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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등산, 당산나무아래에서 만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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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등산, 당산나무아래에서 만난 여인

일시 : 2014년 6월 24일(화)
이동 : 04:50 기상->전철 05:23 -> 천안아산역05:58 → 광주송정역08:08  → 지하철(학동,증심사입구역) → 버스(무등산국립공원 증심사지구)-> 아침식사 후 산행
광주역 Ktx 18:15-> 천안아산역 20:42-> 전철 21:02->온양온천 21:11도착
산행 : 증심사지구관리사무소->중머리재(3.1)->중봉->서석대, 입석대->장불재(2.9)->석불암, 규봉암->시무지기 갈림길->신선대 억새평전(4.2)->꼬막재(1.2)->원효분소(2.0) 14km 5시 15분 소요.

 

어떻게 늙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전날 지인을 만났다. 이유는 열쇠를 주기위해서. 열쇠와 만남, 여기에 여러 가지 이유가 만들어지고  그래서 그날 약속이 잡힌 것이다. 그런데 열쇠를 빠트리고 만났다. 이런 경험은 낮설다. 아마 내 생애 처음이지 않을까 쉽다. 당혹감과 늙어가고 있구나 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전철 시간은 05:23 출발, 그럼 집에서 13분에 나오면 된다. 이 계획이 당일 05:13분 출발로 인식, 04:50기상후 허둥된다. 05:03분에 집을 나서야 한다. 늦었다. 부리나케 전절 승차장에 도착 시간을 보니 12분이다. 그 순간 23분임을 깨닫는다. 이를 어찌할꼬. 따로 놀고 있는 몸과 마음을 받아들이고 늙은이 삶을 준비해야 겠다.

 

철도노조에서 Ktx 산천 열차가 위험하다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것이 아니 여도 Ktx는 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쩔수없다, 무궁화 새마을호 배차가 줄어들었기(첫차는 Ktx가 1시간 빠름) 때문이다. 그리고 주중 사전 예약은 30%할인하여 무궁화 운임 수준이다.

 

광주! 5.18, 내겐 이 기억밖에 없다. 이젠 이것도 희미하다. 30년이 흘렀다. 그래도 역에서 내려 전철타러 가면서 기웃거린다, 전철안도 기웃거린다. 다른 도시와 뭐 다른 것은 없을 까? 벽 곳곳에 시가 걸려있고, 책꽂이에 여러 가지 책들이 있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주제에 무엇을 평할 것인가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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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심사역 1번출구로 나와 학2 버스정류장. 사전 준비시 ‘첨담09’번을 타야한다. 그런데 버스가 내리 3대가 지나가고 표지판을 보니, 정류장에 도착하는 모든 버스가 증심사지구가 종점임을 알았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몰래 찍은 것이다.

 

증심사지구 입구에는 온갖것의 아웃도어와 식당이 즐비하다. 이렇게 많은데 장사가 되는가? 그만큼 등산객이 많다는 증거일 거다. 식당을 찾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이른시간이여서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다. 큰 낭패다, 초조해진다. 얼른 먹고 16:30분에는 원효사지구에 도착해야 한다. 다행히 순두부찌개를 해줄 수 있다하여 아침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반찬이 깔끔 맞있었다. 역시 전라도는 어느 식당이든 맛이 좋다.


관리사무소가서, 서석대 입석대거쳐서 장불재오는 방법을(프린트한 등산지도 보여주면서) 물으니 “중머리재에서 중봉으로 가면 된다” 한다. 10:00 무등산 등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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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산행 코스(검정색)다. 증심사지구관리사무소->중머리재(3.1)->중봉->서석대, 입석대->장불재(2.9)까지 초행길이며 등산로가 많아서 확인 또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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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년된 느티나무, 둘레가 4.8m 높이가 28m 보호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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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풍정 : 조선시대 이전부터 화순 동북·이서면 주민들이 도원마을에서부터 긴 골짜기(장골재)를 넘어 성거리를 지나 광주읍성으로 이어지는 나들목 길. 느티나무아래에 길손들이 솔바람과 함께 쉬어 가는 길목.’(공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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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풍정옆 아름답게 핀 꽃, 무엇인지 난 모른다.

 

