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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8
    기다림의 시간
    깡통

기다림의 시간

이 글은 '민들레 74호'에 실린 글이다. 투박한 원고를 깔끔하게 만들어준 편집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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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의 시간
    

이광흠 - 일요일에는 열린사회 구로시민회 사무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목사로, 평일에는 산어린이학교 방과후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깡통’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coolie1@naver.com

 

입양을 결정하기까지

 

 2011년을 시작하며 아내와 나는 둘째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제 여섯 살 된 딸 하경이가 혼자 자라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하경이에게 진솔한 이야기를 속 깊게 나눌 수 있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지만 막상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내와 내가 하경이 동생을 입양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들이 많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소리들을 듣다 보면 하경이를 처음 입양할 때가 떠오른다. 아내는 2005년 자궁 내막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지 일 년쯤 됐을 때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하니 다들 우리를 말렸다. 장모님이 가장 걱정이 많으셨다. 너희 둘만 잘 살면 안 되겠냐고 자꾸 말씀하셨다. 딸이 가난한 목사를 만나 고생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입양한다고 하니, 딸의 선택보다 딸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셨던 것 같다.


 2006년 6월 15일 하경이가 세상에 나온 지 45일째 되던 날, 하경이가 우리 집에 왔다. 우리 부부는 당시 광명시에서 교회 한 쪽을 막아 징검다리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경이가 처음 집에 오던 날, 도서관에 있던 아이들과 부모들이 아내의 품에 안겨 들어오는 하경이를 반겼다. 그 뒤 징검다리 어린이도서관이 폐관될 때까지 도서관을 이용하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놀고 있는 하경이를 함께 돌봐주었다. 이제 징검다리 어린이도서관은 없어졌지만 ‘징검다리’는 아내의 별명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입양을 크게 반대하셨던 장모님은 하경이의 가장 큰 우산이 되어 주셨다. 우리 부부가 장모님이 살고 계시던 당산동에 가면 장모님은 하경이를 업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셨다. 2007년 12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하경이에게 주신다며 하경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싸들고 오셨다. 요즘도 하경이는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한다. 장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하경이는 나와 아내의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아내는 하경이와 부딪히며 살다보니 비로소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지금도 가끔씩 말한다.


 그런데 하경이를 입양했을 때와 하경이 동생을 입양하려는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다르다. 경제적으로는 하경이를 입양했을 때보다 좀 나아졌지만, 하경이처럼 갓난아기를 입양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현재 아내는 대안초등학교에서 생활교사로 일한다. 아침 7시가 조금 지나 출근하는 아내가 낮 시간에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빠인 내가 아기와 지내려면 나 또한 모든 외부활동을 접어야 한다. 또 갓난아기 동생과 하경이의 나이 차이도 고민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오랜 생각 끝에 세 살에서 네 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입양을 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입양에 대한 기대는 어떤 것인지, 아이를 입양하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서로 합의하고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양 후 많은 문제가 생긴다. 상대방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또는 주변에서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때 큰 혼란이 올 수 있다. 나와 아내와 하경이는 새 식구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눴다. 하경이는 자신의 동생이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남자 동생을 원했는데, 남자는 아빠와 목욕탕에 가야 한다는 말에 여자 동생으로 바꿨다. 하경이는 엄마를 따라 자기와 함께 목욕탕에 갈 동생을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가 둘째를 입양하려고 결정했다고 해서 하경이에게 동생이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입양 대상인 3, 4세 여아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상 하경이 동생을 연장아로 입양하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복잡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장아가 가족으로 융화되는 과정에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들 한다. 입양이 된 아이가 몇 해를 살아오면서 맺힌 것들을 새 가정에서 한바탕 풀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하경이는 동생을 만나고 싶은 마음과 제 것들을 동생에게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벌써부터 갈등을 시작하는 눈치다.


