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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수준을 보여준 '렛미인'

 

이번에 개봉한 ‘렛미인’은 원작 소설이 있었고, 스웨덴인가 어딘가에서 만든 뛰어난 원작 영화가 있는데,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다.

헐리우드 수준을 알기 때문에!

 

홍상수는 고사하고 이창동 영화도 보기 힘든 이곳 제주에서

원작 ‘렛미인’을 볼 수 있다는 꿈은 감히 꾸지 않지만

‘독특한 분위기의 뱀파이어 영화’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아무런 기대 없이 8천원을 주고 봤다.

역시, 헐리우드 수준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영화는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난 뱀파이어 소녀와 인간 소년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급속히 가까워졌다.

화면과 음악 및 음향효과가 어우러지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계속됐다.

절제된 대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뱀파이어 소녀는 앞뒤가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남발했다.

정말 끈기 있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소녀와 소년은 가까워졌고, 사랑을 하게 됐고,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됐고, 갈등을 하게 됐고, 그 갈등을 극복해 갔다.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 감동스러운 사랑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한 쌍의 연인이 중간에 극장을 나가버렸다.

역시 뱀파이어 영화답게 스산한 분위기가 극장에 가득했다.

두 시간 가까이 신비스러운 분위기만 끊임없이 이어간 감독의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감동스러운 뱀파이어 소녀와 인간 소년의 사랑은 몸에 뻐근한 여운을 남기면서 끝났다.

 

홍콩의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의 시대상황을 강하게 들이밀면서 미국적인 무간도를 만들어냈다. (앗! 이것도 헐리우드 영화이기는 하다.)

하지만 헐리우드 렛미인에는 미국이라는 배경 말고는 미국적 특색은 별로 없었다.

감독이 국수주의자가 아니어서 글로벌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다고 이해하자.

하지만 보편적 사랑이야기라고 이해해도, 그 사랑이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왜 둘은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이 감당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것인데도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외모가 뛰어나서? 아니면 외로울 때 가까이 다가온 사람(뱀파이어)이어서? 아니면 감독이 그냥 그렇게 하라고 시켰기 때문에?

내 수준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박찬욱의 ‘박쥐’는 글로벌하고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코미디 아닌 코미디만 하다가 허무하게 끝났다.

헐리우드 렛미인은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스릴러도 아니고 로맨스도 아닌 채 신비스러운 분위기만 남기고 끝났다.

사회와 역사와 개인의 아픔이라는 삶의 핵심을 때버린 영화들은 감독의 관념 속에서 자기만족을 하나보다.

 

남는 것은 분위기뿐이었다.

그리고 정말 독특한 분위기였다.

좋았다!

나머지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원작이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헐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이 그 정도만 해도 잘 만든 거다.

헐리우드에서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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