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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12회)
1
기와불사라고 아시죠?
사찰에 돈을 내고 기왓장에 자신의 소원을 써내는 거요.
누구나 그 앞에 가면 사람들이 무슨 소원을 써냈을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보게 됩니다.
사실 거의 다 비슷비슷하죠?
온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거요.
그런데, 그중에 이런 소원이 있습니다.
단 한줄...
"참회합니다."
살다보면... 그러니까, 우리 삶이 다하기 전에 꼭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죠.
그런데 그 기회를 놓쳐버릴 때도 있습니다.
아마 그 사람도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참회가 어떤 참회인지,
또 누구를 향한 참회인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참회가
그 누군가에게 들리기를.
더불어서,
나의 참회도
함께 빌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오늘 방송 시작이 너무 거창한가요? 히히히
이 방송도 표절했다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 먼저 이실직고를 해야겠군요.
위에 써 놓은 글은 제가 쓴 글이 아니라 오래 전에 끝난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빌려온 것입니다.
정은임이라는 분은 90년대에 MBC에서 방송을 진행하던 아나운서였습니다.
주요 시간대 방송을 화려하게 진행했던 것은 아니고, 교양 프로그램이나 새벽 시간 음악방송을 진행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깊이 있는 멘트와 차분한 진행으로 은근히 팬들이 많았었는데, 2004년 방송국으로 출근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분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새벽 시간에 진행했던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들이 장난이 아닌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 하나를 빌려와서 제 방송을 시작해봤습니다.
이 멘트가 언제 적 방송에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10여 년은 지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상황에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닐까요?
중들이 호텔방에서 포커 치면서 지랄을 한 게 들통이 나니까
조계종 대빵이 “참회합니다”라고 요란하게 성명서를 발표했죠.
중들이 그렇게 설쳐대는 게 처음이 아니니까 신기할 것도 없지만
“참회합니다”라는 좋은 말을 중들이 하면 왜 아파트분양 광고지 문구처럼 들리는지...
“참회합니다”라는 말과 비슷한 말로 “책임을 통감합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회합니다”라는 말은 주로 종교인들이 하는 말이고
“책임을 통감합니다”라는 말은 주로 정치인들이 하는 말이지요.
우리 역사에서 무수한 정치인들이 “책임을 통감합니다”라고 얘기를 해왔는데
그들이 제대로 반성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썩어빠진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것이 진보정당이었는데
요즘 이 분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돈과 권력이 참 달콤하긴 한가 봅니다.
쩝~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2003년 10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위원장이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고공농성을 벌이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새벽 음악프로그램 진행자는 짧은 오프닝 멘트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강한 여운을 주는 멘트가 아직도 마음을 울컥하게 만듭니다.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는 배현진 아나운서가 장기파업 중인 노동조합을 탈퇴해서 다시 방송에 복귀했다지요.
MBC 아나운서라면 머리도 좋고 얼굴도 예쁜 사람들인데
정은임과 배현진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요?
2
뻐국이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는걸 보니 아카시아 꽃피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봄도다리 쑥국을 끓이고, 취나물 두릅나물이 밥상에 오르는 내 고향 소식을 보면서 또 한철이 지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주시는 고마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선망하는 제주도 그중에서도 한적한 농촌에 계시니 그것만으로도 행복 아닐까요.
토착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필수 있는 날들이 도래하길 바랍니다.
그 동네 그 사람이 좋아서 또 다시 가고 싶은 곳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저도 가볍게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우스워 보이냐”가 벌써 10회차 이오니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보는 라디오도 있다고 하던데 편지로 듣는 라디오라 더욱 의미 있고 감동입니다.
얼만 전까지만 하더라도 황정민의 FM대행진을 들을 수가 있었는데 교정방송으로 대체를 해서 아쉽기만 합니다.
대신 편지 라디오 즐겁게 듣겠습니다. 토속 제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소식이면 관심층도 넓어지지 않을까요...
제가 처음 제주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 일입니다. 목포역에서 기차 타고 입대를 하는데 모인 사람 절반이 제주 장정 이었습니다.
모두들 처음 기차를 타본다며 신기해하던 모습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그중 몇 명은 자대까지 함께 가는 인연이기도 했지요. 모두들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갖고 있었어요. 서귀포에서 귤 농사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잘 지내고 있겠죠.
늘 산책하는 코스에는 초록이 짙어지고 있는지요.
제 마음은 삼복더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대비가 내리고 쇠창살도 녹여버릴 것 같은 여름 말입니다.
생과 사의 경계마저 허물어진 세상의 뒤편에서 절규하고 있는 동지들 곁으로 달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기보다 힘든 시간을 처절함을 양분삼아 연명하고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이곳은 온실이고 전 나약한 화초임을 알고 있기에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하기만 합니다.
대한문 빈소에는 시민들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합니다.
한 번에 몽땅 이루고야 말겠다는 이상보다는 희망의 빛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동지들의 소망을 함께 해 주시겠다니 강철대오의 연대보다 고마울 뿐입니다.
기쁜 소식, 승리의 소식, 먼저 간 아까운 동지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소식을 바다 건너 전할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꺾이지 않는 분들이 있기에 희망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알아가고 있습니다.
노동자답게 살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어 오늘도 행복합니다.
애월읍에도 희망이 짙푸러지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2012. 4. 29
화성옥에서 상균 書
이 방송을 시작한 후로 두 번째 사연이 도착했습니다.
교도소에 계신 관계로 시차가 조금 있는 사연이군요.
그래도 유일하게 이 방송에 사연을 보내주시는 분이라서 기분은 죽입니다.
벌써 3년의 시간이 그 끝을 보이고 있군요.
‘벌써’라고 얘기하면 좀 실례인가요?
그곳에서 나와 봐야 고달픈 해고자 신세에다가 22명이나 죽어 가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 숨 막히는 세상이겠지만...
갇혀서 혼자 있는 것보다는 같이 투쟁할 수 있는 동지들이 있는 곳이 훨씬 났겠지요.
아직 석 달 정도 남으신 것 같은데, 남아 있는 기간을 보내는 게 지금까지의 기간보다 더 힘들지 않을까 살짝 걱정을 해봅니다.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봄이 스치듯 지나가버리는 요즘
다가오는 여름이 기다려지신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기온이 높아진다고 날자가 더 빨리 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높아지는 기온만큼 희망이 더 가까워진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빨리 봄이 가고 여름이 왔으면 하는 한상균 씨를 위해서 노래 하나 준비했습니다.
본인의 취향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 상황에 어울리는 노래인지 모르겠지만...
워낙 유명한 노래라서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상균 씨는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읽는 라디오의 최대의 장점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버전으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한영애의 걸쭉하고 독특한 목소리로 들어보려고 합니다.
‘봄날은 간다’ 듣겠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니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3
광고 하나 하겠습니다.
이 방송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의뢰가 들어온 광고가 아니라 그냥 제가 알리고 싶어서 해보는 광고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제주에 있으면서도 가끔 집회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어서 요즘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저 지역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으로 추측만 할뿐이지요.
지역주민들이야 몇 년째 계속 싸움을 해오고 있어서 힘들지만 버티는 내공은 생겼을 텐데
작년부터 제주도로 날아와서 강정마을에 눌러앉아 싸우고 있는 이들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1년 동안 경찰 투입과 강제 철거, 구럼비 해안 발파 등 큰 파도가 두 세 번 넘실거렸습니다.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들은 무수히 있었고, 구속되는 사람들도 무수히 있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계속되는 긴장으로 살아가다보니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어지기도 하겠지요.
물론, 투쟁이 힘든 일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속에서 새로운 활력도 얻어가고는 있겠지만, 그게 힘든 것을 모두 털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구럼비 해안은 계속 깨져나가고 있는데
도지사는 정치적 쑈만 하면서 공사를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선거 때 모두가 달려왔던 야당들은 선거가 끝나고 나니 강정마을을 잊기 시작했고
제주도민들도 강정마을에서 마음이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기온만큼 몸도 쳐지기 시작하는 요즘이
지치기 가장 좋은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때입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잘 버티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 분들이 잘 버티시라고 마음을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마음을 돈으로 표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ㅋㅋㅋ
만원씩만 이 분들에게 전해봤으면 합니다.
농협 351-0294-9968-13 강정마을회
농협 351-0366-8652-33 권영애 (삼거리 식당 후원)
농협 351-0394-4160-23 유가일 (평화활동가 후원)
4
언젠가 이 방송에서 칠레의 가수인 비올레타 파라에 대한 얘기를 했었는데요, 오늘은 칠레의 또 다른 가수 빅토르 하라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비올레파 파라보다 15살 정도 어린 빅토르 하라는 1932년에 칠레의 어느 농촌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그런 조건에서의 삶이라는 게 뻔해서, 가난한 술꾼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근근이 버티면서 자랐습니다. 나중에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도시빈민으로 살아가지요.
빅토르 하라의 어머니가 노래에 소질이 있어서 가끔 잔치집 같은데 가서 노래를 불러주고 돈을 받아오기는 했지만, 빅토르 하라는 노래보다는 연극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기술대학 연극교수가 되면서 삶이 풀리던 즈음에 비올레타 파라를 만나면서 노래를 본격적으로 하게 됩니다. 가난한 이들의 정서를 노래했던 비올레타 파라의 영향을 받아서 빅토르 하라도 민중음악을 하게 되면서 점점 좌파운동에 참여하게 되지요.
1970년 대선에서 아옌테 민중연합정권이 들어서자 부인인 조안 하라와 함께 문화운동에 달라붙어서 대중 속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3년의 기간을 보내던 중 1973년 9월 11일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쿠데타가 일어난 그 날 아옌테 대통령이 국립기술대학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계엄령 속에 대학으로 들어간 그는 600여 명의 교수 학생들과 함께 그곳에 갇혀 버립니다. 빨갱이 소굴로 소문난 그 대학을 쿠데타 군이 포위해 버린 것이죠.
멀리 보이는 대통령궁은 공군기에 의해 폭격당하고, 대학 주변에서는 총소리가 수시로 들리는 극도의 공포 상황에서 빅토로 하라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 상황을 이겨내려고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대학으로 들어와서 교수와 학생들을 근처에 있는 복싱 경기장인 칠레 스타디움으로 끌고 갑니다. 유명 인사였던 빅토르 하라는 따로 수용된 후에 지하 고문실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수천 명이 있었던 그곳은 생지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수시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나서 질질 끌려오고, 확성기에서는 온갖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몇몇 사람들은 바닥으로 몸을 던져서 자살하고, 무서워서 고함을 지르는 사람은 기관총에 맞아서 죽어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빅토르 하라는 종이와 연필을 구해서 노래를 적어나갑니다. 동료들이 그렇게 만든 노래를 외워서 세상에 그 노래를 알렸지만, 빅토르 하라는 다음날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그의 마지막 노래인 ‘칠레 스타디움’입니다.
인터넷에서 빅토르 하라의 노래를 검색해서 들어보면, 약간 거친 목소리로 기타를 치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비올레타 파라와 같은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뛰어난 가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알고 그의 노래 가사를 들어보면 폼 잡고 적당히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가사 하나 하나가 삶 속에서 나온 진짜 노래라는 것이지요.
빅토르 하라의 목소리로는 들을 수 없는 노래 ‘칠레 스타디움’을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들 중 여섯이
별나라로 사라졌지.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맞았지.
한 인간을 그렇게 때리는 것이 가능할까?
다른 네 명은 스스로
모든 두려움을 밀쳐버리고자 했지.
한 명은 허공으로 뛰어내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벽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그러나 그들 모두 죽음을 똑똑히 응시했다네.
파시즘의 얼굴이 자아내는 이 공포를 보라!
파시스트들은 그 어떤 것도 상관없다는 듯
교묘하고 정확하게 계획을 실행하네.
그들에게 피는 메달이고
학살은 영웅적 행동이지.
신이시여! 이곳이 당신이 만든 세상입니까?
경이로운 7일간의 일이 이것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이 네 개의 벽에는
멈춰진 숫자만이 하나 있네.
천천히 더 많은 죽음을 원할 테지.
그러나 갑자기 의식이 요동치더니
맥박 없는 이 물결과
타이프라이터 소리와
한껏 온화한 산타 얼굴을 한
군인들이 바라보네.
5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앞바다는 참 정겹습니다.
잔잔한 바다와 함께 걷고 있노라면 바다처럼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녹색 잡풀을 밟으면서 새파란 하늘과 맑은 쪽빛 바다가 만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그지없이 편안해집니다.
그 여유로운 바다 위에 조그만 배라도 한 척 떠있으면 내가 배가 되어 바다 위를 여유롭게 떠다니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여유로운 바다와 함께 걷고 있으면
때 이른 더위도 참을 만하고
깎아지를 듯이 서있는 벼랑도 편안하게 다가오고
가끔 분위기 잡치게 속도를 내며 달리는 차에도 미소를 보낼 수 있습니다.
바다는 그렇게 저를 여유롭고 편안하게 만듭니다.
좀 더 가까이 바다로 향해 봅니다.
코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이 향긋합니다.
발끝에 와 닿는 바다의 감촉이 상쾌합니다.
눈 속에 들어온 바다는 저를 빨아들입니다.
그지없이 맑고 깨끗한 바다가 저를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바다와 하나가 되면서 바다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지없이 맑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말입니다.
맑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으면 됩니다.
세상을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복잡해지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말 단순해집니다.
거짓말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솔직하게 살아가다보면 그것이 거짓말 하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맑고 깨끗한 바다를 보면 제 마음도 맑고 깨끗해지듯이
제가 맑고 깨끗하게 살아가면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도 맑고 깨끗해지고
그러다보면 서로가 편안해지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동화 속의 세상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그러다보면 거짓말이 늘게 되지요.
거짓말이 많아지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다보면 세상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서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작은 욕심 때문에 큰 상처를 주기도 하지요.
오해와 욕심이 만나면 서로의 관계는 훨씬 불편해집니다.
그 불편함이 힘들어서 사람들과 떨어져 있게 되면
점점 괴물이 되어갑니다.
맑고 깨끗한 바다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거기에 비친 제 얼굴이 보입니다.
그 얼굴이 그지없이 맑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얼굴이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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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11회)
1
며칠 전에 ‘디어 한나’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영국영화였는데, 무거운 삶의 얘기를 기교 부리지 않고 차분하게 해나가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영국의 어느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조셉이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가난하게 혼자 살아가는 그 남자는 도박을 하고 나서 돈을 잃자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서 소중하게 기르던 개를 발로 차서 죽여 버릴 정도로 성질도 더럽습니다.
그렇게 밑바닥에서 거칠게 살아가던 조셉이 어느 날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급하게 어느 옷가게로 들어가서 숨게 됩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옷가게 여주인(그 여자의 이름이 한나입니다)은 잠시 당황하다가 차분하게 조셉을 살피면서 진정시키려고 합니다.
한나의 따뜻한 배려에도 조셉은 거칠게 댓구를 하지만, 한나는 그가 매우 불안해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한나는 “제가 기도해 드릴까요?” 얘기를 하고는 조셉 곁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노인을 보살펴 달라고 진심 어린 기도를 합니다.
가만히 한나의 기도를 듣던 조셉은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런 호의에 대해 조셉은 다시 배부른 것들의 위선적인 호의라고 거칠게 쏘아붙이면서 그 가게를 나와 버립니다.
