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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2/12
    노동자
    바다-1
  2. 2006/11/18
    아버지
    바다-1
  3. 2006/11/14
    2006년11월12일 전국노동자대회를 다녀와서
    바다-1
  4. 2006/11/11
    햅쌀가격 개 사료값 비교를 접하고
    바다-1
  5. 2006/10/26
    함께 가야할 길에서 참관자가 되어(3)
    바다-1
  6. 2006/09/20
    별 희안한놈(1)
    바다-1
  7. 2006/09/19
    반 성
    바다-1
  8. 2006/07/12
    친구야 한.미 F.T.가 뭐꼬
    바다-1
  9. 2006/06/27
    고백
    바다-1
  10. 2006/06/06
    새로운 경험 짜릿함
    바다-1

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우리아버지

 

위정자들의 아집으로

 

한나절 이면 가볼수있는 고향땅을

 

살아생전 한평생을 한맺힌 신음 소리로

 

한잔 하신후는

 

흑탄백탄 타는데 연기는 퐁퐁 나고요

 

이네 간장 타는데 연기도 김도 안나네

 

 

자식들 건강하고 올바르게 키우기위해

 

뼈가 다닳아 고생하시며 술로서 고통을

 

아픔을 달래시던 아버지

 

 

아버지가 떠나신지

 

이십사일 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가끔씩 고생만 하시다 가셨다는 생각이 들면

 

속으로 흐러는 눈물을 주체 할수가 없다.

 

 

홀로남은 엄마는 집에서 우울증에

 

그리도 서글프고 서러운지

 

눈물이 마를날이 없더라

 

철조망에 길이막혀

 

살아생전 가보지못한

 

고향땅들을 휘휘 둘러보시고

 

쉬고 계실려나

 

평안남도 평원군 청산면 구원리

 

시장 삼거리집이 아버지께서 그리도

 

가보고 싶어하셨던 우리 할아버지댁이다. 

 

 

지금은 경북군위 카토릭 공원묘지에서

 

쉬고 계실 터이다.

 

오늘 엄마가 아버지가보고 싶다고해서

 

준비했더니 매주 한방병원에 정기검진

 

받는 날이라 우리아이들 주일학교와

 

시간이 겹쳐져 가지를 못했다.

 

 

 

눈비오고 길이 얼게되면 가보지를

 

못할 길을 엄마 모시고 함께 갔다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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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11월12일 전국노동자대회를 다녀와서

전태일 열사정신계승 2006년 전국노동자 대회를

 

지역의 버스 동지들과 함께

 

휴가를 쓰고 다녀왔다.

 

 

새벽일찍 잠이깨여 준비하고 나섰다.

 

솔직히 가기싫은 마음이

 

절반정도 전날까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열사 정신계승은 어디간데 없고

 

술판으로

 

찜질방으로

 

사교장이 되어버린 전국노동자대회

 

나 자신부터 반성을 한다.

 

 

전국에서 동지들이

 

삼삼오오 조직적으로

 

대회에 참여하는 이유와 목적을

 

언제부터 놓고있다.

 

 

합법이라는 틀속에

 

가랑비 옷젖는줄 모르고

 

무장을 해제하고

 

철저하게 개량화 되어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서글픔의 눈물이 솟구쳐 흐른다.

 

 

이대로는 안된다

 

현장과 지역에서 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새롭게 준비해야만 한다.

 

 

닭장차들로 가려져있는 인도를

 

깃발든 수천의 대열이

 

지놈들 의중대로

 

집회장소로 꾸역꾸역 밀려들다가

 

지쳐 포기하고 술집으로 돌아서는

 

개같은 현실

 

 

이게 철저하게 준비하지않고

 

치열하게 고민하지도 않고

 

적당히 봉합하며 살고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세월만가면 뭐가 되겠지

 

그래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결과물을 챙겨들고

 

농공행상 하는놈들 의 몫이 되겠지

 

열사정신계승이 아니라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으로 한정지어 졌는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거리를 경찰닭장차들로 포위 해버린

 

적들에게 저항한번 하지않고

 

고분고분 울타리 안에서

 

삐약삐약 지져기다가 먼길에 발걸음을 돌렸다.

