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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교회


이번달은 주일이 다섯 번 있는달이지만, 다른 교회 방문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간단히만 생각했던 방문할 교회를 찾는것도 쉽지를 않다. 그냥 슬쩍 다녀오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크다란 교회를 찾으면 되겠지만, 그런 교회는 마음에 내키지 않고 찾아가고 싶은 교회는 작더라도 대안교회로의 노력이 보여지고 보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는 대체로 규모가 적을 수밖에 없을테고, 이들 교회 사람들은 가끔 얼굴을 마주한 경우가 있을터이니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약간의 애로점이 따른다. 그리고 이전에 예상해 두었던 그런 교회를 찾아가가기 보다는, 계속해서 예상치 못했던 이외의 교회로 인도한다.


몇일전에 언뜻 생명선교연대의 20주년 기념집을 보다가 이웃사랑교회가 눈에 들어 왔다. 그러면서 2년전 대추리에서 청바지를 입고 북을 치면서 반전반핵가를 부르던 전성표 목사님이 기억에 떠 오르고 되고, 교회 위치를 보니 20대때 잠시 지냈던 구로동(벌집이라 불리던) 이었다.


7호선 가산디지탈 역에서 내렸는데 지난날의 가리봉역 시절과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때의 큰 공장들은 그의 모두 패션상가나 사무빌딩 유통단지 등으로 바뀌었고, 약간의 주택지나 일반상가는 그 모습 그대로 인듯 하였다. 높은 건물로 가리워져서 어디가 어딘지 방향감각을 잃을 정도였다. 정신을 차리고 남부순환도로 변을 따라 굴다리를 지나서 주택가에서 회색주택건물의 이웃사랑교회를 찾게 되었다.


길을 헤메느라 예배시간이 10여분 지나 예배는 진행되고 있었다. 좁은 예배당에서는 십 수명이 모여 무릎을 맞대고 앉아, 예배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잇었다. 예배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예배중에 한분의 자매께서 세례를 받으시는데, 목사님께서는 이미 교회생활을 하면서 세례를 받은거나 마찬가지지만, 교회법에 따라 형식적이지만 세례를 드린다고 하고, 자매님도 세례를 받고 싶어 했다고 한다. 목사님께서는 평상복을 입고 계시다가 그때에 목사가운을 입으시면서 장인 어른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물려주신 옷인데, 너무 큰 옷이라 몸에 맞지를 않아 줄여서 고쳐 입는다고 하신다.


예배중에 교인들이 먹을 떡 배달을 오니, 떡값을 치르고 떡을 받아 두어야 하고, 주보는 이면지를 사용하여 속지를 감추기 위해 사진과 같이 호지께스로 찍어서 사용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호지께스로 찍었을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혹, 공부를 하기 위해서 속에는 일부러 감추어 둔것이 아닐까 하면서 호기심이 발동을 하여, 속을 들여다 보니 한번 사용한 이면지를 활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쇠로 된 호지께스 보다는 풀로 붙이는것이 더 좋겠다고 했다.


예배중에 새로운 형식은 설교후에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일주일동안 살아온 이야기와 생각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여러명이 이야기를 할려고 하니 약간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솔직하고 시시콜콜 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잘들 나누게 된다. 그간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렇겠지만, 우리 같으면 이렇게 자신을 솔직히 들어 내 놓지는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짧은 시간내에 그렇게 쉽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는 외형적으로만 젊잖게 만나서 좋은 이야기만 하고, 정녕 그 사람의 생각이나 생활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다.


직장에서 정규직에서 짤리고 비정규직으로 있다가 이제는 아르마이트를 해야 처지이며 앞으로 긴 계획을 해 나가겠다. 병환중인 시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며느님, 외국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부부간의 약간 까칠한 관계, 새로운 직장을 주셨고, 아이들에 대한 걱정들, 대안적인 삶을 살아 가고자 염원했는데 그에 대한 선배님을 만나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가면서 어렵던 일들, 교단행사에 가서 말씀 전하고 후한 사례비를 받아 헌금을 하시고, 승합차를 팔아야 할 형편인데 팔지 않아도 후원을 해 주실것 같기도 하다는 말씀, 사모님께서는 지금 숭실대에서 그림 전시회를 히는데 고양이가 중심이라~ 등등 많은 이야기들을 토해 낸다.