다음날 조셉은 다시 그 가게를 찾아가서 전날 자신이 거칠게 얘기했던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한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사과를 받아줍니다.
그렇게 잠시 서로 얘기를 나누지만 한나의 따뜻한 배려가 좋으면서도 불편해진 조셉은 마음에 없는 거친 말을 해서 한나를 울게 만들어버리지요.
그러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조셉은 다시 한나의 가게 앞에 쓰러지게 되고, 조셉을 발견한 한나는 조셉을 다시 위로해줍니다.
그런 한나의 위로와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조셉은 거친 말과 행동을 이어가면서 한나를 또 불편하게 합니다.
밑바닥에서 온갖 상처를 받아가면서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그랬습니다.
불안하고 거친 영혼을 따뜻하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쓰다듬어줬던 한나는 부유한 동네에서 깊은 신앙심을 갖고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 달리 한나는 남편의 병적인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지요.
남들은 알지 못하는 그런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착하고 밝게 살아가려고 했던 한나는 자신의 아픔을 오직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용서와 화해로 모든 이들을 품으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픔을 가슴 속에 묻고 있었기 때문에 노인의 불안한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한나의 아픔을 알지 못했던 조셉이 점점 한나에게 의지하게 되던 어느 날 남편이 두 사람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병적인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날 밤 남편의 폭력이 무서운 한나는 혼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오해하지 말아요. 제발 때리지 말아줘요”라고 애원을 하지만, 착하게 생긴 남편은 그런 그녀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런 남편 앞에서 처음으로 거칠게 대항했던 한나에게 남편은 무자비한 폭행과 강간으로 대응합니다.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온 한나는 조셉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얘기합니다.
그제야 여자의 아픔을 알게 된 조셉은 그동안 자신에게 베풀었던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한나를 자신의 집에서 보살펴줍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겨움과 과거의 말 못할 상처를 갖고 있던 조셉은 한나를 오래 보살펴주지 못하고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남의 고통까지 받아 안아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거지요.
그리고 이야기는 어떤 사건과 결합하면서 극적으로 전개됩니다.
현재 이 영화가 개봉하고 있기 때문에 이후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노인의 삶이 내 삶과 너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더러운 성질까지 닮았더군요.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나중에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도 흘러나오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지...
‘디어 한나’에 나왔던 노래 하나 듣겠습니다.
‘Sing All Our Cares Away’라는 노래인데요, 제가 번역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영어로 그대로 듣겠습니다.
Mary loves the Grouse
Hides the bottles round the house
Watches chat shows and the soaps
Broken Hearted but she copes
Michaels out of work
Feels Hes sinking in the murk
Hes unshaven and a mess
Finds it hard some days to dress
Stevie smashed the delph
Cos he can't express himself
Hes consumed by rage
Like his father at his age
Ritas little child
Has a lovely little smile
But this means nothing to her father
Cos hes never even seen her
But we sing
sing all our cares away
And we live
to fight another day
But we sing
sing all our cares away
And we live
to fight another day
We grow strong
From it all
We grow strong
or we fall
We grow strong
2
‘디어 한나’를 보고 났더니 작년에 봤던 ‘세상의 모든 계절’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우연치 않게 ‘세상의 모든 계절’도 영국영화였습니다.
영국의 어느 도시 변두리에 살고 있는 메리는 가난하고 외로운 중년의 여자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어느 기관에서 일하고 있던 메리는 그곳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던 제리라는 여자와 친하게 지냅니다.
도시 외곽에서 텃밭도 가꾸면서 가족과 함께 단란한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는 제리는 가난하고 외로운 메리를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가까운 이들과 함께 모여서 벌이는 가벼운 파티에도 메리를 초대해주고, 힘겨운 삶에 지쳐있는 메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위로합니다.
그런 제리와 그의 가족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동하고, 그들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 부러운 메리는 어떻게든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좀 과하게 싶을 정도로 섹시한 옷을 입고 파티에 나타나기도 하고, 제리의 아들에게도 필요 이상의 애정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외롭고 힘든 삶을 강조하면서 동정심을 일으키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제리의 가족들은 메리의 과도한 친밀감의 표현에 불편해 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메리를 위로해줄 뿐입니다.
어느 날 제리의 아들이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 자리에 연락도 없이 메리가 찾아와서 끼게 됩니다.
제리의 아들은 여자친구에게 “엄마의 회사 동료인데, 좀 독특한 사람이야”라고 메리에 대해 설명합니다.
가족들의 행복한 자리에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끼어 앉은 메리는 그들의 얘기에 끼어들려고 하지만 그들은 메리를 그들의 대화에 끼워주지 않습니다.
제리 가족들의 행복 대화 속에 소외된 채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메리의 표정을 비춰주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의 얘기를 듣고만 있는 메리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무 외로워서 행복한 이들과 같이 어울리면 살고 싶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메리는 푼수 같은 행동만 하면서 밀려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런 메리의 행동을 보면서 많이 속상했습니다.
그게 제 모습이었거든요.
그런 푼수가 되지 않으려고 날카로운 고슴도치가 된 것이 ‘디어 한나’의 조셉입니다.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지만 분위기 파악 못하는 푼수가 되거나, 그걸 애써 포기하고 강한 척 해야 하는 모습이 가난하고 외롭고 상처받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입니다.
재미있는 영화들도 많은데
나는 왜 하필 이런 영화를 봐서
속상해 하고 질질 짜고 그러는지...
3
독실한 신자였던 한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모든 고통을 참고 살아갑니다.
남편이 한나를 폭행한 다음날 울면서 사과하면 한나 역시 울면서 남편을 안아줍니다.
가식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게 남편이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변하기를 원했던 거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한나가 조셉과 같이 있는 장면을 보고 “있다가 집에서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자 한나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무서움과 힘겨움에 지친 한나는 가게에 걸려있던 예수님 사진을 향해 “뭘 봐!”라면서 고함을 지르고 맙니다.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하면서 버텨왔는데, 그런 한나를 보면서 침묵만 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원망스러웠던 것이지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또 울컥 했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위한 진심어린 한나의 기도에 눈물을 흘렸던 조셉은 한나의 사랑에 위안을 받습니다.
그래서 조셉은 한나를 찾았던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조셉은 한나에서 쓴 편지에서 “나를 위해 미소를 지어준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당신을 찾았지만, 당신의 고통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고 솔직히 예기합니다.
그런 조셉은 한나를 뿌리치지 못하고 손을 잡아주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조셉이 힘들 때 한나가 기댈 수 있는 하나님이 돼 주었던 것처럼, 한나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조셉이 한나의 하나님이 돼 주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렇게 상처받은 모습으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조셉처럼 저도 신을 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고통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 나만큼 고통스럽게 발버둥치고 있다면
그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 많이 힘들겠지만
내가 그의 하나님이 되어주어야겠지요.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 듣겠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텅 빈 얼굴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구름 저 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4
‘디어 한나’에서 이 방송의 이름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허름한 술집에서 혼자 술을 먹던 조셉이 시비를 거는 동네 양아치를 몰아붙이면서 “내가 우스워 보이냐? 응! 우스워보여?”라고 고함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살짝 미소를 지어봤습니다.
이 방송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스워 보이냐?”라는 말은 삶의 밑바닥에서 끝임 없이 허우적거리면서 살아가는 허접한 인간들이 참고 참고 또 참고 살아가다가 한 번 성질을 내면서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방송에서 그런 얘기들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롤러코스터의 ‘힘을 내요, 미스터 김’과 자우림의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라는 노래로 시작한 이 방송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한 방송입니다.
작년 연말에 시작한 이 방송이 벌써 10회를 넘겨서 5개월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친다는 심정으로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처럼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얘기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하지만 지난 5개월 동안 인터넷에 올린 방송에 짧은 댓글이 2개 달리고, 교도소에 있는 한 분이 편지를 보내주셨던 것이 이 방송에 대한 반응의 전부였습니다.
용기를 내서 다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보았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지요.
그런데도 저는 계속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손 좀 잡아주세요”라는 심정으로 5개월 동안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나의 고통을 알게 되고 난 후 “저 좀 안아주세요”라고 울먹이는 한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조셉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방송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제가 힘들면 힘든 사연을 얘기할 것이고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을 짜증나게 반복해서 얘기할 것이고
허접한 하소연들도 푼수처럼 계속 얘기할 겁니다.
이 방송을 통해서 그런 얘기를 계속 들으면 많이 불편하시겠지요.
그런데도 침묵 속에 저의 허접한 기도를 계속 들어주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이 저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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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10회)
1
요즘 날씨도 너무 좋고, 꽃들도 화사하게 피어 있어서 봄을 즐기기에 딱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방송의 원고를 쓰기 시작하는 오늘은 강한 바람에 비가 많이 내려서 갑자기 추워진 날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원고를 마칠 때쯤이면 다시 화창한 봄 날씨가 돌아올 것이라고 하니 좋은 날씨를 상상하면서 방송을 한다고 해도 사기는 아니겠지요? ㅋㅋㅋ)
봄을 맞아서 여기저기서 축제들도 다양하게 열리고 있고, 놀러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곳 제주 역시 더욱 일찍 찾아온 봄이 한창이라서 쉼 없이 몰려드는 봄나들이 관광객들로 인해 비행기표를 구하기도 어렵고 전세버스들도 모자라서 시외버스까지 동원한다고 합니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를 맞아서 오늘은 제주 여행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여행가이드 같은 것은 아니니까 그런 기대는 하지 마시고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제주 여행에 대한 얘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노래 하나 듣고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해보죠.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20대였을 때 좋아했던 들국화의 멤버 최성원이 부른 노래입니다.
‘제주도의 푸른 밤’ 듣겠습니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티비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 봐요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떠나요 둘이서 힘들게 별로 없어요
제주도 푸른 밤 그별 아래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 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
2
요즘은 저가항공사가 생겨서 제주 여행하기가 훨씬 쉬워졌고
오름기행이니 테마관광이니 올레코스니 하면서 다양한 여행상품들이 개발돼서
큰 돈 들이지 않고 여유롭게 제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유명 관광지에 대한 선호가 조금 줄었다고 하고는 있지만
막상 제주도를 찾게 되면 관광지를 가지 않을 수는 없지요.
제가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는 제주도의 상징적인 관광지 중의 하나인 용두암이 있는 동네였습니다.
제주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바닷가에 좀 특이하게 생긴 바위가 있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것이 없기는 하지만, 용머리처럼 생긴 특이한 바위 때문에 유명한 곳이었지요.
80년대까지만 해도 관광객들이 지금처럼 마구 몰려왔던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어지러운 개발로 마을과 자연이 망가지기 전이어서
용두암 주변도 작은 도시 외곽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네였습니다.
용두암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국민학교를 다니던 저는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같이 바다로 가서 팬티만 입고 수영을 하곤 했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일을 마치고 온 아버지와 같이 가서 가볍게 물놀이를 하기도 했고요.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용두암은 화려한 관광지라기보다는 즐겁게 놀던 동네 앞바다였습니다.
중학교를 들어갈 때 쯤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계속 객지생활을 하게 되면서
용두암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습니다.
어릴 적의 즐거웠던 추억이 남아 있던 용두암을 거의 30년 만에 찾았더니 엄청나게 변해 있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그곳이 유료관광지로 변해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어릴 때 빤스만 입고 헤엄치던 그 앞바다를 보려면 이제는 돈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구불구불한 시멘트길만이 있고 집도 별로 없던 그곳에 해안도로가 생기고 레스토랑과 횟집과 펜션들이 정신없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친구나 아버지와 함께 휴식과 수영을 즐겼던 그곳은 차와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그 동네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들은
PC방을 가서 휴식과 놀이를 즐기고 있을 것이고
여름에는 차를 타고 해수욕장으로 가서 수영을 즐기고 있겠지요.
용두암과 같은 관광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동네 바다는 어머니가 어릴 적에 미역이나 전복 같은 먹을거리를 따오던 곳이었고, 명절에 고향을 찾은 20대의 제가 여유롭게 산책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해안도로가 생겨서 펜션과 레스토랑과 횟집들이 그곳을 차지해버렸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은 마을 해녀회에서 운영하는 횟집 한 군데가 유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육지에 살고 있는 돈 많은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즐겁게 제주를 여행하면서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그곳들은
현지인을 쫓아내고
외지인이 외지인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들입니다.
제주만이 아니라 유명한 거의 모든 관광지는 다 그렇습니다.
떠나요 둘이서 힘들게 별로 없어요
제주도 푸른 밤 그별 아래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 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
3
제주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이 자주 하는 얘기 중의 하나가 “자연도 너무 좋고, 사람들도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후에 성인이 된 후 20년 정도 대도시 생활을 해봤던 제가 보기에도 제주만큼 아름다운 자연 속에 큰 욕심 없이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 사회 전반이 갖고 있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가 강하게 남아 있고, 신자유주의 개발로 인해 사람들의 관계가 많이 깨져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살았던 서울이나 울산에 비하면 착하게 살아가는 삶을 느끼게 하는 동네인 것은 사실입니다.
아름답고 편안한 자연 속에서 좁은 공동체를 이루면 살아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면서 다른 사람을 등쳐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동네입니다.
그래서 장수하시는 어른들도 많은가 봅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관광버스가 지나가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세요”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관광버스가 지나가면 환하게 웃으면 손을 흔들었고, 그런 저희를 보면서 관광객들도 환하게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물론 저희나 관광객이나 모두 가식 없는 솔직한 웃음과 손동작이었지요.
그때마다 관광객들은 “제주도 사람들은 참 순수하고 밝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저희들은 “육지 사람들은 돈도 많고 멋있고 매너도 좋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환한 웃음과 손짓 사이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격차가 있었던 것입니다.
관광지에서 자란 아이들은 화려하게 차려 입은 관광객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초란한 삶을 비교하곤 합니다.
비슷하게 살아가는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비굴함 비슷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것이지요.
과거 한국 사람들이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던 의식과 비슷한 것이지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지방인 제주도는 역사적으로도 육지에 대한 배타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제주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육지 것들’이라는 부정적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아 있습니다.
작년에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 과정에서 서울과 경기지역 경찰이 투입되자 “육지 경찰이 몰려온다”라면서 반발했던 것도 그런 심리입니다.
저처럼 제주에서 나고 자란 후에 육지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고향에 왔을 때 대도시에서 몸에 익혔던 생활습관대로 행동하면 대뜸 “육지 물 먹었더니 잘난 척 한다”는 말을 듣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섬사람들의 속 좁은 옹졸함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육지 사람들에 의해 당해왔던 피해의식과 관광객들을 통해서 보고 느끼게 된 열등의식이 뼛속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가 너무 아름답고 사람들의 순수함이 좋아서 제주에 내려와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정책적으로도 공공기관 이전이나 국제학교 개교나 기업체 유치 등을 통해 육지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전해 살도록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제주도에 와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곧 느끼게 됩니다.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을 구경거리로만 대해왔던 자연스러운 결과이지요.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티비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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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자치권이 대폭 확대된 특별자치도입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올 때 비자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섬이라는 특수성과 관광지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라는 국가의 특혜(?)이지요.