 

 

 

 

전국에 흩어져

 

생과사의 벼랑끝에서

 

처절하게

 

버티고있는 동지들에게

 

흐러는 반성의 눈물을 바친다.

 

 

 

지역 투쟁부터 사수해내자 !!!

 

 

낱알이 아닌 조직적인 결합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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햅쌀가격 개 사료값 비교를 접하고

몇일 전 일 하다 듣게 된 방송 내용 중에

 

농민 단체에선가 어디에서

 

2006년산 햅쌀 가격과 개 사료값을 비교하여

 

나를 서글퍼지게 하였다.

 

대형 소매점에서

 

10kg 쌀 한포 2만 2천원~8천원

 

           개사료 3만 2천원 부터-

 

미국은 무역협정(FTA)을 앞세워 수입개방을

 

강요하고 있다.

 

 

사료는 무엇으로 만드는가

 

수입 농, 축, 수산물로 만드는것이 아닌가

 

 

작은 텃밭에서 소일삼아 무 배추등 채소를

 

가꾸어보니 농약을 치지 않으니

 

우리집것은 물론이고 남의집 채소까지

 

벌레가 줄기만 남겨놓고 뜯어 먹었다.

 

 

 

보기좋고 먹을것 있게 만들기 위해서 농약으로

 

엄청난 방제를 해야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

 

배타고 오는 사이에 변질 되지 않게 하기위해

 

엄청난 량의 농약과 방부제가 필수이겠구나

 

 

예전에 닭을 몇마리 키워본 경험이 있어 안다.

 

가격 싸다고 수입밀 사다가

 

닭에게 바로 먹이다가는

 

그것으로 끝이다.

 

수입 옥수수 알갱이 또한 같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덩치 키우기 위해 유전자 조작하고

 

초식동물 에게 고기를 사료로 먹여 키우니

 

소가 미칠수 밖에 더있나

 

 

우리 동네에서는 인간이 인간같지 않을때

 

이름하여 개 새끼라고 부른다.

 

물론 듣는이는 불리어 진대로 거품물고 반응한다.

 

 

개 같은 세상

 

개새끼 들 에게 전쟁을 선포하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그날을 위해

 

진리를 믿으면

 

실천하라

 

나눔과 섬김의 시대에 존경과 우러름을 받을 것이리

 

자식 키우듯 정성과 사랑으로 키운 생명 쌀이

 

개가 먹는 사료값보다 싸다.

 

 

미친 자본의 거리를 오늘도 헤메인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죽은 자본의 거리를

 

생명이 충만한 삶의

 

나눔과 기쁨이 있는 곳으로

 

굴종의세월에 종지부를 찍고 주인행세를 똑바로하자

 

복잡한 마음 만큼이나 생각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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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야할 길에서 참관자가 되어

오늘도 생존현장에서

 

모순덩어리 억압과 착취에

 

저항하는 형제 자매들의

 

피맺힌 분노의 함성을 들어며

 

코 끝이 찡하다.

 

 

난 참 편하게 살고있다.

 

 

아무리 높은산이 막고 있어도

 

어기여차 넘고

 

아무리 차갑고 거센파도가 몰아치는 바다가 있어도

 

밧줄을 몸에묶고

 

선발대가 건너고나면

 

길이 만들어진다.

 

 

자본의 살인적인 폭력에

 

만신창이가되어 한맺힌 절규의현장

 

길바닥에 나딩굴지라도

 

오욕의역사

 

굴종의역사

 

패배의역사를

 

더이상 자식들에게 남겨주지않기위해

 

체제내화 되어가는

 

내안의 나태함을 털고

 

갈길을 가자

 

다짐하자

 

절실하게

 

 

동지들은 오늘도 처절하게

 

자본의 침탈에 맞서 저항하고있는데 

 

 

참관자가 되어있는

 

나를 버리고 동지들과 함께 반격을 준비하자

 

그래 다시 또 시작해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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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희안한놈

9월16일 토요일 오후 12시45분경

 

조금은 빠른 근무교대를

 

담티고개에서 하고 북부정류장 기점으로 운행을 하였다.

