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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산행

주왕산 봄 산행

 

3월 1일 조선민중의 총궐기를 뒤로 하고 나는 주왕산에 오른다. 내가 언제 국경일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있었던가? 반국가 신념! 하지만 당시 일제의 압제에 떨쳐일어섰던 민중을 생각해본다.

 

여전히 뒤골은 땡긴다. 수많은 농성장, 연휴을 맞이하여 농성장 방문 요청을 째고 나는 산에 간다. 몸과 마음은 무겁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즐겁다.

 

이를 시샘하듯 어제부터 비가와서 새벽 5시 집을 나서는데 여전히 비가 내린다.

 

세종시청 6시, 우리의 희망녀는 미리 도착해있다. 희망녀는 나와 웃음녀를 태우고 출발, 나는 주무시고 둘이서 조잘 조잘, 10시 10분 주왕산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도중 휴게소에서 희망녀가 직접만든 샌드위치로 아침을 맞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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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등산코스다. 주왕산-후리메기-3폭포 들려서 원점 회귀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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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폭포, 오늘의 산행팀, 희망녀 나 웃음녀 3명이다. 원래 팀은 6명이다. 복술이가 목디스크로, 웃음녀남편이 근무로, 저기 보령녀도 빠졌다. 희망녀는 음지를 지향한다. 그녀는 사진을 찍지않는다. 오늘은 나의 블러그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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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러그써야 한다고 사진찍자고 요청, 희망녀가 핸드폰으로 찍기 시작합니다.

 

2g폰인 내가 sns교육을 받고 아이폰없이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블러그 만들었다. 이후 문제는 사진을 어떻게 찍느냐이다. 아이폰을 살까 디카를 사야하나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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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인증샷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 하여 석병산이라고도 하며, 신라의 왕족 김주원(金周元)이 머물렀다 하여 주방산(周房山)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이곳에서 수도할 때 이 산을 주왕산이라 부르면 이 고장이 번성할 것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전한다.(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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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폭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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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이 병풍바위, 우측 가운데가 급수대다. 내가 서있는 곳은 3,2,1폭포지나고 기암절벽을 지나서 무장굴가는 도중에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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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에 보이는 것이 무장굴이다.

주왕굴은 비로봉과 촛대봉 암벽 사이의 협곡에 있으며, 마장군에게 쫓긴 주왕이 이 굴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무장굴(武裝窟)은 주왕이 무기를 저장해두었던 곳이라 전해지는데, 굴 속은 큰 암석으로 가로막혀 10m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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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사, 산행후 찍은 것. 뒤에 보이는 바위가 기암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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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타고 주산지 구경하러 왔다.

숙종(1720년)때 만든 저수지, 물이 한번도 마른적이 없다고 한다. 물속에서 자라는 왕버들로 유명하다고 한다.

 

달기약수로 삶은 닭백숙 먹으로 달기약수탕이 있는 동대구식당에 갔다. 경상도에서 먹은 음식중에 가장 맛있었음. 예전에 안동에서 안동찜닭먹었는데 맛없었다.

 

달기약수탕은 주왕산관리공단 입구에서 서북쪽으로 약 8㎞ 지점인 청송읍 부곡리에 있으며, 철 이온이 함유된 탄산수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 조선시대 철종 때 발견되었으며, 약 300m 간격으로 하탕·중탕·상탕이 있다.(브리태니커)

 

 생각해보니

오늘의 산행은 주왕산대담(對談)이었다.

산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심지어 차안에서도 주저리 주저리.  속내와 인생사가 곁들어진 대담이  산행을 압도하였다. 들어주고 이야기하고, 그래서 산행이 즐거운가 보다. 사람이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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