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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소년 코난, 현재 어른 나

미래 소년 코난, 현재 어른 나



푸른 하늘 저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린다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뭉게구름 피어난다
여기 다시 태어난 지구가 눈을 뜬다 새벽을 연다
태양처럼 거친 파도 헤치고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 고향
달려라 코난 미래소년 코난 우리들의 코난

어릴 적에 보았던 무수한 만화영화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만화영화는 일요일 아침에 했던 ‘미래소년 코난’이다. 물론 ‘마징가 제트’ ‘요수공주 세리’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등도 기억이 나고, 극장에서 보았던 ‘로보트 태권 브이’니 ‘마무리 아라치’도 기억이 나기는 한다. 그 외에 기억을 더 더듬으면 더 많은 만화영화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수많은 많은 영화중에 ‘미래소년 코난’이 지금 와서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다른 만화영화들은 평일 저녁시간에 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다가 자연스럽게 텔레비 앞으로 달려가면 되었지만, 코난은 일요일 아침시간에 했기 때문에 유독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애써 보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다른 만화영화들은 - 특히, 마징가 제트와 로보트 태권 브이 같은 경우는 - 지금 보면 정말 유치찬란함의 극치여서 재미가 없지만, 코난은 지금 다시 보더라도 그 장면 장면들이 너무 정감어리고 깔끔하게 잘 다듬어진 명작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또한 코난은 어른이 된 지금에 보면 어린 때 보았던 즐거움과는 뭔가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만화영화여서 철학적 깊이까지 겸비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한다.
몇 년 전에야 안 사실이지만 코난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감독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애니매이션 감독이고, 한때 사회주의 운동에 관여하기도 하였던 전력이 있다고도 한다. 그 사실은 알고 나서 코난이 다시 새롭게 보이기도 하였다.

엄청난 발가락 힘을 갖고 있는 ‘코난’에서부터 시작해서, 텔레파시로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라나’, 개구리를 엄청 좋아하는 못생긴 ‘포비’, 애꾸눈에 이마에 흉터가 있는 라나의 할아버지 ‘라오 박사’, 인더스트리아의 싸늘한 여자 ‘몬쓰리’, 얼굴이 네모난 최고의 악당 ‘레프카’, 길다란 콧수염의 변덕쟁이 ‘다이스 선장’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둡고 칙칙한 거대한 공장과 군대의 섬 ‘인더스트리아’, 밝고 여유로운 목가적 공동체의 섬 ‘하이하바’, 작고 고독하지만 사람과 자연과 동물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사는 코난의 고향 ‘홀로 남은 섬’을 주요한 축으로 하여 이야기는 전개된다. 할아버지와 단 둘이 ‘홀로 남은 섬’에서 살아가는 코난이 표류해온 라나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더스트리아 사람들과 하아하바 사람들이 대결하다가 결국 인더스트리아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하이하바에서 다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코난과 일행은 다시 ‘홀로 남은 섬’으로 돌아오게 된다.

매주 일요일 아침 졸린 눈을 애써 비비면서 텔레비를 켜면 익숙한 노래가 들려온다. 너무 익숙한 노랫가락 이어서 노래가 나오는 동안은 잠이 아쉬워서 귀만 꽁끗 세우고 눈은 뜨지 않는다. 이어 매번 똑같이 나오는 맨트까지도 비몽사몽 속에 듣고 있다가, 그 맨트가 끝나면 눈을 번쩍 떠서 텔레비를 쳐다본다. 암울한 빌딩 숲과 어두운 하늘 위로 비행선들이 날아다니는 장면과 함께 암울한 배경음악 속에 나오던 그 멘트는 이랬다.

서기 2008년 7월 인류는 전멸이라는 위기에 직면했었다. 핵무기를 훨씬 능가하는 초자력무기가 세계의 절반을 일순간에 소멸해 버린 것이다.
지구는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켜 지축은 휘어지고 다섯 개의 대륙은 거의 대부분 바다 속에 가라앉아 버렸다.

그 때만해도 온갖 공상과학 만화영화에서 온통 ‘서기 2천 몇 년’ 하는 식이어서 2000년 그러면 엄청 먼 미래의 꿈과 같은 시대인줄만 알았다. 하기야 ‘1999년 지구는 망한다’는 예언이 실현될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으면서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2000년은 당연히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먼 미래였다.
그런데 내가 이제 어른이 되어서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 ‘서기 2000년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미래소년 코난이 살았던 서기 2008년은 이제 3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영화 속에서 보았던 미래의 모습이 현재 속에서 많이 실현되기도 하였다. 스타워즈를 볼 때 정말 신기했던 광선검은 레이져가 보편화 되면서 우수은 일이 되어버렸고, ‘전격제트작전’이라는 시리즈물에 나오는 인공지능 자동차인 키트는 네버게이션이 상용화되면서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하기야 007에서 제임스 본드만이 가지고 다녔던 TV와 사진기와 녹음기 기능이 다 되는 조그만 무전기를 초등학생들도 들고 다니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서기 2000년대는 정말 꿈만 같은 시대이다.
그런데 서기 2000년대에는 신기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미래에도 악당들이 있었다. 태양열 에너지를 구해서 인류를 지배하려는 욕망에 불타오르는 레프카와 몬쓰리가 인더스트리아에서 군대를 앞세워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삼각탑을 유지하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삼각탑 지하와 여러 섬들에서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었고, 평화로운 하이하바까지 점령해서 그곳의 생산물을 빼앗는다.
서기 2005년 지구, 석유에너지를 차지하기 위해 부시는 이라크를 침략하고, 럼스펠드와 라이스는 군대를 앞세워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약한 사람들을 협박하고 있다. 세계의 경찰을 자부하는 이들은 지구 전체를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 오늘도 북한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미 대륙의 많은 노동자들은 점점 빈곤으로 빠져들고 있고, 이라크와 북한 민중들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남한의 민중들까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멀기만 해 보였던 미래에 살고 있는 기분은 참 꿀꿀하다.

‘미래소년 코난’이 일본에서 처음 나온 게 1978년이라고 한다. 감독은 정확히 30년 후 미래를 시대배경으로 해서 이 만화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나처럼 당시의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이 영화를 보고 30년 후 어른이 되었을 때 레프카나 몬쓰리가 아니라 코난이나 라나나 포비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세상에는 레프카나 몬쓰리보다 더 마음씨 나쁜 악당들이 여기저기에서 설쳐대고 있다. 그래서 30년이 지나서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단순히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 아니라 씁쓸함을 안겨준다.

앞으로 30년 후에 나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만화영화들을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는 어린이들이 30년 후에 나와 같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30년 후, ‘서기 2035년 지구’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코난이 레프카를 무찔러서 ‘홀로 남은 섬’에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총 26부작인 ‘미래소년 코난’은 아직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코난을 보고 싶은 방법을 알고 싶은 분은 저에게 살짝 연락을 하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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