당산나무아래에서 만난 속초 여인
당산나무 우측 아래를 보면 한 여인이 평상복에 생수한병 들고 올라오고 있다. 그녀가 말을 물어왔고 대답하고 지나치는 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광주 여행중이다. 늘 광주를 찾아가야 한다하면서 지금에야 왔다고 한다. 사연인즉, 82년 고교를 졸업하고 설악산에서 광주에서 온 이들에게 80년 광주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자기는 전혀 몰랐단다. 그 이후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자녀들에게 광주이야기도 하며 살았다. 남편은 경상도라 시쿵둥한단다. 아니, 30년이 지나서 이제야 오냐고 구박아닌 구박을 했는데,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오다니 대단한 그녀다. 도청도 보고 금남로도 거닐어 보고 싶다한다. 도청은 이사하고 거리는 많이 변해 그녀의 심정을 광주가 받아줄지 걱정은 된다. 하지만 그녀가 광주를 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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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중머리재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쉽게도 그녀는 여기서 하산한다. 중머리재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쉬지않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여기까지 왔다. 제대로 헤어짐을 나누지 못해 산행내내 아쉬움이 남았다. 중머리재에서 곧바로 헤어졌기 때문이다. 나도 같이 쉬면서 가지고 온 음식이라도 나눠 먹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만나고 헤어짐이 낮설고 소극적 표현과 판단 미숙. 언젠쯤 제대로 된 여행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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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머리재에서 중봉까지는 1km. 가는 길에 찍은 것이다. 서석대와 입석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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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 서석대까지는 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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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교, 중봉과 서석대 중간지점. 무등산 옛길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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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전망대에서 찍은 것이다. 날씨가 흐리다. 광주에 도착하니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뒤라 적이 안심되었으나 무등산은 안개가 자욱이 흩날리고 있다. 물론 간간이 해가 나오기도 했으나 경치 구경은 포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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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옛길 종점. 옛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지 몰라도, 서석대가 종점은 아닌듯하다. 선조들은 옛길따라 서석대지나서 천왕봉으로 갔을 것이다. 지금은 서석대가 무등산 정상노릇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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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에서 바로본 천왕봉.
‘무등산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천왕봉(1,187m)에 올라서면 광주뿐아니라 담양, 영암, 나주, 전북 순창 등 호남일원이 한눈에 들어오며 맑은 날에 지리산도 조망할 수 있다. 지왕봉은 꼭대기에 의병방 김덕령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고 담력을 길렀다는 뜀바위가 있다. 인왕봉은 세 봉우리중 가장 낮으며 서석대쪽에서 가장 잘 보인다.’(공원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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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안개만 자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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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암 :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어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난데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이무기는 곧장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이다.’(공원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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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대, 전망대아닌 바로 밑에서 찍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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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불재 도착 12:45. 점심도 먹어야하고 원효분소에는 늦어도 16:30분 전에 도착해야 17시 전에 버스를 탈 수 있다. 이제부터는 속도를 좀 내야한다는 판단. 서두른다. 점심은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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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지공너덜과 석불암으로 가야 하는데 그럼 아마 광석대 규봉암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급하다고 그냥 지나치고 규봉암으로 갔다. 규봉암도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데 길이 없다. 이상타. 다시 뒤돌아 규봉암으로 간다. 가보니 광석대 표지판이 있고 안개에 가린 광석대가 조금 보인다. 길을 찾아도 없다. 규봉암에는 사람이 안보인다. 규봉암 나와서 왔던 길을 다시 가니 등산로가 나온다. 여기서 아마 10분이상을 헤멘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더욱 급해진 것이다.
‘너덜’ 사전을 찾아보니 ‘돌이 많이 흩어져 깔려 있는 비탈’이란다. 지공너덜과 석불암 그리고 광석대를 보지 않은 것은 크나큰 실수다. 지금 생각컨대 다 구경해도 시간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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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니 시장기가 오고 점심은 먹어야 한다. 맥주와 구운계란으로 맘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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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멀리 보이는 바위가 신선대. 멀리서 바라보기만하고 뒤돌아 꼬막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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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재, 14:30분 원효분소 2km. 이런 젠장 넘 일찍 왔다. 사과와 빵을 맛있게 먹는다. 여유있게 맛을 음미하며. 이제는 반대로 좀 느리게 가야겠다.

 

원효분소 15:15분 도착, 머리 감고 세수하고 버스 정류장에 간다. 가기전 관리사무소 들러 버스정류장 위치를 물어본다. 버스 파업이라 시간이 불규칙하다며 지금 도착한 버스 타고 가란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광주역에서 시간을 죽이느니 여기가 훨씬 좋다. 버스 그냥 보내고 계곡으로가 발 담그고 맥주한잔, 그러나 계곡이 넘 멀다. 할 수 없이 정류장에서 맥주한잔. 가지고 온 음식을 다 먹어야 하는데, 소세지5개와 영양갱2개, 사과2개, 빵1개, 구운계란4개, 맥주2캔, 생수2병. 생수 반병, 맥주2캔, 사과1개, 빵 반조각, 계란4개 오늘 먹은 양이다.

 

광주 그 인연을... 인민의 권리
생각보다 버스가 일찍와서 16:30분 버스 출발, 광주역 17:10도착 1시간의 여유가 있다. 일단 화장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대략 14년전 그러니깐 2010년 전후 김대중정부시절이다. 난 서울 그는 광주, 노동조합활동으로 만났다. 그는 하위직 공무원이다. 김대중정부는 공무원구조조정한답시고 애매한 하위직만 짤랐다. 그 희생양에 그가 포함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만나게 된 그는 살기위해 노조를 만들고 싸움을 시작했다. 서울, 부산, 대구 그들은 살아남아 지금도 공무원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는 전부 짤렸다. 대책은 상용직 채용이었다. 그는 이러한 10여년의 고통을 견디며 지켜온 직장을 그만 두었다. 다 큰 아들이 비명횡사. 그래서 오늘도 아들이 보고 싶어 묘지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반가움보다는 맘이 더 무겁다. 총맞아 죽고, 눈에 깔려죽고, 수장되 죽고 자식가진 부모 맘은 타 들어간다. 어찌살고.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인 것이다.’(미국독립선언문,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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