 연장아의 입양을 고민하면서 한국입양홍보회(http://www.mpak.co.kr)의 여러 게시판들을 뒤져보았다. 한국입양홍보회는 1999년 우리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 입양부모들이 중심이 된 사단법인이다. 우리 사회에 흐르는 비밀입양 문화를 공개입양으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입양홍보회 홈페이지에는 많은 부모들이 공개적으로 일기글을 쓰고 있어 여러 모로 도움이 되었다. 네이버 카페의 ‘건강한 자녀양육을 위한 입양가족 모임’에서도 글을 찾아 읽고, 때때로 연장아를 입양한 분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딱히 뭐랄 수 없는 뭔가가 마음 한 구석에서 꿈틀댄다. 막연한 두려움도 있지만 기대와 설렘이 더 크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부딪히는 것

 

우리 가족이 하경이 동생을 입양하기로 결정한 뒤 하경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부모들에게도 이야기를 했다. 하경이 동생이 주변을 당황스럽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아이를 ‘깡통’ 이광흠과 ‘징검다리’ 이진희의 작은딸로, 그리고 하경이의 동생으로 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 미리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끝나고 지난달부터 하경이 동생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추천받은 곳들 중 먼저 집과 가까운 곳부터 찾아가보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사전 연락 없이 찾아간 곳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입양대상 아동이 없으며,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모교인 성결대에도 찾아갔다. 도서관에서 입양기관들을 찾아보다가 동방사회복지회로 전화를 했더니, 입양을 원하면 먼저 부부가 함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토요일에도 상담이 가능하다고 해서 상담 날짜를 잡았다.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아내와 나는 하경이와 함께 부부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실에 들어서자 하경이가 동생을 언제 보느냐고 묻는다. 상담이 끝나면 바로 동생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경이에게 조금 더 기다려야 동생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해준다. 상담을 하며 다시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3, 4세 여아는 쉽게 만날 수 없다, 연장아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부딪히는 건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좀 두려워진다. 상담을 마치고 예비 입양부모 교육에 참여하라는 말과 함께 필요한 서류를 안내받았다.


 부부 상담을 다녀온 후 하경이를 입양하였던 한국사회봉사회(http://www.kssinc.org) 김춘희 부장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한국사회봉사회는 이제 입양사업을 포기한다고 하셨다. 정부에서는 해외입양을 줄여나가는데 국내입양은 크게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는 입양기관들이 시설을 함께 운영하거나 아니면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입양사업을 더 하진 않더라도 입양된 아이들의 사후관리는 지속적으로 하실 거라고 했다.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된 아동은 입양아동 사후관리를 통해 자신을 낳은 엄마와 아빠를 찾고자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우리도 하경이가 커서 자신을 낳은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할 때, 하경이를 낳은 엄마도 원한다면 서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사회봉사회가 입양사업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아내가 가장 먼저 걱정했던 것이 하경이를 낳은 엄마에 대한 기록이었다.

 

복지는 눈치 보며 얻어먹는 밥이 아니다

 

 한국입양홍보회에서 주관하는 ‘반편견 입양교육 강사 보수교육’을 다녀왔다. 전국에서 모인 강사들은 모두 입양부모들이다. 오전 강의가 끝나고 함께 점심식사를 할 때 주변 분들이 입양기관에 신생아들이 늘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여자아이면 바로 입양이 되었는데 최근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또 어느 분은 아이를 입양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돈을 얼마나 받느냐’는 질문이었다고 했다. 우리도 하경이를 입양했을 때 뭔가 경제적인 혜택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아이를 입양하면 얼마의 돈을 받을까? 혹시 궁금해 할 것 같아 밝히자면, 2011년 기준으로 13세까지 월 10만원을 받는다. 그러면 아이를 양육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얼마나 될까? 그건 각자의 생각에 맡기겠다.