 

중.고교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

 

승객 승.하차 인원이 정류장마다 많았다.

 

자연히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도로에 교통량도 많아서 마음은 조금 바빠졌다.

 

 

가는길에 반대편 차로에도 교통량이 엄청나게

 

많았다.

 

 

큰장으로 가까이 갈수록 추석명절

 

대목장을 준비하느라

 

평소에도 많은 혼잡과 교통정체가

 

상시적으로 있던곳인데

 

그날따라 더욱더 복잡해서 교차로 신호가 바뀌어도

 

꼬리를 물고 진입을 하는 상황이었다.

 

 

북부정류장 기점에서 요강 비우고

 

우리만의 표현방식인 열 다섯개를 조발해서 나왔다.

 

부지런히 운행하여 제일고교에 도착하니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는데

 

그곳에서부터 밀어내기를 하여야 했다.

 

 

 

몇번을 흔들어 겨우 큰장을 통과하여

 

섬유회관 승강장에서  2시 15분경에 승,하차를 마치고

 

출발하려고하니 별희안한 젊은놈 하나가

 

차를 잠시 세우라는 것이다.

 

 

차비도 내지않고 이유도 말하지않고 차를 세우라니

 

나는 도로가 혼잡해서 정체로인한 시간도 빠듯한데

 

앞문을 닫고 무시하고  차를 출발하니

 

그놈 다급하게 하는말

 

차 시동걸어 세워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사이 내가 운전하는 차는 다음 승강장을 향해

 

움직였다.

 

그랬더니 승강장앞에 세워놓은 경찰 봉고차를 가리키며

 

조급한 목소리로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순간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끼 가 발광을 했다.

 

당신이 바쁜것 이상으로 나 또한 길이 막혀 바쁘다

 

당신이 뭐하는 사람인데

 

대중교통수단인 시내버스를 함부로 세워라 하나

 

앞을보고 말을하면서는 운행은 계속했다.

 

 

그때야 자신이 경찰이라고 했다.

 

이자식이 나를 가오리 연장으로 아나

 

지가 세우라한다고 아무곳에나 차를 세우게

 

무시하고 계속 가버렸다.

 

 

다급해진 그놈

 

바지 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집어 내더니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차에서 내리게 해달라고

 

애원아닌 애원을했다.

 

 

탈때는 니맘대로 탓지만 내리는 것은 승강장에서

 

문열어주면 내려라하고 차를 계속 몰았다

 

그러다 옛 동원예식장 교차로 신호에

 

차가 정지하게 되니

 

내리게 해달라고 미안하다고 했다.

 

 

못 이기는 척 내리게 해주고는 한마디 던졌다

 

불심검문을 위해 영업하는 버스에 탓으면 자신이

 

누군지 무엇때문에 차가 정차하여야 되는지

 

승객들과 운전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볼일을 봐야지

 

대뜸 차부터 세우라니 말이되느냐!!!

 

그놈 기본 교육부터가 안되어 있었다.

 

지가 세워놓은 차까지 100미터 정도를 부리나케 뛰어갔다

 

 

차안에 타고있던 승객들의 시선을 뒤통수에 느끼며

 

속으로 휘파람을 불면서 경산조영동 종점을향해 힘차게

 

차는 움직였다.

 

 

별 희안한놈도 다있네

 

지가 경찰이면 경찰이지

 

내가 신호에만 안걸렸어도 다음 승강장까지 가면서

 

기본적인 소양교육에 대한 문단 나누기 부터 시작 하려고

 

했었는데 너 오늘 좋은사람 만난줄이나 알어...

 

 

 

승객 여러분 제가 운행하는 차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그 모든것 까지 지켜야한다는 각오로

 

오늘도

 

안전운행 하겠습니다.

 

 

제가 운전하는 차에는 선한 사람들만 이용하십니다.

