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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기

예전에는 사당패가 있고, 유랑극단이 있었고, 가설극장이 있었다. 또 마을에서 심심치않게 굿판도 벌어지고, 마을제사도 지내고, 결혼식 회갑연 장례식을 하면서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풍습들은 사라지고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는다. 간혹 시골장터 같은데 가면 약장수 정도를 볼 수 있다. 이런 풍류를 그리워했든지 끼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겨울에 풍물도 배우고 농촌마을에서 굿판도 벌려 보고 싶어 '유랑농악단'을 꾸렸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남도에서 풍물을 배우고 정월 대보름에 맞추어 남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보름 굿판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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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고 했던가... 미리부터 계획하고 준비하여 벌리는 판에 느즈막이 염치없이 끼어 구경하면서 놀다 왔다. 해남군 송지면 동현마을에 풍물패와 마을 주민들, 그리고 멀리 부산한살림에서 수 십명이 와서 보름 굿판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회관에는 범죄없는 마을이라고 적혔있는데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보인다. 처음 시작부터 아이 어른 모두 신명나는 하루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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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을을 한 바퀴 돌 모양이다. 마을기 용기 영기를 앞세우고 풍물패가 뒤따르고 그 뒤에 마을 주민들과 구경꾼이 뒤 따른다. 마을 뒤로 돌아가는데 따뜻한 남쪽이라 더 넓은 마늘밭에는 마늘이 커다랗게 자라고 있고, 가을배추며, 겨울을 이기고 돋아나는 봄나물이 지천이다. 북쪽에서는 아직 두어달 있어야 파종할 완두콩이 큰 손가락 만큼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며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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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뒷 편 들판 한 가운데 가서 멈춰 한판을 벌린다. 마늘 밭을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데, 넓은 마늘밭과 들판이 그 앞에 있고 커다란 우사도 자리하고 있다. 일년 농사와 축산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인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들 가운데로 물이 흘러 쉽게 댈수 있겠고, 따뜻해서 풍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보인다. 약간의 틈만 있으면 마늘을 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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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닷가로 향한다. 이 마을은 농사도 하면서 바로 앞이 바다여서 김 양식은 많이 한다고 한다. 논밭에서 농사하고 바닷일까지 같이 하게되니 풍요롭겠다. 따뜻한 지역에서 바닷와 함께 하며 농사를 짓는 것을 그려보았는데 이곳이 그곳이다. 따뜻한 기후 탓에 농작물이 자라는 시간이 많아 수확물도 많겠으나 일거리도 많을 수 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면 그 일을 다 감당하려면 힘도 많이 들겠다. 그기에다 바닷일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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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는 용왕님께 풍어를 기원하고, 바닷에서 희생당한 넋들을 추모하고 달래기 위한 헌식굿을 한다. 추운데 마을 아낙들은 미리 와서 굿판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집집마다 정성스럽게 제사음식을 준비해 와서 상을 차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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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패들이 와서 바닷가를 차려 놓은 제사 음식을 중심으로 바닷가를 돌면서 한판 굿판을 벌린다. 약간 추운 날씨라 한 켠에 피워 놓은 모닥불 옆에서 구경을 한다. 이곳에서는 고기를 잡는 것 보다 앞 바다에서 김 양식을 많이 한다고 한다. 소득도 괜찮아 젊은 사람들도 상당히 있는 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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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식굿을 하고 제사음식을 볏짚에 싸서 바다에 바치고, 남은 음식을 모인 모든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 춥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풍습이라 처음에는 주저주저하다가도 금방 둘러 앉아 정성스레 차려온 이 음식 저 음식을 먹으면서 이갸기 꽃을 피운다. 잎새주를 비롯하여 막걸리 복분자주 홍어 명태 김 찰밥 각종 부침개 산나물 묵을김치 돼지고기 과일 등 푸짐한 공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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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준비해 온 음식이 조금씩 달라 먹던 자리에서 돌아앉으면 또 다른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이맛 저맛을 보면서 먹느라 배 부른 줄도 모르게 푸짐하게 먹는다. 이 기회에 남도의 갖은 음식 맛을 보게 된다. 본래 우리들의 공동체는 함께 일하고 놀고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인데, 산업화 된 사회가 되면서 이런 풍습이 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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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한잔씩 마시고 배도 부르고 따뜻한 모닥불도 있다. 지금 만큼은부족함이 없이 즐거운 시간이다. 그동안 각자 속에 숨어 있는 끼들이 발동을 하여 한바탕 놀판이 벌어진다. 뒤따라 다니던 구경꾼이 악기를 손에 잡고 두드리고, 춤을 춘다. 이때는 정형화 된 그런 가락이 아니어도 좋고, 춤이 아니어도 좋다. 저마다 주체할 수 없는 신명을 풀어놓는다. 한가지, 저 타는 불을 뛰어넘는 놀이를 하지 못해 아쉬움도 남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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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을로 돌아와 오전에 처음 시작했던 마을회관에 다시 돌아와서 깃발들을 나무에 기대어 세워 놓고 해가 저물어지는 가운데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여기에서도 신명은 차지않아 저마다의 끼를 다 발휘하지 못했는지 춤판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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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면서 저멀리 하늘에서는 달빛이 비추는데도 끝이없이 놀고 싶어한다. 아침에 피웠던 모닥불을 불씨 삼아 장작을 갔다놓고 불을 피우고 말이다. 