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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

시청과 청계광장에서, 그리고 기륭전자 앞에서 촛불을 들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석 달이 돼 갑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시청과 청계광장에서의 두 달은 엄청난 활력과 상상력을 뿜어내면서 저를 흥분하게 만들었고, 기륭전자 앞에서의 한 달은 엄청난 무거움과 힘겨움으로 저의 모든 것을 빼가고 있습니다. 투쟁은 이렇게 즐겁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힘이 만들어지고 빠져나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투쟁이 끝나고 나면 그곳에 뭔가 새로운 것이 생기기도 합니다.

 

지금 기륭전자 투쟁이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완강함 속에 다양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사측과 정권의 강경함에 비해서는 2%가 아니라 20%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매일 촛불 들러 가고 가끔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저도 이 시점에서 작은 결단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동안 기륭투쟁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얘기를 쏟아내고, 제가 갖고 있는 메일링리스트를 삭제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륭 앞으로 촛불을 들러 가는 한 사람으로만 남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내가 불사를 수 있는 것을 불살라서 기륭투쟁이 승리하면 좀 더 대중 속으로, 계급의 밑바닥으로 들어갈렵니다. 만약, 그 반대의 결과로 이어진다면 활동을 정리할 생각입니다.

 

단식 45일째에 처음 기륭전자 앞에 갔던 저는 한없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그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저를 기륭전자 앞으로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이라는 지역의 모습은 정말 상상 외였습니다. 단식 45일을 맞아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마련된 1박2일 집중집회에는 150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였을 뿐이고, 그 사람의 대부분도 집회가 끝나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촛불집회에는 기륭전자 조합원 10명, 조직적으로 돌아가면서 참여하는 학생 10여명, 기륭공대위 관계자 몇 명이 전부였습니다.

제가 울산에 있을 때, 그렇게 비판을 받는 지역이었지만, 단식 투쟁이 20일을 넘기고 30일을 넘기면 지역의 역량이 최대한 모여서 어떻게든 해결을 보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울산에서는 단식투쟁이 최대 45일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지역’과 ‘현장’과 ‘여성’과 ‘비정규직’을 그렇게도 강조하면서 울산의 운동을 그렇게 비판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막상 서울이라는 자기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지역’과 ‘현장’과 ‘여성’과 ‘비정규직’의 모든 것이 합쳐져서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기륭전자 투쟁에서 그들의 무수한 말과 글들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었습니다. ‘말과 글로서 하는 운동’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운동’의 씁쓸한 모습을 기륭전자 앞에서 보고 말았습니다.

 

광화문에서 전경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시위대들이 전경들을 향해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거대한 시민들의 정치투쟁이 벌여지던 광화문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기륭전자 앞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 중의 하나는 노동운동의 무기력과 무능함이었습니다. 제가 봤던 여러 가지 모습 중 금속노조가 보여줬던 인상적인 장면 두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6월 10일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던 날이었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가득 매운 이날 금속노조는 서울집중 지침을 내리고 수 백 명의 금속노조 간부들이 모였습니다.

끼리끼리 모여서든 혼자서든 다양하게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과 달리 금속노조에서 제작한 티를 맞춰 입고 아주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행진을 했습니다. 방송차를 앞세우고 지도부가 플랭카드를 들고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벌인 금속노조 간부들은 독립문 앞에 뒤늦게 도착해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광화문으로 돌아갔습니다. 전경들의 봉쇄 속에 싸움을 벌이기 위한 모색을 하기도 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로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투쟁을 즐기기라도 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조직적이고 질서정연한 금속노조 간부들은 앞쪽에 있는 사람들만 구호를 외치뿐 중간 이후부터는 끼리끼리 잡담만 하면서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아는 얼굴들이 있어서 만난 사람들은 지도부의 태도만을 비판하면서 자기들끼리 잡담하는 거리행진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자기들의 구호를 외치거나, 시종일관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쉼 없이 외치며 행진하는 ‘자생성의 한계를 작고 있는 자발적 대오’와 너무도 비교되는 ‘목적의식적이고 조직된 노동자대오’였습니다.

 

기륭전자 단식투쟁이 60일을 넘기면서 사회적 여론이 집중되던 즈음이었습니다. 30~40명을 넘지 않던 촛불집회 참여자들도 100명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금속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30명 정도 참여했습니다.

사회도 아니었던 금속노조 중앙의 한 간부는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교섭에 대한 얘기만 늘어놨습니다. 집회가 끝날 때 쯤 금속노조의 한 간부가 노래를 부르고 ‘한번 더’를 외치자 ‘금속노조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30명 가량의 금속노조 간부들이 전부 일어나서 자랑스럽게 팔뚝을 치켜 올리면서 자기들만 아는 ‘금속노조가’를 정말 힘차고 당당하게 불렀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박수만 치고 있었고요.

 

광화문 주변에서 밤새도록 전경과 싸움을 벌일 때 보면 똑 나타나는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맨 앞에서 치열에서 투쟁하고 있으면 2~3미터 쯤 뒤에서 ‘이래라’ ‘저래라’ 코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전경이 치고 들어오면 제일 먼저 도망갑니다. 그리고 밀리고 밀려서 정리하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잘난 척을 또 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재수없어! 꺼져버려!”

