영해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이 비정규직철폐 투쟁에 매달려 있으며, 그 투쟁의 효과를 가지고 현시기의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끓어 올릴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으나 과연 그러한가? 전혀 그렇게 나타나고 있지 않고 있으니,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라고 하는 정치조직들의 대부분은 더욱더 낮은 차원의 투쟁으로 이끌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서 서서히 입법부에 기대는 법안 개정투쟁을 버리라고 호소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이익은 노동자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이지, 부르조아들이 선심을 주듯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노동자 계급에게 떡을 무상으로 나누어 줄 지배계급은 없는 것이다. 목마른자가 우물을 판다.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위해서 지배계급을 압박을 할 때만이 개량이라는 떡이 떨어질 것이고, 그 힘을 유지 할 때만이 떡을 계속해서 먹을 수가 잇는 것이다. 힘을 유지하고 키워 나갈 수 잇게 하려면, 그 목적이나 목표가 대중에게 뚜렷하게 보여주어야 하며, 그것은 쉽게 얻어 마실 수 있는 냉수가 아니라, 당면의 이익보단 더 높게 보여주어 한 걸음을 내딛더라도 그 한 걸음이  부르조아나 쁘띠부르조아의 환상 속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실어 나를 수 있는 확성기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비정규직 철폐투쟁이  아니라 생산현장을 생산하는 자들이 장악을 하고 생산 및 물류를 통제를 하고 그것을 통한 자신들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발전 시켜야 함은 기정사실이다. 투쟁의 슬로건이 바로 노동자통제인 것이다. 현재의 시기는 노동자대중의 힘이 노동관료들에 의해서 분리가 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역량을 과소 평가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으며, 하나의 투쟁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노동자 자신들이 생산현장을 장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투쟁의 효과를 크게 만들어야 하면, 투쟁의 범위를 확대 시켜야 하는 것은 혁명적인 사회주의들의 사명이다.

 

노동자통제는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 물론 그 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다. 자신들의 세상을 건설하고 자 한다면, 부르조아들에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 경제를 장악한 계급이 세상을 장악하듯이 하나의 경제를 움켜지기 위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며, 다음 세상에 대한 모습을 인식시키고, 대중에게 그런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의 출발점을 잡기 위해서라도,현재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것처럼 노동대중들을 선으로 그어 서로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는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의 목적 또는 목표를 가지고 서로 하나가 되어 투쟁해 나갈 수 잇는 지향점으로 필요하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비정규직의 문제는 확산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며, 이는 자본의 이익의 확대를 위해서는 필연적인 일이며, 비정규직, 정규직이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 그러한 차별은 경제를 생산시설을 노동자계급이 장악 했을때만이 철폐를 할 수 있으며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 시기 우리의 투쟁의 슬로건은 더 이상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노동자통제 쟁취라는 슬로건으로 바뀌어야 하며, 전술적인 입장도 노동자국가 건설을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제대로 보여주는 모습인 노동자 통제를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이 현 시기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올바로 대변하는 것이며, 노동자대중을 막연한 추상 속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투쟁의 힘을 끓어 올릴 수 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강령이 가지고 있는 힘이요, 우리가 보여줄 수 잇는 사상이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 혁명적인 사상을 잃어버린 사회주의자들은 더 이상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다. 개량주의정당에 기대여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진보적인 쁘띠부르조아들에게서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 그들에겐 그들의 대변하는 조직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조차 쁘띠부르조아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에겐 오직 깨부수어야 하는 사상이 넘쳐흐르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혁명적인 사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무장 시켜라. 아직도 남아 있는 혁명적인 그룹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내세우지 말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에 종속시켜 계급정당의 건설에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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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얼마전에 - 본인은  며칠전에 그 내용을 봤다 - 노동자의 힘이라는 조직에서 계급정당에 대한 내부 토론회가 있었으며, 그 내용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하지만 하나 조직 내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현시기 계급정당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잇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지만 아직도 노힘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일정한 수준의 조직원조직화와 전국 및 지역차원에서의 인지도는 5년간 흩어져있던 좌파가 노동자의 힘이라는 이름으로의 융합과정으로서 형성되어왔다. 이제 본격적인 계급정당 건설투쟁이 전개되어야 하고, 이것은 조직운동의 재조직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라고 제기하는 함소희|조직국장
의 말은 아직도 계급정당의 건설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전국적인 정치조직인 계급정당은 하나의 조직에서 시작 할 수 잇지만 그 기본은 현 시기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을 위해서 헌신하는 조직간의 결합의 시도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 부분을 바탕으로 해서 서로간의 조직 통합, 분파인정, 민주집중제를 바탕으로 한 사상 투쟁 및 행동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안에서 강령을 만들고 조직 원칙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 무슨 계급정당이 필요한 것인지 스스로 자성 할 필요가 잇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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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9 15:02 2006/02/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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