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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걸 잡을 수 있는가...

 

어제 어느 인물이 만나자고 했다.

현장활동을 하고 싶은데, 어느 '이슈'에 몸과 뜻을 실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기특하다.

그러나 30대 중반인 남성인 그가 30대 중반 여성인 나에게 그렇게 호소 한다면,

난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난 지금 내일 일지도 5년 후 일지도 모를 시간을 두고 쫓겨나가야 하는 주민들과

있는 동안의 고장의 추억과 그들의 곤난함을 기록하려 한다.

그들이 아래기사의 이들과 다른가.

그래서 답답한 사실을 나눌 수 있는가.

그래서 고민해야 하는가.

이 불쌍한 인물을 그냥 측은지심으로 조언하고 응원하기를 반복해야 하는가.

우리의 곤곤함의 근천이 나눌 수 있는 파일인가....

미안하지만... 욕하고 싶지만...

불쌍하게 보자.

제발... 정신차려라!

개인의 욕망과 어리석은 투정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참세상'에 이력서를 냈다한다.

혹이라도 그의 그 애처러운 처세로 우리의 일만의 언어가 망가지지 않도록 바란다.

 

 

 

 

죽어도 죽지 못하는 ‘양공주 할머니’
 
한겨레 | 기사입력 2007-09-21 19:30 기사원문보기
 

[한겨레] “그는 아직도 세상을 뜨지 못했어요.”

3일 경기 파주시 파주병원에서 임아무개(61)씨가 한 많은 ‘양공주’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틀 뒤 파주 벽제화장터에서 화장돼 한 줌 재가 되었지만, 호적상 그는 보름이 넘도록 아직도 살아 있다. 고아로 시작된 그의 삶은 죽어서도 외로웠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잃고 9살부터 식모살이를 시작해 20대에 쇠를 깎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쇳가루가 눈에 들어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한때 한국 남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가정폭력에 못 이겨 집을 나온 그는 기지촌으로 찾아들었다. 동두천과 파주 일대의 미군기지 주변에서 ‘양공주’ 생활을 하면서 미군과 동거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최근 미군기지가 철거됐지만 나이가 든 그는 파주 선유리를 끝내 떠나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자신의 가슴에 암이 진행된 사실도 모른 채 통증을 느껴 병원에 입원했다가 폐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시작했으나 며칠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현행 호적법상 사망 신고는 사망자의 호주나 친족, 동거자나 사망 장소를 관리하는 자가 하도록 돼 있다. 파주시 문산읍의 한 관계자는 “임씨 사망 당시 주민등록과 호적은 있었지만, 인척은 물론 동거자 등 당사자를 찾을 수 없었고, 병원 쪽도 ‘행정업무를 대행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사망신고를 꺼렸다”고 말했다.

결국 파주시가 나서서 병원의 사망진단서를 받아 고양지원에 ‘직권정정기재 허가신청’을 냈다. 법원이 임씨의 사망 확인을 결정하려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가 걸린다. 임씨는 자신의 죽음을 이 세상에서 확인받으려면 앞으로 한두 달은 더 산 사람이어야 하는 셈이다.

기지촌 여성들을 돌봐오면서 사망한 임씨를 화장했던 의정부 두레방의 박수미 간사는 “전쟁과 가난, 가정폭력에 휘말려 기지촌에서 평생을 ‘양공주’라는 각인이 찍혀 살아온 임 할머니가 가는 길조차도 이 세상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파주/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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