 

노동운동의 무기력과 무능함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지도부가 보여주는 개량적이고 관료적 태도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그동안 무수한 이를 비판했던 세력들은 기륭전자 투쟁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규직 중심의 운동을 그렇게도 비판하면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전비연을 비롯한 금속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왜 성명서 하나 발표하지 못할까요?

 

투쟁에는 부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다양한 형태의 연대투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전주와 대구지역에서 보여주고 있는 연대투쟁의 모습은 정말 모범입니다.

어떤 한 사업장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름대로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야 하는 투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식농성과 함께 진행된다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이 한 사업장 수준이 아니라 지역수준으로 벌어질 때는 정말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농성장을 어떻게 지킬 것이며, 그 책임단위는 어떠할 것이며, 농성과 함께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누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등등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투쟁을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과 같은 전국단위 조직의 지침에 의한 정치투쟁으로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준비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전주와 대구지역입니다. 전국적 정치투쟁 사안도 아니고, 해당 지역의 사안도 아닌 기륭전자의 문제로 여러 개인과 조직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그런 높은 수준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전주에서는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나선 노동자들이 먼저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벌이면서 지역을 조직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역 언론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어떤 시민은 단식에 참여는 못하지만 매일 천막 앞에 와서 혼자 촛불을 들다 가기도 합니다.

전주보다 며칠 늦게 시작한 대구는 더 조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구지역 단체들이 모여서 공동기자회견도 하고, 경찰의 침탈에도 노상단식을 이어가는가 하면, 매일 투쟁 소식을 제작해서 알리는 등 매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80년대 말 90년대 초반 민주노조운동이 막 생동감 있게 일어났을 때의 연대투쟁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대중공업 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하기 위해 전국에서 무수한 노동자와 학생들이 울산으로 달려갔습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가는 전경을 막아서기 위해 노조 지침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작업장을 뛰쳐나와 가두투쟁을 벌이면서 시간을 벌어주기도 했습니다. 대구지역에서는 울산으로 가는 병력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몇몇의 학생들이 시경 철탑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연대투쟁의 정신을 되살려야 된다고 얘기합니다. 지금 전주와 대구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자발적 연대대오입니다.

인터넷을 보고, 언론보도를 보고, 아는 사람의 얘기를 듣고 다양하게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정말 다양한 투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처음 집회를 참여했다는 사람의 제안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릴레이단식단은 ‘현장 단식’ ‘직장 단식’ ‘자율 단식’의 형태로 다양한 동조단식을 조직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이를 알려내고 새로운 단식단을 조직합니다. 단식 후기를 써서 인터넷 언론에 릴레이 기고하기, 글 파나르기, [명막퇴진-기륭승리] 머리말 달기, 아고라 서명운동, 항의메일 보내기, 모금운동, 뉴옥타임즈 광고비 1억5천 만 원 조직하기, 시리우스 항의방문단 항공료 모금운동, 스카프 제작과 판매, 사진엽서 제작과 판매, 일일 호프 등 정말 다양한 운동을 조직합니다.

특별한 조직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륭투쟁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모인 이들은 농성장에서 자체 논의를 통해 모임을 만들고 ‘스텝’이라는 책임자를 정해서 움직입니다.

카톨릭단체도 독자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고, 학생들도 뭔가를 하고 있고, 문화예술인들도 뭔가를 하고 있고, 경기도 광명과 충청북도 청주에서도 뭔가를 하고 있고, 인터넷 카페의 주부들도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여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기륭 릴레이 단식단’ ‘기륭 행동대’ ‘기륭 네티즌 연대’ ‘기륭 대학생 단식단’ 등에서 판매하는 스카프에 적힌 문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륭 승리의 그날까지, 기륭 노동자들의 편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싸울 것입니다.”

 

제가 보내는 메일을 보고 몇몇 동지들이 답신을 보내거나, 지역에서 직접 기륭전자 앞으로 달려오는 동지도 있습니다.

그 동지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죄인이 될 것 같아서...”라고 합니다.

동지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저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안타깝고 미안해서 기륭전자 앞으로 촛불 들러 갈 뿐이고, 그 분위기를 전달할 뿐입니다.

학생운동에서부터 노동운동까지 20년 정도 이 판에서 놀다보면 상황이 보입니다.

그리고 대중의 눈동자와 얘기를 들으면 그 호흡이 느껴집니다.

저는 그렇게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겁니다.

제가 너무 솔직하게 전달해서 동지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질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륭전자 동지들과 얘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기륭전자 동지들의 생각을 제대로 알 수 없어서 그저 제 느낌이 좀 더 강한 것일 뿐입니다.

동지들이 부담스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저에게가 아니라 기륭전자 동지들에게 가져야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故 김남주 시인의 시를 하나 옮겨봅니다.

아마 기륭전자 동지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입니다.

 

 

率 然

 

김남주

 

 

대가리를 치면 꼬리로 일어서고

꼬리를 치면 대가리로 일어서고

가운데를 한가운데를 치면

대가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일어서고

 

뭐 이따위 것이 있어

그래 나는 이따위 것이다

 

만만해야 죽는 시늉을 하고 살아야

밥술이라도 뜨고 사는 세상에서

 

나는 그래 이따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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