 3월 16일자 인터넷 뉴스에서 김황식 국무총리가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당당한 이익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고마움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입양아동인 하경이는 의료급여 1종의 혜택을 받고 있다. 최근 하경이가 치과를 다녔는데 그 의료급여 1종의 혜택은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복지 혜택을 받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김황식 총리에게 할 말이 많다. 입양아동 의료급여 지원은 국내입양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구청에 ‘입양사실 확인서’를 제출하면 입양아동에게 별도의 의료급여증을 발급해주고 이후 발생하는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혜택에도 불구하고 많은 입양부모들은 의료급여증을 신청하지 않았다. 의료급여증에 입양아동의 이름만 별도로 올라가 있어, 당사자인 아이는 물론 입양가족에게도 사회적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의 입양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가정들에게는 있으나마나한 정책이 된 것이다. 하경이가 처음 받았던 의료급여증에도 하경이 이름만 올라있었다. 우리 역시 아이 이름만 달랑 적혀있는 의료급여증을 받아들이는 데에 용기가 필요했다.


 그 후 입양아동의 의료급여 지원정책이 실질적 효과가 없으니 폐기돼야 한다는 주장이 일자, 이를 지키고자 하는 입양부모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금은 가족 모두와 함께 입양아동의 이름이 들어가게 되었고, 의료기관에서 바로 혜택을 받는 것과 부모가 의료비를 선지불한 뒤 지정된 통장으로 그 액수만큼 지원받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행정중심 정책이었던 입양아동의 의료급여 1종이 부모들이 제 목소리를 시끄럽게 내어 겨우 변화된 것이다. 요즘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무상급식 주장과 마찬가지로, 복지는 결코 낙인을 동반한 수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복지는 눈치 보며 고맙게 얻어먹는 밥이 아니라 당당히 누려야 하는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2011년 현재 입양가정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은 입양아동이 18세까지 의료급여 1종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과 입양을 할 때 입양부모가 입양기관에 내던 수수료를 지원하는 것, 그리고 월 10만원의 양육비를 13세까지 보조하는 것 정도이다. 물론 장애아동을 입양했을 때는 지원금이 좀 더 많아진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장애아동을 입양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장애아동을 입양한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참 고맙고 눈물이 난다.


가족은 피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사회 일각에서는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을 줄여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와 현실은 다르다. 해외 입양을 점차 줄이고 국내입양을 활성화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내입양이 그만큼 늘지 않고 있다. 입양 대상 아이들은 줄어들지 않는데 입양의 기회가 적어지니 결국 많은 아이들이 시설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외입양을 무조건 막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자신을 낳은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입양을 통해 부모를 만나야 한다. 입양이 자신의 국가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른 국가로 가서라도 부모를 만나야 한다. 입양은 차선적 보살핌이며, 입양하는 자의 입장이 아닌 입양되는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입양을 남의 자식을 빼앗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나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양쪽 모두에게 화가난다.


 가족은 피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부가 그렇고, 입양이 그렇다. 아이를 원하면서도 아직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매번 조심스럽게 입양 이야기를 건넨다. 별도의 조건들이 있기는 하지만 2007년부터는 독신자 입양도 가능해졌다. 아이를 갖기 위해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다.

 
 입양은 한 아이에게는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줄 부모가 생기고, 어른들에게는 스스로 부모가 되는 길을 여는, 아주 놀라운 일이다. 내가 만났던 입양 부모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입양은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 이기주의를 부추긴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나는 더 많은 입양 대상 아동들이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일상의 평온함을 누리며 자랐으면 좋겠다.


 하경이 동생이 언제쯤이나 우리와 함께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한 달이 걸릴지 아니면 열 달이 걸릴지. 다만 나와 아내와 하경이 모두에게 이 기다림의 시간이 가슴 설렘이기를 희망해본다. 그리고 하경이 동생을 기다리는 우리의 설렘을 더 많은 가정이 함께 경험하였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주) 반편견 입양교육이란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양이 또 하나의 가족형태임을 알림으로써, 입양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갖게 하는 교육을 말한다. 한국입양홍보회에서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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