그렇게 특혜를 입은 이곳에서는 각종 정책이나 사업들이 선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쓰레기종량제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실시한데 이어, 음식물쓰레기종량제도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제자유도시를 만들기 위해 관광산업을 비롯한 각종 개발정책도 과감하게 추진해서 지하수도 마구 팔고, 해안만이 아니라 중산간까지 마구 개발해서 홍수가 없는 지역에 홍수도 나고 그럽니다.
국제화시대에 앞서가기 위해 외국학교들이 운영하는 국제학교를 계속 만들어서 부자들의 해외유학 수요를 끌어들이고도 있습니다.
환경보호를 위한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을 위해서 여기저기 풍력발전단지를 가능한 많이 만들어서 재벌들을 유혹하고 있기도 합니다.
주민밀착형 행정을 위해 과감하게 행정구역을 통합해서 다른 지역의 행정통합을 선도하더니, 이제는 다시 통합된 행정구역을 쪼개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의료관광과 연계된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부자들을 위한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하기 위해 적당한 시점을 계속 살피고 있기도 하지요.
해양 국방을 강화하고 남방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항공모함이 들어설 수 있는 대규모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겠지요?
신자유주의 시대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험들이 이곳 제주도에서 선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실험이 성공하면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고, 문제가 있으면 그냥 폐기해버리는 것이지요.
제주도민들은 관광지의 원숭이 재능만이 아니라 실험실의 생쥐 기능까지 갖춰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하냐고요?
쉽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인데다가 인구도 50만 명이 조금 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개발이나 관광이나 특별자치 같은 것들로 포장을 잘 하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어도 도지사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도지사에게 권한을 잔득 주고, 문제가 커지면 육지에서 병력을 지원해서 눌러버리면 되니까요.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
5
2년 전에 생각지 못했던 분이 저에게 전화를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가족이 제주도로 놀러 가는데 어디로 어떻게 가면 좋냐?”고 묻더군요.
워낙 많이 받았던 질문이라서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제주도는 발길 닫는 어디든 좋으니까 관광지만 빼고 바람 따라서 어디든 편하게 가면 된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그러지 말고 좀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역시 망설이지 않고 “내가 제주도를 떠나 있었던 지가 오래 되서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는 관광시설들은 잘 알지 못하고, 우리 동네도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나한테 묻지 말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게 빠를 거다”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불쾌한 감정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의 굵은 목소리로 “고맙다”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더군요.
그 이후로 그 분은 다시는 저한테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그 분은 제 몸에 신나를 뿌리면서 투쟁할 때도 연락하지 않았고, 외로움 때문에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릴 때도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삶의 밑바닥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저한테 연락을 했던 것입니다.
제 고향이 제주도이다보니 가끔 사람들이 고향집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저를 이용해서 제주도를 와봤던 분들도 있고
제주도 온 김에 저를 찾았던 분들도 있지만
온전히 인간 김성민을 보기위해서 제 고향집을 찾았던 분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진보의 가치는 이윤보다 인간의 가치라고 주장하며 실천해왔었는데
제주도 관광에서는 인간의 가치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6
요즘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흥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학시절 첫사랑의 기억을 갖고 있는 남녀가 제주도에 집을 짓는 과정에서 첫사랑의 아련함과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하더군요.
지역 방송에서도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하면서 은근히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 영화 속에서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요?
아름다운 자연 속에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한 낭만적인 곳으로 그려져 있지 않을까 추측을 해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제주도 이미지는 항상 그런 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장동건과 고소영이 나왔던 ‘연풍연가’라는 영화도 그랬고, 전도연과 박해일이 나왔던 ‘인어공주’라는 영화도 그랬습니다.
지금처럼 제주도 여행이 활발하지 않았던 1980년대에서는 ‘애마부인’과 같은 에로영화의 단골 촬영지로 이용되던 곳이 제주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주도는 삶에 지친 이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낭만을 찾고 일탈을 꿈꾸기 좋은 곳으로 그려집니다.
도시를 뒤로하고 아름다운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관광객 10명 중의 1명은 선글라스와 화려한 옷차림으로 관광지와 마을을 돌아다닙니다.
관광객 100명 중의 1명은 신나게 차를 몰면서 시골 마을길을 빠른 속도로 달려갑니다.
관광객 1000명 중의 1명은 술을 먹고 자유로운 일탈을 즐기다가 크고 작은 사고를 냅니다.
관광객 10000명 중의 1명은 일탈을 즐기는 과정에서 중대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올 해 제주도는 관광객 천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쩝~
요즘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져서 관광지에서 함부로 환경을 훼손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주도를 여행하시는 여러분,
자연만 보호해주시지 말고
사람도 보호해주세요.
제주 출신 가수 혜은이가 부른 ‘감수광’을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감수광 감수광
날 어떡헐랭 감수광
설른 사람 보냄시메
가거들랑 혼조옵서예
겨울 오는 한라산에 눈이 덮여도
당신하고 나 사이에는 봄이 한창이라오
감수광 감수광
날 어떡헐랭 감수광
설른 사람 보냄시메
가거들랑 혼조옵서예
어쩌다가 나를 두고 떠난다 해도
못잊어 그리우면 혼조 돌아옵서예
감수광 감수광
날 어떡헐랭 감수광
설른 사람 보냄시메
가거들랑 혼조옵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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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9회)
1
오늘은 동화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동화책을 마지막으로 읽어본 적이 언제인가요?
저는 어린 조카들이 있어서 가끔 조카들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고르러 가곤 합니다.
동화책 코너에 가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화려하게 전시돼 있는데 막상 그 내용들을 보면 예쁜 공주나 멋있는 왕자들의 얘기들이 수두룩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꿈과 낭만 가득한 책들만 쌓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조카들에게 냉혹한 현실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지는 않지만, 동화 속의 세상은 현실과 너무 달라도 한참 달라서 좀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공주나 왕자는 젊고 잘 생기고 부자인데 하녀나 마녀는 늙고 못 생기고 가난한 사람들로만 채워지는 동화를 읽다보면 나이 들고 못 생기고 가난하고 성격도 더러운 저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동화책을 조카들에게 읽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유치한 콤플렉스인가요? 히히히
하지만 안데르센의 동화를 조카들에게 읽어주다 보면 오히려 저를 위한 동화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른 동화들과 달리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못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옵니다. 엄지아가씨와 외다리 장난감 병정은 장애인이 주인공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도 못 생기고 성격도 비뚤어진 어린 오리의 얘기이고, 인어공주는 사람도 아니고 물고기도 아닌 불완전한 인어가 벙어리 인간이 되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이고,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한 아이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죽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다른 동화 속에서는 하인이나 악당으로 나오는 이들을 안데르센은 주인공으로 삼아서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얘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안데르센이 이런 동화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가난하고 소외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못 생긴 외모와 각종 콤플렉스 때문에 평생 사랑을 이뤄보지 못한 그는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저와 같은 허접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 아픔을 달래주는 동화들을 썼던 것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나 엄지 아가씨처럼 행복한 결말로 끝나면서 용기를 주는 동화도 있지만, 성냥팔이 소녀나 인어공주나 외다리 장난감 병정처럼 냉혹한 현실에서 죽음으로 끝을 맞는 슬픈 동화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데르센의 동화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년에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쓸쓸하고 고통스럽게 죽은 사연이 전해진 적이 있습니다. 힘들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갔던 그는 옆집 문에 “창피하지만, 남는 밥과 김치가 있으면 조그만 주세요”라는 메모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 뉴스 때문에 며칠 동안 마음이 먹먹해져 있었는데, MBC라디오 여성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인 강석우씨가 “그 작가가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 병으로 죽은 것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강석우씨는 그 작가의 죽음이 알려지기 몇 달 전에 가족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갔다 왔다고 방송에서 자랑을 하곤 했었는데 말입니다.
그 시나리오 작가나 강석우씨도 어렸을 때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었겠지요.
오늘 그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성냥팔이 소녀’를 읽어볼까 합니다.
어느 겨울날 밤에 있었던 이야기다. 추운 날씨 탓에 거리에는 일찌감치 인적이 끊기고 매서운 겨울바람만이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눈마저 내려 거리는 온통 하얀빛이었다.
“성냥 사세요.”
성냥팔이 소녀가 가냘프게 외쳤다. 소녀의 맨발은 검붉게 얼어 있었고, 머리 위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앞치마에서 성냥을 꺼내 들며 소녀는 다시 한 번 외쳤다.
“성냥 사세요.”
소녀의 외침은 너무 작아 금방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소녀는 하루 종일 성냥을 팔러 돌아다녔다.
그러나 성냥은 한 다발도 팔지 못했다. 게다가 성냥을 파는 소녀를 누구 하나 불쌍하다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성냥팔이 소녀는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성냥을 팔지 못했다고 아버지한테 혼이 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설령 아버지한테 혼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집 안에 있는 것이나 거리에 있는 것이나 춥기는 매한가지였다.
집집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들의 창문에서는 밝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으며, 거위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겼다.
소녀는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창문 안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소녀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걸어 다녔던 것이다.
다리가 몹시 아팠던 소녀는 어느 집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람이 더욱 차가워지자 소녀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아! 내게 성냥이 있지.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언 손을 조금 녹일 수 있을 거야.’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치직’소리와 함께 성냥개비가 탔다. 불꽃은 작았지만 무척 밝았다. 소녀는 그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아주 큰 난롯가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소녀는 두 발도 녹이기로 했다. 그래서 두 발을 뻗었는데, 그만 성냥불이 꺼져 버렸다.
소녀는 다시 성냥개비를 꺼냈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잘 차려진 식탁이 보였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거위와 탐스러운 온갖 과일들, 초콜릿 비스킷, 크림이 듬뿍 얹혀진 조각 케이크가 둥근 식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소녀는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조각 케이크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가네 성냥불이 꺼지고 말았다.
성냥팔이 소녀는 아쉬워하며 자기가 무엇을 먹을지 고민만하지 않았다면 조각 케이크를 먹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소녀는 다시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다. 소녀는 화려하게 꾸며진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서 있었다. 트리에 꽂혀 있는 수많은 촛불들은 형형색색의 빛을 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어느 부잣집에 성냥을 팔러 갔다가 우연히 본 그 트리보다 더 근사해 보였다. 소녀가 큰 별 하나를 트리 꼭대기에 얹으려고 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순간 성냥불이 꺼졌다.
소녀는 밤 하늘을 쳐다보았다. 트리에 꽂혀 있던 수많은 촛불들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듯, 별은 각기 다른 빛으로 반짝거렸다. 그 때 별 하나가 떨어졌다. 소녀는 별을 쳐다보다가 할머니께서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다는 것은 한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있다는 얘기란다.”
소녀는 누군가가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소녀는 다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자 환한 불빛 속에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가 소녀를 보고 따뜻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할머니! 할머니 곁에 있고 싶어요. 제발 사라지지 마세요. 제발요.”
소녀는 할머니가 난로처럼, 잘 차려진 식탁처럼,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사라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남아 있는 성냥을 모두 꺼내 불을 붙였다. 불꽃이 그렇게 크고 환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손녀를 따뜻한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추위도 배고픔도 없는 세상으로 손녀를 데려갔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모여 웅성댔다. 한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 얼어 죽어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한 손에는 타 버린 성냥다발을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녀가 몸을 녹이려고 성냥에 불을 붙였다고 생각하며 가여워했다. 아무도 소녀가 작은 불빛을 통해 자신을 가장 아껴 주는 사람의 품에 안겼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2
한국에도 어린이 책을 쓰는 작가분들이 참 많은데, 그 중에서도 권정생 선생의 책들은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줍니다.
특히, 6.25 전쟁통에 배다른 동생들을 돌보면서 힘들게 살아갔던 절름발이 소녀인 몽실이의 얘기인 ‘몽실언니’는 청소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삭막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온갖 아픔들을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으면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착하기만 한 몽실언니가 너무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그게 우리 어머니 세대의 삶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권정생 선생의 글들은 주로 어린아이들을 위한 글들이 많지만 정말 내공이 장난이 아닙니다. 해방 전에 일본에서 태어나서 차별 속에 살아가다가 해방 후에 돌아온 조국에서도 가난과 병으로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야 했던 권정생 선생은 평생을 그런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결핵 때문에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거지로 살아가다가 1967년부터 어느 조그만 마을 교회의 종지기로 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쓴 동화가 ‘강아지똥’이었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서 그냥 버리는 개똥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 개똥을 보면서 자신이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 머리말에 “거지가 글을 썼습니다. 전쟁 마당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얻어먹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찌나 배고프고 목말라 지쳐 버린 끝에, 참다 못 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되었으니 글다운 글이 못 됩니다”라고 썼습니다.
‘개 같은 인생’이라고 한탄하는 이들보다 더 못한 ‘개똥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강아지똥’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돌이네 흰둥이가 누고 간 똥입니다.
흰둥이는 아직 어린 강아지였기 때문에 강아지똥이 되겠습니다.
골목길 담 밑 구석자리였습니다. 바로 앞으로 소달구지 바퀴 자국이 나있습니다.
추운 겨울, 서리가 하얗게 내린 아침이어서 모락모락 오르던 김이 금방 식어 버렸습니다. 강아지똥은 오들오들 추워집니다. 참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강아지똥 곁에 앉더니 주둥이로 콕! 쪼아 보고, 퉤퉤 침을 뱉고는,
"똥 똥 똥 ······에그 더러워!"
쫑알거리며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강아지똥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똥이라니? 그리고 더럽다니?"
무척 속상합니다. 참새가 날아간 쪽을 보고 눈을 힘껏 흘겨 줍니다. 밉고 밉고 또 밉습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런 창피가 어디 있겠어요.
강아지똥이 그렇게 잔뜩 화가 나서 있는데, 소달구지 바퀴 자국 한가운데 뒹굴고 있던 흙덩이가 바라보고 빙긋 웃습니다.
"뭣 땜에 웃니, 넌?"
강아지똥이 골난 목소리로 대듭니다.
"똥을 똥이라 않고, 그럼 뭐라고 부르니?"
흙덩이는 능글맞게 히죽 웃으며 되묻습니다.
강아지똥은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목 안에 가득 치미는 분통을 억지로 참습니다. 그러다가,
"똥이면 어떠니? 어떠니!"
발악이라도 하듯 소리 지릅니다. 눈물이 글썽해집니다. 흙덩이는 여전히 빙글거리며,
"똥 중에서도 제일 더러운 개똥이야."
하고는 용용 죽겠지 하듯이 쳐다봅니다.
강아지똥은 기어이 울음보를 터뜨립니다. 울면서 쫑알거렸습니다.
"그럼, 너는 뭐야? 울퉁불퉁하고, 시커멓고, 마치 도둑놈같이·····."
이번에는 흙덩이가 말문이 막혔습니다.
멀뚱해진 채 강아지똥이 쫑알거리며 우는 것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강아지똥은 실컷 울다가 골목길 담벽에 노랗게 햇빛이 비칠 때야 겨우 울음을 그쳤습니다. 코를 홀찌락 씻고는 뾰로통 딴 데를 보고 있었습니다. 보고 있던 흙덩이가 나직이,
"강아지똥아·····."
하고 부릅니다. 무척 부드럽고 정답습니다. 하지만 강아지똥은 못들은 체 대답을 않습니다. 대답은커녕 더욱 얄밉다 싶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정말 도둑놈만큼 나빴어."
흙덩이는 정색을 하고 용서를 빕니다.
