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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함께 결정한다는 것

이름을 대라는 군인의 명령에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대답했다는 이유로 친구가 죽는다면...
동지들이 있는 곳을 대라며 녹슨 펜치로 손톱을 하나씩 뽑는다면...
동지들의 은신처를 적들에게 얘기한 친구를 사살하라는 조직의 명령이 전해진다면...
조국의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을 자금을 대어주는 이가 고리대금업자라면...
식민지 국왕과 저항단체가 독립이 아닌 부분적 자치를 합의하고 무기를 버리라한다면...
과거의 동지들이 경찰이 되어 투항을 거부하는 동지들을 공격한다면...
자치정부의 무기를 훔치다가 잡힌 과거의 동지이자 동생을 사살해야 한다면...

캔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는 계속 이런 물음을 던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물음에 시달린다.

영국의 유명한 좌파영화감독이라는 캔 로치에 대해서 나는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는 몇 년 전에 보았던 <랜드 앤 프리덤>와 이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뿐이다. 그의 두 편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공통점이 있다.

격렬한 무장투쟁을 하는 가운데 내부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들이댄다는 것이다.
스페인 파시즘 정권과 맞서 싸우는 <랜드 앤 프리덤>에서는 무정부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의 논쟁과 대립이 여과 없이 나온다. 영국 식민지 군대와 싸우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도 IRA(아일랜드공화군) 무장투쟁 강경파와 합법적 자치주의성향의 온건파간의 논쟁과 대립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들은 적들과의 격렬한 투쟁과정에서 내부의 이견차이를 갖고 계속 부딪힌다. 그러나 캔 로치 감독은 이들의 부딪힘에 대해 개입하지 않고 격렬한 토론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기 내부문제에 대해 스스로의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이고 영화의 힘을 보여준다.
그러나 투쟁이 격화되거나 중요한 분기점에서 내부차이는 심각한 적대적 상황으로 발전해버린다. <랜드 앤 프리덤>에서는 스탈린주의 군대가 무정부의자들에게 총을 들이대면서 무장을 해제시키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는 온건파와 강경파가 서로에게 총을 들이대면서 극한 투쟁을 벌인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보면서 끝없이 괴롭혔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 질문은 우리를 괴롭힌다.
그것이 캔 로치 영화의 또 다른 힘이다.

영화에서와 같은 격렬한 무장투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크고 작은 투쟁들 속에서 이와 유사한 문제들을 많이 경험한다.
그 속에서 무수한 토론도 하고, 격렬한 논쟁도 하고, 적당한 화해도 하고, 과거의 동지들과 결별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답을 모르겠다.
단지, 대중들과 같이 토론하고 결정한 것은 지켜야 한다는 점은 가슴 속에 중요하게 남아있다.
그것이 투쟁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혹 그 결정이 나중에 잘못된 것이었다고 드러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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