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랑과 우정2-모든 것은 변화한다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년하장, 나도 한때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어요라고 항변하는 년하장이다. 진작에 써 놓고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고 이제야 올린다. 그만큼 관계가 년하장같지 않아 많은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괜한 걱정이다. 주저하지 말아야 겠다. 난필이면 어떠냐 그게 난데.

 

사랑과 우정2-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러니깐 94년 4월 19일, 혁명 기념일에 우리는 한 아파트에 입주한다. 말 그대로 사실 혼.

 

그는 “생전에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꿈꿔보지 못했다.”고 했다.

단칸 방, 그것도 지하 단칸방 바퀴벌레와 함께하는 주거에서 아파트라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당시 노동자에게 아파트와 자동차는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임금상승과 3저 호황에 힘입어 자본은 아파트와 자동차를 노동자에게 쏟아 냈다. 아파트와 자동차를 덥석 문 노동자들은 이를 향유하기 위해 잔업 철야와 허위 허식 등 자본의 굴레에 더 깊이 빨려 들어갔다.

 

물론 1년 살고 연립으로 이사했지만, 우리는 아파트를 넘 봤고, 그렇게 신혼의 단꿈을 아파트에서 보냈다.

 

94년! 진짜 꿈·같·은 한 해 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4년 12월, 그가 보내 온 ‘깨가 넘쳐나고 삶이 풍만한’ 년하장.>

 

95년, 이제 현실로 되돌아 온다.

선하고 착한 웃음을 닮은 아기가 태어났다.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좌충우돌-아이와 그에겐 고통이었고, 운동과 삶은 분리되고, 온갖 것들이 뒤죽박죽, 세상이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한다.

 

그래도 그가 있어 행복했고 자신감이 있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을 때 고통은 고통일 수 없으며, 좌절보다는 희망이 부정보다는 긍정이 그래서 미래를 향유할 힘이 샘 솟아 타락하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1년 년하장, 퇴색하고 빛바랠 만한데 여전하다>

 

내년이면 함께한 지 20년이다. 모든 것이 변했다.

인간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고, 사회적 조건(삶의 조건)이 나의 행동을 규정하지만 그럼에도 존재에 굴하지 않으려고 했던 삶. 그 삶은 여지없이 현실에 결박당했음을 보여 줄 뿐이다.

 

‘내 아이는 군대가는 일이 결코 없을 것(강제징집 폐지)’이라는 그 혁명의 투혼도 녹이 슬고, 사랑도, 나도 그도. 선하고 착한 웃음을 닮은 아기도. 이젠 년하장도 없다. 모든 것이 변해 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을 얍잡아 본 결기의 대가인가? 있을 때 잘하지 못하는, 없어야 그 진가를 알아채 후회하는 한계인가? 선하고 착한 이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결과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믿음.

한때는 깨지고, ‘언제 철 들까?’ 지치고 힘들어 놓다가도 여전히 그에 대한 믿음을 다 잡는다.

 

‘내 노후는 내가 아닌 이 사회가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