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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아무 생각 없이 폼만 잡거나 황당한 상황만 정신없이 이어지다가 끝나버리는 골빈 캐릭터들의 영화가 지겨웠던 참이었는데 오래간만에 깊이 있는 영화가 개봉을 했다고 해서 보러갔다.

감독 이름은 처음 듣는 것 같은데, 그동안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그럭저럭 평론가들에게 인정을 받는 감독이라고 했다.

이런 유의 감독 영화가 자칫 위험할 수 있기는 한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반응도 괜찮았고 하니 속는 셈 치고 보기로 했다.

다른 화려한 영화들에 밀려서 제주도에서는 한 곳에서만 개봉을 하고 있었고, 상영시간도 어중간했다.

월요일 낮 12시 프로를 봤는데, 영화관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마음의 준비’를 풀지 못했다.

 

성당에서 신부의 설교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처음부터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어서 두 명의 남녀 주인공이 처한 삶의 질곡들이 드러나면서 그들의 목을 졸라왔다.

그런 삶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면 칠수록 현실은 그들을 더욱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붙였다.

그 절망의 끝에서 그들보다 더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는 이를 발견하고, 그의 고통을 마음으로 받아 안게 된다.

그 상황에서 더욱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순간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삶의 희망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끝났다.

영화 팸플릿에 적혀 있는 것처럼 “절망 끝에 찾아온 사랑의 기적”을 진지하게 얘기하는 영화였다.

이쯤이면 가슴이 뭉클해져서 눈물이 나오고 박수를 쳐야하는 영화인데

나는 팔짱을 낀 채 깊은 한숨을 쉬고는 영화관을 나왔다.

 

분명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의 삶은 왜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극적이기만 한 것인지...

작위적 상황 뒤에 또 다시 작위적 상황이 이어지면서 끝까지 작위적으로 이어지기만 하는 그 절망의 연속은 영화에 빠져드는 것을 거부했다.

1시간 20여분 동안 단 한순간도 몰입하지 못하면서 지켜본 영화는 몰입이 아니라 대화를 강요하고 있었다.

불편하지만 심오한 대화를 이어가면서 철학적이고 영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성찰에 대한 강요로만 느껴졌다.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상황을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는데

절망에 몸부림치며 흘리는 주인공들의 눈물이 내 가슴을 터치하리라고 기대했을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요”라면서 격하게 분노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하는 냉소가 나왔던 것이 유일하게 영화 속 주인공과 교감했던 순간이라면 내 영혼이 너무 거칠어서 그런 것일까?

알콜 중독으로 중학교 사격코치를 하던 남편이 해고를 앞두고 음주 뺑소니사고를 쳐서 구속되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부인은 남편 뒤치다꺼리에 정신이 없는데 어린 딸은 성폭행 당하는 상황을 보면서 감독에서 한마디 하고 싶었다.

“감독님, 지금까지 살면서 저는 이렇게 극한으로 몰려서 고통스럽게 발버둥치는 사람을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영화 속 주인공보다 몇 배는 단순한 상황에서도 몇 배는 더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많이 봐왔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도대체 어떤 감동과 성찰을 요구하십니까?”

 

영화의 묵직한 주제의식은 몇 겹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주인공이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가해자의 엄마가 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살리기 위해 냉소적인 세상을 향해 아주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에서 드러났다.

그것이 이 영화가 얘기하는 구원이었다.

지식인들에게 구원은 자신보다 더 힘들어하는 이를 도와주면서 찾아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밑바닥에서 발버둥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구원은 그 밑바닥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밑바닥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은

내가 손을 내밀어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에게 힘을 주면서 오히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었다.

지식인들은 관념으로 사랑과 구원을 설교하지만

우리들은 처절한 삶 그 자체로 사랑과 구원을 느낄 뿐이다.

그런 삶 속의 사랑과 구원으로 다시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이 역시 삶이었다.

감독은 그런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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