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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글을 보다가

‘나, 프리다 칼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화가인데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열여덟 살 때는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을 장애와 고통 속에 살아간 여자입니다.

이 책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과 편지를 모아놓은 책이었습니다.

몇 번 이름만 들어왔던 프리다 칼로였는데, 그림이 독특한 힘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의 편지들도 독특한 냄새를 풍기더군요.

그의 편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아프다’였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겨운 그의 숙명적 고통이었습니다. 교통사고 이후 그는 서른 다서 차례나 수술을 받으면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아기를 그렇게도 갖고 싶어 했지만, 세 번의 유산을 경험해야 했고, 그에 따르는 정신적 고통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수 없이 고통을 얘기하면서도 그 고통을 자세하게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편지에서는 “좋은 일은 내가 고통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는 것뿐이야”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아프다’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의 그림들도 여성으로서 자신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역시 ‘아프다’는 느낌을 전달하기에 충분합니다.


프리다 칼로의 글들은 매우 직설적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글은 읽기 쉽지만 문학적 깊이나 사상적 심오함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독특한 냄새였습니다.

그의 편지에서는 자기 소개서 몇 장을 제외하고는 그림과 예술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습니다.

남편과 함께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화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 의아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면서 느낀 고통과 그를 벋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그냥 그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직설적으로 그림으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관념이 아닌 삶 그 자체가 그의 그림이고 예술이었습니다.

그것이 고통에 마냥 짓눌리기만 하지 않았던 그의 그림이 주는 힘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울산에 있는 한 분과 통화를 했는데, 지금 구속돼 있는 한 사람이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고통을 느끼면서 그 동지가 느끼고 있을 고통이 조금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추석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몇 년 전 울산구치소에서의 추석이 생각났습니다.


구치소에서 맡이 하는 추석이 그렇게 심란하지는 않았습니다.

추석이라고 하면 그냥 고향 집에 가서 며칠 쉬고 온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해서...’ 같은 감정은 없었습니다.

구치소에서의 추석은 운동도 면회도 없이 1평정도 되는 그 공간에 그대로 갇혀 있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나갈 곳도, 움직일 공간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보내야 했던 나흘이 추석이었습니다.

그때는 연휴가 나흘이었는데, 구치소 생활을 힘들지 않게 했던 저도 그 나흘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 몇 차례씩 얼굴을 맡이 하는 사람이 교도관과 소지였습니다.

교도관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치고, 소지는 같은 제소자여서 느낌이 달랐습니다.

평소에 말을 하고 지내거나 그렇지는 않았는데, 어린 나이에 그곳에 들어와서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특히, 조폭들이 그곳에서도 약한 자들을 괴롭히곤 했습니다.)

그냥 그런 마음에, 추석이고 해서, 소지를 불러서 사과 한 개와 잡지 하나를 주었습니다.

소지가 고맙다고 해서 가더니 조금 있으니까 내 방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식구통 안으로 과자 몇 개를 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구입할 수 없는 소위 ‘사제 과자’였습니다.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그 귀한 과자를 나에게 건네주는 마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몇 개의 과자를 먹으면서 그 날 하루는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이번 추석은 연휴가 3일이더군요.

너무 짧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하지만 연휴가 짧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는 것을 생각해주세요.

이번 추석에 그런 사람들에게 비싸지 않은 ‘사제 과자’ 몇 개를 넣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상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글을 보다가 생각난 짧은 상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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