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촛불집회는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 동력이 급속히 떨어졌지만 대중들의 절박함은 살아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지난 8일부터 저는 다른 곳에서 집회 일정이 잡혀 있어도 시청으로만 갔습니다.
어떻게든 시청에서 촛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계속 시청으로 모였습니다.
지난 8일 대책위가 포기하고 경찰이 무시한 그곳에서 코뮨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작게는 20명에서 많게는 200명이 계속 시청을 지켰습니다.
10일에는 종각에서 집회가 진행되는 속에도 20여 명의 사람들이 시청에서 촛불을 밝혔습니다.
전경버스가 둘러싸인 속에 촛불을 밝힌 사람들은 두러 두런 앉아서 가기들 끼리 얘기를 나누다가 잠시 후에는 둥글게 모여앉아서 사랑방처럼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엄마와 같이 나온 10대에서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은 대책위의 문제점과 비폭력에 대한 토론을 자연스럽게 이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토론을 하기만 하면 항상 이 두 가지 주제로 토론을 벌이곤 합니다.
그만큼 대중들은 지금 상황에서 투쟁이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11일에는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이날은 시청주변이 완전히 봉쇄돼서 평소처럼 시청 광장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경찰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기는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시청에서 촛불을 들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민주노총 집회가 열리는 청계광장으로 갔습니다.
전경버스와 경찰에 둘러싸인 가운데 2000명가량의 노동자와 시민은 집회와 문화제를 함께했습니다.
1주일 내내 소수의 사람들만 촛불을 밝히다가 오래간만에 많은 사람이 모였고, 힘찬 투쟁가요와 함께 익숙한 분위기도 오래간만이어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민주노총스러웠습니다.
갖은 폼이란 폼은 다 잡으면서 두 시간 정도 집회와 문화제를 마치자 ‘민주노총이 투쟁을 통해서 집회 공간을 마련했다’ ‘내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청을 탈환하자’고 자화자찬하고는 행진도 없이 해산해버렸습니다.
투덜투덜 거리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아고라 깃발을 앞세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남대문방향으로 행진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솔직히 투덜거리기만 하면서 집으로 와버리는 내 모습과 비교돼서 조금 쪽팔렸습니다.
12일에는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폭우는 집회를 하는데 고려사항이 아님을 그동안 수없이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맞춰 시청을 향했더니 시청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원천봉쇄 돼 있었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시청까지 길은 전경버스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사람들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곧 전경과 대치를 했습니다.
경찰은 초반부터 강경하게 해산을 요구했고, 폭우 속에 비옷을 입은데 사람들은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대열 뒤쪽에서 사람들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모이고 있었는데 애써 경찰과의 대치를 피하며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청을 포기하고 조계사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내일은 좀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시청을 탈환하자’는 지난밤의 외침이 너무 무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청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200명가량의 사람들은 시청에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시간을 시청에 남아서 구호를 외치다가 종각 쪽에 사람들이 있으니 종각으로 가자는 얘기가 나왔고, 그에 대해 몇몇 사람들이 시청을 떠나서는 안 된다며 항의를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 나마의 사람들도 종각 쪽으로 빠져나가버렸고, 안타까움에 30분을 더 시청에 머물러있던 저도 더 이상 사람들이 없자 종각으로 향했습니다.
밤 10시쯤 종각에 도착했을 때는 어수선한 그 자체였습니다.
안국동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방향에 소수의 사람들이 경찰버스 앞에서 폭죽을 쏘면서 최소한의 저항을 하고 있었고, 조계사 근처에서도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밤 11시쯤 종각에 있던 대오가 동대문 방향으로 빠지더니 행진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는 행진을 중심으로 모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종각에서 동대문을 돌아 을지로 방향으로 해서 다시 시청으로 기나긴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장시간 행진을 하는 속에서도 사람들의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나긴 행진을 마치고 다시 자정쯤 시청에 도착했을 때는 2000명가량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청에서도 어떻게 싸움을 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대치만 이어지자 대오는 다시 남대문 방향으로 해서 YTN노조가 농성을 하고 있는 YTN 앞으로 향했습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다시 줄었지만 YTN 앞에서는 노조와 함께 즉석 집회가 열렸고, 사람들은 이명박 측근이 사장으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한 YTN노조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뜻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집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YTN 건물 위에서 YTN노조 조합원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기 시작했고, 순간 분위기는 최고로 고조됐습니다.
수 십 개의 종이비행기가 비와 함께 시위대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YTN 힘내라’를 수없이 외쳤습니다.
정말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새벽 1시 경 시청 쪽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연행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서 사람들은 다시 시청으로 달려갔습니다.