강아지똥은 그래도 입을 꼭 다물고 눈도 깜짝 않습니다.
"내가 괜히 그래 봤지 뭐야. 정말은 나도 너처럼 못 생기고, 더럽고, 버림 받은 몸이란다. 오히려 마음속은 너보다 더 흉측할지 모를 거야."
흙덩이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 제 신세타령을 들려주었습니다.
"내가 본래 살던 곳은 저쪽 산 밑 따뜻한 양지였어. 거기서 난 아기 감자 기르기도 하고, 기장과 조도 가꿨어. 여름에는 자주빛과 하얀 감자꽃을 곱게 피우며 정말 즐거웠어. 하느님께서 내게 시키신 일을 그렇게 부지런히 했단다. 그러던 것을 어제, 밭 임자가 소달구지를 끌고 와서 흙을 파 실었어. 집 짓는데 쓴다지 않니. 나는 무척 기뻤어. 밭에서 곡식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집을 짓는 것도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니. 집은 사람들을 따듯하게 재워주고 짐승들을 키우는 곳이 거든. 그래서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딴 애들과 함께 달구지에 실려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를 멈춘 흙덩이가 슬픈 얼굴을 지었습니다.
강아지똥이 놀라 쳐다봤습니다.
"그래서 어쨌니?"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잔뜩 뿔었던 화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다가 나 혼자 달구지에서 떨어져 버렸단다."
"어머나!"
"난 이젠 그만이야. 조금 있으면 달구지가 이리로 또 지나갈 거야. 그러면 바퀴에 콱 치이고 말지. 산산이 부서져서 가루가 된단다."
"산산이 부서져서 가루가 된다니?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되니?"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그걸로 끝이야."
둘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흙덩이가 다시,
"누구라도 죽는 일은 정말 슬퍼. 더욱이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은 괴로움이 더 하단다."
하고는 또 한 번 한숨을 들이킵니다.
강아지똥을 쳐다보고,
"그럼, 너도 나쁜 짓을 했니? 그래서 괴로우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 나도 나쁜 짓을 했어. 그래서 정말 괴롭구나. 어느 여름이야. 햇볕이 쨍쨍 쬐고 비는 오지 않고 해서 목이 무척 탔어. 그런데, 내가 가꾸던 아기 고추나무가 견디다 못해 말라 죽고 말았단다. 그게 나쁘지 뭐야. 왜 불쌍한 아기 고추나무를 살려 주지 못했는지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괴롭단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않니? 햇볕이 그토록 따갑게 쪼이고 비는 오지 않고 해서 말라 죽은 것 아냐?"
강아지똥은 흙덩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 고추나무는 내 몸뚱이에다 온통 뿌리를 박고 나만 의지하고 있었단다."
흙덩이는 어디까지나 제 잘못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길바닥에 버려지게 된 것을 그 죄 값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아기 고추나무가 못살게 제 몸뚱이의 물기를 빨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마음으로는 그만 죽어버려라 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아 흙덩이는 괴로운 것입니다.
만약 지금 다시 밭으로 갈수만 있다면 이제부터는 열심히 곡식을 가꾸리라 싶습니다. 그러나 이건 헛된 꿈입니다. 언제 달구지 바퀴에 치여 죽어 비릴지 모르는 운명인 것입니다. 흙덩이의 눈에 핑 눈물이 젖어듭니다.
그때, 과연 저쪽에서 요란한 소달구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나는 이제 그만이다.'
흙덩이는 저도 모르게 흐느끼고 말았습니다.
"강아지똥아, 난 그만 죽는다. 부디 너는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나 같은 더러운 게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니?"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소달구지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흙덩이는 눈을 꼭 감았습니다. 강아지똥은 그만 자기도 한몫에 치여 죽고 싶었습니다.
으르릉·····쾅!
그런데 갑자기 굴러오던 소달구지가 뚝 멈추었습니다.
"이건 우리 밭 흙이 아냐? 어제 이리로 가다가 떨어뜨린 게로군."
소달구지를 몰고 오던 아저씨가 한 말입니다. 그리고는 흙덩이를 조심스레 주워듭니다.
"우리 밭에 도루 갖다 놔야겠어. 아주 좋은 흙이거든."
흙덩이는 무어가 무언지 걷잡을 수 없습니다. 다만 달구지 한편에 얌전히 올라앉아, 방긋방긋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밭으로 도로 돌아가게 된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소달구지가 멀리 가 버린 다음, 아직도 그쪽으로 눈길을 준 채 빙그레 웃던 강아지똥이 혼자서 쓸쓸해졌습니다.
'그 애가 죽지 않고 도로 살던 곳에 가게 된 것이 참말 다행이야. 그럼 난 혼자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나?'
강아지똥은 고개를 갸우뚱 생각을 합니다.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조금 전에 흙덩이가 일러 준 말을 되뇌어 봅니다.
'정말 나도 하느님께서 만드셨다면 무엇에 귀하게 쓰일까?'
해가 저물도록 웅크리고 앉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어디선가 검은 구름떼가 몰려와 하늘 가득히 덮었습니다.
이내 사뿐사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솜이불처럼 강아지똥을 따뜻하게 덮어 줍니다.
눈 속에 묻혀, 강아지똥은 쌕쌕 잠이 들었습니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긴긴 겨울을 지냈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깔리고 골목길에 눈이 녹았습니다. 봄노래가 어디에나 흥겹게 들렸습니다. 꽁꽁 얼었던 강아지똥도 몸뚱이가 축 늘어지고 노곤해졌습니다. 껌벅껌벅 졸리는 눈을 억지로 뜨고 사방을 둘러 봤습니다. 겨울에 보던 것 보다 모두가 다릅니다.
예쁜 새가 날아갑니다. 꽃고무신을 신고 애들이 골목길을 뛰어갑니다.
"꼴꼴꼴·····."
"삐악 삐악 삐악 ·····"
힐끗 돌아보니 병아리 떼를 데린 엄마 닭이 분주히 걸어옵니다.
'저건 걸어 다니는 새들이구나.'
강아지똥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엄마 닭이 강아지똥 곁에까지 와서 기웃이 들여다봅니다.
"왜 그렇게 보셔요? 걸어 다니는 새님."
강아지똥은 조금 겁이 났기 때문에 무척 공손히 말했습니다.
"뭐라고? 나보고 걸어 다니는 새님이라고? 기막혀라. 이래봬도 난 여덟 마리의 아들과 다섯 마리의 딸을 데린 어엿한 병아리 어머니야."
엄마 닭은 조금 화가 난 듯, 그러나 젊잖게 신분을 밝혔습니다.
강아지똥은 코가 빨갛게 되어,
"병아리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하셔요."
하고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옳지, 아이들은 역시 잘못했을 때는 곧장 용서를 비는 것이 좋아."
이렇게 엄마 닭은 지나치게 위엄을 보이고는 이어서,
"널 들여다 본 것은 행여나 우리 아기들의 점심 요기라도 될까 싶어서 본 거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아지똥은 어쩌면 소름이 쫙 끼칠 만큼 무서운 말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고
"점심으로 나를 먹어주시겠다는 거죠? 좋아요, 모두 맛나게 먹어 주어요."
하고는 샛노란 열세 마리의 병아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이런 귀여운 아기들의 점심밥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면 기꺼이 제 몸을 내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 닭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너는 우리에게 아무 필요도 없어. 모두 찌꺼기뿐인 걸."
그러고는 병아리를 데리고 저쪽으로 가 버립니다.
"꼴꼴꼴·····."
"삐악 삐악 삐악 ·····."
강아지똥은 또 풀이 죽었습니다.
'나는 역시 아무데도 쓸 수 없는 찌꺼기인가 봐.'
저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이어서 눈물이 나오고 ·····.
강아지똥은 그만 하느님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하필이면 더럽고 쓸모없는 찌꺼기 똥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해서입니다.
봄날의 하루 해가 무척 지루합니다.
느리게 그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나왔습니다.
반짝반짝 고운 불빛은 언제나 꺼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다음날이면 역시 드높은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강아지똥은 눈부시게 쳐다보다가 어느 틈에 그 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똥은 자꾸만 울었습니다. 울면서 가슴 한 곳에다 그리운 별의 씨앗을 하나 심었습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봄을 치장하는 단비가 촉촉이 골목길을 적셨습니다. 강아지똥 바로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하나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내려다보고 물었습니다.
"난 예쁜 꽃이 피는 민들레란다."
"예쁜 꽃이라니! 하늘에 별만큼 고우니?"
"그럼!"
"반짝반짝 빛이 나니?"
"응, 샛노랗게 빛나."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어쩌면 며칠 전에 제 가슴 속에 심은 별의 씨앗이 싹터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떻게 그런 꽃을 피울 수 있니?"
물어 놓고 얼른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그건 하느님께서 비를 내리시고 따뜻한 햇볕을 비추시기 때문이야."
민들레는 예사로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역시 그럴 거야. 나하고야 무슨 상관이 있을라고·····.'
금방 강아지똥의 얼굴이 또 슬프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러자 민들레 싹이,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하고는 강아지똥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
"네가 거름이 되어 줘야 한단다."
강아지똥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서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려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그러고는 벅차오르는 기쁨에 그만 민들레 싹을 꼬옥 껴안아 버렸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비는 사흘 동안 계속 내렸습니다.
강아지똥은 온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습니다. 땅 속으로 모두 스며들어가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줄기를 따고 올라와 꽃봉오리를 맺었습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향긋한 내음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습니다.
3
일본작가가 쓴 ‘창가의 토토’라는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들 이상이 읽을 만한 책입니다. 물론, 어른들에게도 강추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진 토토라는 꼬마가 도모에학원이라는 조그만 학교를 다니면서 일어났던 일들을 아주 밝게 쓴 책입니다. 도모에학원은 요즘 개념으로 하면 장애인 대안학교 같은 곳인데 모두 조금씩 불편함이 있는 아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곳에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합니다.
약간 삐딱하게 보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식민지 착취를 일삼던 일본 제국주의 국가에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중산층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식민지 문제나 가난한 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기는 하지만, 어린 꼬마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약간 무리이기는 하겠지요.
밟고 착하게 조금은 불편한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망가진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DJ DOC의 노래 가사처럼 “착하게만 살기도 힘든 세상”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악하게 살기도 힘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토토가 친구랑 같이 벌였던 대모험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강당에서 야영을 한 다음 날은, 그야말로 토토가 대모험을 하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사실 토토는 야스아키와 어떤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또 야스아키네 식구들에게도 비밀이었는데, 다름 아닌 ‘토토의 나무에 야스아키를 초대’ 하는 것이었다.
도모에 학원 아이들은 언제부턴가 교정에 서 있는 나무들 중 한 그루씩을 자기만 올라탈 수 있는 나무로 지정해 놓고 있었다.
토토의 나무는 교정 저 끝, 구혼부츠로 가는 좁은 길과 울타리 사이에 서 있었다. 그 나무는 가지도 굵고 오를 때는 미끈미끈하지만, 기어서 오르면 아래에서 2미터 정도 부분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으며, 그 갈라진 부분이 해먹처럼 넉넉했다. 그래서 토토는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곧잘 그곳에 걸터앉아 먼 데를 구경하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길 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곤 했었다.
이런 식으로 제각기 자기 나무를 지정해 둔 탓에, 행여 다른 아이의 나무에 올라가고 싶을 때는 반드시
“계십니까?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그만큼 아이들은 자기 나무를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야스아키는 소아마비였기 때문에 나무에 올라가 본 적도 없었고 또 자기 나무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토토는 오늘 자기 나무에 야스아키를 초대하기로 마음먹고 야스아키와 약속을 했던 것이다. 더구나 용의주도하게 모두가 반대할 것에 대비하여 비밀로 삼기까지 하였다.
토토는 집을 나서면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덴엔쵸후에 있는 야스아키네 집에 다녀올게요.”
이 순간만큼은 거짓말을 하는 셈이라서, 토토는 되도록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신발끈 쪽만 열심히 쳐다봤다. 그런데 역까지 따라 나온 로키에게는 헤어질 때 그만 사실대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실은 야스아키를 내 나무에 초대했어!”
토토가 목에 맨 정액권을 펄럭거리며 학교에 도착하자, 여름방학이라 아무도 없는 교정의 화단 옆에 누군가가 벌써 와 있었다. 토토 보다 한 살 위였지만 언제나 훨씬 큰 아이처럼 말하곤 하는, 바로 야스아키였다.
야스아키는 토토가 눈에 띄자, 다리를 질질 끌면서 팔을 앞쪽으로 내미는듯한 자세로 토토 쪽으로 달려왔다. 토토는 아무도 모르는 모험을 지금부터 한다고 생각하자, 너무도 즐거워서 야스아키의 얼굴을 보며
“후후후”
하고 웃고 말았다. 야스아키도 따라 웃었다.
토토는 우선 자기 나무가 있는 곳으로 야스아키를 데려간 다음, 엊저녁부터 궁리한대로 사환아저씨의 헛간으로 달려가 사다리를 끌고 왔다. 그리고 그것을 나무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부분에 기대어 세운 다음 척척 올라가, 위에서 그것을 누르면서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됐어, 올라와 봐!”
하지만 야스아키는 팔과 다리에 힘이 없어서 혼자서는 도저히 한 계단도 올라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토토는 휙! 뒤로 돌아 사다리를 씩씩거리며 내려오더니, 이번에는 야스아키의 엉덩이를 뒤에서 밀어 위로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토토는 몸집이 작고 깡마른 아이였기 때문에 야스아키의 엉덩이를 미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휘청거리는 사다리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
야스아키는 사다리에 올랐던 다리를 도로 내리고선, 아무 말 없이 고개 숙인 채 사다리 앞에 서 있었다. 그제서야 토토는 이 모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임을 알았다.
(어떡하지...)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야스아키의 기대를 이루어주고 싶었다. 토토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야스아키의 앞쪽으로 돌아가서, 우선 입안에다 공기를 잔뜩 집어넣고 뺨을 부풀려 재미있는 표정을 지은 다음 기운차게 말했다.
“기다려 봐, 나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
그리고는 다시 헛간으로 달려갔다.
(뭔가 좋은 게 없을까...?)
토토는 이것저것 차례차례 끄집어 내 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접사다리를 발견했다.
(그래! 이거라면 흔들거리지 않으니까 잡고 있지 않아도 될 거야!)
토토는 그 접사다리를 질질 끌고 나왔다.
(와아! 내가 이렇게 힘이 센 줄은 정말 몰랐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힘이었다.
접사다리를 세워보니 나무가 두 갈래로 갈라진 지점까지 거의 닿았다. 토토는 마치 야스아키의 누나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됐지? 하나도 안 무서워. 이젠 흔들거리지 않으니까.”
야스아키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접사다리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담에 흠뻑 젖은 토토를 바라보았다. 야스아키도 땀이 비 오듯 했다.
야스아키는 천천히 나무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마음을 정한 듯 첫 번째 단에 천천히 발을 올렸다. 그때부터 야스아키가 접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지는 두 사람도 알지 못했다. 내리 쬐는 여름 땡볕 아래서 둘 다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단지 무슨 수를 써서든 야스아키가 접사다리 위까지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 외에는...
토토는 야스아키의 다리 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다리를 들어올리며, 머리로는 야스아키의 엉덩이를 받쳤다. 야스아키도 있는 힘을 다해 마침내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갔다.
