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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집회에 갔습니다

25일 기륭전자 집회에 갔습니다.

유난히도 폭우가 많은 이번 여름, 이날도 폭우 속에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오후 4시 30분쯤 기륭전자 앞에 도착했더니 4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 위에는 45일째 단식농성 중인 기륭전자 동지들이 말없이 앉아 있었고요.

그들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집회 대오 속에 앉을 수도 없어서 뒤편 가장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울산에 있을 때 두 번의 장기 단식투쟁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2000년 현대미포조선 해고자였던 김석진 동지가 복직을 요구하며 45일간 단식투쟁을 벌인 적이 있었고, 2005년 현대자동차 2차 하청업체인 현대세신 여성해고자들이 35일간 단식투쟁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투쟁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루하루 말라가는 그들의 모습에 내 마음도 바짝바짝 말라갔었습니다.

그게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단식 45일만에야 찾아간 나는 그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1시간여의 집회를 마치고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날 저녁 400일 투쟁집회를 벌이는 이랜드 뉴코아 집회로 갔습니다.

저는 저녁 7시에 기륭전자 앞에서 투쟁문화제를 기다리며 있었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집회 시간은 다가오는데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기륭공대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경동 동지가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한 잔 했는지 약하게 술 냄새가 났습니다.

왜 술을 먹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서 일부러 ‘약주 한 잔 하셨군요?’하고 농담을 건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 폭우 속에 투쟁문화제는 진행됐습니다.

임시로 천막을 두 동 치기는 했지만 주위에 서서 지켜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150명 정도가 모인 크지 않은 집회였습니다.

많이 착잡하더군요.

 

집회 도중에 사회자가 예정에 없이 코오롱 정투위 위원장의 발언을 신청했습니다.

정투위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더니 가슴 절절한 얘기를 쏟아놓았습니다.

“코오롱이 기륭보다 6개월 정도 먼저 시작했다. 우리도 작년 연말에 1000일 투쟁 집회를 했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또 잊혀지더라. 지금 기륭 동지들이 어떤 심정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000일이 지나서 더 잊혀지기 전에 어떻게든 이 투쟁의 불씨를 사그러들지 않게 해야 하겠다는 절박함이 이런 투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구미에서 올라오면서 심란했다. 이렇게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집회 할 때 서있어 주는 거 말고는 없더라. 그래서 화가 나더라.”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냥 집회에 참가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는데 다른 사람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눈은 땅만을 쳐다보았습니다.

너무도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다른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문화제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함께 108배를 했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같이 108배를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뒤편에 서서 108배를 지켜봤습니다.

 

108배를 마치고 이날 일정을 마치는 순간 사회자가 “방금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내일 예정돼 있는 교섭을 연기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무게가 너무 힘겨워서 집회가 끝나면 그냥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문화제를 마치고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가버리면 더 미안해서 앞으로 기륭에 오지 못할 거 같았습니다.

그 무게감이 힘들었지만,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감내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뭘 한 게 있어서 힘들다고 얘기를 할 수 있겠냐?’ 생각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더군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농성장에서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서 하루 밤을 보냈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내는 농성장에서의 밤이었습니다.

단식 45일을 넘기고 있는 농성자들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사측은 완강하기만 하고, 정권은 강경하기만 한데...

밤새도록 비가 쉼 없이 내리더군요.

 

아침에 일어나서 농성장을 정리하고 출근투쟁을 했습니다.

사측에서는 이날 사람들을 회사로 출근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쉼 없이 쏟아지는 비속에서 20여 명의 사람들이 간단히 아침집회를 했습니다.

집회 도중에 얼마 전에 위출혈로 단식을 중단했던 조합원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천막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무거움 그 자체만 느껴질 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잠시 그렇게 멍하게 있다가 송경동 동지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광화문과 시청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는 저에게 엄청난 힘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치열한 만큼 즐겁고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집회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투쟁에 내 투쟁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촛불집회 참석은 자연스러운 일과가 됐습니다.

‘투쟁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이었습니다.

 

농성 1068일을 맞이하고 단식 46일째를 맞이하는 기륭전자 집회는 저에게 엄청난 무게감만을 안겨줬습니다.

그 무게감에 완전히 짓눌려 버린 1박2일이었습니다.

‘투쟁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는 1박2일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몰아치는 이명박 정권의 반격을 맞서기 위해서는 시청으로 좀 더 많은 이들이 모여야 합니다.

힘은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토요일인 오늘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저녁 기륭전자로 갈 생각입니다.

시청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륭전자 앞에서 그냥 촛불을 들고 서 있는 한 명이 되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단 한 명이 아쉬운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당하기 힘겨운 무게를 촛불로 감당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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