특히 부산 한살림의 아지매들의 신명은 하늘을 찌른다. 서로 어울려 이런저런 춤을 추더니 나중에는 프라스틱 다라이까지 이고 춤을 춘다. 살아가면서 특히나 도시에서 우리의 역동적인 신명을 풀어 낼 수 있는 기회도 공간이 없다. 오늘 같은 날을 맞아 실컷 풀고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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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동현마을의 굿판을 뒤로하고 가까운 산정마을에서 열리는 보름 굿판에 간다. 이곳 마을에는 빨간 황토흙을 뿌려 놓았고, 마을을 처음 여셨다는 경주배씨 할머니를 모신 제단 앞에서 스님께서 제사를 드리고 있다. 가까운 미황사에서 오신 스님들이라고 한다. 템플스테이 온 분들도 함께 와서 굿판에 참여한다. 뒤이어 밤중에 마을 돌며 집집마다 차린 젯상 앞에서 한해 액운이 들지 않기를 기원하는 굿판을 벌리게 된다. 돌아보니 아주 큰 마을이다. 예전에는 더 컸는데 지금은 100호에 좀 못 미친다고 한다. 여기도 마을회관 앞 마당에 굵다란 장작으로 피워 놓은 모닥불은 추운 몸을 녹여주며 따뜻하게 해 준다.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차려준 음식들로 또 배를 채우고 오늘은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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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보름에도 어제 낮에 계속 굿판을 벌였던 동현마을로 갔다. 오늘은 집집마다 돌면서 한해 액운을 물리치는 굿을 한다. 처음으로 간 집은 헌집을 헐고 터를 잡아 새 집을 지으려고 하는 집이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지을 이 터에 새로운 집을 지을때에 아무 탈없이 집이 지어지기를 바라며, 좋은 집이 지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을 한다.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절에 가서 땅밟기인지 터밟기인지를 한다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는데, 이게 제대로 된 터밟기이다. 주인 할머니의 즐거워 하는 표정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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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집집마다 정성스런 제사 음식을 차려 내 놓았다. 담근술 소주 복분자 술 양주 식혜 곶감 땅콩 과일 과자 한과 각종건어물 홍어 매생이 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식들이다. 살아가는 가족의 구성이나 형편에 따라 제사상도 약간 차이는 있다.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서는 좀 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집집마다 풍물을 울리고 차려준 음식을 먹기를 반복한다. 오전부터 시작해서 저녁 때 까지 오랜동안 놀고 먹으면서 징하게 굿판을 벌렸다. 60여 집을 돌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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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를 돌려고 하니 조금 떨어진 집에는 이동하기에 시간이 걸려 풍물패들이 트럭을 타고 움직이기도 했다. 가끔 농촌에 일하러 가서 논밭으로 가면서 트럭을 타고 이동은 해 보았지만, 중고 북 쇠를 메고 이렇게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다. 앞으로 이런 광경을 보기는 쉽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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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돌면서, 나는 내가 관심하고 있는 집들을 구경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려고 했다. 농가집을 약간 다르게 고쳐 놓기도 하고, 마당에서 보아도 그 집의 살림살이나 살아가는 사람들을 약간은 짐작을 할 수 있겠다. 마을 중간중간에 빈집도 가끔씩 보인다.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 동백 같이 보기 힘든 식물들이 많이 자란다. 오랜 나무들로 분재를 해 놓은 집도 많고, 담벼락에서 영양을 빨아들인 데도 없을것 같은데오 오래동안 굵게자라온 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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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처음부터 이제껏 지켜오면서 온갖 애환을 다 겪었을 법한 마을지킴이 같은 나무도 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을들은 오랜동안 마을의 들과 산,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부대끼면서 살아오면서 그 역사를 만들어 왔을리라 본다. 그런데 짧은 산업화시대가 되면서 그런 우리의 마을은 사라져 찾기 힘들게 되고, 도시화된 집들과 사람들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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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보름을 맞아 제사를 드리고 집 마당 한쪽에 고시레 음식을  내 놓았다. 공동체 안에서 먹을 것이 없어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해 음식을 나누는 풍습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한다. 이런 풍속은 감나무에서 감을 다 따지 않고 감 몇개를 남겨 두면서 까치밥이라고 했고, 성서에도 과부나 고아를 위해서 다 추수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이런 나눔은 계속 있어 왔는데 지금은 자꾸 줄어드는게 아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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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 중에 나온 먹을거리를 나중에 먹으려고 이렇게 한 켠에 두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이런 여유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이런 재치는 어디서 나왔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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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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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우리의 신명을 발산할 수 있는 굿판이나 공동체 문화에 관심하고 구경들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풀어 헤치고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흔치 않다. 기교를 발휘하고 예술성이 있는 공연은 많기는 한데, 그런 공연에서의 분위기는 다르다. 어느정도로 판이 만들어질지 예상하지 못하고 참여한 남도의 굿판에서 풍성한 굿판을 맞았다. 앞으로 이런 분위기의 굿판을 만나기는 그렇게 쉽게 않으리라 본다.

그곳 마을과 이틀동안 풍물를 치느라 고생한 풍물패,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보름 굿을 통하여 한해 무탈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또 다음 기회를 기다려 보리라.

유랑농악단이 말 그대로 떠돌면서 유랑하는 농악단이 되어 잔치가 있고 풀어야 할 액이 있는 곳이면 찾아가, 막힌 액을 풀고 신명을 펼치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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