시청에 남아있던 사람들과 YTN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합쳐지면서 긴장감이 흐르는 경찰과의 대치가 시작됐습니다.
남대문경찰서장은 방송을 통해 시위대를 달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면서 인도로 올라갈 것을 요구했지만 시위대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0분가량 대치를 하다가 경찰이 철수를 해버렸습니다.
시청 주변을 둘러싼 전경버스만을 남기고 경찰이 완전히 철수해버리자 사람들은 버스를 흔들며 시청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더 이상 대치는 없었습니다.
새벽 두시가 되는 그 늦은 시간까지 남은 300여 명의 시위대는 그 늦은 시간까지 시청 옆 한쪽 구석에서 시위대를 위해 커피를 제공하고 있는 ‘촛불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폭우는 좀처럼 사그러들 줄 모른 채 계속 내리고, 장시간 행진에 몸은 힘들고,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경찰과 대치도 풀린 상태에서 집으로 갈까 말까를 고민했습니다.
때마침 동생이 ‘차로 데리러 오겠다’는 전화까지 와서 헨드폰을 몇 번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솔직히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와 똑같은 심정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래도 시청 앞 거리에 버티고 있는데 혼자서 갈수가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그들의 절박함이 나의 절박함으로 느껴지는 동지애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구석에서 쉬고 있으려니까 몇몇 사람들이 전경버스 근처에서 나팔을 풀고 버스를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에어컨 킨 채 자지 말고 나와서 놀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잠시 후 전경들이 다시 나타났고, 주위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길가로 모이면서 다시 대치가 시작됐습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밀어붙일 태세였습니다.
경찰은 몇 번 경고방송을 하더니 서서히 사람들을 인도로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물리적으로나 수적으로 완전 열세인 시위대는 저항하지 않고 뒤로 조금씩 빠져나갔습니다.
시위대는 남대문가까이 밀리면서도 쉼 없이 경찰을 조롱하면서 놀이를 즐겼습니다.
남대문 근처까지 시위대를 몰아낸 경찰이 다시 시청 쪽으로 물러나자 시위대는 그 뒤를 따라 다시 시청으로 향했습니다.
시청 앞에서 다시 대치가 이어지자 남대문경찰서장이 더욱 강경하게 해산을 요구했고, 남대문 방향에서 돌아서 연행 작전을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위대는 도로 점거를 풀지 않았고, 곧이어 좀 전과 다르게 공격적인 해산작전이 시작됐습니다.
경찰의 해산 작전에 밀려 남대문까지 뛰면서 달아난 시위대는 남대문에서 다시 경찰과 대치를 했습니다.
시위대는 계속 경찰을 조롱하면서 경찰과의 놀이를 즐겼고, 남대문에서는 시위대와 함께 승용차를 끌고 다니던 한 사람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자 남대문 일대는 순식간에 축제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지나가던 차들도 수시로 경적을 울리면서 시위대를 응원하는 등 정말 흥겨운 분위기였습니다.
시위대가 경찰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다시 시청 쪽으로 향하려 하자 경찰은 전경버스까지 동원하면서 더욱 공격적으로 시위대를 몰아붙였습니다.
다시 YTN 앞까지 밀린 시위대는 더 이상 도로를 점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 버렸습니다.
경찰이 공격적인 진압에 YTN 앞까지 밀리자 시위대 속에서는 도로로 나가지 말자는 얘기도 나오면서 잠시 논쟁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인도를 향해서 다시 시청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경찰은 버스와 전경들을 곳곳에 배치해 놓은 상태에서 더 이상 도로가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시청에 이르렀을 때 30여 명의 사람들이 인도 한쪽에 모여서 즉석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쉰 살은 돼 보이는 한 중년의 남성이 빈 생수통과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장단을 맞춰가면서 구수한 입담으로 이명박, 희망교회, 침묵하는 지식인, 이문열 등을 풍자하고 조롱했습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즉석 만담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제 능력의 한계로 그 분의 얘기를 옮길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즉석 공연 속에 날이 밝아왔고, 5시가 넘어서 그 분의 만담이 끝나자 사람들은 서서히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광화문 쪽으로 올라오는데 길가에 쪼그려 앉아서 머리를 숙인 채 졸고 있는 전경들의 모습을 보지 정말 불쌍하더군요.
우리는 그렇게 즐겁게 밤을 지새웠는데 말입니다.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전선을 퇴각시키는 대책위 모습과 그런 속에서도 끊임없이 촛불을 들면서 광장과 거리의 꼬뮨을 만들고 있는 대중의 모습이 너무도 대비되는 1주일 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투쟁 동력과 양상은 전선이 급속히 후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렇게 대중들은 절박하면서도 창조적인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