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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20~30
지난주일 섬돌에서 후원하기로 한 ‘정의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를 만들면서 ‘정와’와 ‘평화’를 내 세웠습니다.평신도들이 교회와 사회개혁에 함께 하기로 하면서, 정의와 평화가 기독교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공동대표는 명망가가 아닌 우리 안에서 여성을 포함해 세 명 이내로 하고, 평신도라는 표현이 미흡하다고 하여 ‘기독인’이라고 했습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라고 80년대부터 활동해 오고 있는 목회자 조직도 있습니다. 짧게 ‘목정평’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주교회의와 각 교구 산하에 ‘정의평화위원회’가 있습니다. 천주교 단체들의 연대체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 있고, 우리가 흔히 ‘사제단’이라고 알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있습니다.
70년 80년 90년대를 지나오면서 한국 사회는 독재와 맞서면서 민주가 중요했고, 민중들의 생존권이 곳곳에서 박탈당하고 있는 때라 정의가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있는 말씀대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묶인 자에게 해방과, 억눌린 자에게 자유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이는 하느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던 이들이 감옥에서 나오며 생명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김지하, 박노해, 황대권 이런 분들이었는데 수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았습니다. 기장 교단에서 공장지역이나 빈민지역에서 민중선교를 해 오던 ‘민중교회연합’이 90년대 후반에 이러러 ‘생명선교연대’로 이름을 바꾸고 생명선교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때 향린에서도 이들과 잠시나마 의견차이가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때만 해도 생명이라는 말이 생소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시기였나 봅니다.
그 후 생명평화마당, 생명평화연대, 생명선교연대, 생명평화마중물, 생명평화마을, 생명평화교회 등과 같이 정의를 내세우던 때와 마찬가지로 생명이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름 속에 생명이 포함된 단체는 대체적으로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보아도 될 정도입니다. 며칠 전 창립 100주년을 맞은 한국 YMCA가 생명평화 운동에 주력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우리 섬돌향린도 ‘이웃과 함께 생명평화를 일구는 작은 공동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환경연대를 비롯하여 천주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까지 각 종단마다 환경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고, 이들은 ‘종교환경회의’로 모여 종교간 환경운동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식사 전에 ‘쌀 한 톨의 무게’를 부르는데, 환경주일을 맞아 우리들 속에 ‘생명의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생명과 환경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왔고, 바뀌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충분하지 않음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교회나 사회운동에서 생명과 환경에 대한 관심과 비중은 더욱 커져 나가리라 봅니다. 지난 시대에 정의가 소중했던 것처럼, 생명의 소중함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민주와 정의가 끝난 일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민주와 분단에만 머물러 있을 때는 지난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다양성이 존중되고 자유와 평등이 소중한 때에 소수자와 약자들의 인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함께 풀어가지 않으면 꼬인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생명과 환경이라는 말이 갑작스레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해로운 먹을거리 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먹을거리에 대해 안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2008년 광우병 소고기 문제로 촛불 시위를 이어갈 때의 기억들을 잊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때만 되면 조류독감 구제역 돼지콜레라 사스 등의 질병으로 가축들이 땅 속에 매몰당하고 있습니다. 수입농산물에는 농약성분이 자주 검출되고, 유전자조작 물질로 우리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이틀 전에도 미국산 GMO밀이 국내에서 유통되었을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식량자급률이 22%에 지나지 않는 우리는 국제 곡물가가 오르면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 식량자급률도 쌀을 빼면 5%도 되지 못하고, 쌀 자급률도 83% 정도라고 합니다. 북녘 땅에서 굶주림이 심하다고 하는데, 북한의 식량자급률도2009년에 76%였다고 합니다. 식량 수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남한은 북한보다 몇 배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을 수 있는 형편입니다.
요즘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협을 찾는 조합원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텃밭을 일구는 사람도 부쩍 많아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농사하여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먹을 수 있고,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에서 찌든 시름도 달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곳 마포지역에도 도시농업네트워크를 결성하여 지역에서 함께 텃밭농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기장에서는 텃밭을 가꾸면서 생명살림을 실천하는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기독교환경연대에서는 매년 교회에서 녹색활동에 앞장서고, 창조질서보존을 위한 활동을 하는 교회를 선정하여 녹색교회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들녘교회에 이어 향린교회가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요소는 너무 많습니다. 공장에서 불산 같은 유독가스가 자주 흘러나와 공장 주변을 오염시키고, 사람들에게도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이 공해추방운동으로 처음 시작할 때, 경남 온산의 동제련소 주변 주민들이 공해병으로 집단 이주된 사건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백혈병으로 죽은 어린 여성 노동자의 수가 60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남양주 도농역 앞 지금의 부영아파트 자리에 원진레이온이라는 거대한 공해공장이 있었습니다. 직업병이 발생하고 환자들의 대대적인 투쟁으로 공장은 폐쇄되고,직업병 대책으로 녹색병원을 설립했습니다. 일본에서 중고로 수입해 왔다는 그 기계는 다시 중국으로 수출되어 가동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공해산업이 가난한 3세계로 수출된다는 사실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홍근수 목사님이 계시는 녹색병원이 그 병원이고, 그 병원 터가 박정희 독재정권을 붕괴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준YH무역이었습니다. 역사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4대강사업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그 파괴의 여파는 끝난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우리들도 함께했던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농민들이 쫓겨났습니다. 새만금 방조제로 부안 김제 군산의 어민들이 쫓겨났습니다. 용산 재개발로 참사를 당한 이들이 생업의 터전을 잃고 쫓겨났습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강정마을,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는 밀양과 청도,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삼척, 댐건설을 앞두고 있는 영양, 내성천 주민들이 쫓겨날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개발을 빌미로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고, 오순도순 살던 이웃과 헤어지거나 원수가 되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개발이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만금 방조제가 막힌 2006년 여름 해창 바닷가에서 에코토피아 캠프가 열렸고, 일요일 아침에 수녀님들과 그곳을 지나던 문정현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신부님은 “이곳에 오면 가슴이 메인다”고 했습니다. 그곳은 동생 문규현 신부님이 수경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님과 함께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시작했던 곳입니다. 더 기막힐 노릇은 몇 년 동안 평택에서 미군기지 싸움을 막 끝냈는데, 새만금에 천만 평의 미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판국이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미완성인 새만금에는 정치적인 시기만 되면 이당과 저당에서 이런저런 개발을 하겠다고 야단입니다. 삼성과 몬산토가 이곳에서 거대한 gmo사업을 벌이겠다는 말도 있고, 여기에는 빌게이츠도 포함되어 있다고도 합니다.*생략)) 밀양 할머님은 말씀하십니다.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며느리인 할머니께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지켜 달라고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렇게 송전탑이 들어설 줄은 모르고 말입니다. 지금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구를 이끌고 8년 동안 산을 오른다고 합니다.
