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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

 

평론가들의 평도 좋고, 관객들의 반응도 좋은 영화는 안전빵이다.

거기다가 감독의 다른 영화를 본적이 있어서 연출 스타일까지 알고 있다면 걱정할 것이 편하게 보면 된다.

단지, 너무 큰 기대를 하지만 않으면 된다.

조금은 아껴두었다가 이제야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르’를 봤다.

 

‘역시!’라고 감탄사가 나올만한 영화였다.

빠른 컷과 다양한 시각적 음향적 효과들로 무장해서 관객들의 혼을 잡아 놓는 헐리우드 영화들과 달리 정지된 화면과 절제된 대사 속에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으로 승부하는 유럽영화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런 식의 유럽영화는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서 보기가 힘든 경우가 많지만, ‘아무르’는 두 시간이 넘는 런닝 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감독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에 못지않은 내공을 보여줬다.

80대의 배우들이 뿜어내는 연기의 내공은 용쟁호투였고, 그 불꽃 튀는 연기를 살살 다루면서 담아내는 70대 감독의 연출력은 예술이 뭔지를 확인시켜줬다.

거기다가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에서 안면이 익은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까지 덤으로 볼 수 있었으니 본전은 확실히 뽑았다.

영화가 끝나고 음악이 없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잔잔한 여운이 밀려와서 마음 속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감동이 없었다.

병들어서 서서히 죽어가는 늙은 부인을 돌보는 늙은 남편의 헌신과 고통을 지켜보면서 자꾸 내 모습이 비쳐졌다.

우울증으로 불안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머니와 그 옆에서 무기력하게 지내야 하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의 아들은 짜증과 심호흡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영화 속에서는 그 사랑이 헌신과 인내로 그려지지만, 현실에서는 인내와 상처로 범벅이 된다.

물론 영화에서도 인내와 상처로 범벅이 되는 현실의 모습이 그려지지만, 감동을 위한 헌신과 사랑의 의도가 너무 강해서 현실과는 조금 다른 그저 예술로만 다가오는 것이었다.

감독은 헐리우드 상업영화들과 달리 그 인내의 상처를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현실과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예술 속으로 들어가 버린 그 치열함은 영화 속에서 예술적 여운은 줬지만, 현실의 나에게는 감동을 주지 못했다.

현실을 예술로 승화하는 것은 현실과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서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영화였다.

그래서 한국의 독립영화인 ‘검은 땅의 소녀와’가 나에게는 더 감동적이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는 ‘하얀 리본’과 ‘아무르’ 밖에 보지 못했지만, 두 편 모두 치열함이 부족한 왕성한 내공만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나 얼마 전에 봤던 ‘신의 소녀들’처럼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영화와 현실이 싸우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캔 로치나 마이크 리의 영화처럼 현실의 문제를 극적인 드라마의 틀로 끌고 와서 영화 속에서 현실의 투쟁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트리 오브 라이프’ ‘엉클 분미’ ‘멜랑콜리아’ 등과 같이 현실과는 한 발 떨어져서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지도 않는다.

그런 점이 이 감독의 독창성이라면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조금은 진부한 현실의 문제를 끌고 와서 예술적 내공으로 승부한다는 점은 좀...

 

맛있는 요리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는데

싱싱한 회도 아니고

익숙한 불고기도 아니고

독특한 샤브샤브도 아닌데

맛은 있었다.

그런데 그 고기가 참치라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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