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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우리 팀’의 폭행 - 8월 17일 새벽 명동성당, 어떤 집단에 의한 폭행 사건에 대해

촛불관련 커뮤니티에 펌 부탁드립니다.
<예: 아고라 자유토론, 안티MB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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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우리 팀’의 폭행

- 8월 17일 새벽 명동성당, 어떤 집단에 의한 폭행 사건에 대해


 사건 #1

 8월 17일 새벽 명동성당 진입로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중에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간에 실랑이가 있었다. 나는 그날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은 경찰의 진입에 대응하여 보도블럭을 깨고 깬 돌들을 진입하는 경찰을 향해 던지고 있었다. 돌을 사람들이 깼으나 (여전히 돌은 부족한 상황이었고 경찰을 향해 던지는 사람들의 수도 10여명 정도였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보도블럭이 빼어진 곳에 가서 돌을 빼려고 하자, 20대 초반의 흰티를 입은 사람(이하 흰티)으로부터 제지를 당하였다. 그 사람이 말하길 “시의 재산인데 훼손하면 안된다”, 그럼 돌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하자 “보도블럭을 깨면 언론으로부터 비난이 온다” “뒤쪽 다른 곳에 가서 가져오면 되지 않느냐”고 하였고 이에 보도블럭을 빼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다. 보니 두세 명의 사람들은 같은 일행인 듯 하였고 그 중 한 사람은 ‘아대련’ 수건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이 때는 경찰의 진입이 벌어지는 상황이었기에 급하게 주변에 깨어진 돌을 들고 경찰을 향해 던지러 갔다. 경찰을 향해 수 차례 던지고 뒤로 물러나 상황을 보니 아까 ‘아대련 마스크’ 일행은 경찰의 진입이 이루어지는 급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종이로 얼굴을 가린 채 서서 앞의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 함께 돌을 던지지 않고서. 그들을 지나쳐서 돌을 가져오려고 가서 돌을 들고 앞으로 나가다가 보니 어떤 사람이 아까의 그 자리에서 보도블럭을 빼서 깨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대련 마스크’ 일행은 아까와 같이 블럭을 빼려는 것을 말리고 있었다. 이에 그들이 투석을 관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을 준비하는 것을 말리려는 의도에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였고, 이에 그러한 것에 대해 언질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돌을 던지지 않고 구경만 하려면 뒤로 가라”며 그 중 블록 빼는 사람을 말리던 그 사람의 가슴을 (양 손을 가슴에 대고) 밀었다. 그 사람은 뒤로 밀려났으나, 그 즉시 나는 주변의 어떤 사람으로부터 목과 턱언저리 부위를 차이게 되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아대련 마스크’가 자신이 한 행동임을 시인하였다.)


 “나 맞았다“라고 두세 차례 주장하였으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때 형광옷 상의를 입은 20초반의 여성(이하 “형광옷”)이 와서 때린 측을 두둔하였다. 차인 곳을 보자며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시늉을 하더니 “아무렇지도 않구만“이라고 말하였다. 좀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다. “형광옷“은 계속해서 때린 측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며 맞은 측을 압박하고서는 뒤로 물러가며 비난하였다. 이에 나는 억울하여 뒤에 대고 “미쳤구만”이라고 말을 하였다. 이에 키가 좀 큰 20대초반의 남자(“큰키”)가 “형광옷“에게 가서 말하는 것 같았고, 상황은 이내 어지러워졌다. 여러 사람이 맞은 측의 팔을 붙잡고 등에 멘 가방을 이끌고 뒤로 끌고 갔으며, 나는 “비폭력이라는 사람들이 폭력을 쓰나?”(사람을 패?)라고 하며 끌려갔다. 이 와중에 입고 있던 비옷이 찢겨져 못쓰게 되었다. 뒤로 가서 성당 입구 쯤에서 가방을 뺏겼고 내용물을 검사당했다.(왜 내가 가방을 검사당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때 프락치 운운의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가방을 돌려받고 풀려날 수 있었고, 프락치 오해는 사라졌다. 이에 허탈해서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게 뭡니까?”

 그리고 말하길 “비폭력, 정말 문제 많다~!”, “그리고 프락치 운운도 문제 많다.”라고 하였다.


 모자 쓴 40초중반의 사람(“모자40초“)과 20대 초반의 마른 남성(“마른”) 이렇게 남아서 성당 초입에서 서로 잠시 동안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마른”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사과한다”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사과를 하였고 “모자40초”는 “나도 강성기조의 사람이다.”며 “경복궁에서 처음 OOOOO 3명이 청소년들에게 돌 던지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이후부터 돌을 들게 된 것이다.“ 등등의 말을 하였다. 이에 “오늘날 시위가 이 지경이 되고 진전이 없게 된 것은 비폭력, 무저항 기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후 아무래도 억울해서 “모자40초”에게 제안을 하였다. “아까 나를 팬 그 사람들이 앞에 있을 테니 같이 가서 말을 해보자“라고 해서 앞으로 가게 되었다. (이 후 상황이 있지만 생략...)