핵발전소는 안 됩니다. 물론 핵무기도 더욱 안 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핵을 두둔해서는 안 됩니다. 진보진영 중에서 북한 핵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핵사고는 다른 사고에 비해 피해지역이 넓고, 미치는 여파가 너무 큽니다. 일본은 후쿠시마 지역을 포기하기로 하고 그 대응책을 강구 중이라는 소식도 들립니다. 우리 서민들이 즐겨먹는 고등어 명태는 앞으로 수백 년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작년 후쿠시마 핵사고 1주년 때 후쿠시마에서 왔던 아베 유리카 어린이는 한국말로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어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제가 결혼할 수 있을까요?” “제가 건강한 아가를 낳을 수 있을까요?”
오늘 읽은 성서 말씀은 하느님께서 천지를 만드시고, 땅과 바다에 생명을 만들어 살게 하시고 ‘참 좋았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사람을 만드신 후 “땅을 정복하고, 생명을 다스리라”고 하신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으로 기독교가 개발과 기술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라. 생명이 없는 만물들 까지도” 이렇게 읽는 게 맞을 텐데 말입니다. 교회에서 축복이 강조되면서, 기독교가 물질문명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교회가 앞서서 인간들의 욕심으로 오염시켜 놓은 세상을 하느님께서 창조신 상태로 되돌리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모든 생명들과 만물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어, 하찮게 보이는 존재 하나라도 아프면 다른 존재들도 편안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이 마음대로 자연을 파괴하다보니 오늘 같은 기상재해를 입게 되고, 다른 생명은 생각하지 않고 인간 위주로 살아가다보니 생태계의 교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물의 종이 소멸되어 간다고 하는데,인간이라는 종은 영원히 계속 될 수 있을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상품들도 소비자가 있으니 계속 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특히 한국의 소비자들은 기업의 충성스런 우군으로 보입니다. 계속되는 상품 생산으로 전기가 필요하고, 그 전기를 채우려고 핵발전소를 짓고, 송전을 위해 송전탑 건설하게 되어 밀양의 할머니들이 산을 오르게 됩니다.나와 우리 자신들이 밀양의 할머니들을 산에 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면 암울합니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면서 살아가려는 소리 없는 작은 몸짓들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넘어서면서 자원의 소비를 줄이고, 공동체성을 회복해 가면서 대안적 삶을 살아가려는 몸부림입니다. 집을 소유하지 않고 세를 얻어 여럿이 어울려 살면서, 함께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행동도 함께 해 나갑니다. 가난으로 쪽방에 살면서도 천원 이 천 원씩 모아 자립을 향해 나아가는 노숙인들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가서 어른들을 모시거나, 먹을거리를 걱정하면서 땀을 흘리기도 합니다. 무너져가는 마을공동체를 살리고 공동체문화도 복원해 가면서 지역에 헌신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개발로 파괴되거나 인권이 유린당하는 현장에 게릴라처럼 나타나 저항하는 생명평화 지킴들이 있습니다. 이런 작은 몸짓에서 희망의 싹이 돋아나리라 믿습니다. (정치권이나 무디어진 거대한 조직에서 보다 말입니다.*)
환경주일을 맞아 우리들에게 강아지똥으로 잘 알려진 권정생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평생 아픈 몸으로 오두막집에서 살았습니다. 시골교회 종지기를 하면서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신 분입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바라는 교회를 소개하며, 우리의 교회나 삶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만약 교회를 세운다면, 뾰족탑에 십자가도 없애고 우리 정서에 맞는 오두막 같은 집을 짓겠다. 물론 집안 넓이는 사람이 쉰 명에서 백 명쯤 앉을 수 있는 크기는 되어야겠지. 정면에 보이는 강단 같은 거추장스런 것도 없이 그냥 맨 마룻바닥이면 되고, 여럿이 둘러앉아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는 예배면 된다. OO교회라는 간판도 안 붙이고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하다면 '까치네 집' 이라든가 '심청이네 집' 이라든가 '망이네 집' 같은 걸로 하면 되겠지. 함께 모여 세상살이 얘기도 하고, 성경책 얘기도 하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서당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고, 단옷날이나 풋굿 같은 날엔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담그고 해서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어려운 일, 궂은일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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