“만세!”
그런데 그 다음이 또 절망적이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곳으로 뛰어오른 토토가, 아무리 잡아당겨도 접사다리 위에 있는 야스아키를 나무 위로 옮겨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야스아키는 접사다리 끝을 꽉 잡은 채 토토를 쳐다봤다. 갑자기 토토는 울고 싶어졌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내 나무에 야스아키를 초대해서 정말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지만 토토는 울지 않았다. 행여 자기가 울면 덩달아 야스아키까지 울어버릴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토토는 소아마비로 손가락이 들러붙은 야스아키의 손을 잡았다 자기 손보다 훨씬 손가락이 길고 커다란 그 손을... 토토는 그 손을 한참동안 잡고 있다가 말했다.
“한번 누워볼래? 잡아당겨 보게.”
이때 만약 접사다리 위에 엎드린 야스아키를 나무 위에 서서 잡아당기기 시작한 토토를, 지나가는 어른이 봤다면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을 게 분명하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은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야스아키는 완전히 토토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이때 토토도 자기의 온 생명을 걸고 야스아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토토는 조그마한 손으로 야스아키의 손을 꽉 붙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기기를 계속했다. 지나가던 소나기구름이 때로 강한 햇볕을 가려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두 사람은 나무 위에서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토토는 땀에 흠뻑 젖은 옆 가르마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말했다.
“어서 오세요.”
야스아키는 나무에 기댄 자세로 약간 쑥스러운 듯 웃으며 대답했다.
“실례합니다.”
야스아키는 처음 보는 경치에 너무도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듯 했다.
“나무에 오르는 기분이 어떤 건지, 이젠 알겠어!”
그로부터 두 사람은 한참동안 나무 위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야스아키는 열띤 목소리로 이런 얘기도 했다.
“미국에 사는 누나한테 들었는데, 미국에서 텔레비전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대! 그게 일본에 들어오면 집에 편안히 앉아서도 국기관에서 하는 씨름을 볼 수 있다는 거야! 꼭 상자처럼 생겼다던데.”
하지만 먼 곳에 가기가 힘든 야스아키가 집에서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직 토토로서는 실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상자 안에서 씨름을 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씨름선수들은 덩치가 큰데. 어떻게 집까지 와서 상자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래도 믿기 어려운 얘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때가지 아무도 텔레비전이라는 걸 모르던 시절의 일이었으니... 결국 토토에게 최초로 텔레비전 얘기를 해 준 사람이 바로 이 야스아키였다.
매미가 여기저기서 울고 있었다. 나무 위의 두 아이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러나 야스아키한테는 이때 나무에 오른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무타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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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던 날, 편한 영화가 한 편 보고 싶어서 ‘완득이’를 봤다.
이미 흥행에서는 검증이 된 영화인데다가 깊이 있는 사고를 필요로 하는 영화도 아니어서 편하게 보기에 딱 좋았다.
상업영화의 법칙을 따르면서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2세, 장애인문제 등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주제의식을 놓치지도 않았다.
중간 중간 눈물이 나오게 하는 요소들이 적절히 배치되면서 감동도 주었는데, 억지스러운 멜로영화에서 보여주는 강요된 감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이어서 좋았다.
조연들의 캐릭터가 약간 식상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두 주연의 캐릭터가 너무 살아 있는데다가 연기력도 받쳐주었기 때문에 영화의 흡입력도 높여 주었다.
어정쩡한 가족주의로 마무리되는 아쉬움이 너무 컸지만, 오래간만에 따뜻하고 진지하면서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완득이’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가 ‘방가방가’였다.
‘방가방가’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상업영화의 소재로서만 다룬다는 점이 달랐다.
‘방가방가’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10여 년 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됐던 문제들을 이제 와서 코믹한 소재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것도 한국인이었지만, 그들을 도와주는 것도 한국인이라는 민족주의를 은근히 깔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문제에 대한 성찰은 없이 유쾌한 헤프닝만이 남발하다 끝나버렸다.
하지만 ‘완득이’는 이주노동자의 2세들의 교육과 가난과 차별이라는 좀 더 시대에 맞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약간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거기에 장애인까지 끼워 넣으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로 눈을 넓히려한 노력이 보인다. 물론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각색이 되기는 했지만, 이주노동자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2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문제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인 이상 그에 시선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개그만들이 진지한 성찰 없이 웃음의 소재로만 삼는 식에서 진정성을 갖고 나아간 것이 ‘완득이’였다.
또 하나 비교되는 영화는 ‘도가니’였다.
2011년 하반기에 기대하지 않은 흥행작인데다가 사회문제를 진진하게 다룬 상업영화라는 점, 두 영화 모두 원작이 창비사의 소설이라는 점 등에서 비교되곤 했다.
‘도가니’가 사회 문제를 어둡고 도발적으로 다뤘다면, ‘완득이’는 밝고 희망적으로 다뤘다.
‘도가니’에서는 이기적이고 거친 호흡의 악한 인물들이 중심에 있다면, ‘완득이’에서는 이타적이고 긴 호흡의 착한 인물들이 중심에 있다.
‘도가니’는 현실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면서 고발했다면, ‘완득이’는 현실을 넘어서려는 희망의 노력을 설득하고 있었다.
‘도가니’가 현실의 한 측면을 과장했다면, ‘완득이’는 현실을 각색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현실은 ‘도가니’와 ‘완득이’ 사이에 어디쯤에 있을까?
‘도가니’에서 ‘완득이’를 이어 ‘부러진 화살’까지 이미 상업영화권에서도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나아고 있고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다.
그만큼 촛불세대로 상징되는 젊은 층들의 문화적 욕구들이 정치적이고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과 함께 중년층 역시 단순히 복고적 문화에만 만족하지 않는다는 현실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또 영화산업이 성장하고 영상문화에 익숙해진 세대들이 넓어지면서 돈만 들여서 적당한 비빔밥식으로 만드는 영화들은 더 이상 즐기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제 상업영화도 진지한 고민 속에서 잘 만들어야 한다.
상업영화의 흐름이 이 정도인데 오히려 그런 흐름에도 못 미치는 게 독립영화이지 않을까?
상업적으로 성공했든 아니든 넓은 의미의 최근 상업영화 감독들은 사회적 문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최근 독립영화 감독들은 반대로 자기만족에 빠져 들고 있는 형국이다.
낮술 먹고 해롱거리는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든가(낮술), 사회 주변층을 놓고 멋 부리는데 주력한다든다(혜화,동), 폼을 잡느라 자기가 얘기하는 주제가 뭔지도 진지하게 고민하제 않거나(파수꾼) 하는 식들이다.
독립영화들이 상업자본에서 자유로워지는 만큼 사회적 문제의식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작가주의는 상업영화권의 작가주의 감독들과 달리 사회적 성찰과 철학적 고민이 결여된 겉멋 작가주의일 뿐이었다. 영상세대의 성장이 사회적 의식의 성장과 결합하지 못할 경우 기성세대의 프레임을 다른 형태로 반복하게 된다는 점을 독립영화 감독들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10여 년 전에 나온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가 바로 이 시점에서 독립영화 감독들이 봐야 할 영화이다.
상업영화로서 사회적 주제를 나름대로 진지하게 다루면서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는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20%의 아쉬움이 남는 점이 있다.
10%는 감독들이 너무 상업영화의 법칙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자칫 이런 주제의 영화들도 돈이 되기 때문에 만든다는 식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영화적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대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또 10%는 감독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 철학적 고민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회문제를 이렇게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이라는 사람은 이 문제에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까? 그냥 연출자이기만 하면 될까? 아니면 기자 정신을 가져야 할까? 아니면 사회평론가? 아니면 운동가? 철학자?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감독 자신이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면서 만들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영화는 ‘무산일기’뿐이었다.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8회)
1
화창한 봄날입니다. 오늘은 저와 같이 산책을 해보실래요?
제주도는 여기저기 올레길이라고 해서 걷기 좋은 코스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는데요, 우리 동네 주변을 도는 저만의 올레 코스가 있거든요. 천천히 걸어서 3시간 정도 걸리는데 괜찮으시면 저와 같이 걸으면서 오래간만에 봄의 기운을 느껴보지 않으시렵니까? 준비물은 특별히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옷차림에 물 한 병과 초콜릿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가 조금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자, 출발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농촌입니다. 제주시내에서 많이 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완전 깡촌은 아니어서 젊은 사람들도 비교적 사는 편입니다.
바다를 끼고 해안도로가 있는데 이곳 해안도로는 경치가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절벽을 끼고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만 형태로 된 곳에 마을이 들어서 있고, 뒤로는 조그만 야산도 있는 분지 같은 지형인데, 동네가 편안한 형태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촌 동네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2층을 넘는 고층건물이 없어서 어디를 보더라도 시원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특유의 돌담들도 있고, 집과 집 사이에 중간 중간 밭들도 있고요.
제주도는 발길 닿는 어디든 다 편안하고 아름답기는 한데, 저희 동네는 화려하지 않게 아름다운 동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동네에 살고 있는 제가 부러우신가요? ㅋㅋㅋ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별로 편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제주시에서 가깝고 경치가 좋다보니 개발의 유혹이 동네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바다 쪽으로 있는 해안도로의 경치가 좋기 때문에 10여 년 전부터 각종 레스토랑이나 펜션 같은 것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장사가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펜션들이 무섭게 들어서기 시작해서 지금은 각종 펜션들 때문에 아름다운 해안선이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외지인들이 운영하는 펜션에 외지인 관광객들만 북적거리는 꼴이 되어버렸죠.
그런 펜션들이 마을로까지 무섭게 들어오려는 상황에서 마을회의를 통해 겨우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행히 마을 안에는 두 채 정도의 펜션만이 들어와 있지만 얼마 전에 올레 코스가 마을로 이어지면서 카페도 생기고, 토산품 판매점 같은 것도 공사를 하고 있어서 안심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치 좋은 관광지를 가면 아름다운 자연에 시설 좋은 펜션 같은 곳들이 있으면 관광객들에게는 좋겠지만,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일은 아니지요.
관광개발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마을 옆에 레미콘 회사가 있는데, 수시로 드나드는 대형차량들 때문에 마을 밖으로 다닐 때는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웃 마을에 항구 공사를 크게 하면서 해녀회는 반대를 하지만, 그에 이권에 있는 단체들은 찬성을 하는 등 갈등도 있고요.
몇 년 전에는 마을 바로 옆에 유류 저장시설이 들어서는 문제로 마을사람들이 반대를 하면서 갈등이 커졌던 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대기업인 정유회사에서 당시 마을 이장을 비롯해 몇 명에서 뇌물을 주면서 공사를 강행해 사법처리 되는 등 문제가 커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유류 저장시설은 들어오게 됐고, 당시 뇌물을 받았던 이들과 그에 반대했던 이들 간에 갈등은 아직도 이어집니다. 더 웃기는 건 뭐냐면, 뇌물을 받아서 사법처리까지 됐던 사람들이 아직도 마을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거지요.
이곳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어릴 적부터 계속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매우 강하고 외부에 대한 배타성도 장난이 아닙니다.
이곳은 저희 어머니 고향이고 아버지는 옆 동네가 고향이거든요. 이런저런 사연으로 20여 년 전에 이곳에 집을 지어서 살고 있는데, 아직도 ‘처가동네 와서 살고 있는 외방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부모님이 마을에 완전히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능하면 마을 외곽으로 나가서 살고 싶다고 하십니다.
저는 이 동네에서 계속 살아왔던 것도 아니어서 가끔 아는 사람이 오면 바닷가에 가서 술도 먹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이 마을에 사는 40대가 바닷가에서 술을 먹으면 “새파란 게 싸가기 없이 어른들 앞에서 술을 먹는다”고 꾸중을 합니다. 그래서 30~40대들도 가능하면서 마을에서 나가서 살고 싶어 합니다.
어떠신가요? 아직도 이 동네가 아름다워 보이시나요? ㅋㅋㅋ
2
이제 마을을 벋어나서 이 도로만 건너면 좀 편하게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원하게 뚫린 이 5차선 도로를 건널 때마다 항상 긴장을 해야 합니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이런 시골길은 차들이 넘쳐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속도를 줄이지 않습니다. 특히나 이렇게 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으면 더욱 그렇지요. 물론 신호등이 있기는 하지만 시골길에서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는데, 밭들이 마을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도로들을 건너야 밭에 갈 수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이런 동네에서 사고가 나면 대부분 중상이나 사망사고가 많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며칠 전에 바로 이곳에서 사고가 났거든요.
거의 매일 이곳을 건너야 하는 저는 이곳에서 ‘사람이 아니라 차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실감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곳일수록 신호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차가 없어도 파란불이 들어올 때가지 기다렸다가 건넜습니다. 하지만 차들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시골길에도 중간 중간 신호등이 있는 것이 짜증나는데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는 이런 곳에서 신호를 지키기 위해 정차하는 것이 귀찮은 거지요.
그래서 파란불이 켜져서 사람이 건너려 하는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쌩하고 지나가는 차가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5차선이나 되기 때문에 반대편으로 지나가는 거야 참을 수 있다고 쳐도, 바로 제가 건너려는 앞으로 지나가는 차를 볼 때는 무섭기도 합니다. 제가 지나자마자 바로 뒤로 쌩하게 차가 지나는 경우도 많고요. 그렇지만 할 수 있나요? 덩치도 크고 속도도 빠른 차가 주인인걸요.
또 이곳은 교차로라서 위쪽에서 내려오는 차들은 비보호 좌회전이어서 제가 파란불에 건너려고 할 때 좌회전을 하고 건너야 하거든요. 상식대로라면 사람이 먼저 건너고 차가 지나가야 하는데, 역시 차가 주인이기 때문에 상식은 간간히 무시됩니다. 그래서 좌회전 차가 있을 때는 저 긴장해야 합니다. 한 번은 파란불에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덩치가 커다란 레미콘 차량이 제 바로 옆으로 무섭게 지나가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의도적인 행동이었는데, ‘차가 기다리고 있는데 좆만한 게 빨리 건너지 않는다’고 겁을 준 거지요.
그런 일들을 몇 번 당하고 나면 무서워서 더 이상 신호를 기다리지 않게 됩니다. 주위를 살펴서 차가 없으면 신호에 상관없이 빨리 건너버리는 게 장땡입니다. 차가 있는데 신호만 믿고 괜히 깐죽거리다간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을 죽이는 방법 중에 가장 관대한 방법이 차를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것들은 다 알고 계시죠? 차를 몰고 사람을 죽여도 돈으로 합의만 보면 구속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흔한 게 현실이기도 하고요.
초반부터 제가 너무 무거운 얘기만 했나요? 기분을 잡쳤다면 미안하기는 한데요, 매번 긴장을 하면서 이곳을 건너야 하는 소심한 사람의 넋두리라고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지금부터는 밭들만 있는 곳이라서 좀 편하게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긴장을 푸시면 안 됩니다. 넓지 않은 편도 1차선의 이 좁은 길로 5분에 한 대 씩 커다란 레미콘이나 덤프트럭들이 다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밭들만 있어서 참 여유롭습니다. 오른쪽으로 있는 조그만 야산이 동네 이름을 따서 고내봉이라는 곳인데 이 옆으로 나있는 이 길로 가면 됩니다. 이곳은 경치가 비교적 좋은 편이라서 올레 코스도 이곳으로 이어집니다. 편하게 걸어보세요. 산책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잠시 여기에서 멈춰 보실래요?
