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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자발적 연대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2006년 울산에서는 자발적 연대운동들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면서 관료적 조합주의운동에 대한 대안적 모색들이 이뤄졌다. 문화행사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연대투쟁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모금운동의 형태를 띠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 이런 시도들은 ‘대중의 직접적인 자기운동’이라는 점에서 평의회운동이나 코뮌운동에 대한 구체적 상을 만들기도 했다.

자발적 준비위원회 구성 : 고길섶 초청강연회,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상영회

특별한 조직이나 단체를 매개로 하지 않고, 행사의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행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행사를 치르는 ‘자발적 준비위원회 구성’은 의외의 성과를 남겼다.
2005년 연말 술자리에서 가볍게 나온 제안을 바탕으로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시작된 ‘고길섶 초청강연회 준비위원회’는 이런 식의 행사추진이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높은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를 이어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울산상영회 준비위원회’는 100명에 이르는 준비위원들이 다양하게 참여를 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이면서, 행사장에 정보과 형사가 찾아올 정도로 공안관계자들까지 관심을 끌게 만들었다.
대중을 행사의 동원 대상으로 전락시켜 주최단위의 자족적인 행사로만 전락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런 준비방식은 그 동원력과 파급력에서도 웬만한 대중조직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준비과정에서부터 최대한 공개적으로 내용을 공유하면서 의미와 흐름을 만들어가는 이런 운동은 행사 그 자체의 성사만을 목적으로 대중동원에 집중하는 기존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자발적 연대투쟁 : 보육노조와 효정재활병원지부 해고자 복직투쟁

2006년 상반기 울산에서는 크고 작은 사업장들의 투쟁이 많았다. 그중 가장 작은 투쟁인 보육노조 해고자 복직투쟁은 자발적 연대투쟁의 모범을 보여주면서 가장 의미 있는 투쟁의 하나로 만들어냈다.
조직력과 집행력 등 노조의 기본역량이 극도로 미약하고, 상급단체와 연대단위의 힘 있는 연대투쟁을 조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보육노조 해고자복직투쟁이 시작됐다. 그 작고 힘겨운 투쟁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투쟁에 함께 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연대투쟁은 울산여성회나 공무원노조와 같이 의결단위 결의를 통한 조직적 지원과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결합하면서 그 효과를 더욱 높였다.
효정재활병원지부의 경우 역시 조직력이 미약하고,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며, 상반기 투쟁이 마무리 된 후의 투쟁이라는 점 등에서 어려움들이 많았다. 그러나 해고 당사자들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투쟁방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이에 대한 직접적인 연대모색들이 크고 작은 형태로 계속 이어지면서 2006년 하반기에 들어 가장 의미 있는 투쟁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이런 자발적 연대투쟁들은 소속 연맹이 아닌 사업장이나, 직접적으로 연관된 단체들이 아닌 경우에도 다양하고 창조적인 형태로 연대투쟁이 이뤄지면서 노동조합체계를 중심으로 한 연대투쟁의 관성을 극복하기도 했다.

비공식 모금운동 : 해고자와 비정규직노동자 지원

해고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계문제에 대한 지원의 일환으로 진행된 비공식 모금운동은 짧은 기간이고 비공식적인 형태였지만 의미 있는 액수와 성과를 보였다.
모금운동은 재정문제 해결의 촉박함 등으로 인해 모금운동 단위를 구성해서 공개적으로 진행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대략 보름 안에 모금운동을 마쳐서 당사자들에게 지원해야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비공식적으로 모금운동이 진행됐다.
그러나 모금운동의 취지를 공유하면서 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예상외의 반응들을 보이며 적극성을 띠었다. 몇 십 만원의 모금액을 내는 사람에서부터 주머니에 있는 백 원짜리 동전까지 모두 내는 사람까지 모금액수는 다양했다. 현금이 없는 경우에는 상품권을 내기도 했고, 심지어는 통장에 있는 잔액전부를 송금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모금운동에서 보름 정도의 짧은 기간에도 100만원을 넘나드는 액수가 모여 금액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보였다.
모금운동의 경우 다른 여타 형태의 연대활동과 달리 대중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투쟁의 취지와 모금운동의 의의에 대한 공유만 이뤄진다면 유의미한 연대활동의 하나임을 확인시켰다.

새로운 조직운영의 모색 : 울해협과 현중노연

개방적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수평적 논의와 자발적 집행 분담을 시도했던 울해협과 현중노연의 시도는 새로운 조직운영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몇 년 간의 침체를 경험했던 울해협은 집행위와 운영위의 형식적 구분을 넘나들면서 투쟁주체들이 함께 연대투쟁을 논의하고 다양한 활동을 보이면서 해고자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한주연합노조, 보육노조, 한일제관 해복투, 효정재활병원지부 등의 해고자투쟁에서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운동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구성된 현중노연의 경우 조직위상의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정회원과 후원회원의 형식적 구분의 극복, 개방적 운영위 구성, 현장을 중심으로 지역을 결합하는 활동방식 등 기존 조직운영과 다른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목적의식적인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선도투적 운동방식을 넘어서서 좀 더 대중적이고 개방적으로 사업들을 벌여나가기 위한 시도로서 의미를 갖는다.

대중의 직접적인 자기 발언 : 울산노동뉴스를 통한 기고와 인터뷰

투쟁의 중심에 있는 대중들은 간절하게 자신들의 얘기를 한다.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항상 지도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대중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운동의 현실이다. 그러나 울산노동뉴스라는 매체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 대중의 직접적인 자기 발언은 지도자들이나 전문가들의 대변 이상으로 강한 힘을 보여주었다.
투쟁하는 대중들은 학력 수준에 상관없이 자신이 직접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먼저 갖는다. 하지만 자신들의 투쟁의 정당성과 억울함에 대해서는 너무도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기 때문에 글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만 걷어내면 대중들은 아주 뛰어난 글들을 써낸다. 이런 글들은 지도자나 전문가들에 의해 재해석되면서 화석화된 글들과 달리 직접적이기 때문에 매우 생생하면서도 절박함의 힘이 살아 있다. 가장 뛰어난 선전활동가는 투쟁하는 대중임을 무수히 확인하게 된다.
간접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의 목소리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던 것 역시 대중의 직접적 자기 발언의 힘을 키워나갔다. 지도부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관성을 극복해 일상과 투쟁 속에 있는 대중들을 직접 대상으로 하여 진행한 인터뷰들은 역시 생동감과 활력을 드러냈다. 그런 노력의 결과 인터뷰 대상자들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대공장보다 중소사업장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는 조직된 노동조합운동이 대중의 현실을 왜곡해서 반영한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2006년 울산에서 진행됐던 다양한 형태의 이런 자발적 연대운동은 관료적 조합주의운동에 대한 비판을 넘어 실제적으로 대안적 운동을 만들기 위한 시도들로서 많은 시사점들을 주고 있다.
최근 준비되고 있는 ‘대안문화를 위한 연말콘서트 준비위원회’는 이런 시도들을 대안문화의 관점에서 수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이다. 이는 2006년 진행됐던 시도들을 좀 더 발전적 형태로 만들어가기 위한 것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고 있다.
자발적 연대운동의 확산과 수렴은 대안문화적 관점에서 만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진행되는 것이 요구된다. 직접적으로 평의회운동(또는 코뮌운동)이라는 운동전략적 수준에서 확대될 필요도 있으며, 더욱 정치적이고 계급적 내용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정치운동의 수준과 결합하는 것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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