 사건 #2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려고 있으니 어떤 덩치 좋은 사람(이하 “덩치”)이 와서 팔을 압박하여 강하게 끌며 “같이 가자”고 하며 막무가내로 끌고 가려고 하였다. 들고 있던 가방은 그 “덩치”가 같이 온 사람에게 넘겨서 가져가게 하였다. 가고 싶지 않아서 “담배피고 있다”고 하며 재차 삼차 자리에 앉았으나 계속해서 잡아끌며 같이 갈 것을 종용하였다. 일단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가방을 빼앗긴 고로 가자고 하는 공터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 “덩치”말고도 동행은 서넛이 되었으며, 깡마른 사람(이하 “깡마른“)은 공터 안쪽의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였다. 60대 초반정도의 사람(이하 60초반)이 “그럴 필요까진 없다, 여기가 좋다”고 하여 “후미진 곳”으로 까지는 가지 않게 되었다. “60초반“은 공터 끝의 쇠막대에 걸터 앉아 처음엔 조용한 말로 “사건#1”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자신이 가진 견해를 말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나는 처음부터 죽 나왔던 사람인데...”라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거와는 상관없고...”라며 “60초반”은 전경과 대치하는 와중에 시위대간에 대립이 있었던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하였고, 그런 후 그 일에 대해 당사자들을 불러 오게 하여 나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렇게 해서 끝날 줄 알았다) 이 때 “큰키”가 와서 몸을 민 것에 대해 그것이 폭력이라고 우겼고 (먼저 폭력을 행사한 쪽은 그쪽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사과할 것을 지속적으로 “큰키”는 주장하였고 또 나에게 인정하기를 계속해서 강변하였다. 주변에 나를 옹호해주는 사람은 없었으며 중간 중간 “구경나지 않았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여 사람들을 흩어보낸 관계로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주변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60초반“이 사과할 것을 주장하여 이에 “아까도 사과하였다”고 말하였고 다시 “흰티“를 불러오게 하여 “흰티”에게 몸을 민 것에 대해 사과하였다. 좀 있으니 “형광옷”이 와서 “내가 젊은 나이에 나이 많은 사람에게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몸태를 손으로 주욱 훑으며) 이런 자세로 항의하는 것은 처음이고 그런 기회를 갖게 되서 참으로 영광이다” 등등 비아냥거렸고 “아이도 몇마디 하면 알아들을 것을 알아 듣는다”, “개도 말을 하면 알아 듣는다” 운운하며 모욕하는 내용의 말들을 하였다. (자괴감을 느꼈으며 치욕스런 상황을 참아야만 했다) 이에 나는 “가해자를 두둔하니 ‘미쳤구나‘라고 한 것이다.” “그 발언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또 사과하였다. 이에 “큰키”는 “내 눈을 보라”며 죄인을 다루듯이 하였고, 나의 가슴을 세차게 밀며(재현하며) “가슴을 밀었을 때 밀린 사람은 어찌해야 하나“라고 추궁하였다. “그렇게 세게 밀지 않았다. 양 손을 가슴에 얹은 채 밀었다“(재현한 것과는 밀은 세기의 정도가 다름을 주장하였다)


 이 때 “60초반“이 말하길 “너 새문안 교회에서 버스 끌기할 때 ‘우리 팀’한테 프락치라고 했지” (그 말을 듣는 처음에는 즉각적으로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엔 왜 이 상황에서 다른 때의 일에 대해 꺼내는지 의문이 들었다.) “버스 끄는 사람들에게 한 것이 아니라 버스 끄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에게 그 말을 하였다.”(당시를 말하면 버스 끄는 것을 방해하길래 그치게 한 후 당사자들이 떠나가는 상황에서 뒤에 대고 “한마디“한 것이 그 말의 정황이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여기 본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나를 “사건#1“로 불러놓고서는 왜 “새문안“ 때의 상황을 가지고 말을 하는 지를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재차 “사과하라“고 해서 “사건#1“에 대해 말을 하는 것으로 알아 “아까 사과했다“고 하였다. 이에 “60초반“이 “이 새끼가~“라고 하며 순간적으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나는 “내가 피해자인데...(여기 사람들이 가해자로 몰고 있지 않은가!~)”라고 하며 내가 피해자인 것을 항변하였다. 계속해서 “60초반“은 허벅지와 정강이를 5~6회 세게 후려 차며 계속 욕을 해댔다. 이에 “큰키“가 몸으로 막아서서 제지하였다. 아까의 “덩치“는 “큰키“가 “60초반”의 폭행을 제지하는 것을 말리려 하였다. 이 때 어떤 40대중후반정도의 아이 업은 아주머니 한 분이 (이 분은 아까부터 죽 지켜보고 있었다.) “이쪽 말도 맞고 저쪽 말도 맞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하여 나는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계단 언저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① 상황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고 계획적이었다라는 점과 ② 집단적으로 자행되었다는 점(연류된 사람이 여럿이고 한 단체 ”우리 팀”에 소속되 있다는 점), ③ 새문안에서의 일이 수개월 전이었으며 “그때 이후 예의주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는 점, ④ 프락치 의심이 불식된 이후임에도 “사건#2”가 진행되었고 ⑤ 폭행이 이루어졌다는 점 등으로 보아 단순한 일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팀”에게(그럴만한 체계가 있다면) 당사자들에 대한 납득할 만한 후속조치를 요구하는 바이고, 후속조치 후 당사자들의 공개적인 사과, 단체의 공개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바이다. 일단의 충분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촛불에 참여하는 개인과 단체를 망라하여 양심과 상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호소하여 적절한 행동을 강구할 것이다.

