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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타는 여자들, 전태일을 따랐던 겁 없는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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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언덕 위에 미싱 세 대가 놓여있고 나이 많은 여성 세 명이 올라가서 그곳에서 미싱을 돌린다.

다큐치고는 조금 작위적인 연출이었는데 그들의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이어 한 명씩 그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는데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했던 그들의 경험과 청계피복노조의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정갈하고 깔끔한 화면 속에서 밝고 화사하게 인터뷰가 진행되는데, 중간 중간 집어넣은 음향과 음악으로 감정을 살짝 건드려나갔다.

확실히 작위적인 다큐지만 정성스럽고 감성적인 다큐였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더 이상 배움을 이어가지 못한 그들은 평화시장 시다로 일하면서 세상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곳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곳이었다.

낮은 탁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루 종일 일해야 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었고, 밥도 일하던 그 탁자 위에서 10분 만에 먹어야 했고, 명절을 앞두고 바쁠 때는 보름 가까이 밤샘노동을 해야 했고, 너무 졸리면 잠 깨는 약을 먹으면서 비몽사몽 속에 미싱과 다리미질을 해야 했다.

12살, 13살의 어린 소녀들은 그렇게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전태일 평전에서 읽었던 어린 시다들의 얘기였다.

전태일이 마지막 결단을 앞두고 “꼭 돌아가야 한다”고 했던 그 어린 시다들이었던 것이다.

 

전태일이 누구인지,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던 그들이 전태일의 분신 이후 만들어진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새마을노동교실에서 배움에 대한 갈증을 채워나갔는데 갑자기 정권에 의해서 그곳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지옥과 같은 삶에서 한줄기 희망이었던 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들처럼 12살, 13살의 어린 소녀들은 무시무시한 경찰들의 폭력 앞에서 겁 없이 싸웠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은 처참하게 짓밟혔고 끔찍한 폭행과 감옥살이가 이어졌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이제 할머니가 된 그들은
밝고 화사하면서도 뜨겁게 그때의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12살 13살 어린 소녀였던 과거의 자신을 살며시 품어줄 수 있었다.

전태일이 그렇게도 가슴 아파했던 어린 시다들이

“제2의 전태일은 우리 여자들이다”며

전태일의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뜨거운 것을 넘어 경건함까지 느껴졌다.

 

그때의 투쟁이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이

그때의 투쟁만을 회상하며 과거를 안아주는 것으로 끝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다시 살아난 전태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 정말 값진 다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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