 

혹시라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쫒기는일이 있다면 제차를 이용하십시요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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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성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논란을 바라보며(어쩌면 나도 모르게 논란의 중심 일수도 있다) 


과거의 내 모습과 활동들  주위의 변화와 당시의 느낌들


내가 저질렀을 잘못을 반성하여본다.


먼저 산화한 동지들께


마음의 상처를 안겼음을 반성한다.



과거에 함께했던 동지들에게도 사과한다.


철없고 거칠기만 했던  나로 인해


마음 아파했을 모던 님들께 


마음에서 우러나는


위로의 말을 흔적으로 남기고 전합니다.




노동조합의 “노”자도 모르고


먹고 살기위해 일을 시작했던 7~80년대 초


실향민 2세로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의


반공 이데오르기(이념) 에 흠뻑 젖어있던


타오르는 불같았던


자신만만하던 20대 꽃 같았던 시절



85년 정식으로 택시회사에 입사하면서


당시의 선배들의 치열했던 삶과


노동조합 활동하는 이들의 철저한


자기 확신에 따른 희생적이고 모범적인 실천


사회, 정치, 경제, 등의 변화하는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 판단하고


더 불어 함께 사는 세상


만들어 가는데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 당시에 모든 모순들을 끝내고


새 세상을


만들어 볼 것 이라고


불나비같이 불을 보고 달겨들었던


시절 있었다.





노동조합만 만들면 다 끝나고


노동조합 활동만 하면 다하는 것이고


조직을 크게만 하면 다 되는 것이라고


알았고 생각하던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이 있었다.



엄마 아버지가 나를, 우리를


먹이고 건강하게 키워내기 위해


뼈를 깍고 살을 태우고 피를 말려가며


열심히 살아오신 덕뿐에 오늘이 있음을


상한음식을 먹어가며 오늘의 나를 거두었는데



나는 우리의 자식들이 부폐한 음식을 먹을 것을


강요당하게 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하루하루를 악착같이 버틴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열심히 꽃 피우고


늙어 병들어 죽고


인생은 천로역경(天路域境) 이라 하였던가



개량을위한 적들의 회유와 탄압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무궁 무진한 모양과 방법으로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



동지들을 향한 가슴의 뜨거운 피를 식히고


맑은 정신을 오염시키고


생각을 마비시키는


모든 폭력에 저항하는 아름다운 삶을


포기 하도록 강요하는


가진자들의 횡포를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않기위해


오욕의 세월을 대물림 않기위해


나는 오늘도 간다.



동지들과의 다른 견해


조직적으로 총화시켜 내고


현장 실천으로 정리해야 함에도


논쟁과 반목으로 힘겹게 함께 어깨걸고


걸어가며 바라보고 있을


동지들을


힘빠지게 하고있는


내모습을 반성한다.



철저한 무산계급적 실천이 부족함을 목놓아 반성한다.


더 열악한 조건아래 힘겹게 실천하고있는


동지들께 다시한번 반성하고


실천으로 회복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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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한.미 F.T.가 뭐꼬

  


야, 임마야! 니 모르는걸 내가 우째 알것노?


니도 모르먼 누가 알것노?



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우리가 모르고


온 나라 국민이 지대로 잘 모르는 일을


와! 정권과 자본이 한통속이 되어 해 치울 라꼬 발광을 하노



그라모 노동자 태일에게 함 물어보자



한.미 F.T.A가 뭐꼬?


우선 에프 티 에이 가 뭔지 부터 알아봅시다.



영어 글자대로하면 (Free Trade Agreement) 줄임말로 F.T.A


자유 무역 협정이라 카는 기라



자유무역협정은 또 무시기고?


“국가간 관세장벽을 낯춰 상품 무역을 자유화 시키는 협정 임미더예”


수출하고 수입하는데 세금 적게 물리자 카마 조은거 아이가



아~지금 이야기 하는거는 그 에프 티이 에이가 아이고


한.미 F.T.A 골때리는 문제점 이야기 하는기라예


그라고 그기 우째 조은 금미꺼




재벌놈들만 살찌우고


없는놈은 더 없어 못살게된


현실이 이러케 눈앞에 떡 버티고 있는데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야는 이름은 자유무역협정인데


속을 들다 보먼 아인기라


경제에다가 정치에다가 외교안보에다가 군사적 포괄협정까지


야! 야!  본래 무역협정에 이런기 다 더가나?


