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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공산주의동맹의 글_퍼거슨시 인종주의적 자본주의 미국의 민낯

노동자전위 2014년 8월 20일

경찰들과 주방위군은 당장 나가라!
퍼거슨시: 인종주의적 자본주의 미국의 민낯


미국의 모든 경찰은 배지가 흑인에 대한 살인면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비무장의 18세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은 인도 위로 움직이라고 들은 후 거리에서 걸었다는 “범죄”로 백주대낮에 백인 경찰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머리에 두 발을 포함하여 여섯 발을 맞은 그는 수 시간 동안 거리에 방치된 채로 있었고, 그의 생명을 잃은 시신은 유기견보다도 존중 받지 못한 취급을 당했다. 항상 그렇듯이, 이후 경찰은 피해자를 범죄자로 둔갑시키려고 시도해왔다. 시민권법이 통과되고, 짐 크로우 인종차별이 공식적으로 철폐된 50년 후 미국에서 흑인이라는 것이 여전히 의미하는 것이 이것이다.

미주리주(州)의 퍼거슨시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있다. “버스 뒤로 가” - 즉, 닥치고 길거리에서 벗어나 통행금지 전에 집에 가 - 라는 말을 듣기에 지긋지긋해 하는 사람들이 이 자본주의 체제에 고유한 경찰 테러와 인종주의적 부정(不正)에 대한 격렬한 반대의 항의에 나섰다. 다수가 흑인인 이 세인트 루이스 교외에서, 항의에 나선 사람들은 최루탄, 나무와 고무 총탄, 그리고 섬광 수류탄을 발사하는 대부분이 백인인 경찰 부대에 용감하게 계속해서 맞서고 있다. 제복을 입은 한 깡패 경찰이 외치는 것이 비디오에 잡혔다: “덤벼봐, 너희들 모든 *같은 짐승들아!” 이제 퍼거슨은 점령군인 주방위군의 배치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경찰들, 주방위군은 당장 나가라! 항의에 나섰다 체포된 사람들을 석방하고 당장 모든 혐의들을 취소하라!

1957년 리틀 록[Little Rock]에서의 인종차별을 방어하고 1965년 와츠[Watts] 봉기를 분쇄했던 것으로부터 오하이오의 팀스터스 파업에 대항하여 동원되고 1970년 켄트주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여 항의하던 학생을 죽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주방위군은 권력에 감히 도전하는 노동자, 흑인, 그리고 좌익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예비군병력들이다. 자본가의 "법과 질서“를 집행하기 위하여 항상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온 경찰은 최근 수 년 동안 미국 제국주의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점령들로부터 넘겨받은 전쟁물자들을 자신의 수중에 확보해왔다. 자신의 신식민지 외국인 희생자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똑같은 미국의 지배계급이 또한 국내에서는 노동계급, 흑인 대중들, 그리고 이주자들을 잔혹하게 짓밟는다. 메시지는 이렇다: 항복해, 안그러면 없어.

(저널리스트들이 적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고, 취루가스를 마시고, 체포되었던 사람들 중에 있었던) 퍼거슨시의 전쟁 구역에서 주민들에게 M-16 공격용 소총들을 겨누는 장갑차량들과 경찰들의 광경에 기겁해서 놀란 자유주의자들은 ”과도한“ 무력에 관하여 불평을 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경비견들의 목줄이 풀렸던 것에 대한 염려를 표현하는 정부 안에서 보다 분별력 있는 인자들과 함께, 고속도로 순찰대[해석자의 주 - 미주리주에서는 주(州)경찰을 의미함]이면서 지역 주민인 한 흑인이 군중들을 진정시킬 책임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경찰들이 흑인, 백인, 혹은 라티노이건 지역, 주, 혹은 연방이건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 그들은 노예제로부터 임금 노예제에 이르기까지의 인종주의적 억압이라는 기반암위에 건설된 체제에 복무하고 그 체제를 보호한다. 모든 경찰의 일거리는 자본가의 재산과 다수에 대한 착취로부터 이윤을 획득하는 소수의 지배를 보호하는 것이다.

퍼스슨시에서 발생했던 것은 상궤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다. 스왓 팀들의 확산, 미국 전역에 걸친 라틴 밀집촌들과 빈민촌들에 대한 경찰의 점령들, 그리고 “약물과의 전쟁”에 의하여 조장되는 대량의 감옥행은 수십 년 동안 흑인 인민들의 일상의 부분이 되어왔다. 같은 기간 동안, 자본가들은 일자리를 제공하곤 했던 자동차와 금속 공장들을 포기하면서 경제를 점점 더 탈산업화시키고, 더 나아가 빈민촌 불모지들을 절망 속에 가두었다. 이윤에 대한 맹렬한 추진 속에서, 그들은 사회를 폐허로 몰아갔고,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했다. 노동계급과 소수민족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수요가 없어지자, 자본가들은 그들을 교육하는 것에는 돈을 써야할 많은 필요성이 없고,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 것에는 훨씬 더 적은 돈을 써야 하겠다고 여긴다.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은 재갈물리지 않은 국가 억압이다.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것에 감히 도전하면서, 마이클 브라운은 어떻게든 해서 감옥 체제라는 깊은 구렁의 바깥에 머물러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쓰디 쓴 진실을 말했다: “그를 학교에 머물도록 해서 학교를 졸업하게 하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얼마나 되는 흑인 남성들이 학교를 졸업하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많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쨌건 살아야 할 목적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끼는 그런 유형의 수준으로 당신들이 그들을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어쨌건 그들은 나를 끌어내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 미국이라는 인종주의 지옥이 트레이본 마틴, 오스카 그란트, 그리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비슷한 운명으로 밀어 넣었다.