야산을 끼고 도는 길이라서 약간 오르막인데 이곳이 여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왼쪽을 보면 저 아래로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주변으로 마을이 고즈넉하게 들어 앉아 있는 것이 보이죠?
앞쪽을 보세요. 크고 작은 밭들이 편안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바둑판처럼 정확하게 구분돼 있지는 않지만, 검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들이 어지럽지 않게 이런저런 작물들을 키우면서 이어져 있습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세요. 한라산이 보이죠? 저기 보이는 저곳이 백록담입니다. 주변이 하얀걸 보면 아직 눈이 많이 쌓여 있나 봅니다.
이곳에 서 있으면 이렇게 바다와 밭과 산을 병풍처럼 쭉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저희 밭도 저 앞에 있어서 매일 이 경치를 보는데 전혀 질리지가 않습니다.
밭일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바다와 한라산을 바라보면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앗! 조심하세요.
제가 미리 얘기했죠? 5분에 한 대 씩 저런 덩치 큰 차들이 좁은 이 길을 속도로 줄이지 않고 저렇게 지나갑니다.
여유롭게 경치만을 즐기기에는 이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쩌겠어요. 차가 주인인 세상인데...
4
이제 고내봉으로 올라가볼까요?
동네에 있는 그저 그런 야산이라서 뛰어난 경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이 있어서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높지는 않지만 산은 산이라서 조금 숨이 찰 겁니다.
한라산 주변으로 크고 작은 오름들이 널려 있는데 이곳도 그런 오름 중의 하나입니다.
경치가 별로라서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인데, 오래간만에 삼림욕한다고 생각하시고 걸어보세요.
휴~ 조금 숨도 차고 땀도 나네요.
여기가 정상은 아닌데 정상에 가봐야 나무로 둘러싸여서 볼 것도 없고 송신탑만 있어서 별로 거든요.
여기 의자가 있는데 앉을까요?
이 옆이 공동묘지라서 1년에 한 번 벌초하러 오는 정도인데 이곳에 오면 참 편안해집니다.
원래 묘지가 주는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저 앞으로 보이는 경치가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여기서는 조금 전에 봤던 아름다운 경치는 없습니다.
눈 쌓인 백록담도 안 보이고, 푸른 바다도 보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저렇게 완만하게 늘어진 한라산의 자락이 보여요.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으스대지 않으면서 제주도를 품고 있는 큰 산이라는 여유로움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깊고 울창한 이미지와 완전히 다르지요.
그리고 띄엄띄엄 널려있는 저 오름들을 보세요.
어머니 품속에 안겨있는 아이들 같은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옆에 있는 무덤들과 저 앞에 널려 있는 오름들을 같이 보다보면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조금 전에 봤던 멋있는 경치와 비교해보면 어떤 느낌이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보는 한라산의 느낌이 좋은 것은 여유로움과 포근함만이 아닙니다.
아까는 그저 아름다운 경치만이 눈에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한라산과 오름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름들 사이사이에 들어서 있는 마을들
마을들을 이어주는 도로들
그 중간 중간 펼쳐져 있는 밭들이 다 보입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제 삶이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경치가 좋습니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곳도 싫지는 않지만, 왠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점도 있거든요.
하지만 멋들어지지는 않지만, 이렇게 서로 어울려 있는 모습 속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이곳을 가장 좋아합니다.
여기서 노래 하나 들어볼래요?
여기 mp3플레이어가 있는데 같이 들어봐요.
시와라는 가수의 ‘랄랄라’라는 노랩니다.
여기 앉아서
좀 전에 있었던 자리를 본다
아, 묘한 기분
저기에 있었던 내가 보인다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저기에 있었을 땐 볼 수 없었지
흐르는 물소리 떨어지는 꽃잎
발소리 내는 것도 조심스러워
흐르는 물속에 세상이 비치네
내 얼굴도 미춰볼까
5
이 길은 고내봉을 끼고 좀 전에 우리가 왔던 길과 반대쪽 길입니다.
이쪽도 경치는 별로이기는 하지만 차에 대한 걱정 없이 아주 편하게 밭들 사이를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관광이 아닌 산책으로서는 최고의 길이지요.
요즘은 겨울 작물을 마무리 하는 시기라서 밭들이 조금 어지럽습니다.
여기저기 듬성듬성 나있는 것들은 쪽파입니다. 이 동네는 쪽파 재배를 많이 하는데 올 겨울에는 쪽파 시세가 별로였습니다. 비교적 따뜻한 겨울이어서 쪽파가 너무 많이 출하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직도 저렇게 쪽파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겁니다. 그래도 작업은 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 중간 괜찮은 것들로 골라서 작업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씨로 만들어서 여름이나 다음 겨울에 다시 수확을 합니다.
저기 어지럽게 버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밭들은 브로콜리입니다. 브로콜리는 12월이나 1월 한참 추울 때 수확하는데 그때 어려서 수확하지 못한 것들은 지금 저렇게 자라서 풍성한 꽃다발처럼 보입니다.
저기 양배추 밭은 뒤늦게 수확을 하고 있군요.
거의 비어있는 무밭에는 중간 중간 무들이 남아 있습니다. 올해 겨울무가 너무 많이 재배돼서 산지폐기문제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여기 정리되지 않은 잔디처럼 자라있는 것은 맥주보리입니다. 옛날에는 보리 농사도 많이 지었다고 그러는데, 요즘에는 보리 시세가 별로라서 보리 농사를 거의 하지 않거든요.
여기 쭉쭉 뻗어 있는 것들은 마늘인데, 마늘은 다른 작물과 달리 1년 농사라서 5월쯤에 수확을 합니다.
여기 유채꽃처럼 보이는 노란꽃이 보이시죠? 이건 유채꽃이 아니라 배추에서 자란 동지라고 합니다. 어머니 얘기로는 옛날에는 동지로 김치도 담가 먹고 그랬다는데 요즘은 그냥 둔다고 합니다.
유채는 조금 지나서 피는데 옛날과 달리 농사로 재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관광지 경관용으로 길거리에 심어놓는 것뿐입니다.
우리 동네를 지나다보니까 붉은 백합이랑 하얀 목련이 막 꽃이 피기 시작했던데, 아직은 꽃들이 피려면 조금 있어야 하나 봅니다.l
아~ 저기 보세요.
밭담 위로 개나리가 있는데, 꽃망울이 막 올라오고 있어요.
초록색 사이로 노란색이 비치는 게 너무 앙증맞기도 하고, 싱싱해 보이기도 하네요.
꽃을 막 피우기 직전의 생동감이 이런 건가 봅니다.
다음 주쯤 되면 개나리도 피기 시작하겠군요.
개나리의 저런 모습을 보니까 정말 기분이 상쾌해지는군요.
기분 좋은데 제가 노래 하나 부를까요? 히히히
가끔 산책을 하면서 혼자 흥얼거려보는 노랜데 한 번 들어보세요.
음~ 음~
세상에 태어나
생의 먼 길을
쉼 없이 걸어갈 때
인간에게서 한없이 소중한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조국에 바친 청춘이던가
나를 위한 안락이던가
동지들이여 생각해보라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조끔 쑥스럽네요.
비장한 기운이 팍팍 느껴지기는 하지만 뒷부분 가사보다는 앞부분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특히 ‘생의 먼 길을 쉼 없이 걸어갈 때’라는 가사가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오래 걸어온 삶인 거 같은데, 이제 겨우 반 정도 걸어왔으니 말입니다. 히히히
6
이제 좀 피곤이 느껴지는데 여기 밭담에 앉아서 잠시 쉴까요?
물도 좀 마시고, 초콜릿도 하나 먹어야겠습니다.
봄 햇살이 참 따뜻하네요.
바람이 살며시 불어오는데, 이제는 춥다는 느낌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정말 오래간만에의 산책인데 편안하고 좋습니다.
예전에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얘기를 넣어놓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생존자’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그 책은 다른 나치수용소 생존자들의 경험담과 달리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영웅담이나 인간승리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차분하게 분석하는 책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런저런 경험들을 얘기하는 중에 한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집단 강제수용소의 사람들은 모두가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었다. 모두 침묵 속에서 슬픔을 참고 있었다. 누구나 타인의 눈물을 이해했지만, 동정하지는 않았다. 불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동정하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재난에 동요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두 여인의 짧은 대화를 소개합니다.
“왜 울고 있어?”
나는 더 심하게 흐느껴 울었다.
“정말이지, 왜 울고 있는 거야? 우리는 모두 함께 있는데,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심하게 당하고 있는데 말이야.”
요즘 문든 이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며칠 전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요즘 좀 힘들거든요.
지난 번 방송에서 그에 대한 얘기도 했었지만...
그런데 부모님이 크게 다치신 것도 아닌데 혼자만 힘들다고 징징 짜는 꼴이었거든요.
나만 특별히 힘들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그 정도의 힘겨움은 대부분 갖고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유독 나만 더 힘든 것도 아니거든요.
너무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조용히 그 상처를 쓰다듬는 법인데
아직 내공이 모자란 저는 수없이 징징거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공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도 아니라면
이렇게 징징거리는 것도 내공을 쌓은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나만 왜 이러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변에 더 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이 보면 우습잖아요.
쉰다고 하면서 잠깐 무거운 얘기를 해버렸군요. 히히히
다시 움직여볼까요?
7
드디어 바다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우리 옆 동네인데 이쪽 동네에서는 바다 풍경이 가장 멋있습니다.
멋있게 해안산책로까지 있어서 10여 분 정도 해안산책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여기 낡은 벤치가 있는데 잠시 앉을까요?
휴~ 세 시간 정도 걸었더니 다리가 뻐근하네요.
오늘은 날씨도 참 좋고 바람도 거의 없어서 바다가 잔잔합니다.
이게 제주의 삼색 바다입니다.
검은 현무암과 하얀 모래, 그리고 쪽빛 바다이지요.
외국은 나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바다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름이면 세 가지 색깔이 제대로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쉽지만 그런 대로 괜찮지 않으세요?
여기서 이렇게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시원해집니다.
어릴 때는 이 바다가 세상의 끝이어서 많이 답답했거든요.
섬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런 기분을 이해할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이 바다가 세상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요.
그래서 편안하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거겠죠.
아~ 좋다!
여기서 노래 하나 더 들어볼래요?
제가 부르는 건 아니고요, mp3로 하나 더 들어보죠.
예전에 방송에서 한 번 들려드렸던 노랜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노래가 가장 어울릴 것 같아서 한 번 더 들어볼까 합니다.
이상은이 부른 ‘바다여’라는 노랩니다.
바다여 바다여
작디작은 내 맘의 상처
그대의 앞에선 작디작은 물거품이네
오랜 옛날 한 청년이 배를 타고 흘러흘러
작은 섬, 남쪽의 나라에 와서 살았다네
그 바다에 지금 그대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은 가장 빛나는 파란 보석
바다여 바다여
크디크던 내 맘의 상처
그대의 앞에선 작디작은 물거품이네
하늘이여 하늘이여
작디작은 내 꿈도 이젠
그대의 앞에선 반짝반짝 별 하나 되네
세상을 바꾸려고도 해보았고 사람들도 도와주며
세상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살기 싫어 떠났다네
땅에 떨어진 씨앗이 죽어서 더욱 큰 꿈으로 자라나
고운 열매와 붉은 꽃이
우... 세상을 바꿀 수 없는 건 알고 있겠지
우... 새벽 4시의 편의점에서 우는 그대여
우... 그대의 사랑으로 세상은 1mm 쯤
우... 아름다워졌을 거야 그러니 괜찮아
바다여 바다여
크디크던 내 맘의 상처
그대의 앞에선 작디작은 물거품이네
하늘이여 하늘이여
작디작은 내 꿈도 이젠
그대의 앞에선 반짝반짝 별 하나 되네
친구여 친구여
우리가 녹아버린 시간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 녹았을 뿐
이름 모를 꽃과 새들이 있는 먼 먼 남쪽
그는 또렷한 눈매의 별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네
오늘 산책이 어떠셨나요?
저 혼자 너무 떠들었던 건 아니겠죠?
오래간만에 이렇게 같이 산책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자, 이제 헤어져야겠군요.
다시 서로의 지옥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잘 버티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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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7회)
1
며칠 전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작업을 하러 밭으로 가다가 과속으로 달려오던 차와 부모님이 타신 차가 부딪힌 것이었습니다.
밭일을 위해 작업용으로 사신 중고 트럭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지만, 다행히 부모님은 크게 다치시지 않았습니다.
운전을 하시던 아버지는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였지만 뼈에는 이상이 없는 근육통이라고 해서 “천만 다행이다”면서 부모님을 안정시켜 드렸습니다.
평생 운수노동자로 살아오셨던 아버지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차가 완전히 파손될 정도의 사고는 처음이었거든요.
가득이나 나이 많은 두 분이 같이 타고 있는 상태에서 난 사고라 더 걱정스러웠는데...
사고가 난 다음날은 큰사위가 어머니를 위해 마련해준 이미자 콘서트를 보러가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 콘서트는 태어나서 처음인 어머니는 막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런데 가면 어떻게 해야 하냐?”라면서 조금은 들떠 있었는데 말입니다.
컴퓨터나 인터넷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시는 어머니가
이 방송을 보실 일은 없겠지만
어머니의 놀란 가슴과 아쉬운 마음을 생각하면서
이미자의 노래 하나를 듣겠습니다.
‘섬마을 선생님’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구름도 쫓겨 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2
주변에 뭔가 큰일이 나면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의 가치가 새롭게 돋보이기도 하지요.
나이 마흔을 넘긴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가정도 없고, 기술도 없고, 직장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이 3년이 넘게 빈둥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런 저를 불쌍하게 보거나 우습게 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동생과 매제까지도 은근히 무시하는 눈치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런 저를 받아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부모님이 사고를 당해서 집에 누워 있는데
사위들은 사고 수습을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하고
동생들은 병원과 보험처리를 위해 이런 저린 일을 하고
어린 조카들은 재롱을 부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로하는데
저는 제 방에 혼자 틀어박혀서 TV만 봅니다.
운전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고
만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곳도 없고
돈도 없기 때문에 금전적 도움을 줄 여지도 없고
일머리도 없어서 밭일을 혼자서 도맡아서 할 수도 없고
성격도 너무 무뎌져서 다정다감하게 위로를 해주지도 못합니다.
노동운동을 할 때 먹어줬다는 전력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나마 글 쓰는 재주가 조금 있다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저한테 어떤 것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합니다.
그런 행동들이 저를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저는
평소처럼 조용히 제 방에서 TV만 볼 뿐입니다.
3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어린애가 된다고 합니다.
소심한 성격에 착하게만 살아온 어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더 소심한 어린애가 돼버렸습니다.