이기 우째 자유 무역 협정인교


힘 쎈 놈이 힘 약한 놈을 윽박질러 스킹 하는기지(일명 센타)


안 그런나? 


맞네 씨불넘들이



일본제국주의 강점기에도 매판자본과


친일하던 넘들만 등 따시고 배 부르니 조타 그랫지 민초들은


얼마나 마이 죽어 나갔노


공출로 부역으로 전장터로


지금이 딱 그짝이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고


동남아에서 중동으로


무늬만 조금 바뀐것 말고


그때 그대로 다시 시작 되는 기라




미국 놈들이 하자는 데로 하먼 좃 되는 기라


공공서비스


교육


금융


노동


농축수산업


보건의료


시청각미디어


영화


지적재산권


환경 등


큰 덩어리로만 봐도 끝이없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제


미국놈들이 수출 좀 될만하니 301조 뭐라카는 일방적인걸로


규제하다가 저거 입맛대로 하는기라


그것도 모자라니 조금 있어니 수퍼301조 카면서 또 막고



덩치큰 헤비급하고 제일 작은 플라이급하고


똑같은 조건으로 경기를 하면 결과 우째 되겠노

실컨 잘 때리다가도 한방 맞으면 


중태 혹은 그 자리서 사망 아이가



요즘 시끄러웠던 사건 몇 가지만 이야기 할게


투기자본 론스타 알제


우리나라 금융권 초토화 하고 세금 한푼 안내고


미국에 로비 안하나


단적으로 이기바로


한.미 에프 티이 에이 인기라


놀래지 마래이


우리나라 은행이 이름만 우리끼지 속을 들다보만 까무러친다.


절반 넘게 외국자본한테 넘어간기라


론스타가 은행 고객정보 팔아 묵을라고 매물로 내 낳다 카디 우찌 됐노?



광우병 걸 리가 저거나라 국민들 안묵고 소각하는것


우리보고 수입해서 묵어라 카는기


한.미 에프 티이 에이 인기라


사료로 유전자 조작핸거 믹이가 덩거리만 크다라이 해갔고


다른나라 농사 못짓꺼로 압박주는기


그긴기라


식량주권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사람이 굶어마 죽는다 아이가


백혈병 에이즈에 걸리가꼬


약 사묵어야 되는데 복제약 못만들게 하고


약값 존나게 마이 내라케가 약 사묵을 돈이없어


사람이 아니 내형제 자매가 죽어 나가는기


한.미 F.T.A 인기라


노동의 유연화


곧 정리해고와


노동기본권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무력화 로


내가, 우리 동지들이


매판자본과 단기투기자본의 밥이 되란 말이가!!!


예전에 수출 자유지역이라고 단기 투기자본 을 위해


국가가 자본에게 무법천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장함으로


얼마나 많은 형제 자매들이 수탈과 착취를 당하고


선배 열사로 산화 했던가!



독수리 타법으로 몇시간씩 삐거득 거리는 머리를 쥐어 짜다보니


머리에 쥐가나고 요강도 비워야 되고 다른 볼일도 봐야겠네.


나머지는 누가 반론을 제기하고 시비를 건다면 그때 또 정리해보자


아 ~ 역시 글 보다는 말이 쉬워여...


쉬었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기약은 할수 없어여 그때가 언젠지 투쟁! 단결투쟁!!

친구야 !   한.미  F.T.A 뭐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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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이제까지 나는 나와 소통하는이가

 

누구인지 알수가 없는 인터넷에서

 

내 자신의 모습이 너무많이 알려지는것을

 

두려워하다 흔적을 남길때도 조심을 많이 했다.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상대는 나를 들여다 보는것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에 도전을 한다.

