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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아빠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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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22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겠지만
    깡통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겠지만

하경, 하람.

아침에 편지를 쓴다. 잠을 자고 있는 너희들이 일어나 편지를 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하경이는 자기가 읽겠다고 편지지를 빼앗아 걸 것이고 하람이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도 언니가 자기 것을 빼앗아 갔다고 소리치며 울겠지?

하경아 어제 저녁에 네가 하람이와 놀다가 하람이 왼 손을 다치게 해서 엄마에게 혼났잖아. 그런데 엄마나 아빠가 네게 화를 낸 것은 하경이 네가 미워서가 아니고, 하경이나 하람이가 다칠 것 같이 놀았기 때문이란다.

하경이는 아직도 하람이가 다쳐서 혼이 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하람이가 다쳤기 때문에 혼이 난것은 아니고 너희들이 다칠 것 같이 놀았기 때문에 혼이 난 것이란다. 아직 네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

하경아. 너도 잘 알겠지만 아빠는 누군가 다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엄마는 그 좁은 방에서 너희들이 뛰어다닐 때 다친다고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렸는데도 계속 뛰다가 결국 하람이가 다쳤으니 화를 낸 것이란다.

하긴 우리 집이 그리 큰 것도 아니고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려 밖에도 못 나갔고, 하람이는 엄마하고 있겠다고 궁더쿵 어린이집에도 안 갔으니 너희 둘의 에너지를 집에서 어떻게든 쏟아 내야 한 다는 것도 알아. 너희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풀어낼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한 엄마, 아빠의 잘못도 있다는 것 잘 알지만 어쩌겠냐. 그렇게 놀면 다치는 것을.

하경아 엄마는 비가 내리기 전하고 비가 내릴 때 가끔은 힘들어 할 때가 있단다.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은 탓이라서 그래. 아빠가 볼 때 어제가 그런 날이었어. 엄마가 많이 힘들어 했거든. 그래서 오전에 하경이는 아빠 따라 회의도 잠깐 갔던 거고, 하지만 그 짧은 외출이 하경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풀어내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을 거야. 그나저나 오늘은 하람이 손 상태 봐서 궁더쿵에 보내고, 하경이는 엄마하고 도서관을 가던지 해서 넘치는 에너지를 풀어내렴.

하람아.

오늘은 궁더쿵에 가는 거다. 알았지. 너도 언니처럼 엄마하고 같이 있고 싶겠지만 엄마는 월요일부터 다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언니하고 같이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러니 사랑하는 하람. 언니도 엄마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어^^

하경, 하람.

아빠는 오늘 세월호에서 생명을 잃은 분들의 가족들과 같이 있으려고 오후에는 광화문에 간단다. 아빠가 늦더라도 하경이는 엄마하고 잘 지내고, 하람이는 궁더쿵에서 잘 놀다가 돌아오렴.

그럼 오늘 하루도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자^^

                2014년 8월 22일 금요일 아침 사랑하는 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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