북부의 자유를 누리던 사람들을 비난했던 인종주의 남부 보안관들을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정부와 부르주아지 미디어는 퍼거슨시에 있는 “외부의 선동가들”에 관하여 크게 소리친다. 한편, 오바마의 백악관으로부터 그 밑에 있는 흑인 민주당원들과 목사들은 항의에 나선 사람들에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무법 분자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집에 있으라고 계속해서 말한다. 지금 많은 항의에 나선 사람들은 그것에 끌리지 않고 있다.

마이클 브라운에 대한 살해는 또 한 명의 경찰이 흑인을 죽이는 것을 조용히 목격하려하지는 않는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들은 “희망”과 “변화”라는 공허한 약속들에 넌덜머리가 났고,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개선하도록 하라는 온정주의적 조언에 넌덜머리가 났으며, 사회악이라고 비난받는 것에 넌덜머리가 났으며, 체계적인 인종주의적 억압의 핵심적인 현실 주변으로 포장된 평등이라는 환상에 넌덜머리가 났다. 하워드 대학의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이슈는 이 나라가 인종주의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이 나라가 정의롭지 않으며, 이 나라가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당국자들은 대중의 분노를 투표함으로 끌어 모으고 싶어 하며, 한편으로 민주당 정치인 알 샤프톤은 낮은 투표자 수를 이유로 퍼거슨시 주민들을 꾸짖는 것에 맞장구를 친다. 경찰들이 “봉사하고 보호하는” 이 썩은 체제를 감독하는 민주당이나 연방정부에 대한 어떠한 환상들도 있어서는 안 된다. 연방정부가 지역의 인종주의적 법 집행을 멈추게 할 것이라는 관념은 거짓이다. FBI 요원들이 KKK단에 박혀 있어왔고, 1963년 버밍햄 교회 폭발과 1979년 좌익들과 노동조합 조직가들에 대한 그린스보로 학살과 같은 극악한 범죄들에 연루되어 왔다. 퍼거슨시의 많은 사람들이 법무부의 조사로부터 시정을 바라고 있지만, 법무장관 에릭 홀러와 그 패거리는 기껏해야 표면상의 개혁들을 법제화하면서, 정의가 곧 달콤하게 올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사람들을 거리들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개입하는 최고위 경찰들이다.

퍼거슨시에 있는 노동인민들과 소외된 인민들에 의한 즉각적인 분노의 표출은 정당하고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적극적으로 피억압 인민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투쟁으로 조직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원자화된 폭발들은 자본가들과 그들의 억압 군대들에 맞서 무력한 채로 남고, 더한 절망으로 귀결될 것이다. 의미심장하게도 뉴욕의 몇 몇 노동조합들이 지난 달 경찰들에 의하여 살해당한 에릭 가드너와 같은 경찰 잔혹행위의 희생자들에 대한 연대로 8월 23일 항의에 합류하도록 자신들의 조합원들을 거리로 불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항의를 조직하는데 있어서 샤프톤의 목적은 연방정부의 조사가 “정의”를 가져오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조직화된 노동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들 - 그들의 숫자, 다인종의 구성, 이윤을 위한 생산의 수레바퀴들을 멈출 수 있는 능력 - 은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계급의 적에게 속박시키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에 의하여 헛되이 낭비된다. 노동자들의 잘못된 지도자들은 민주당에 노예적으로 충성을 하며, 노동자들과 빈민들의 이해관계를 증진하도록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밀어 붙인다. 흑인 인민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똑같은 정부가 노동계급이 전투적인 투쟁에 착수하면 그들의 뒤를 쫓을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와 흑인의 권리는 함께 전진하거나 혹은 따로따로 후퇴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경우, 스스로와 모든 피억압 인민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장들의 지배에 의하여 놀아나지 않는 새로운 계급투쟁 지도부가 건설되어야만 한다.

특히나 노동운동이 사장들에 의하여 수행된 일방적인 계급전쟁에서 패배해오고 있는 때에, 우리는 이것이 쉬운 길일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전진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인종주의적 미국 자본주의의 족쇄를 깨뜨릴 사회주의 혁명 아니고는 이 사회에서 흑인 해방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기치들에 흑인해방을 위한 투쟁을 그려 넣지 않는 사회주의 혁명은 없을 것이다.

미주리주는 노예의 주였고, 퍼거슨은 심하게 인종차별적인 세인트 루이스의 바로 북쪽에 있다. 1857년, 흑인은 “백인이 존중해야만 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악명 높은 드레드 스코트 결정이 남부 노예소유주들의 힘이 미치는 영역을 북부 속으로까지 재가해주었다. 웨스트 플로리샌트가(街)에 있는 과거 노예 드레드 스코트의 무덤은 퍼거슨시의 항의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곳으로부터 겨우 수마일 밑에 있다.

노예 체제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내전, 2차 미국 혁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흑인해방의 약속은 흑인 해방노예라는 열망들에 반(反)하는 북부의 자본과 남부의 소유계급의 동맹에 의하여 배신당했다. 내전을 끝내고, 인종주의적 자본주의 억압을 근절하고, 평등주의적 사회주의 사회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세번째 미국 혁명,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다. 스파르타시스트 동맹은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다인종의 혁명적 노동자당을 건설하는 일에 헌신한다.

2014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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