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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말 말이야.

 

사실은-너한테만 특별히 알려줄께. 누구나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또한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이야.-

 

원래 '죄악은 복수를 부른다.'야. 놀랍지 않니?

 

이 말이 언제 어떻게-한 단어만이- 바뀌었는지는 나도 잘 몰라.

여기에 어원적 설명이나, 고문서의 주석에 참조해서 설명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야.

자. 이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지.

바로 내가 수모를 당해도 그것에 대한 복수는 하지 말라는 것이지. 왜냐면 그 악순환은 영원할 테니까.

 

여기에 헛점이 있어. 처음 내가 당한 수모는 그럼 누가 갚아주지?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그 분들은 참으라고 하지. 왜?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고,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영원한 평안을 얻는다고 그 분들은 하실 거야. 한낱 내 설움은 그 분들의 위대한 말씀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것이니까. 그 자비로운 분들은 나쁜 놈을 용서할 것이고 그 나쁜 짓은 실제에서는 소멸하게 되지.

 

우리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먼 옛날 고대에서 복수는 아주 신성한 권리였어. 누구나 복수를 하려는 자에게 참견을 하지 못 했어. 중세까지도 이런 면이 조금은 있었지. 옛날 유행한 코메디 레퍼토리처럼 '아버지의 원수! 받아라! 죽어!' , '챙챙챙-' 이렇게.

 

하지만 어느 순간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말이 나타나면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아이에게 스승이 나타나선 '그래서는 안 된다. 얘야.'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어.

 

처음으로 돌아가서 원래 '죄악은 복수를 부른다.'는 말이 있었어.

그때 의미는 '네가 남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짓을 하면 너도 똑같이 받을 거야. 그러니 너는 나쁜 짓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단다.' 이런 것이었어. 아버지가 철 없는 아들에게 성년이 되기 전에 꼭 해줘야 하는 말이었을 거야. 그래서 성년이 된 아들은 남에게 나쁜 짓하기를 두려워하게 되었지.

 

하지만 어느 순간에 나쁜 짓하는 놈들이 나타났어. 남의 것을 빼앗고 죽이고 노예로 만들면 몸이 편하다는 사악한 생각을 가진 자들이었어. 실제로 해보니 그렇게 어렵지가 않고, 자기들 생각대로 되는 거야. 하지만 그 놈들은 한 가지 께름칙한 것이 있었어. 바로 '복수'야. 자기는 남에게 나쁜 짓을 해서 잘 먹고 잘 살는데, 그 당한 놈들이 자기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기를 바랬어. 수모를 당한 놈이 바보이고, 약한 놈이고 착한 놈이게 만들어야 했지. 그 착한 놈들이 길길이 날뛰어 자신들에게 복수를 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꾀를 냈어. 그들은 잔머리가 좋아. 예나 지금이나.

 

말을 교묘히 바꾸어 퍼뜨린거야.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고

 

이게 바로 '죄악은 복수를 부른다.'가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가 된 비밀이야.

 

그리고 그 나쁜 놈들은 종교 지도자들과 결탁을 했어. 종교 지도자들도 그들과 입장이 비슷했기 때문에 흥쾌히 수락을 했지. 왜냐면 그 종교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선구자 혹은 스승은 있을 수 있으나, 지도자 혹은 대장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을 속여 지도자가 되어 존경과 부를 가지게 되었는데, 누구 하나가 그것을 간파하여 언젠가 그들을 끌어내릴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죄악은 복수를 부른다.'는 말을 쓰는 놈을 죽이고, 그 말이 적힌 책은 태워버리거나 말을 고쳐 다시 기록했지. 그래서 지금은 우리는 '복수'라는 말은 부정적인 것으로, 해서는 안 되는 바보같은 행동, 그것을 하는 사람은 잔인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지. 누구도 의심없이.

 

그 나쁜 놈들은 아직도 나쁜 짓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하고 있어. 참으라고 말이지.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결국 당하는 놈들이 이기는 것이라고. 당한 수모를 참아서 이긴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지. 옆구리에서 피가 질질 흘러내리는데 말야.

 

그래서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이 더 잘 살게 되고, 더 많아지고, 누구나 먼저 나쁜 짓을 해서 성공하려고 하는거야. 당한 놈은 참아야 하니까.

 

그런데 참다 참다 못 참는 미친, 복수는 나쁜 것이라고 말을 해도 알아 듣지 못 하는 바보같은 놈이 나타날 때도 있단 말야. 오랜 세월에 간혹 하나씩. 그래서 또 잔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었어. 그들은 '법'이란 걸 만들어 내었어. 원래에도 법은 있었지만 이전 법과 그들이 만든 법은 성격이 다른 것이었지.

 

이전의 법은 간단하고 명료했지. 그것의 목적은 함께 살기 위한 것이었어. 우리 마을에서 이 짓을 하면 쫓겨나거나 벌을 받는다. 복수를 받을 것이다. 이런 개념이었어. 말하자면 무엇이 나쁜 짓인지 적어놓은 것이었지.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런데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은 법을 새로 만들면서 착한 놈들의 행동과 사고 하나하나를 조종하려는 법을 만든거야. 그리고 복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것이었지.

 

그래서 간혹 가다 나타나는 복수의 화신은 더욱 복수가 어렵게 되었어. 새로 만든 법이 있기 이전에는 복수 이후 어리석음의 표본이 되게 되어 버릴 자신의 평판만 신경쓰면 되었는데, 새로운 법 이후에는 법을 지키려는 선량한 다른 착한 이웃들까지 그를 막아 세우는 상황이 된 거야. 복수를 하려면 이웃까지 베어야 했는데 차마 그정도까지 미친 놈은 없었어. 그래서 복수의 화신조차 참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어. 단어 하나가 바뀐 후부터 지금까지 쭉-.

 

여기까지가 네가 알아서는 안 되는, 그러나 알아야 되는 비밀이야.

 

너는 복수라는 말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니?

어리석음? 무지몽매? 잔인함? 허무? 감방?

 

복수를 허용하면 정말 세상은 흉폭하고 차마 인간이 살지 못하는 세상이 될 것 같지?

 

하지만 말야. 복수를 허용하면 우리 할아버지의 할어버지에다 더 위의 할아버지들이 사셨던, 나라가 있기 전의 평화로운 세상이 될 거야. 모두가 남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는 짓은 두려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말야. 그러면 우리는 그런 곳에 살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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