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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마린보이,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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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깊은 바다 속에서 사람 크기만한 대왕문어를 머구리 잠수사가 잡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작했다.
먹물을 뿜어가면서 저항하는 문어와 외줄에 의지해서 문어를 제압하는 사람의 사투는 꽤 인상적이었다.
해양다큐멘터리를 보듯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고...

 

오래지 않아 문어를 잡는데 성공한 잠수사 박명호씨는 물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잠수사에 대한 얘기가 이어진다.
잠수하는 원리가 어떠하며, 실제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며, 외줄에 의지하는 잠수가 얼마나 위험하며, 각종 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고통은 어떠하며, 그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등등
아차하는 순간 죽거나 다치는 현실을 얘기하다가 각혈을 하고 입원한 동료를 찾아간 박명호씨는 더 이상 잠수사 생활이 불가능해진 동료를 바라보기만 한다.

 

잠수사 생활에 대한 얘기를 차분하게 이어가면서 이들이 탈북인가족임을 함께 드러냈다.
그리고 이야기는 탈북 과정과 남한에서의 정착 과정에 대한 것으로 옮겨간다.
가족이 함께 탈북하기 위해 몇 년을 고민하고 준비했던 얘기, 탈북을 결심한 후 목숨을 걸고 내려왔던 과정, 남한에서 먹고 살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 그 과정에서 남한 사람들의 시선과 갈등, 남한에서는 풀릴길 없는 외로움 등등
탈북인들 모임에서 ‘아, 대한민국’을 흥겹게 부르며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이 묘한 분위기로 다가왔다.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가다가 얘기치 않은 선장과의 갈등이 불거지며 갑자기 영화의 줄이 꼬여버렸다.
선장은 배를 떠나 버렸고 박명호씨는 할 수 없이 타지에 나가있는 큰 아들을 부른다.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매번 목숨을 걸고 잠수를 해야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돕기 위해 달려왔지만 보이지않는 고민과 갈등을 하는 큰 아들, 아직은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 유학을 떠나는 둘째 아들, 그런 가족을 뒷바라지 하다 남편의 권유로 횟집을 운영하게 되는 어머니
이제 이야기는 잠수사와 생명줄처럼 연결된 삶의 원동력과 질곡을 보여주면서 적당히 포장된 휴먼다큐멘터리가 아님을 명확히 했다.

 

그렇게 오늘도
무거운 잠수복을 입고
한줄기 공기줄에 목숨을 맡긴 채
아들과 눈을 마주치고는
바다 속으로 잠수사가 들어가면
아주 아름다운 바다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났다.
그 아름다운 장면을 보며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라는 문장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런데 영화 막판에 살며시 ‘이인모’라는 이름이 거론된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그 이름을 들으며
10여 년 전의 다큐영화 ‘송환’이 갑자기 떠올랐다.
모진 고문과 수십년의 옥살이와 정붙일 곳 없는 외로움들을 견디면서 자신들의 조국인 북으로 송환해줄 것을 요구했던 비전향장기수들의 아주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 영화!
그리고 최초로 북으로의 송환이 이뤄졌던 인물 이인모!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기어이 조국으로 돌아간 이인모를
죽을 고비를 넘기며 기어이 남한으로 오고만 박명호가
아련하고 쓰산한 기억처럼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그렇게 연결시켜 놓으면서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섰더니 그곳은 제주도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였다.
고충건물과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 거리를 걸으면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사회는 어떤 곳일까?
미제국주의의 타락한 쓰레기문화가 넘쳐나고, 무한경쟁 속에서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인가?
노력을 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인가?”
영화 ‘송환’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이 “북으로 돌아간 그분들은 과연 지금 행복할까?”라고 물었던 것처럼
영화 ‘올드 마린보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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