가득이나 우울증까지 있어서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었는데
사고까지 당하고 나니 그 증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사고가 난 그날에는 모두가 놀라서 분주하게 사고 처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다음날부터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허리 통증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 힘겨운 아버지는 자리에 누워서 묵묵히 있었고
동생과 사위들은 이런 저런 일들을 차분하게 처리하고 있었고
별달리 할 일이 없는 저는 제 방에 틀어박혀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깨와 옆구리 쪽에 통증이 조금 있는 어머니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기에
간단한 집안일을 하시면서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하시는 것이 표가 났습니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불편하기는 했지만
서로가 진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녁이 되자 어머니의 증세가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버지를 위로한다고 하신 말이 오히려 아버지를 짜증나게 해서 분위기가 잠시 삭막해졌는데
잠시 후에는 세 명의 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시면서 울먹이기 시작하면서 집안 분위기는 급속히 무거워져 버렸습니다.
제 방에서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저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울먹이며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애써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으려고 노력하던 감정들을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역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있는 저로서는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난 3년여의 기간을 이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동안 무수히 해왔던 일입니다.
몇 번의 심호흡을 하는 가운데도 어머니의 통화는 계속 됐고
중간 중간 아버지의 볼멘소리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큰 딸과 통화를 하면서 또다시 어머니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리자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가서는 어머니에게 “제발 좀 그만하세요”라고 소리를 질러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안은 조용해졌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의 무거운 침묵이 그날 밤을 짓눌렀습니다.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극도로 조심하면서 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쾌활한 척 하지도 않았고
울먹이지도 않았고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서 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더 미칠 것 같았습니다.
같은 우울증 환자인 저는 어머니가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애써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울증 환자들은 어떤 큰 일이 생기고 나면 감정조절을 하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감정기복이 더 들쑥날쑥해집니다.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면 더 깊숙이 자신의 감정을 눌러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은 더 심해지는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애써 위로해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옆에서 그 얘기를 들어주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살며시 그 손을 잡아주는 것뿐인데...
한때 노동운동을 하면서 제가 해왔던 일이고
지금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그런 것이기도 한데...
그런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저는 그런 어머니에게 화를 내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 아버지는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어머니는 밭에 나가서 조금씩 일을 하시고 있고
저는 어머니 옆에서 밭일을 돕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을 하시면서 애써 조심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심호흡을 깊게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수없이 다짐합니다.
“도망가지 말자!”
4
솔직히 저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엉망이 돼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상황을 피해보려고 도망간다고 해도
허름한 자취방에서 혼자서 술을 먹고 있는 상황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결국 도망갈 곳도 없으면서 “도망가지 말자”라고 얘기하는 것은
빠져나가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발버둥치는 상황이 아니라
스스로 해쳐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상황이라고
제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입니다.
제 인생이 별 볼일 없는 인생이지만
제 나름대로의 삶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 원칙 중의 하나가 “쌩까지 말자”입니다.
내가 힘들 때 말없이 나를 받아주고
지난 3년 동안 묵묵히 지켜줬던 분들이
지금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도망간다는 건 제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병원에 있는 아버지에게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고
옆에 있는 어머니는 제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외롭게 부모님만 있는 것보다는
옆에서 간단한 일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아들이 있는 것이 조금은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눈치를 살피는 것도
무서워서가 아니라 걱정스러워서 그런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별 도움이 안 되는 걱정스러운 아들이고
수시로 짜증을 내면서 그 걱정을 더 키워내고 있지만
자식이라는 존재만으로 의지가 될 수 있다면
지금 제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이곳이라고 생각해봅니다.
5
벌써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다보니 삶의 기술이 조금씩 쌓여가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비울 수 없는 쓰리기통에 쓰레기를 계속 집어넣는 방법입니다.
“쓰레기통이 차면 비우면 되지”라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살다보니까 그런 일도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쓰레기를 마구 집어넣잖아요.
금방 쓰레기통이 차오르면 가볍게 툭툭 칩니다. 그러면 공간이 생겨요.
그래도 쌓이는 쓰레기 때문에 곧 차오르면 손으로 눌러서 넣지요.
그러다가 또 차면 발로 눌러서 또 넣고, 그러다 또 차면 신발을 신고 꽉꽉 누르면 공간이 또 생기지요.
그렇게 몇 번을 하다가 또 쌓이는 쓰레기 때문에 더 이상 공간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지면 화가 나서 쓰레기통을 발로 뻥 차버립니다. 그러면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던 쓰레기들이 주변에 쏟아지지요. 잠시 그렇게 쓰레기를 바라보고 있다가 화가 삭혀지면 할 수 없이 다시 쓰레기를 정리해서 담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류별로 크기별로 정리해서 다시 담으면 또 공간이 생겨요.
그때부터는 쓰레기를 종류별로 크기별로 분류해서 잘 포개면서 넣게 되죠.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또 쓰레기가 차거든요. 그러면 쓰레기통을 다시 비워서 쓰레기들을 새롭게 정리해서 넣습니다. 신기하게도 공간이 또 생겨요. 하하하.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 같은데 들어갈 자리가 계속 생기더라고요.
오늘 방송은 제 넋두리만 계속 늘어놓은 것 같군요. 히히히
이 시점에서 노래 하나 듣겠습니다.
윤시내의 ‘열애’입니다.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대의 그림자에 쌓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우우우우우~~~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우우우우우~~~
6
요즘 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이번 방송은 화사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서
또 칙칙한 내용의 방송이 되고 말았습니다.
별 볼일 없이 허접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봄 햇살을 마음껏 즐기는 것도 어려운가 봅니다.
다음 방송은 좀 더 밝은 방송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요 하나 들으면서 오늘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지금은 다섯 살이 된 둘째 조카가 세 살 때까지만 해도
제 무릎에 앉아서 ‘방귀대장 뿡뿡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곤 했거든요.
그러다가 노래가 나오면 같이 부르곤 했습니다.
지금은 시시하다고 뿡뿡이를 더 이상 보지도 않고
그 노래도 부르지만 않지만
그때의 기억은 제 가슴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숲 속 작은 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서있는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날 살려주지 않으면 포수가 와서 빵~ 쏜대요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
어
라~
-------------------------------------------------
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6회)
1
이제는 봄이라고 얘기해도 될 만큼 날씨가 많이 포근해졌습니다.
비교적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다가 마지막에 몰아친 2월 추위가 매서워서 그런지
따뜻한 3월의 기운이 몇 배는 더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점심을 먹고 무거운 몸을 달래려고 밭으로 향합니다.
많이 따뜻해졌다고는 하지만 바람이 불면 차가운 기운이 아직은 남아 있습니다.
10여 분 정도 걸어서 밭으로 가서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갑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하우스 안은 바깥 보다 훨씬 따뜻합니다.
햇살이 비치는 날이면 하우스 안은 계절이 한 달은 빨라서 4월의 봄기운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우스 구석자리 햇살이 잘 비치는 곳에 낡은 소파가 하나 있습니다.
커피를 한 잔을 들고는 소파에 앉아 따뜻한 봄 햇살을 즐깁니다.
겨울 동안 거의 자라지 않던 채소들이 하루하루 자라는 게 눈에 보입니다.
여기저기 왕성하게 자란 잡초들은 벌써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가 더 없이 달달합니다.
아직 겨울에 적응돼 있는 무거운 몸이
따뜻한 햇살과 달달한 커피 향에 감싸여
나른하게 풀리기 시작 할 때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조용히 흥얼거려봅니다.
아직도 내게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그 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드려진 안개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야만 하나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 있는 날까지
2
오래 전에 구속 되서 재판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초범인데다가 사안이 해결됐기 때문에 곧 풀려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구속되고 보름쯤 지나서 보석신청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보석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보석이 받아들여지면 보통 저녁 시간에 출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녁만 되면 교도관의 발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있었습니다.
이틀 후에 보석신청이 기각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을 했습니다.
1심 재판은 빠르게 진행 되서 구속 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으니 선고공판이 잡혔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집행유예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면회 오는 분들의 표정도 모두 밝았습니다.
공판 전날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하더니, 공판 당일 날은 아침부터 초조하게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다시 구치소로 들어온 그날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항소 후에는 일정도 조금씩 길어지고 구속 생활도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석 달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 항소심 선고공판 일정이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살만큼 살았으니 나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고공판이 있던 당일 오전에는 담당 교도관과 마지막 인사까지 나눴습니다.
점심을 먹고 출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를 부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면회 온 분이 얘기하기를 재판부 기류가 이상해서 변호사가 공판을 연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면회 온 분에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한 차례 연기됐던 선고공판이 보름 후에 열렸습니다.
자칫하면 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그날은 정말로 초조했습니다.
재판정에 들어서서 참관을 와 있는 분들의 얼굴을 보니 1심 때와 달리 굳은 얼굴들이었습니다.
똑바로 서서 선고를 하는 판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들었지만 “항소를 기각한다”라는 말만을 들어야 했습니다.
다시 구치소로 돌아온 그날은 1심 선고 때보다 더 힘겨운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형이 확정된 다음날 5개월 동안 길렀던 머리를 짧게 잘랐습니다.
국민학교 때 소풍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를 유심히 듣곤 했습니다.
그리고 소풍 전날에는 초조한 마음으로 계속 하늘만 바라봤습니다.
소풍 가는 날 아침에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제일 먼저 창밖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소풍 날 비가 내리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혹시나 곧 비가 그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등교시간까지 기다려보지만 비는 그치지 않고 소풍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게 되면 완전히 풀이 죽어버립니다.
그렇게 소풍 가방 대신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발걸음은 정말 무거웠습니다.
5개월의 재판 동안 초조하게 소풍을 기다리는 국민학생과 같은 기분을 몇 번이나 경험했던 것입니다.
벌써 몇 년 째 담장 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용산투쟁 구속자분들을 석방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렸습니다.
혹시 3.1절 특사로 구속되신 분들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3.1절에 그 분들의 석방소식은 들리지 않더군요.
운동도 없고 출역도 없는 3.1절 하루가 그 분들에게 힘겨운 하루로 다가온 것은 아닌지 살며시 걱정이 됩니다.
앞으로 또 초조하게 소풍을 기다리는 국민학생과 같은 심정으로 보내야 하는 건 아닌지...
용산투쟁으로 구속되신 분들에게 들려드립니다.
정태춘의 ‘형제에게’
갇힌 자 더욱 자유로운 땅
이 땅에 흐느끼는 소리여
높은 담 벽 아래 시들은 풀잎
저보다 더욱 초라한 역사여
깨인 자들에게 쏟아지는 시련
달빛 속으로 쫓기는 양심들
주검 없이 죽어간 청춘의 꽃들
다시 활짝 필 참세상은 어디
아 묶여서도 통일이라네
다시 만나야할 형제있으니
아 갇혀서도 해방이라네
조국의 역사로 살아 숨 쉬니
3
1917년 칠레의 어느 가난한 농촌에서 비올레타 파라라는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기타 연주를 잘했던 아버지와 노래를 잘 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낭만적인 분위기와 달리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야 했던 가난한 딴따라 집안이었을 뿐입니다. 한량인 아버지는 음악을 즐기기 위해 기타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어머니는 7남매를 키우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러주고 돈이나 먹을거리를 받아오는 삶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자 비올레타 파라는 17살 때부터 동생과 함께 식당과 기차 등에서 노래로 동냥을 하면서 10대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유일하게 제대로 된 공부를 하던 남동생을 따라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로 올라온 비올레타 파라는 술집을 전전하면서 노래로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래에 대한 열정과 밑바닥에서 버텨온 그의 성격은 대단해서 술에 취해 치근거리는 남자가 있으면 노래를 부르다말고 기타로 그 남자를 갈겨버리는 당당한 성격이기도 했습니다.
밤무대 가수로 살아가던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유행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처럼 가난하게 살면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노래를 부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35살의 나이에 혼자서 칠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민중들의 노래를 채집하기 시작합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걷거나 노새를 타고 먼 길을 떠나서 무작정 낯선 마을의 노인들이 사는 집들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찾아간 노인들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호감을 사고 난 후, 옛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졸라서 노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민속음악들을 배우고 모아나갔습니다.
그렇게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모은 노래들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하게 되면서 고향을 떠나온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게 됩니다. 그들 역시 비올레타 파라처럼 가난한 지방출신들이었기에 그 정서를 같이 느끼고 즐길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런 노력이 결실을 이뤄서 1955년 칠레의 민속음악대상을 받게 되고, 그 소식이 외국에 알려져 바르샤바 국제민속대회에 초청됩니다. 칠레 민중의 민속음악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비올레타 파라는 가족을 두고 바르샤바로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대회 도중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그는 딸의 죽음을 잊기 위해 오히려 미친 듯이 공연에 몰두했고, 대회가 끝난 후에는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칠레음악을 알립니다. 유럽에서는 생소한 칠레음악에 대해 제대로 대우를 해주지 않았고,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게 됩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려고 했던 그는 결국 딸의 죽음에 이어 두 번째 이혼을 하게 됩니다.
유럽에서도 싸구려 술집에서 노래를 하고, 허접한 여관들을 전전하는 삶으로 버티면서 몇 년을 고생한 끝에 파리에서 음반도 내고, 인류박물관과 유네스코에 칠레의 소리를 기록으로 남기고, 칠레 민속을 소개하는 책을 발간하고, 루브로 박물관 부속 전시실에서 자신이 만든 수공예품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칠레음악을 알리면서 유명해졌지만, 가난은 벋어날 수 없었습니다.
외국에서의 성공을 밑천 삼아서 칠레로 돌아온 그는 산티아고 변두리에 천막을 치고, 그곳을 민속음악의 메카로 만들려는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비올레타 파라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기대했던 행정적인 지원은 거의 없었고, 변두리까지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린 데다 마지막 남자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연인의 결혼 소식까지 들려왔습니다. 민속음악의 전당으로 키워보겠다고 생각한 그 천막에서 비올레타 파라는 마침내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렇게 그는 49년의 삶을 스스로 끝내버립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음반을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 두 곡을 들어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기타 하나 들고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주 고운 음색도 아니고, 화려한 리듬이 있지도 않고, 음유시인처럼 나지막하게 읊조리지도 않습니다. 가늘고 어두운 목소리로 가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단조로운 노래를 무표정하게 부르는데... 그냥 가만히 노래를 듣게 만들더니 어느 순간 잘 알지도 못하는 노래에 빠져들어 버립니다. 그런 것이 내공인가 봅니다.
1973년 쿠데타로 민중정권을 무너트린 독재정권에서 수 만 명의 칠레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됐습니다. 소리 없이 죽어간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칠레사람들은 비올레타 파라의 ‘삶에 감사해(Gracias a la vida)’를 불렀다고 합니다. 본인 역시 평생을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아갔으면서도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이 노래를 한국말로 불렀을 리는 없겠지만, 번역된 가사로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두 눈을 떴을 때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하늘의 많은 별,
그리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구별 할 수 있는 빛나는 두 눈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귀뚜라미와 까나리오 소리,
망치 소리, 터빈 소리, 개 짖는 소리, 소나기 소리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
이런 소리들을 밤낮으로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청각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춰주는 빛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단어의 소리와 문자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도시와 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평원
그리고 너의 집과 너의 길,
너의 정원을 걸었던 그 피곤한 나의 다리로 행진을 하게한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지식의 결실을 볼 때
악에서 아주 먼 선을 볼 때
너의 맑은 두 눈의 깊이를 볼 때
그것을 알고 떨리는 심장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드립니다.
행운과 불행을
내가 구별하게 한 웃음과 울음을 내게 준 삶에 감사드립니다.
웃음과 울음으로 내 노래는 만들어졌고
모든 이의 노래는 같은 노래이고
모든 이의 노래는 내 자신의 노래입니다.