목사님은 앞에서 작은 좌식 탁자를 앞에 놓고, 이름모를 작은 악기(아시아)를 손에 쥐고 연주를 하시고, 좌우로 북과 징이 놓여 있으며, 작은 헌금 바구니를 돌려서 헌금을 하고, 예배 참여 인원은 스무명 남짓 밖에 안되지만 형제자매간의 서로의 교통과 사랑이 넘치는 한 식구 같은 느낌이다.


예배가 끝나자 오늘 세례받은 자매님을 기념하여 모든 교우들이 앞자리에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 상을 펴고 식사준비를 맡은 분이 준비하여둔 식사를 바로 앞의 주방에서 날라다가 상을 가득 채우고, 식사노래와 기도로 밥상공동체가 시작된다. 오늘은 세례식을 치러서인지 특별히 시루떡과 인절미 과일이 함께 준비되어 있다. 예배에 참석했던 교인들이 빠짐없이 식사를 하면서 그간 예배시간에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아무래도 연합행사 같은데서 얼굴이 마주쳤을수 있으나, 처음간 나를 정확히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그냥 낮익은 얼굴이라고만 한다. 나도 정확히는 말하지 않고 대추리에서의 잠깐만 이야기 했다. 점심후에는 한 교인의 준비로 다같이 TV로 영화를 볼 모양이다. 오후에 갈 데도 있었지만, 교인들도 교인들끼리 있었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아마도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나 다시 만나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라고 인사를 하고는 교회문을 나오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동네 어른신들 반찬도 해 드리고, 동네 아이들을 위해서 어린이집도 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에서도 지역사회를 위해서 할 일을 찾아서 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면서도 교인들이 멀리서 오는 교인들도 있어 보이기는 하다.


이웃사랑교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냥 재미로 Just for fun’

‘지금 하라 Just do it. -’


그렇다. 지금이 중요하고, 하는 일이 딱딱하지 말고 재미스러워야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조상들은 일과 놀이를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교회를 나와서 역으로 가는데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려 보니 순환도로 밑으로 가면 바로 역인데, 올때에는 많이 돌아서 오느라 늦은듯 하다. 80년 정도인가에 방 한칸에 20만원 보증금에 2만원(?) 정도의 방세를 주고는 동네 후배들이랑 지냈던 기억이 나면서, 아직도 순환도로 건너 구로동 쪽으로 크게 변하지 않고 닥지닥지 붙은 집들이 그대로인듯 하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지난날부터 고민을 해왔던 선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선교(운동)를 교회에서 교회단위로 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이 삶의 현장에서 선교를 담당해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한 생각들을 해 왔다고 볼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 오늘의 생각은 이렇다. 즉, 선교는 각 개인의 삶의 현장에서 하는것이 맞다.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현장목회자(평신도)라고 하는 말에도 맞는 말이다. 교회에서는 교인들과 친밀한 사랑과 생활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웃사랑 교회에서 교인들의 삶을 나누는 이야기들 옆에서 들어 보아도 이들은 교회를 통하여 삶을 나누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된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정부분 사회를 생각하면서, 그에 따른 삶을 살고 있는듯 하기에 그러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건가? 수가 많으면 그에 따른 약간의 차이도 있을수 있겠으나, 위의 원칙은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교회는 공식적인 활동이나 연대해야 할 부분들을 처리해 주면 되지 않을까 한다. 개인들이 사회에서 해야할 일들을 하고 있지 있으니, 교회에서 모든 것을 할려고 하고 있으나, 이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생활속에서 예수를 따르도록 교회는 권면하고 결단하도록 하며, 그길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영성을 닦는 일을 해도 좋을듯 하다. 그리고 교회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하면 좋겠다. 그러면 많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앙의 충돌 같은것도 일어나 나지 않을수 있겠다. 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이웃사랑교회

http://www.neighbo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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