 

나는 운수노동자다

 

 

물류는 물론

 

생산의 주체인 노동하는 모든 이들을 목적지 까지

 

안전하게 이동하는 운수노동자다

 

25년여를 운수노동자로 살아왔다.

 

 

사실 딴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했다가

 

이렇게 시작하고보니 내일 새벽이 출근이

 

걱정스러워 이쯤에서

 

잠을 자야할 시간이다.

 

새벽 세시 삼십분이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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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험 짜릿함

말로 다하면서 기록을 남기지 않다가

 

요즈음 이렇게 하나 둘

 

글로 남겨 나가다보니

 

오늘따라 내가 생산했던

 

 나의고민들을

 

시간이지난 지금 다시보니

 

가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하다

 

 

글로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시간이 지난후에

 

당시를 회상하며  지금을 반성 할수있어 좋다.

 

 

언젠가는 산화할때

 

아니 그 이후에

 

소통은 단절되어도

 

공유될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로

 

미어지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차안에서 하염없이 울다

 

 

울음을 들킬까 그자리에 잠이들고

 

차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엄마품의 아기 자장가삼아

 

분노를

 

차곡 차곡 켜켜이 쌓는다.

 

 

평소에는 철저하게 잠궈놓고

 

처참하게 파괴하고

 

분열과 분노 반목을 조장하다

 

투표행위라는 집단적 마취로

 

일시에 정당성을 확보하고

 

또다시 패배감에 사로잡혀

 

한참동안을 회복하는데 허비하도록

 

또다른 분열의 아픔을 생산하누나

 

 

국가의 폭력과

 

자본의 침탈을

 

선거라는 망상속에

 

가두고

 

오늘 이시각에도

 

내 이웃과 형제들은

 

피눈물로 연대와 소통 공유를

 

호소한다.

 

 

글로 흔적을 남기고

 

속을 보여줌으로 내가모르는 내가

 

이웃의 아픔에

 

작은 희망하나 보태고  함께한다면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짜릿한 희망의샘물이 솟음친다.

 

 

 

실천 삶살이로 피곤하고 지친 님들이여

 

또다른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나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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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진 마음을 여그다가 풀어본다

어제 새벽 출근을 하여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에들러 파업투쟁중인 동지들을 만나러가기에 앞서

 

좀더 잘해보기위해 나름대로 자료를 검색하고 글을 쓰고

 

사전점금을 하고 약속장소를 향해

 

고속도로와 국도를 한시간 삼십여분동안

 

달려가서 상황을 공유하기위해 함께했다.

 

 

나자신이 전혀 계획에도 없이 48시간동안 5시간정도의 수면을 취하고

 

일을 한 이후라 체력적으로 너무 피곤하여

 

동지들과의 소통을 계속하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때와 달리 잠자리 조건이 너무 황송할 정도여서인지

 

발자국 소음등으로 인해 깊은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후 내가 해야할 강의시간

 

동지들이 밤에 잠도거부하고

 

약물을 섭취한결과 강의 참가 분위기가 이야기 해야할 사람 입장에서는

 

영아니올시다 였다.

 

 

 

시간부터 지켜지지 않더니 집중이 되지않았다.

 

마음먹고 준비 해갔던 이야기가 하는 내가 생각해도 산만 해지는것 같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동지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켜켜이 쌓였다.

 

동지들이 50여일째 자본의 파업에 대항해 싸우면서 지칠 분위기 속에

 

음주로 밤늦게 까지 느슨해진 분위기를 묶어내지 못했다.

 

 

 

내자신이 긴장을 하지않았나?

 

내가 내린 결론은 너무 잘해 보려고 하다가

 

내 방식이 아닌 그리고 너무자세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욕심을

 

부렸던것같다.

 

동지들께 미안할 따름이다.

 

동지들 뒷날봅시다.

 

나만의 방식대로 단순.무식,과격하게 나의특성을살려

 

피곤하고 힘든 투쟁일정속에 힘을 낼수있도록

 

더욱더 철저하겠습니다.

 

마음의 짐을 글로남기고보니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갔다.

 

동지들 힘 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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