어떠셨는지요?
무조건 “괜찮아, 힘을 내!”라는 식으로 허망한 위로를 일삼는 노래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깊이 있는 내공에 몸이 떨려오는 노래였습니다.
내친 김에 한 곡 더 듣겠습니다.
이번에 들을 곡은 ‘열일곱으로 돌아간다는 것은(Volver a los 17)’이라는 노래입니다.
칠레로 돌아와 천막 극장에서 또 다른 좌절 속에 자살을 생각하던 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만든 노래라고 합니다.
열일곱 살은 그가 산티아고로 와서 싸구려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정말 힘겨운 삶을 살아온 그가 사십대 후반의 나이가 돼서 자신의 삶을 어떤 마음으로 돌아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세기를 살고 열일곱 살로 돌아간다는 것은
고명한 현자는 아니지만 암호들을 풀어내는 것과 같고
문득 찰나같이 연약한 존재로 되돌아가
신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깊숙이 느끼는 것이네
이것이 바로 이 풍요로운 순간 내가 느끼는 것
당신들의 걸음이 앞으로 나아갈 때 내 걸음은 뒤로 물러났지만
하나됨의 활이 내 둥지를 관통해
그 풍요로운 색채는 내 혈관을 물들였네
우리를 묶는 운명의 단단한 사슬마저도
내 고요한 영혼을 비추는
순정한 다이아몬드 같기만 하네
벽에 담쟁이들이 자라듯
그렇게 휘감겨 가네, 휘감겨 가네
돌멩이에 이끼가 끼듯
그렇게 싹을 틔우네, 싹을 틔우네
그렇게, 그렇게....
감정으로는 가능한 그것
지식으로도 불가능했었고,
가장 명확한 행동으로도,
가장 넓은 사고로도 어찌할 수 없었네
그 모든 것을 바꾸는 순간의
관대한 마법은 우리를 부드럽게
증오와 폭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네
단지 사랑만이 그 기지로 우리를
그다지도 순수하게 되돌려놓네
사랑은 원초의 순수함을 지닌 회오리바람
광폭한 짐승조차도 그 부드러운 떨림을 속삭이고
순례자의 발길을 붙잡고,
죄수들을 자유로이 해방하네
그 광채로 사랑은 노인을 아이로 되돌리고
단지 애정만으로 악인을 순수하고 신실하게 만드네
벽에 담쟁이들이 자라듯
그렇게 휘감겨 가네, 휘감겨 가네
돌멩이에 이끼가 끼듯
그렇게 싹을 틔우네, 싹을 틔우네
그렇게, 그렇게....
마법처럼 창문이 활짝 열리자
망토를 걸친 사랑이 망설이는 아침처럼 들어왔네
아름다운 기상나팔에 맞추어
사랑은 자스민을 싹 틔우고,
사랑의 대천사는 날아오르며
하늘에 귀걸이를 걸었네
그러자 아기천사는
내 나이를 열일곱으로 되돌려놓았네
벽에 담쟁이들이 자라듯
그렇게 휘감겨 가네, 휘감겨 가네
돌멩이에 이끼가 끼듯
그렇게 싹을 틔우네, 싹을 틔우네
그렇게, 그렇게....
(비올레타 파라에 대한 얘기는 우석균씨가 쓴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라는 책에서 빌려왔습니다.)
4
남쪽에 비 온다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걸 보니 봄소식도 속도를 낼 것 같습니다.
먼지만 날리고 있는 이곳 운동장에도 초록이 싹트겠지요.
가슴속에 쌓여있던 무거운 사연들을 조금씩 털어내시며 향기 있는 음악과 함께 희망의 길, 사랑의 길을 질주하셨으면 합니다.
이곳에선 황정민 FM방송 1시간과 점심 때 교화방송 1시간을 듣는 답니다.
선택권 없는 TV보다는 생생함이 있는 아침 방송이 하루를 여는 벗이랍니다.
음악에는 무식함뿐이지만 듣는 것은 좋아합니다.
분노와 절망을 사랑과 희망으로 바꿔주는 노랫말이면 더 좋아하구요.
반드시 살아야할 이유가 수 천 만 가지나 있는 동지들을 하늘로 보내면서 맛이 안가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요.
이 나라 정리해고처럼 대책 없는 해고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니, 국가가 저지른 저지르고 있는 살인 행각에 분노는 더욱 커지기만 합니다.
표를 얻기 위해 생쇼를 하고 있는 놈들을 보노라니 참 거시기 합니다.
수출 좋아하는 정권이니까 노동자 잡아 죽이는 기술까지도 수출하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죽고 사는 문제로 만드는 짐승들의 인피를 벗기고 싶을 뿐입니다.
스스로 노예 되겠다고 자청하는데 어쩌란 말이냐구 대들 땐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절망의 높이가 이곳 담장보다 높을 때면 “꺾이지 않는”이란 영국 시인의 시를 읽곤 합니다.
온 세상을 지옥처럼 캄캄하게 뒤 덮은 밤의 어둠을 빠져 나오며 굴하지 않는 영혼을 내게 주신 모든 신들에게 감사하노라.
잔인한 환경의 억센 손아귀 속에서도 나는 움츠리거나 울지 않았노라.
운명의 몽둥이질 아래서 피투성이 되어도 결코 고개 숙이지 않았노라.
분노의 눈물이 이 세상 너머에 어둠의 공포만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세월의 위협은 지금도 앞으로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리라.
그 길이 아무리 좁다 해도
온갖 형벌로 가득하다해도 상관치 않으리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요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니
- 월리엄 어니스트 헨리
꺾이지 않는 마음들을 모아 함께 간다면 더디지만 더 멀리 갈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파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희망은 늘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두서없는 소식 맺을까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 2. 26
화성옥에서 한상균
이 방송을 진행한 지 석 달 만에 드디어 사연이 도착했습니다.
혼자서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었는데...
사연을 소개하면서 할 말이 너무 많은데...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한상균씨,
제 손을 잡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5
방송 한 번 분량을 쓰기 위해서는 며칠이 걸립니다.
이번 방송을 쓰는데도 나흘이 걸렸군요.
처음 방송 내용을 쓰기 시작한 날은 아주 화창했는데
방송 끝부분을 쓰고 있는 오늘은 비가 오고 있습니다.
봄비가 내리는 하우스 안은 분위기가 색다릅니다.
그렇게 많이 내리는 비가 아니어도 비닐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더욱 크게 들립니다.
하우스 문을 모두 닫아 놓았기 때문에 습도도 높지요.
오늘 제주지역 낮 기온이 11도 정도라고 하니 하우스 안은 17~18도 정도 되지 않을까요?
잡초들을 조금 뽑다가 소파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와서 소리를 높입니다.
시끄러운 빗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노래에 빠져봅니다.
가볍게 낮술 한 잔 하면 좋은 날입니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우 글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이 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맘같이 그대 맘같이 꺼지지 않더라
네온도 꺼져가는 명동의 밤거리에
어느 님이 버리셨나 흩어진 꽃다발
레인코트 깃을 올리며 오늘 밤도 울어야 하나
베가본드 맘이 아픈 서울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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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송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방송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공개합니다.
스웨덴판은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원작 자체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할리우드판을 보고나서 왕짜증이 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웨덴판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은 있었다.
시작은 원작이나, 할리우드판이나, 스웨덴판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원작에 충실한 듯 하다가 초스피드로 얘기를 끌어가면서 폼만 잡던 할리우드판과 달리
스웨덴판은 욕심내지 않고 원작의 이야기 구조를 따라갔다.
미카엘의 사생활이나 리스베트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한 에피소드들도 생략하면서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는 이어졌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태도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소설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했던 것 중의 하나는 볼거리였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이국적인 화면도 기대했고, 소설에서 그려졌던 여러 장면들을 눈으로 보는 즐거음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판이나 스웨덴판에서 이런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소설이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할리우드판은 스타일에만 치중하다가 이야기도 꽝이고, 스타일도 꽝인 영화가 돼 버렸다면
스웨덴판은 처음부터 볼거리는 무시하고 이야기에 치중하겠다고 작정한 듯 했다.
그래서 스릴러적 장르의 특징에 충실하게 영화를 이끌어갔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장중한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이 심리묘사에서 좀 더 장점을 갖는다면, 영화는 시각과 청각을 함께 자극하는 입체적 장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두 시간 넘게 거의 비슷한 음악이 수시로 사용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야기 자체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은 묻혀버렸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다보니 원작에서 빠진 것들도 있었고, 원작과 달리 살짝 살짝 바뀌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굵직한 이야기 구조는 손대지 않으면서 영화를 위해 조금씩 바꾸는 정도로 보였다.
리스베트의 역할이 초반부터 약간씩 원작과 다른 위치에 놓이기는 했지만, 크게 어색하지도 않았고 이야기 구조를 손상시키지도 않았다.
오히려 긴장감 있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하는 감독의 배려로 느껴져서 좋았다.
원작에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던 미카엘의 다양한 여성관계도 깔끔하게 정리해버려서 오히려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야기가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가운데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본격적인 활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했던 인물들이 나오지 않고, 그 역할을 리스베트가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끌어가려다보니 등장인물을 줄이려고 그랬다보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후반부로 가기 시작하면서 사건 해결에서 리스베트의 결정적 역할이 많아져갔다.
그래도 이야기의 기본 뼈대는 손대지 않고 있어서 크게 원작을 상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았다.
영화가 막판으로 가면서 리스베트가 미카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미카엘이 리스베트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을 심각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가면서 결정적인 두 가지가 원작과 다르게 표현됐다.
원작에서는 사건의 최종처리를 놓고 미카엘이 기자로서의 양심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건의 주범을 놓고 리스베트가 살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한다.
가장 마지막에 비리 기업을 응징하는 문제도 원작과 달리 리스베트가 모든 것을 주도해서 처리한다.
그렇게 영화가 끝났다.
원작도 그렇고, 할리우드판도 그랬던 것처럼, 스웨덴판에서도 중반까지는 당연히 미카엘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다 끝나고 나니 주인공은 미카엘이 아니라 리스베트였던 것이다.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원작에 충실한 듯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끌어오더니 막판에 돌아서 보니 이야기가 달려져 있었던 것이다.
살며시 웃으면서 리스베트의 시선으로 원작을 살펴봤다.
원작은 여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나쁜 남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정의감에 불타는 좋은 남자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리스베트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은 미카엘의 주위에서 그의 능력을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남자들에 의해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여자 리스베트가 미카엘이라는 인물을 감시하고 추적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리스베트는 악마와 같은 주범이 죽어가도록 방치함으로서 악을 응징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서야 원작의 단점이 보였던 것이다.
할리우드판이 철학의 빈곤을 보여줬다면
스웨덴판은 철학의 날카로움을 보여줬다.
정말 아쉬웠던 점은 원작자가 1부의 성공 이후 욕심이 생겼는지 2부와 3부는 기대 이하였다는 점이다. 원작이 기대 이하였기에 원작의 이야기 구조에 충실했던 영화도 2부와 3부는 1부에 미치지 못했다.
홍상수 영화를 처음 봤던 것이 ‘오! 수정’이었던 것 같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이라는 영화로 주목을 받는 감독이라는 기사를 읽은 듯한데, 정작 이 영화는 감독보다는 이은주라는 배우 때문에 봤었다. 그 다음에 봤었던 영화가 ‘생활의 발견’이었는데, 이 영화부터 홍상수라는 감독을 의식하게 됐다. 그러나 홍상수라는 감독의 영화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홍상수의 영화를 즐기지 않게 됐다. 어려운 영화는 아니었는데, 결말이 너무 허무한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30대 초분이었을 때 홍상수 영화는 그렇게 다가왔었다.
그 후에도 홍상수는 꾸준히 영화를 내놓았고, 나고 간단히 다운로드를 통해서 그의 영화를 보게 됐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홍상수는 맨날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한다”라는 것이었다. 우연히 남녀가 만나서 술 먹고, 여관 가고, 둘(셋)의 관계에 대해 갈등하다가, 여자의 결단을 통해 관계가 정리되고, 그러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10년 넘게 거의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찍고 있었고, 배우들도 예전에 찍었던 배우고 또 나오기도 하고... 그렇다고 영화제 같은데서 상 타면서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거의 해마다 한 편씩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가 30대 후반이 되니 그런 홍상수의 끈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게 됐다.
2010년 ‘오! 수정’을 영화관에서 본 후 10년 만에 홍상수의 영화 두 편을 영화관에서 봤다. 한 해에 두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대단했지만, 두 편의 영화 모두 뛰어난 영화였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하하하’에서 홍상수는 기존의 자기 방식을 정리한다. 기존 방식 그대로 영화를 찍었지만, 허무한 결말을 유쾌하게 바꿔버렸다. 10여 년 간 그의 영화에서 팽팽하게 대립하던 남녀관계에서 결국 남자가 패배를 인정하고, 여자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리고 ‘옥희에 영화’로 가서는 시간을 갖고 꼬았다 풀었다 하면서 삶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도자기를 10여 년간 구워오다가 드디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장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내가 40대 초분이 돼서 홍상수 영화를 다시 봤더니 현실과 삶이 제대로 녹아있는 영화라는 걸 알게 됐다.
‘하하하’와 ‘옥희의 영화’ 이후 홍상수 영화가 과연 어디로 나갈까 하는 것이 궁금했었는데,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북촌방향’이 나왔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감독의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몇 달의 시간을 기다려서야 이제야 볼 수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술자리를 통해 얘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배우들도 홍상수 영화에서 한 번씩은 나왔던 배우들이었다. 그런데 엄청 낯설었다.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라고 눈과 귀를 쫑긋하고 그의 얘기를 쫓아가다보면 영화가 끝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감독의 직설적인 한마디로 영화가 정리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영화였다. 그런데 ‘북촌방향’은 초분부터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처음부터 무겁게 들이밀고 있었다. 기존 방식에서 변화를 준 ‘옥희의 영화’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얘기를 듣고 나서 곰곰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는데, ‘북촌방향’은 노골적으로 철학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좀 힘들었다. 난해하지는 않지만, 삶을 직설적으로 해부하는 대신 관조하는 자세는 확실히 지식인의 자세였던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분명히 달라지고 있는 점이었다.
홍상수의 영화는 남자들의 시선과 욕망으로 여자들을 바라보고 대하지만, 현실의 관계 속에서는 결국 여자의 욕망과 현실적 판단이 힘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남성 중심적인 세상에 대해 관계와 삶을 돌아보라고 날카롭게 들이대는 칼날과 같았다. ‘하하하’에서 결국 남자가 그 칼날 아래 쓰러지면서 패배를 선언했고, ‘옥희의 영화’에서는 그 칼날로 상처를 내기보다는 칼날의 움직임만을 보여주면서 더 날카롭게 다가왔었는데, ‘북촌방향’에서는 칼을 버리고 말았다. 내가 홍상수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봤던 홍상수 영화중에서 유일하게 관계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었던 영화였다. 시간의 틀을 통해서든, 욕망과 감정의 틀을 통해서든, 관계의 틀을 통해서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삶을 돌아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칼로 상처를 내면서 날카롭게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 떠벌리면서 삶과 철학을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가 분명히 깊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남성 지식인’이라는 자신의 모습이 점점 짙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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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한나 꼭 보고싶어졌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