 

200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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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이제는 비정규직이다!

우선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주 후보와 국민들에게 위로하고 싶습니다.

아고리언에게도, 그리고 무한 경쟁 시대로 접어들면서 생겨날 피해자들. 그리고 고등학생이 저에게도 말이죠.

 

교육감 선거에 대한 개괄

 

그래도 전교조 간판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거의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는 합니다.

보통 재보궐 선거나 기타 잡다해 보이는 선거들은 보수의 초강세를 보입니다. 프랑스같이 좌파가 투표장에 열심히 나오는 나라가 아닌 이상 어느 나라나 보수 성향의 나이 드신 분들이 거의 득표의 향배를 좌지우지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요.

 

촛불 데모 2nd Round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쨌든 교육감 선거는 패배로 끝을 맺었고, 이제 촛불과 아고리언들은 새로운 촛불 시위의 동력과 이명박 퇴진 운동의 연료를 새로이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봤을 때, 쇠고기 협상 무효 고시 철회, 미친 교육 심판, 조중동 폐간이나 고소영 내각 비판 등의 협소한 느낌의 이슈들로는 절대로 이명박을 권좌에서 끌어 내릴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50% 이상이 단순히 지지하거나 여론조사에서나 말하는 촛불 데모 찬성 이런 차원이 아니라, 정말 대한민국 국민의 최소한 절반 이상이 거리에 나와 독재타도를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열거한 이슈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느냐, 물론 있습니다.

 

바로 비정규직 투쟁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절반 정도는 비정규직입니다.

설사 정규직이라도 거의 비정규직에 가깝고, 최근 파견직이나 기륭전자, 이랜드 아주머니는 물론 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까지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언론에서는 의외로 비정규직 문제가 촛불 시위에서 나오지 않아 의아해 했습니다. 촛불 시위의 주 세력이

평소 반한나라당 성향의 중산층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 시위주도층부터가 마음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비정규직 투쟁이 다른 이슈보다 잘 먹히는 이유

 

사실 쇠고기는 광우병으로 인하여 위하기는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섭취한 후에 발병하는 것은 아니고, 또 광우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공감하기도 어렵고 '좌파의 생트집'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맘을 바꾸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당장 자기자신에게 해당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고 불만은 많지만 투표장에는 안나오는 무당파층을 공략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미친교육은 학부모나 학생 아니면 공감하기도 사실 힘듭니다.

공기업 민영화라는 거 저희 가족들 아예 뜻도 모르고 주위 친구들이나 심지어 인텔리 선생님들조차 생소한 개념입니다.

한미FTA는 반대보다 찬성이 훨씬 많은 사안이고요.

조중동 폐간이라... 조중동이 사람 이름인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촛불 시위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강자가 약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데에 대한 저항 아닙니까?

아니면 그저 중산층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까?

단지 반한나라당 성향을 가지고서 막연히 반대하는 꼼수입니까?

 

간디식 비폭력 기조vs광주 민주화 운동식 직접행동

 

음..... 방향이 정해졌으면 어떻게 갈 것인가도 고민해야겠죠.

다만 역사적 사례들을 많이 고찰하면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정권 퇴진을 목표로 한다면 정말 엄청난 인파가 거리에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MB와 촛불의 갈등이 첨예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비춰지지 않는 한, 우리의 투쟁은 점점 더 힘을 잃게 됩니다.

언론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면, 시민들은 결국 촛불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비폭력 기조는 그저 허공 속의 메아리가 될 뿐이죠.

 

반면 직접행동으로 기존의 구호 외치기를 넘어선 행동을 시작한다면, 많은 이의 동의를 얻어야 할테지만 그건 어느 나라에서건 실패했고 다만 그 폭력의 정당성이 얼마나 유효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그 당시 폭도로 불렸지 그 누구에게 지지를 얻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총기탈취가 나쁘다면 광주 시민은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죠.)

 

만일 직접행동에 들어간다면 그 강도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셔야 합니다. 전공투 수준으로 심하게 갈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있었던 마찰에서 조금 나간 수준인지 말이죠.

 

어쨌든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로 뭉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것. 중요하지만 저평가된 이 우량 이슈를 반드시 물고늘어져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명박 산성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이 될 것이라는 것.

 

* 앞으로 촛불 시위는 이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3]
* 한성용    * 번호 1781369 | 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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