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중과 지도자

대중과 지도자는 항상 긴장관계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도자는 형식적으로 대중에 의해 선출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관계에 의해 움직인다. 제도적인 선출방식이 간접민주주의든 직접민주의의든 관계없이 지도자는 대중 위에 군림하게 된다.

어떤 지도자는 상황 전체를 봐야하기 때문에 자기 이해만을 주장하는 요구가 부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지도자는 권력관계의 중심에 서 있게 되면 상층의 권력투쟁을 중심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지도자는 전체 흐름을 바꿔내기 위해서는 대중의 순간적 요구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앞을 내다보면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지도자는 권력의 집중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정된 역량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고, 좀 더 권력이 집중돼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지도자는 조직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고민하면서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지도자는 대중의 상태가 지도자의 의지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지도자는 일부 세력이 지도부를 공격하기 위해 대중을 현혹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유를 대든 지도자들은 항상 대중을 대상화하고 관리하려 한다.

대중들은 지도자를 선출하면서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특별한 기대를 걸지 않기도 한다. 대중들은 지도자의 얘기만을 들을 뿐 자신들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지만, 자신들 속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의견을 주고받는다. 대중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들의 판단과 지도자의 판단이 같은 가에 대해서도 판단한다. 대중들은 민감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집단으로 뭉치고 그 힘으로 지도자에게 요구를 하고, 지도자의 입장을 끝임 없이 확인하려고 한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지도자의 입장이 다르다고 판단하면 지도자를 강제하려 하거나 소극적으로 변한다. 대중들은 지도자를 불신하게 되면 또 다른 지도자를 찾거나 개인적으로 살아남는 길을 찾는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지도자를 대상화하고 판단하려 한다.

대중들의 다양한 요구가 하나의 요구로 뭉쳐지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도자는 전체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면서 부분적 요구를 모아내고, 상황을 한 발 앞서 내다보면서 대중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수렴되고 힘이 모아지게 되면 지도자와 강하게 일치하려 하고, 끝임 없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친다. 지도자는 집중된 권한을 더욱 강화하게 되고, 대중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더욱 강화해 간다. 그러면서 대중과 지도자간에는 긍정적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상황을 주고하려는 지도자는 자신의 계획에 대중들이 따라오기를 바라고, 대중들의 요구를 조절하려고 한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힘에 더욱 의지하게 되고, 지도자가 자신들의 요구에 함께 하기를 갈망하게 된다. 투쟁과 협상이 강화될수록 지도자는 협상의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고, 대중들은 대중투쟁의 힘에 의지하면서 협상을 압박하려고 한다. 상황이 급박해질수록 지도자는 상황을 통제하는데 집중하게 되고, 대중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중과 지도자간에는 부정적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중국의 철학자 노자(老子)는 대중과 지도자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아래로 잘 처하기 때문이니
그 때문에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성인은
백성 위에 서려고 할 때는 반드시 그 말을 낮추고
백성 앞에 서려고 할 때는 반드시 그 몸을 뒤로 한다.
그러므로 앞에 있더라도 백성들은 해롭다고 여기지 않고
위에 있더라도 백성들은 무겁다고 여기지 않는다.
천하가 즐겨 추대하여 싫어할 줄 모르니
다투지 않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천하가 그와 다툴 수 없는 것이다.


지도자가 대중 앞에서 호령하려 한다면 대중들은 지도자를 멀리하지만, 지도자가 대중 앞에서 낮은 자세를 취하면 대중들은 지도자를 신뢰한다. 대중들이 지도자를 멀리하면 대중과 지도자는 하나가 될 수 없지만, 대중들이 지도자를 신뢰하게 되면 대중과 지도자는 하나가 된다. 대중과 지도자가 분리되면 대중의 힘은 흩어지고 지도자의 능력만 남지만, 대중과 지도자가 일체되면 대중의 힘은 배가되고 지도자의 능력은 대중의 능력으로 대치된다.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지만, 투쟁을 판단하는 것은 대중의 몫이다.

독일의 혁명가 로자룩셈부르크는 대중과 지도자의 관계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했다.

[공산당선언]은 “노동계급의 해방은 오직 노동계급 자신의 과업”이라고 천명한 바, 이는 7~12명의 당 집행부가 아니라 본인이 노동계급대중임을 깨우친 노동계급이 깨달아야할 말이다. 노동계급해방투쟁의 발전은 동시에 노동계급대중의 지적 독립의 성장, 자발성과 결단력, 창의력의 성장을 의미한다. 대중의 전위 즉, 사민당 조직에 결합된 가장 잘 계발(啓發)된 부위가 항상 위로부터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거총자세를 유지하며 창의력과 독립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광범위한 인민대중들이 어떻게 투쟁능력과 정치적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규율과 행동통일은 우리와 같은 대중운동에서는 사활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사민주의적 의미에서의 ‘규율’은 부르조아 군대의 규율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부르조아 군대의 규율은 외부의 의지(부르조아계급의 의지)를 표현하는 상관의 명령에 대다수 군인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고분고분하게 복종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회주의적 규율은 모든 사람들이 거대 다수의 생각과 의지에 따르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사민주의적 규율은 80만 당원들이 당 집행부의 의지와 규정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당 중앙기관들이 80만 사민당원들의 의지를 수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의 정치적 활력을 정상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사민당에게 사활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당원 대중들의 정치적 사고와 의지가 항상 깨어 있고 능동적일 수 있도록 만들고, 더 많은 조치를 취해 능동성을 고취시키는 것에 있다.


대중의 힘을 모아가는 것은 대중을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힘은 일사분란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과 창조성에서 나온다. 대중적 자발성과 창조성은 조직의 규율을 무너트리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활력을 강화한다. 수동적으로 동원돼서 질서정연하게 모여 있는 대중은 해산명령과 함께 자기 살길을 찾는 개인이 되지만,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모여 있는 대중은 해산 후에도 창조적인 활동을 다양하게 벌인다.
대중이 주체가 되어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대중의 정서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지도자가 대중의 정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대중 속에서 끝임 없이 호흡해야 한다. 지도자의 단호함과 대중의 단호함이 일치했을 때 투쟁은 대중의 성과물로 남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